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avorite Music/^^기악곡

쇼팽/4개의 발라드 - 알프레드 코르토, 피아노 (1933년 연주)

로만짜 2016. 11. 4. 20:04

 

 

 

 

 

 

 

 

  

 

Frederic Chopin (1810∼1849)
4 Ballades for Piano

 

 

 

  1. No. 1 in G minor, Op. 23 (08'41")  

 

  2. No. 2 in F major, Op. 38 (06'53")  

 

  3. No. 3 in A flat major, Op. 47 (06'42")  

 

  4. No. 4 in F minor, Op. 52 (09'21")

   

1 ~ 4 순으로 연속듣기
 
 
Alfred Cortot, piano
Victor 78rpm Disc  Album
Digital Transfer by F. Reeder
Recorded: July 6-7, 1933
 
 
 
 
 
1835년, 라이프치히에 머물던 쇼팽은
친구의 집에서 자신의 새로운 곡을 연주했다.
끝까지 듣고 난 동갑내기 작곡가 슈만이 말했다.

“자네의 작품 중에 나는 이 곡이 제일 맘에 드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쇼팽이 대답했다.
“아주 기쁜 일이군. 실은 나도 이 곡이 제일 좋아.”
이 곡은 발라드 1번 G단조 Op. 23 이었다.

쇼팽을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부른다면 그가 남긴
4곡의 발라드(담시곡(譚詩曲)이라고 흔히 번역한다)는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폴란드의 시인 미키에비츠의 시
‘콘라드 와렌로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지만,
표제 음악처럼 이 시의 내용을 묘사한 음악은 아니다.

오히려 음악 자체가 한 편의 시로서,
듣는 이의 가슴 속에 시심을 불러일으킨다.

발라드는 원래 ‘이야기를 담은 성악곡’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쇼팽에 의해 기악곡으로 자리잡았으며
브람스와 포레도 같은 이름의 작품을 남겼다.  
 
 
 
쇼팽의 음악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표출하였던 위대한 피아니스트.
현대의 쇼팽연주와 달리 청아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연주를 들려준
프랑스 피아니시즘의 위대한 계승자인
알프레드 코르토는 1877년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1887년부터 파리 음악원에 다니기 시작한 코르토는
쇼팽의 마지막 제자인 에밀 드콩브의 가르침에 따라
쇼팽 혈통의 세 번째 상속자가 된다.

십대에는 베토벤의 협주곡에 심취했으며,
20대에는 파리에서 바그너를 자신의 지휘로 직접 초연,
바그너 음악의 전도사를 자처하였다.

그 후 1차대전 이후부터 2차대전 직전까지 코르토는
쇼팽의 세계로 귀의하여 평생을 쇼팽음악의 섬세한
음표사이에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표출하였다.

코르토는 1910년 자크 티보, 파블로 카잘스와 피아노 트리오를 결성,
1944년까지 무려 39년 동안 실내악 활동을 하였다.
그는 실내악 연주를 통해 피아노를 노래하게 하고
거친 음향을 정제해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그는 파리 음악원을 당시 최고의 교수들을 초빙해서 창설하였고,
1928년에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창설에도 깊이
관여한 행동하는 음악인의 표상이 되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중 그의 나치와의 관계문제는 그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게 되고 그는 이전의 명성을 회복할 수 없었다.
청중들의 차가운 시선은 계속되어갔고
1947년에 열렸던 파리 콘서트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1949년 쇼팽 서거 100주기 기념 콘서트를 계기로
이러한 비난도 점차 수그러지게 되었고,
이후 과거나 다름없는 정력적인 연주활동을 펼쳤지만
잊혀진 과거의 명성을 다시 가져올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1962년 스위스 로잔에서 과거의 화려한
명성을 다시 찾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코르토의 피아노 연주는 예리한 리듬감과 청아하고 깊이있는 음색,
심하다 싶을 정도의 루바토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는 미스터치가 많고, 주관적인 해석이 강한 피아니스트였지만
그의 연주가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그가 기교를 넘어서는 시정을 가지고 곡을 정확히 해석하였다는 것,
그리고 피아노를 연주한 게 아니라
음악을 연주했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웹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