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야기<정준호 선생님>

황병기 5집 <달하 노피곰>

로만짜 2007. 10. 2.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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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창이 밝는 새벽, 백주 대낮의 나무 그늘 밑, 붉은 노을에 젖는 저녁, 적막에 고독한 심야, 그 어느 때라도 한번 쯤 고즈넉하고 호젓한 음악에 영혼을 실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스스로 ‘작은 군자’라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군자의 삶을 꿈꾸는 사람이 한 번쯤 벗 삼고 싶은 음악 중의 하나가 황병기의 가야금 소리가 아닐까? 황병기의 새 작품을 담은 제5집 음반 ‘달하 노피곰’이 발매되었다. 음반의 제목은 백제 가요 ‘정읍사’에서 따온 것으로 첫 수록곡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밖에 ‘시계탑’, ‘하마단’, ‘고향의 달’, ‘차향이제(茶香二題)’, ‘추천사(?韆詞)’와 같은 그의 근작들이 실려 있다.

      짐작하다시피 ‘고향의 달’은 박목월, ‘추천사’는 서정주 그리고 ‘차향이제’는 박경선의 시에 붙인 가곡이다. 또 가야금 곡 외에 대금을 위한 ‘자시(子時)’, 거문고 독주곡 ‘낙도음(樂道吟)’과 등 그가 쓴 음악도 함께 수록되었다.

      영국 셰필드 대학교 음악학 교수인 앤드루 킬릭은 음반의 내지 해설에서 “모순을 명상하는 선(禪)의 경지”라는 말을 썼다. 황병기의 음악이 전통 속에서 현대를, 정지 속에서 움직임을 추구하는 모순된 것이라는 견해이다. 킬릭이 선에 대해 그리고 음악 이론에 대해 조예가 깊은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보다 한국적인 사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현실에서 볼 때 황병기의 음악은 결코 모순이 아니다. 전통 속에서 현대를 모색하는 것은 모든 예술 장르가 기본적으로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그것은 예술가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기본적인 과제이다.

      그리고 ‘그침 없는 움직임’(無窮動, perpetuum mobile)에 몰두해 온 서양에 비해 “정지 속 움직임”(靜中動)의 정신을 숭상해 온 동양의 가치관에 비춰 그의 음악은 모순이기보다는 자연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황병기의 음악은 단순한 “명상”에 그치지 않는 적극적이고 치열한 발언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우리에게 앞으로 요구되는 것은 그의 칠십 평생 음악이 어떤 궤적으로 발전해 왔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전통 음악과 서양식 기보법 사이에 소통을 꾀하고자 한 그의 노력은 멈추지 말고 이어받아야 한다.

      이 음악을 듣고 군자의 경지에 빠져드는 것 못지않게 “우리 시대의 음악 언어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은 나의 ‘직업병’이다.

       

                    ^^ 글 펌 KBS 1FM 실황음악회 진행자 정준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