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Giovanni, opera, K. 527 모짜르트: 돈 지오반니 K. 527 Wolfgang Amadeus Mozart 1756 - 1791 1. Overture - Act Ⅰ(1부) 전악장 연주
Album Title: Mozart Don Giovanni - Josef Krips * Recorded in the Redoutensaal, Vienna, in June 1955 1. Don Giovanni, opera, K. 527 (114:03) 2:46:28 Conductor Josef Krips (Austrian conductor and violinist. 1902-1974) Performer Don giovanni: Cesare Siepi (Italian bass singer 1923-2010) Orchestra Wiener Philharmoniker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Genre Classical Period / Opera
Don Giovanni K.527 돈 지오반니 OPERA/[Mozart] [전체 공연시간 약 192분] 모짜르트의 드라마 지오코소. '돈 조반니'는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역사상 가장 눈부신 작품이고 더 넓게 말하자면 서양예술의 가장 주목할 작품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의 영광은 이 눈부심을 둔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여러가지 유행이나 시대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초연이후 끊어짐 없이 빛을 내뿜어 오고있다. 르네상스 이후의 특히 근대 서유럽적 인간이 가지는 거대한 비극적 충동, 위대한 정신적 시련, 유별난 프로메테우스적 대담성을 끊임없이 구현하는 이 작품이 간직한 힘은 매우 수수께끼적이다. 주제, 주요 등장인물, 극적 구조에서 보이는 스페인 특유의 놀라운 생명력에 천재의 신비적인 연금술로 다듬어져, 아미도 그 오스트리아-이탈리아적 장식에만 너무 주의가 돌려졌던 이 모짜르트의 작품을 특징지우고 있다. 유명하기는 하지만 불완전한 작품에서의 티르소 데 몰리나뿐만 아니라 특히 카르데론 데 라 바르카 Carderon de la Barca가 자주 돈 환이라는 이름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들은 맥락이 없고 현실성이 결여된 일련의 불가해한 사건을 통하여 편집광적으로 돈 환적행위를거듭하여 간다. 이들 작품을 조심스럽게 검토하면 그 등장인물은 처음에 육욕의 죄에 남몰래 여자들에게 가해진 죄의 도구로서 인지되고 있다는것을 알수있다. 돈 환은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기억을 갖지않는 존재로서 순간 속에 살고있으며 구제에 대해 고민할 것도 없고(이때문에 그는 지옥에 빠진다), 충실의 본능도 없으며 종종 얼굴조차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희생자들을 악마처럼 밤이나 실신하고 있을때나 자고 있을때 타인의 가면을 쓰고 죄속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엉뚱한 대담성과 작은일에 얽매이지 않는 관용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후회도 없이 죽어간다. 그는 죽음의 강렬한 아름다움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가면이 벗겨져도 치욕도 느끼지 않고 회한도 없는것이다. 이 위대한 본원적 형상이 가지는 여러가지 특징은 비록 이 작품이 후세에 여러가지 바리에이션을 낳게 되었다 해도 모짜르트의 작품의 밑바닥에 보존 되어있다. 후세의 바리에이션이란 호프만의 '악마적 개인주의자'에 의한것, 니체의 '초인을 향하는' 존재에 의한것, 스탕달의 '무신앙의 리베르탕'에 의한것, 실존주의자들의 '성스러운 시간에 대한 속된 순간의 인간'에 의한것, 마직막으로 조르주 바타이유 혹은 피에르 장 주브의 '타협없는 침범자'에 의한 것이다. 이들 요소를 모짜르트는 눈부신 간결성과 스페인 거장의 격조에 맞먹는 비극적-해학극적 박력과 특히 돈나 안나 부분의 텍스트에 두드러진 진정한 문학적인 미를 가진 대본 덕분에 확실한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대본의 연극상의 구조는 황금세기(스페인의 16세기)의 위대한 전통에서 보여진 고귀한 암흑 세계의 각인을 띠고 있다. 이러한 하부구조 위에 서서 모짜르트는 불변의 현대성을 가진 음악을 천상에 닿도록 뿜어냈던 것이다. 비통하도록 짧은 구조는 반대로 영원성을 나타내고 그 몇개의 정점을 형성해간다. (기사장의 죽음, 가면의 3중창, 묘지의 끝). 