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V. Beethoven (1770∼1827) 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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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os Kleiber, cond Amsterdam Concertgebouw Orchestra 19 and 20 October , 1983 ; Live Recordings
지휘의 거장. 마에스트로 카를로스 클라이버 그의 음악적 재능을 들여다 보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1930년 7월 3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베를린 국립오페라의 음악감독 에리히 클라이버, 어머니는 유대계 미국인이었던 루스 구드리치였다.
클라이버 본인은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치 치하에서도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리히 클라이버가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를 초연한 이후 베르크의 '루루'가 나치에게 ‘퇴폐음악’으로 분류돼 금지되자, 에리히 클라이버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 음악감독직을 사임하며 저항의 의사를 표시했다.
나치와 에리히 클라이버는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카를로스가 태어났을 때 이름은 카를 루드비히 클라이버였지만, 나치와 대립하고 있었던 에리히 클라이버가 1940년 아르헨티나에 망명했고, 스페인어권이었던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카를로스로 개명했다.
피는 못 속인다 했던가. 카를로스의 음악적 재능은 어릴 적부터 뛰어났다. 9세 때 작곡을 하고 노 래를 잘 했으며, 피아노와 팀파니를 연주했다.
아버지인 에리히는 카를로스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길을 걸으면 고생할까봐 아들이 음악인의 길을 걷는 것을 차단하려 했다.
1950년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결국 아버지 에리히 클라이버의 권유로 1952년부터 일단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대에 입학해서 화학을 전공했다. 1952년 라 플라타에 서 지휘자로 데뷔 무대를 가졌고, 1953년에는 뮌헨 개르트너플라츠 극장에서 월급 없는 연습생 지휘자가 되어 지휘 경험을 쌓았다.
카를로스는 단원들에게 음악 해석을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해 자세히 설명하곤 했다. 아버지인 에리히 클라이버와 비슷한 점이었다. 리허설 전에는 반드시 작곡가의 자필 확보를 확인하고 다른 연주 자의 녹음을 구해 연주 해석을 확인하고, 아버지 에리히가 사용한 총보를 연구하는 등 그 준비과정이 세심하고 철저했다.
이렇게 치밀한 리허설에 비해 실제로 연주할 때는 발레를 연상시키는 독특 하고 우아한 지휘모습으로 청중들, 오케스트라 단원, 협연자들을 매료시켰다. 그 지휘에서는 아찔 한 속도감, 살아있는 리듬감, 색채의 강렬함, 서정적인 아름다움 등이 느껴졌다. 분명 천재 지휘자의 모습이었다.
그 질주하는 젊음으로 인해 카를로스는 항상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음악가로 인식됐다. 그러나 그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을 좌우로 마주보게 배치하거나 악보에 수정을 하고 현악기의 보잉을 각 보면대마다 다르게 연주하는 등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방식을 응용했다. 이는 아버지 에리히의 강한 영향 아래 옛 지휘자들의 유파를 이어받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지휘자 파트보를 소유하고 그 내용을 적어 사용한 것도 브루노 발터 등 19세기 대지휘자들의 습성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카를로스의 지휘는 뜸해졌다. 2~3년에 몇 번 정도의 페이스로 지속됐다. 바이에른 국립관현악단과 빈 필, 베를린 필 등 오케스트라도 한정됐다. 카를로스가 어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만으로도 큰 뉴스가 됐고, 연주회 티켓을 구한다 하더라도 그가 지휘대에 설 것인가에 대해서 확실하지 않았지만 많은 팬들이 카를로스의 연주회를 기다렸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매우 특별한 존재다. 강력하게 몰아붙이는 힘과 깊이있는 해석력, 오케스트라를 자기 몸처럼 완벽하게 장악하는 데에서 오는 유연하고 다이내믹한 지휘력 등등 그의 존재는 매력 그 자체로 다가온다. 그 어떤 지휘자들보다도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의 가장 큰 무기 중의 하나이다. 비인필하모닉을 지휘할 때에는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표현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화려한 경력에 비한다면 그가 지금까지 레코딩한 음반의 수는 정말로 너무 적다. 하지만 일단 그가 손을 댄 레파토리들은 대부분 명반의 대열에 있는데, 이것은 그가 그만큼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지휘자 중의 한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가장 유명한 베버의 ‘마탄의 사수’를 위시해 베토벤의 교향곡 5번 등은 이 분야 레코딩사에 길이 빛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외에도 슈트라우스의 ‘박 쥐’,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와의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협주곡’ (Angel), 슈베르트의 교향곡 3번과 8번, 브람스의 교향곡 4번(DG)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걸작들이다 . <홍승찬 교수님의 클래식 톡톡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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