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곡

Vincenzo Bellini - 그대 창에 등불 꺼지고

로만짜 2006. 11. 21. 05:19
[이태리 가곡] 그대 창에 등불 꺼지고-Bellini, Vincenzo   





Early Spring's Warmth

 

Fenesta che lucivi e mo non luci

벨리니 그대의 창에 등불 꺼지고-불 꺼진 창
Bellini, Vincenzo 벨리니 1801~1835
이탈리아 가곡

나폴리의 서쪽 해변, ‘맑은 바다’라는 뜻의 조그만 항구 마레키아로(Marechiaro)로 향한다. 나폴리 방언으로는 이것을 ‘Marechiare’로 표기하고 ‘마레키아레’가 아니라 ‘마르키아르’라고 발음한다. 이 곳에는 바다로 향한 허름한 집이 있는데, 창가에는 항상 카네이션이 한 송이 놓여 있고 그 아래에는 노래비가 있다. 나폴리의 시인 살바토레 디 자코모와 작곡가 파올로 토스티는 달빛 비치는 이 창문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가눌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1886년 [마르키아르]라는 노래가 탄생한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의 노래에는 창문이 자주 등장한다. 그것도 그냥 창문이 아니라 열릴 듯 말 듯한 창문이다. 창문은 사랑하는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방해물이기도 하며,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동시에 사랑의 욕망을 낳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며, 사랑을 약속하게 하면서도 지속되지 못하게 한다. 창문은 보여주기보다는 감춘다. 이윽고 닫힌 창문 아래에서 느끼는 한 줄기 희망이나 괴로움은 노래로 바뀐다.

창문과 관련된 노래 중에서 아마 [불 밝던 창(Fenesta ca lucive)]만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곡은 없을 것이다. 이 노래에 얽힌 얘기는 페르골레지의 슬픈 사랑의 얘기와 비슷한 데가 있다. 이야기는 15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사건의 배경은 나폴리가 아닌 시칠리아이다.

카리니 성에 팔레르모의 귀족 빈첸쪼 라그루아의 딸 카테리나가 살고 있었다. 카테리나는 창문을 통해서 바깥세상을 보며 사랑의 시를 읊조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하루는 귀족기?빈첸쪼 베르나갈로가 창가에 가끔 모습을 보이는 카테리나에게 반하여 사랑을 고백한다. 이 두 사람은 곧 깊은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카테리나의 아버지는 워낙 완고했기 때문에 두 연인 사이는 좀처럼 좁혀질 수가 없었다. 하루는 성당의 신부가 카테리나의 아버지에게 딸이 젊은 기사를 만나 몰래 정을 통한다고 전했다. 아버지는 카리니 성으로 즉시 달려 갔다.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를 맞은 딸은 놀라서 물었다.
“아버지, 갑자기 어쩐 일인가요?”
아버지는 칼을 뽑아들고 비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딸아, 나는 너를 죽이러 왔다.” 카테리나의 가슴에는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시칠리아 방언으로 된 이 이야기는 나폴리 방언으로 번역되어 11행시가 되었다가 다시 6행시로 변형되었는데, 나폴리 판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비극으로 시작해서 연인의 매장으로 비극적인 사랑을 끝내고 있다.

Fenesta ca lucive e mo nun luce

Sign’ē ca nēnna mia stace malata

S’affaccia la surella e mme lu dice

Nennēlla toja ē morta e s’ē atterrata

Chiagneva sempe ca durmeva sola

mo dorme co’ li muorte accompagnata 

불 밝던 창에 지금 불이 꺼졌구나

내 연인이 병들어 누운 모양이다

그녀 언니가 얼굴 내밀며 내게 말하길

네 연인은 죽어 땅에 묻혔어

홀로 잠든다고 늘 눈물 흘리곤 했는데

지금은 죽은 자들과 함께 잠들었구나

이 아름답고 애틋한 노래를 누가 작곡했을까? 롯시니의 [모세]나 벨리니의 [몽유병 여인]의 선율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롯시니나 벨리니가 작곡자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정도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선율이라면 그 어떤 작가도 무명작으로 팽개쳐 놓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렇다면 ‘나폴리식’으로 생각해 보면 해답이 나온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대음악가의 유명한 선율을 살짝 바꾼 표절곡임이 틀림없다.

[불 밝던 창]이 1800년대 중반에 출판되었으니 이른바 대중적인 칸초네로서의 첫 장을 여는 노래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노래가 출판되었을 때 벨리니는 죽은 지 대략 20년이 지났고, 롯시니는 정변을 피해 파리에 은신하고 있었다. 이 노래는 1914년 나폴리에서 만든 영화 [불 밝던 창]에서 주제곡으로 사용되면서 가사가 더 늘어났는데, 시칠리아의 사랑의 전설이 다시 한 번 현대식 비극으로 각색되어 관객들의 눈물을 왈칵 자아냈다. 그리하여 영화의 주제곡은 이탈리아 전역과 전 유럽에, 그리고 나아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Bellini, Vincenzo 벨리니 (1801.11.3~1835.9.23)

벨리니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카타니아 출신으로 로시니(Rossini, Gioacchino 1792 ~1868), 도니제티(Donizetti, Gaetano 1797 ~1848)와 함께 19세기 전반기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힙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시칠리아의 카타니아 출생. 어릴 때부터 음악지도를 받고 나폴리의 산세바 스티아노음악학교에 입학, 재학 중에 오페라 《아델송과 사르비나》(1825) 《피앙카와 페르난 도》(26) 《해적》(27) 등을 발표하여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이어 1830~32년에는 《카플레티가 (家)와 몬테키가(家)》(30) 《몽유병에 걸린 여자》(31) 《노르마》(31) 등을 발표하고. 33년에는 《단테의 베아트리체》를 상연하였다.
그 뒤 파리로 주거를 옮겨 신작을 구상, 35년에 최후의 오페라 《청교도》를 파리의 이탈리아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그 해 34 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종교곡과 기악곡도 많이 작곡하였으며, 도니제티와 더불어 당대의 거장으로 꼽힌다. 선율창조의 재능이 뛰어났고, 그 음악은 감미로우면서도 고상한 우수를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