고귀하고 엄격하기까지 하며 위대한 종교적 양식에 가까운 조형미가 아폴로적 조용함 속에 빛을 잃을 일 없이 모욕받은 자와 괴로움을 받은 자들의 주제속에 반짝이고 있다. 모욕하는 자들의 편은 악마처럼 날쌔고 흐르는듯한 음악의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디스쿠르는 총보의 번호매김으로 분명히 분할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비롭게 연속되고, 기악적 화성적 색채의 뜨겁고 메르쿠리우스처럼 활발한 운동을 방해하는 일이 없으며, 이것에 필적하는 것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베르디의 '팔스타프', 베르크의 '보체크'와 같은 극소수의 걸작뿐이다. 편성으로 말하자면 구상과 서법의 자유로움에서 글룩의 뒤를 이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위대한 용법의 단서가 되고 있다. 등장인물 훈작사(Commandeur)(B) [줄거리] 제1막 훈작사의 복수를 하기 위해 조반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안나와 오타비오 앞에서 엘비라가 조반니의 배신을 폭로하고, 그가 자기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고 말한다("Non ti fidar, o misera"). 안나는 너무 늦게 아버지의 살해범을 알게 된다("Or sai chi l'onore). 조반니는 성대한 축제를 준비시키고 ("Fin ch'han dal vino") 안나와 오타비오와 엘비라에게 가면을 쓰고 축제에 참가하라고 초대한다. 조반니는 체리나에게 빨리 사랑을 바치라고 독촉하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부한다. 조반니는 레포렐로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비난을 모면하려고 애쓴다(피날레). 제2막 모짜르트(W A Mozart, 1756-1791) : 오페라 ‘돈 조반니’ K527 작곡 : Wolfgang Amadeus Mozart 비엔나 필하모닉 1787년 1월 프라하에서 전작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대성공을 거두므로 이에 고무된 모짜르트에게 당시 프라하 극장 지배인 본디니(Pasquale Bondini)는 새로운 오페라 작곡을 의뢰하게 된다. ‘돈 조반니’는 그 해 4월에 착수, 여름 동안에 작곡된 모짜르트 최후의 오페라로 모두 2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본은 전작 오페라의 작가 다 폰테(Lorenzo da Ponte, 1749-1838)가 썼다 (서곡은 초연 직전에 작곡되었다고 전해짐). 원제는 ‘사악하여 벌 받은 자 또는 돈 조반니(Il Dissoluto Punito, ossia il Don Giovanni)’. 1787년 10월 29일 프라하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 5월 17일 비엔나에서 상연되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오페라에는 ‘피가로의 결혼’과 같은 희극적 요소와 비극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으며 극중 주인공의 이중적인 성격(낙천적인 면과 사악한 면)을 풍자하기 위한 해학뿐만 아니라 권선징악의 교훈적인 면도 있다. 인생의 휘로애락을 자유자재로 표현하였던 모짜르트 답게 등장 인물들의 성격묘사가 매우 뛰어나다. 몰리에르(Moliere, 본명은 Jean-Baptiste Poquelin, 1622-1673)는 현대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이다. 그는 문인으로 뿐만 아니라 연출가, 배우, 극장 경영자로서 활동했으며, 파리와 같은 도시 생활과 시골 생활을 두루 체험함으로써 소위 체험적 공간이 넓었다. 이로부터 얻어진 깊고 폭넓은 경험은 창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오늘날 그를 연구하는 평론가들은 그를 문화사회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하여 그 진수를 찾으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몰리에르의 작품이 3백년 넘게 세계 연극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고수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작품이 갖는 문학적 가치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몰리에르의 작품 중 현실적인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는 ‘동 쥬앙’의 분석에서 프랑스의 평론가 