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가 첫 교향곡을 쓴 것은 런던에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막내아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를 만났을 때인 1764년으로, 그는 당시 여덟 살이었다. 프로코피예프는 열한 살에, 멘델스존은 열두 살에 첫 교향곡을 썼으며, 슈베르트도 열다섯에는 이 장르에 작품을 내놓았다. 베토벤은 서른 살 되던 1800년에 1번 교향곡을 완성했다. 그러나 브람스가 첫 교향곡을 발표한 것은 그가 마흔셋 되던 1876년의 일로, 그 시기도 늦거니와 첫 구상으로부터 무려 20년이 넘게 흐른 뒤였다. 언급할 만한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 중에서 브람스보다 늦은 이는 에드워드 엘가와 보후슬라프 마르티누가 있을 뿐으로 이들은 나란히 쉰한 살에 첫 곡을 선보였다.
이토록 난산인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 당대의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로부터 “베토벤의 9번을 잇는 ‘10번’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는 극찬을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뷜로의 말에 내포되어 있듯이 브람스 자신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 베토벤이었다. 그는 “나는 결코 교향곡을 작곡하지 못할 거야! 언제나 등 뒤에서 거인이 행진해 오는 것과 같은 소리를 들으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라고 창작의 어려움을 고백했다. 그는 결국 네 편의 교향곡을 남겼다. 베토벤의 아홉 곡의 절반 정도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까?
빈에 있는 쇤베르크의 석상
브람스는 바이올린 협주곡,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 여기에 두 편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다. 브람스의 협주곡은 모두가 기존의 협주곡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독주자가 기교를 과시하고 오케스트라가 들러리를 서는 파가니니나 비외탕의 비르투오소 협주곡과는 달리 브람스의 협주곡은 탄탄한 구조를 바탕으로 주제를 발전시키는 교향곡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때문에 독주 악기뿐만 아니라 관악기의 돌출도 두드러져 하나하나가 여러 악기를 위한 합주 협주곡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서정적인 협주곡의 2악장에서 이들 관악기의 역할은 두드러진다.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의 목가적인 선율을 부는 오보에나 호른의 주제 제시로 시작하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좋은 예이다. 2중 협주곡의 2악장도 호른이 이끌며 피아노 협주곡 2번의 느린 3악장에서는 첼로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한 브람스는 교향곡을 완성하기 전인 1868년에 이미 〈독일 레퀴엠〉을 완성했다. 죽은 자를 위한 미사라는 레퀴엠 고유의 제문 대신에 브람스 자신이 직접 신약 성서에서 가사를 취한 이 곡은 베토벤의 〈장엄 미사〉에 이은 인류를 위한 오라토리오요, 〈합창 교향곡〉에서 비롯된 성악과 기악의 합일을 계승한 역작이다.
때문에 기왕의 교향곡 네 편과 앞서 말한 네 협주곡, 그리고 〈독일 레퀴엠〉을 하나하나의 교향곡으로 보면 브람스의 심포니도 베토벤과 같은 아홉 곡이 된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858년 피아노 협주곡 1번 D단조, Op 15
1868년 독일 레퀴엠, Op 45
1876년 교향곡 1번 C단조, Op 68
1877년 교향곡 2번 D장조, Op 73
1878년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 77
1881년 피아노 협주곡 2번 B플랫장조, Op 83
1883년 교향곡 3번 F장조, Op 90
1885년 교향곡 4번 E단조, Op 98
1887년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 A단조, Op 102
반음계에서 한층 더 나아간 무조 음악으로 새로운 화성을 제시한 쇤베르크는 흔히 바그너 진영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그는 젊은 시절부터 브람스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쇤베르크의 정신적인 스승이자 동료였던 알렉산더 쳄린스키는 그에게 브람스와 바그너가 대등한 모범임을 강조했다. 쇤베르크도 자신의 현악 6중주 ‘정화된 밤’이 화성적으로는 바그너를 따르고 있지만, 변주를 발전시키는 방식은 브람스에게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쇤베르크의 자화상
오토 클렘페러의 초청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화를 피해 할리우드로 옮겨온 쇤베르크는 1937년 5월 2일부터 9월 19일 사이 넉 달 동안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 1번을 관현악으로 편곡한다. 그는 1939년 3월 18일 『샌프란시스코 크러니클』의 평론가인 앨프레드 프랑켄슈타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은 편지를 보냈다.
브람스 편곡에 대한 언급
이유:
나는 이 곡을 좋아한다. 이 곡은 연주가 드물다. 연주되더라도 언제나 형편없는데, 그것은 피아니스트가 뛰어날수록 그가 크게 연주해 현의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에 모든 소리를 듣고 싶었고, 그래서 이 작업을 했다.
