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 Beethoven (1770∼1827)
1. Allegro con brio (07'29")
본디 오페르스도로프 백작에게 헌정할 생각으로 쓴 것이다. 베토벤은 나중에 생각을 바꾸었다. 베토벤은 처음에는 오페르스도로프와 협의하여 보통 두 개 사용하는 팀파니를 셋으로 늘리려 했던 것같다. 그러나 베토벤 자신이 1808년 3월에 썼듯 '마지막 악장에 팀파니 셋을 넣는 대신 트럼본 셋과 플라우티노를 넣었지만 팀파니 여섯을 쓴 것보다 더 소리가 좋게' 되었다. 공개 초연은 1808년 12월 22일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있은 대규모 연주회에서 이루어졌다. 이 날의 연주회는 교향곡 전원 초연, 코랄 판타지아, 피아노 협주곡 제4번, 연주회용 아리아 'Ah perido', 그리고 전 해에 에스테르하지 공을 규모가 큰 것이었고 따라서 매우 긴 것이 당연했다. 교향곡 제5번의 제3악장도 본디 지금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길이였던 것이 이날 초연 후 베토벤이 벗들의 강권으로 지금의 형태로 줄인 것이다. 이 날 연주가 불러 일으킨 당혹감이 독일의 음악가이자 비평가 라이하르트(J.F. Reichardt)의 글에 엿보인다. '나는 로프코비츠 공이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그와 함께 특등석에 앉았다. 끔찍하게 춥던 그 날, 우리는 여섯시 반부터 열시 반까지 앉아 있으면서 좋은 일도 과하면 흠이 된다는 진리를 절감했다. 하물며 온통 시끌벅적한 다음에랴! 그러나 선량하고 섬세한 로프코비츠 공도 그랬거니와 나 또한 도중에 획 하고 자리를 뜰 수가 없는 처지였다. 우리 자리가 2층 맨 앞이었던 까닭이다. 하기는 덕분에 관현악과 그 한가운데에서 지휘하는 베토벤이 우리 아래 바로 손닿을 만한 데 있었고 그래서 실수가 여러 번 몹시 거슬리기도 했으니. 불쌍하게도 이 연주회로 얻을 쥐꼬리만한 수확이 베토벤의 올해 처음이자 총 소득일 터였고, 연습 과정은 물론 당일 연주회에서도 격려는 거의 없이 거듭 반대에만 부딪혔다. 합창단과 관현악단이 이질적인 성원들로 구성되었으니 이 어려운 작품들을 가지고 어디 완벽한 리허설인들 가져볼 수 있었으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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