My Favorite Music/^^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브람스/피아노 협주곡 1번 Op. 15 - 클리포드 커즌(피아노) 죠지 셀(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만짜 2016. 9. 8. 00:04

 

 

 

 

 

 

 

 

 

 

Johannes Brahms (1833~1897)
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 15

 

 

 

  1. Maestoso (22'04")

 

  2. Adagio (16'06")

 

  3. Rondo - Allegro non troppo (11'52")

 
 
 

1 ~ 3 순으로 연속듣기 

 
  
Clifford Curzon, piano
George Szell, cond
London Symphony Orchestra
Recorded: 1962
London CS 6329 (stereo)

 



 

브람스는 이 곡을 1854년, 그의 나이 21세 때인 봄에
2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완성해 놓고
빌표를 미루고 있다가 그해 여름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였다.

이때의 의도는 교향곡 1번으로 고쳐 쓰고자 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게획을 수정 하게 된다.
1854년 2월은 슈만이 정신착란으로 라인강에 투신한 해였다.

1855년 2월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불행한 교항곡은 협주곡으로 사용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중에서
피아노 협주곡으로 채택된 악장은 1악장 뿐이었다.

2,3악장은 1856년이 저물어 갈즈음에 전혀 새로운것으로 만들어 졌다.
"2악장은 나는 당신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라고
브람스가 클라라 슈만에게 고백한 간접적인 사랑고백이다.

청년 브람스의 분출하는 정열이 넘치는 듯
두번의 카덴짜가 허락되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브람스가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 작곡에 전념한
시기는 1856년 부터 1858년 까지 2년 간이다.

초연은 5년여간에 걸친 작곡 및 수정을 마쳐 완성,
1859년 하노버 궁정극장에서 브람스 자신의 연주와
요하임(Joachim)의 지휘로 이루어졌으나 반응이
그리 좋지 않은 것에 대해 상당히 실망을 하였다고 한다.

당시 청중들의 기호는 쇼팽이나 리스트 같은 작곡가들이 작곡한
낭만적 성향이 가득한 피아노 협주곡들에 이미 맞추어져 있어서,
브람스의 1번 피아노 협주곡 처럼 피아노의 역할이 축소되고
오케스트라의 비중이 강화된 곡에는 전적인 찬사를 보내지 못했다고 한다.

브람스가 이 대곡을 작곡한 시기는 그의 스승이자 
후원자였던 슈만의 죽음과 맞닿아 있다.

브람스에게 정신적인 지주와도 같았던 슈만의 죽음(1856년)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1번 협주곡에 브람스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심정이 잘 반영된 것이다.

 

 
 
 

 

영국의 피아니스트 클리포드 마이클 커즌(Clifford Michael Curzon)은
1907년 5 월 18 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페르시아의 시장에서'로 유명한,작곡가 케텔비의 조카로 13세 때
런던 왕립 음악원에 입학하여 찰스 레디(Charles Reddie)와
캐서린 굿슨(Catherine Goodson)에게 배웠다.

이후 아르투르 슈나벨을 듣고 감명받아
베를린에서 1928~1930 년까지 2년 동안
그에게 배웠으며 파리에서는 란도프스카와
나디아 불랑제에게 사사했다.

1926 년 모교의 교수로 취임했으며,
1932년 영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생활을 시작했고,1939 년에는 미국 뉴욕의 무대에 데뷔했다.

1950년대가 되자 커즌은 독주 활동 이외에도
실내악에 관심을 두고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 중에서도 요세프 시게티와 윌리엄 프림로즈,
피에르 푸르니에와의 에딘버러 페스티벌 공연은
 아직까지도 전설적인 연주회로 회자되고 있다.

1937년부터 Decca에서 녹음을 시작했으며,
CBS에서 녹음한 몇 예외를 빼면 70년대 초반까지
 거의 Decca에서만 녹음했다.
이 시기에 그는 박하우스, 아슈케나지, 굴다, 카첸 등과 함께
명실공히 Decca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였다.

주로 유럽에서 활약했으며,녹음도 거의
유럽 오케스트라 및 앙상블과 한 것이 대부분이다.
스튜디오 레코딩은 1972년까지 거의 끝났으며,
그 후는 주로 방송용 녹음만 남아 있다.

1977년 작위를 받아 Sir 칭호를 얻었으며,
1982년 9월 1일 런던에서 사망했다.
최근 몇 년 간 Decca는 Classic Sound나 Legends 시리즈로
그의 음반을 집중적으로 재발매했는데,
산발적으로만 발매되어 제대로 구해 보기 힘들던
커즌의 음반의 진가를 알린, 매우 기쁜 일이다.

음악적으로 완벽주의자였던 커즌은 녹음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브람스의 협주곡 1번은
그의 명연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커즌의 특징은 역시 신중함과 섬세함이다.

특히 이 곡의 2악장에서 그의 서정적인 피아니즘이 빛난다.
그렇다고 1악장의 강주 부분과 3악장의 파워풀한 드라이브에서
힘이 부칠 것이라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
의외로 힘차게 달려나간다.

물론 거기에는 오케스트라와의 한판 승부이라는 측면이 깔려 있다.
조지 셀은 런던 심포니를 상당히 강하게 몰아부친다.
영국 그라모폰은 길렐스의 연주와 함께
커즌의 이 녹음을 20세기 ‘100대 명반’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 웹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