의도:
브람스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그가 지금 살았더라면 그 자신이 했을 것보다 멀리 나가지 않는다. 브람스가 따른 규칙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범하지 않는다. 그의 환경에서 교육받은 음악가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방법:
거의 50년 동안 나는 브람스의 스타일과 그의 원칙을 철저하게 알아 왔다. 직접 그리고 학생들과 그의 많은 작품을 분석했다. 비올리스트로 또한 첼리스트로 그 작품들을 무척 여러 번 연주했다. 그 소리를 관현악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었고, 그렇게 했다.
물론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브람스는 낮은 저음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에는 저음 악기가 많지 않다. 그는 분산화음으로 그것도 종종 다른 리듬으로 반주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화음은 쉽게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대개 그것들은 그의 스타일에서 구조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 공은 우리 시대의 예술가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들에게 얘기를 해줘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빈 중앙 묘지에 있는 브람스와 쇤베르크의 비석
브람스가 첫 번째 피아노 4중주를 작곡한 것은 그가 스물여덟 살 때인 1861년이다. 그는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와 변주곡, 현악 6중주 한 곡과 두 개의 세레나데 등을 작곡했지만, 아직 걸작 실내악이 나오기 이전이었다. 더욱이 3년 전 자신 직접 독주를 맡아 초연한 피아노 협주곡은 참담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가진 연주에서는 박수를 친 사람이 단 세 명에 불과했다. 개인적으로도 고난의 시기였다. 괴팅겐에서 사귀었던 아가테 폰 지볼트라는 여인의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끝난 것이다.
피아노 4중주 1번은 이와 같은 짐을 벗어던지기라도 하듯이, 다른 젊은 작곡가가 쓴 어떤 음악보다 강렬하게 내면의 울분과 욕구를 표출하고 있다. 그것은 무척 세심하게 공들인 음악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정돈되어 있다.
1악장의 시작부터 불안감과 신비로움이 교차하는 주제가 전체 음악의 내용이 간단치 않음을 예감케 한다. 스케르초 성격의 간주곡을 2악장에 두고, 안단테 콘 모토의 느린 악장을 세 번째로 오게 한 것도 독창적이지만, 무엇보다 백미는 4악장 ‘집시풍의 론도’이다. 정열적인 리듬으로 쏟아내는 끝없는 화음의 향연은 듣는 순간 관현악으로 바꾸고 싶은 욕구가 들 정도이다. 같은 작품번호 25의 두 번째 곡인 A장조 그리고 C단조의 피아노 4중주 3번, Op 65보다 오히려 신선하고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이 이 곡의 매력이다.
과연 쇤베르크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원곡의 장대한 규모를 한층 정교하게 가공하고 있고, 대위 선율 하나하나가 여러 악기를 통해 뚜렷이 제시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쇤베르크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던 피에르 몽퇴에게 자신의 작업을 가리켜 “브람스의 교향곡 5번”이라고 말했다. 뷜로가 교향곡 1번에 붙인 별명과 앞서 매겨본 브람스의 교향악 범주에 따르면 이 피아노 4중주의 관현악 편곡은 그의 “열 번째 교향곡”이 되는 셈이다. 브람스 순혈주의자들에게는 용납 못할 일일지 모르지만, 쇤베르크에게 이것은 스스로에게 부과한 신성한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요하네스 브람스
피아노 4중주 1번 G단조, Op 25-1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관현악 편곡)
이 편곡을 지휘한 여러 지휘자 가운데 꼭 언급해야 할 두 사람이 있다. 로버트 크래프트와 사이먼 래틀이다.
로버트 크래프트는 일찍이 20대 초반에 스트라빈스키의 오른팔이 되어 그를 보필하며, 노작곡가가 쇤베르크와 베베른의 음렬 음악을 받아들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가 뮤직마스터스와 코흐 레이블로 발매했던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의 관현악 전곡 음원은 현재 낙소스가 재발매했다. 1998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이 곡의 녹음은 〈다섯 개의 관현악 소품, Op 16〉, 〈첼로 협주곡〉(마티아스 몬 곡의 편곡)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보다 음질은 조금 떨어지나 1964년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한 음반 쪽이 더욱 권할 만하다. 쇤베르크가 팔레트에 정성껏 짠 화성의 물감을 크래프트가 놀라운 솜씨로 채색한 회화를 들을 수 있다.
래틀은 1980년대에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을 이끌고 이 편곡을 처음 녹음했다. 그러나 해석의 칼날은 크래프트에 비하면 무디고 앙상블도 치밀하지 못하다. 그보다는 2002년 베를린 필하모닉을 아테네의 헤로데스 아티쿠스 오데온에서 지휘한 유로피언 콘서트를 담은 영상물 쪽이 훨씬 훌륭하다. 유로피언 콘서트는 해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창립 기념일을 맞아 유럽의 문화적인 명소에서 개최되는 행사이다.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음향의 파노라마는 듣는 이를 압도한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다니엘 바렌보임 협연)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쇤베르크의 브람스 편곡과 더불어 말러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베토벤의 현악 4중주, Op 95를 빈 필하모닉과 연주한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의 음반(Decca)도 언급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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