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지휘자)/^^카를로스 클라이버

드보르작/피아노 협주곡 Op. 33 -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피아노) 카를로스 클라이버(지휘) 바이에른 국립 관현악단

로만짜 2014. 10. 13. 01:00

 

 

 

 

  

 

 

 
 
 
    

Antonin Dvorak (1841 ~ 1904)
Piano Concerto in G minor, Op. 33, B. 63

 

 

 

 I. Allegro agitato (18'25") 

 

  II. Andante sostenuto (08'56")  

 

  III. Allegro con fuoco (11'01") 

 
 
   
2,3,1 순으로 연속듣기 
 
Sviatoslav Richter, piano
Carlos Kleiber, cond
Bavarian State Orchestra
Recorded: Munchen, 1976

 
    
 
드보르작은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각 한 곡씩 남겼다.
이 피아노 협주곡은 첼로나 바이올린 협주곡보다 먼저인
1876년에 작곡된 곡으로 비교적 그의 초기작에 속한다.
Dreyschock의 제자인 피아니스트 Karl Von Sladovsky에게
헌정된 곡이며, 초연은 1878년 5월 24일에 있었다.

드보르작은 초연이 된 이 후에도 1883년에
악보가 출판되기 전까지 계속 수정을 거쳤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출신이 아니라 당대의 다른 피아노 협주곡에 비해서나,
자신의 바이올린, 첼로 협주곡에 비해서도 높은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노의 명인기가 과시되는
비르투오소 풍의 협주곡은 아닌 것 같다.
물론 1악장이나 3악장 군데 군데에서 피아노의 기교적인
화려한 효과가 돋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베토벤이나 브람스 풍의 교향곡 타입의 협주곡인 것 같다.

내지 설명에는 그의 피아노 협주곡이
브람스의 영향을 받았다는데 반박하고 있지만
(드보르작은 이 때까지 브람스를 만난 적도 없고,
그의 곡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다고 나와 있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이 곡이 매우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특히 1악장에서 이러한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오케스트라의 서주로 시작하는 전통적인 협주곡 양식이라는 점,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많이 강조되는 점,
피아노의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시작되는 점 등
여러가지 유사한 점이 많이 보였다.

또 이 곡에서 언급해야 할 중요한 요소는 나중에 작곡된
그의 첼로,바이올린 협주곡보다 드보르작 특유의
민족적 색채감이 두드러져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드보르작의 이 곡은 차라리 민족적인 곡이라기 보다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곡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만약 내지 설명처럼 이 곡이 브람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아마 드보르작은 베토벤을 염두에 두고 이 곡을 작곡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드보르작의 피아노 협주곡을 말하자면
낭만주의 선율에 바탕을 둔 고전적 양식의
교향적 협주곡이라고 결론 지울 수 있을 것이다.

  
 
이 곡을 연주한 리히터가 쓴 회고담을 읽으면
그는 이 연주에 상당히 불만족을 나타낸다.
모두가 다 절대 명반이라 추천하는 이 음반에 대하여 리히터는
자신의 최악의 연주중 하나로 뽑을 정도로 이 연주를 부끄러워 한다.

리히터가 최고의 지휘자라고 부르던 카를로스 클라이버와의 
이 녹음에서 리히터는 클라이버를 너무 배려하는 나머지
조금 핀트에 어긋나는 연주를 하였다고한다.
하지만 곡자체가 지니는 아름다움과(특히 2악장의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선율)
두 거장의 이름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연주이다.

여기에 부가 삽입된 슈베르트의 곡들에서는 주정주의의
대표자인 리히터 답게 아름다운 연주를 펼쳐준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의 곡을 두루 섭렵했던 이 거장의
생애를 돌이켜 보건데 이 연주는 결코 실패작이 아니다.
다만 클라이버라는 시대의 천재와 리히터라는 시대의
거장이라는 이름하에 보면 조금 모자를 따름이다.

그리고 리히터는 회고록에서 이 앨범을 격찬하는 이들에게
조소를 보낸다. 무조건 자신의 앨범에 대한 찬사를 늘여놓는
자들 앞에서의 내적 고독도 느껴졌던 그 회고록의 글귀.
리히터의 주정적 음악 해석은 아마 스스로에 대한 완벽주의를 넘어선
그런 타인에 대한 배려와 따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웹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