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V. Beethoven (1770~1827) Symphonie No. 7 in A major, Op. 92
1,2,3,4 순으로 연속듣기
Nikolaus Harnoncourt, cond The Chamber Orchestra of Europe 1991 Teldec Classics Released: 1992
일찍이 베토벤은 “나는 인류를 위해 좋은 술을 빚는 바커스이며 그렇게 빚은 술로 사람들을 취하게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의 교향곡 제7번 이야말로 이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일 것이다.
특히 리듬의 역동성은 이 작품의 핵심적인 매력으로 리스트는 이 교향곡을 가리켜 '리듬의 신격화'라 표현하기도 했다. 강박적인 리듬의 반복을 통해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이 교향곡을 듣고 있노라면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원초적인 리듬충동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로망 롤랭은 이 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 는데, 이 말이야말로 이 곡의 진수를 말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니라. 'A장조 교향곡은 도취자의 작품이라고 일 컬어지고 있다. 거대한 웃음을 수반하는 격정 의 흥분과,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해학의 번뜩임, 상상할 수도 없는 황홀함과 열락(悅樂)의 형상. 그것은 완전히 술에 취한 사람의 작품이며, 힘과 천재성에 도취한 사람이 만든 것이었다.
스스로 "나는 맛이 좋은 술을 인류 를위해 바치는 주신(酒神)이다. 사람에게 거 룩한 열광을 주는 것은 나이다"라고 일컫던 사람의 작품이다.'
1813년 12월 8일,베토벤이 직접 지휘봉을 들고 이 곡을 초연했다. 이 교향곡은 그 수법 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중 제 1위의 것이라고 들 한다.
이 교향곡은 1811-3년, 42세 전후 때의 작품인데 그가 전쟁으로 인한 불안한 생계와 귓병, 위장병 등으로 몹시 괴로울 때였다. 테레제와의 사랑은 파국을 맞았었고, 나폴레옹 군대는 절정을 과시하고 있었다.
실연 후 조금은 투쟁적으로 변모해 있었던 베토벤의 기분은 경치가 좋은 온천지 테플리츠에서의 휴양 생활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런 즐겁고 밝은 기분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바그너는 이 작품을 '무도의 신화(神化)'라 했으며 지금까지 세계의 예술이 창조하지 못했던 명쾌한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 구성과 수법, 표현과 내용, 악기의 편성 등에서 볼 때 그의 교향곡 중에서 제1위에 꼽힌다들 한다. 특히 명쾌한 리듬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한다. 리스트는 이 곡을 가리켜 '리듬의 화신'이라 했다.
동시에 이 곡에는 강한 의지나 음악에 의한 주장의 관철이라는 요소도 존재한다. 즉 전쟁과 실연으로부터의 정신적인 극복과 큰 관계가 있다. 이런 역할을 한 것이 주제의 수평적인 진행이며, 리듬 효과도 지극히 추진적인 느낌을 지닌다. 그리고 이런 진행이 전곡을 통일시키는 요소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공개 초연은 1813년 12월 8일 빈 대학 강당에서 열린 전쟁 부상병을 위한 자선 연주회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이 때 전쟁 교향곡 '웰링턴의 승리' Op.91도 함께 연주되었는데, 애국적인 분위기도 고양되어 있을 때였기에 이 두 곡은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특히 2악장은 앵콜 요청이 있었을 정도로 사랑받았다. 애국적인 연주회 레퍼토리와는 별개로 2악장이 큰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웹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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