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l cor piu non mi sento'
from Opera 'La molinara'
지오반니 파이지엘로 / 오페라 '물레방앗간의 처녀'중 허무한 마음 Giovanni Paisiello 1740-1816
Giuseppe Palomba 1769-1825 의 시
Renata Tebaldi, Soprano New Philharmonic, Orchestra Richard Bonynge, Conductor
Nel cor piu non mi sento Brillar la gioventu; Cagion del mio tormento, Amor, sei colpa tu.
Mi pizzichi, mi stuzzichi, Mi pungichi, mi mastichi; Che cosa e Questo ahime? Pieta, pieta, pieta! Amore e un certo che, Che disperar mi 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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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엔 더 빛나는 청춘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괴로움의 근원, 사랑이여, 그대 탓인가
그대는 나를 꼬집어 뜯고 휘적거리며 찌르고 물어 씹는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아. 불쌍히 여겨 달라, 불쌍히 여겨 달라 사랑이란 나를 절망시키는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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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vanni Paisiello 1740 ~ 1816
이탈리아 작곡가. 18세기 최대의 오페라 부파 작곡가의 한 사람이다. 1754년부터 두란테에게 배운 뒤, 55∼59년 나폴리의 산토노프리오음악원에서 배웠다. 처음에는 미사나 오라토리오 등의 종교음악에 손대었으나, 76년 러시아 여제(女帝) 예카테리나 2세의 초빙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서 84년까지 궁정 지휘자 겸 이탈리아 오페라의 감독을 맡았다.
그 동안 《세빌랴의 이발사(1782)》를 포함한 몇 편의 명작을 발표하였다. 84년 나폴리에 돌아와 페르디난드 4 세의 궁정악장이 되고, 《물방앗간 처녀(1788)》《니나(1789)》 등으로 명성을 얻었다. 파이지엘로는 18세기 후반의 수많은 이탈리아오페라 작곡가 중에서도 특히 등장인물 성격묘사의 교묘함이 뛰어났으며, 오페라 부파분야에서는 W.A. 모차르트 다음가는 수완을 발휘하였고, 모차르트도 파이지엘로에게서 배운 바가 많았다고 한다. 100곡 넘는 오페라 외에 많은 종교음악, 12곡의 교향곡, 6곡의 피아노협주곡 등이 있으며 오늘날에도 자주 공연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돌아온 파이지엘로는 나폴리, 프랑스에서 인생을 전전하다 그의 말년, 75세가 된 1815년, <세빌리아의 이발사> 새버전이 로시니에 의해 발표됨에 따라 그의 작품은 세인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버린다.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초연 당시 정식 오페라명은 <알마비바 또는 헛된경계(Almaviva ossia L'inutile precauzione)>이었다. 이것은 당시 상연중이던 인기절정의 파이시엘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파이지엘로의 작품 역시 보마르셰의 같은 희극을 개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초연은 실패작이었다. 이것은 파이시엘로 "친위대" 의 조직적인 방해 때문이라고 추정되어진다.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로마에서 초연 되었을 때 가극이 한창 진행중일 때 "삐...삐..." 괴상한 휘파람을 불러대는가 하면 프리마돈나가 자기 도취에 빠져 아리아를 뽑고 있을 때 무대 위에 고양이를 풀어놓아 갈 데 없는 고양이가 그녀의 치마 밑에 기어들지를 않나, 소도구로 쓰는 기타 줄을 미리 몰래 풀어놓아 음정이 엉망이 되는 등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관객들은 야유를 퍼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입장권 판매 창구로 몰려가 환불소동을 벌이기도 했다한다. 그날의 초연의 대실패로 끝나 그것으로 파이지엘로의 노여움이 어느정도 풀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하튼 그 후부터는 공연을 거듭할수록 인기를 얻어 2백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세계 도처의 가극장에서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꼽히고 있지만 파이지엘로의 그것은 세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러다 1960년대에 이르러 파이지엘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녹음 가능해 졌을 때, 세인들은 그 작품의 진가를 비로소 알게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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