데스뽀르트(Marcel Desportes) 등은 ‘동 쥬앙’의 본질은 몰리에르가 가진 도전 정신에서 나온 일종의 사회풍자라고 주장한다. ‘동 쥬앙’은 엽색행각을 일삼는 단순한 방탕아가 아니라 자유에의 갈망을 방탕이라는 변태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마 이런 점이 모짜르트로 하여금 작곡의 동기를 부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몰리에르는 당시 귀족 등 상류 사회를 관객으로 연극을 만들었지만 내심으로는 그들을 무시하였다 하며, 따라서 절대군주와 향락주의에 반발하여 ‘동 쥬앙’을 내세웠다고도 풀이한다. ‘동 쥬앙’이라는 방탕한 귀족을 통하여 귀족사회를 풍자하고 그들에게 우회적으로 도전했다는 것이다. ‘동 쥬앙’은 작가의 공격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또한 작가를 대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성 - 참으로 불가사의 하다 ? 으로 볼 때 ‘동 주앙’이야말로 (탈계급주의자이기도 하거니와) 여러 계급의 속성을 두루 가진 복합적 인간이다. ‘돈 조반니’의 천진성, 낙천적인 성격 이면의 사악함으로 대별되는 이중성이나 등장 인물들의 성격 묘사야말로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가지는 미학, 희로애락 표현의 극이 아니겠는가. 모짜르트는 ‘돈 조반니’에서 전설에 등장하는 사악한 호색한의 엽기적인 행각을 그렸다기 보다는 구극(求極)의 여인을 찾아 번민하며 방황하는 한 남성, 즉 자기 자신이 갈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에 대한 내면을 그린 것이며, 이설이지만 기사장(석상)은 은영중 갈등관계에 있었던 부친 레오폴드를 떠오르게도 한다. 이 오페라는 서곡(석상이 등장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도입부로 시작하여 돈 조반니의 맹렬한 여성 사냥을 특징짓는 알레그로로 넘어감)이 끝나면서 바로 1막으로 들어간다. 악기편성: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트럼본 3, 팀파니, 현악 5부와 무대 위의 목관 및 현. 중요한 대목을 뽑아본다면, 제1막에서 제2막에서 2차 대전 종전후 1946년 잘츠부르크 축제 재개장 기념 공연으로 ‘돈 조반니’가 무대에 올랐는데, 이 때 지휘자가 비엔나 출신의 명 지휘자 요제프 크립스(1902-1974)이다. 이 녹음은 당대 최고의 모짜르트 오페라 가수들을 기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나 성악부분을 다소 강조하여 관현악과 언발란스적인 면이 있다. 이외의 아날로그 명반 (참고사진) ‘돈 조반니’가 초연된 프라하의 이스테이츠 극장(Estates Theatre, Ovocny trh 1). 스타보브스케 극장이라고도 한다. 지하철 A, B선 무스테크(Mustek)역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2분 정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에도 ‘돈 조반니’의 상설 무대를 열고 있다. 체코 여행 중 꼭 찾아볼만한 곳이다. MOZART, Amadeus (1756~1792 AUS) 독일의 작곡가. '레오폴드'와 '마리아 페르틀' 사이에 태어난 7남매중 다른 형제들은 어린 시절에 모두 죽고 누나 '이그나티아'와 '모차르트'만이 살아 남았다. 3세때부터 빛을 발한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아버지는 신동 모차르트를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유럽여행을 시작한다. 모짜르트 나이 6세인 1762년에 뮌헨을 시작으로 한 그 여행은 빈을 거쳐 아버지가 봉직하고 있던 궁정악단 재편성 때문에 다시 잘츠브르크로 돌아오지만 아버지 레오폴드가 궁정악단 재편성에서의 따돌림으로 휴가를 낸뒤 다시 뮌헨으로 향하고 아우크스브룩을 거쳐 슈베징겐, 프랑크푸르트(이곳에서 괴테와 모짜르트의 만남이 있었다), 브뤼셀, 파리까지 이어진다. 파리에서 머무는동안 중요한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바로 콘티공의 쳄발로 주자이자 작곡가였던 슈베르트와의 조우였다. 이 후 칼레를 경유하여 런던, 그리고 네덜란드로 향한다. 모자르트의 전기를 구체적인 사실로 한정시키면 브람스와 유사하게 끝없이 되풀이되는 '여행'을 열거하게 된다. 음악에 있어서 모짜르트는 쇤베르크와 같은 혁명가도 하이든과 같은 실험가도 아니었다. 그는 작법의 완벽함, 착상의 풍부함, 독창성, 끊임없는 자기계발, 예리한 감수성과 더불어 바늘같은 날카로움 등에 의하여 모든 기존의 도식과 자신의 내부에 살아있는 모든 구조를 초월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짧은 생애에서 남겨 놓은 수많은 작품해석은 이 난에서 해결 불가하므로 그의 주요작품 포스트에서 다루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한다. 