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지휘자)/^^에리히 클라이버

베토벤/교향곡 5번 Op. 67 '운명' - 에리히 클라이버(지휘) & 암스텔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로만짜 2016. 6. 25. 00:20

 

 

 

 

 

 

 

 

  

 

L. V. Beethoven (1770~1827)
Symphony No.5 in C minor Op. 67 'Fate'

 

 

 

  1. Allegro con brio (07'07")

 

  2. Andante con moto (09'09") 

 

  3. Allegro 
                        4. Allegro - Presto (14'29")

   

1 ~  4 순으로 연속듣기
 
 
Erich Kleiber,cond
Concertgebouw Orchestra of Amsterdam
Recorded: 1953 Mono
Philharmonic Hall, Lincoln Center, New York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에리히 클라이버 (1890~1956)는
언어 학자인 부친이 프라하로 부임되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을 프라하에서 보냈는데, 1895년과 그 이듬해에
양친을 다 잃고 나서는 프라하와 빈의 친척 집에서 자랐다.

빈에서는 기초 교육 종료 시험을 받고 프라하 음악원에서
피아노, 오르간, 타악기, 지휘법을 공부하고,
그곳 대학에서 철학, 역사, 예술사를 배웠다.

1911년부터 그 이듬해에 걸쳐 프라하의 도이치 극장의
연습 합창 지휘자가 된 것이 음악 활동의 시작인데,
그로부터 1919년까지는 다름슈타트의 궁정 오페라 극장의
제3 및 제2(1916년 이후)악장이 되었다.

1919년부터 1921년까지는 바르멘 - 엘버펠트(현 부퍼탈)의
제1악장이 되고, 이 시기에 콘서트 지휘자로서 데뷔하였다.

그로부터 뒤셀도르프, 만하임의 지휘자를 역임한 다음
1923년 8월에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 총감독으로 취임하고
1934년 12월에 나치스의 문화 정책에 반대하여 사임할 때까지
이 지위에 있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이 사이에 야나체크의 '예누파', 베르크의 '보체크' 등
그 밖의 초연도 하였고,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를 위하여
두 번 미국에 갔다.
 
  
 
 
 
1935년 1월에 나치스를 피해 독일을 떠났고,
이듬해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 극장의 독일 오페라의 수석 지휘자,
1943년부터 1947년까지 하바나 필하모니의 지휘자 및 중남미 각지의
객원 지휘 등을 하였다. 1947년부터 유럽으로 진출하였으며,

1951년부터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의 객원 지휘에 초청되었고
1954년에 수석 지휘자가 되었지만,
정치적 이유 때문에 1955년 3월 사임하였다.
그 후 각지에서 객원 지휘를 계속하였으며,
1956년 1월 27일에 취리히에서 사망하였다.

클라이버는 언어의 리듬과 오페라의 연출 효과에
천재적이라 할 수 있는 뛰어난 감각을 갖추고 있었다.
이로 인해 오페라 지휘에 독특한 경지를 개척했으며,

그러한 양식을 콘서트 지휘에까지 발전시켜 나갔다.
그의 음악은 항상 노래하고 있는 것이 큰 특색인데,
그래서 형식과 내용의 균형이 교묘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전곡과 베토벤 운명 교향곡이
 명반이라 할 수 있다. 1974년 그의 아들 카를로스 클라이버도
  베토벤 운명 교향곡을 내놓았는데,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반으로 손꼽힌다.
<웹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