그의 작품들은 숫자로만 친다면 바흐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굳이 작곡 기간 만을 놓고 보면 바흐를 능가할 수도 있겠다는 개인적 생각이다. (바흐의 칸타타와 초기 오르간곡을 제외한다면 오히려^^) ■ 요제프 크리프스, Josef Krips (April 8,1902 - October 13,1974) 오스트리아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 1902년 4월 8일,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의사였는데 음악적으로 교양이 높은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부친은 요제프 크리프스가 음악가가 되는데는 처음부터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크리프스는 5세 때 교회의 성가대에 들어가 음악적 소양을 키웠고,13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부친이 레슨료를 대주지 않았기 때문에 크리프스는 아르바이를 하면서 공부했는데,후에 아들이 음악적 재능이 뛰어남을 안 부친은 크리프스가 16세 되던 해에 빈 음악원에 입학하는 것을 허락했다. 빈의 음악원과 아카데미에서 만디체프스키(Eusebius Mandyczewski)와 바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에게 배우고,1918년부터 1920년까지는 바이올린 주자로서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음악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1921년에 바인가르트너의 권유로 빈의 폴크스오퍼에서 그의 밑에서 합창 및 연습 지휘자가 되었고,곧 악장으로 승격하였다. 여기에는 1924년까지 있었는데,22세 때 마침내 엘베의 아우지히 시립극장의 오페라 부문의 수석이 되었다. 1925년부터 1926년에는 도르트문트의 오페라 극장,1926년부터 1933년까지는 카를스루에의 오페라극장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1933년 크리프스는 빈으로 다시 돌아와 빈의 국립 오페라 극장의 정지휘자가 되었고,1935년에는 스승이었던 바인가르트너와 함께 빈 음악 아카데미의 교수도 겸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가 나치스에 침공받아 점령당했을 때 나치스에 반대했기 때문에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및 빈 음악원의 현직에서 모두 추방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체의 공개연주를 금지당하고 수용소 생활을 하던 중,1938년 빈을 탈출하여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의 오페라 극장과 필하모니의 객원 지휘를 한 시즌 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나치스에 의한 방해로 지휘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종전 후,나치스와 관련을 이유로 독일-오스트리아계의 고명한 지휘자들이 연합군에 의해 활동이 정지되었지만 크리프스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1945년 크리프스는 빈 음악계의 재건에 나섰는데,빈 교향악단의 지휘자로서 극장이 파괴된 국립 오페라 극장의 공연을 폴크스오퍼와 안 데어 빈 극장에서 하였고,1946년에는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모짜르트의 <돈 조반니>를 지휘하였고,그 이후도 이 음악제에 여러 번 출연하였다. 그리고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이나 빈 필하모니와 함께 유럽 연주 여행도 여러번 하였는데,이러한 일로 인해 빈 악계 재건의 아버지로서 신망을 모았다. 그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는 1950년까지 재임했고,그 밖에도 유럽 각지의 오케스트라를 객원지휘하면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였다. 1951년 1런던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취임하여 1954년까지 그 지위에 있었으며,런던 베토벤 페스티벌을 창시하기도 했다. 그뒤 저명한 지휘자들이 점차로 복귀하게 되면서 미국으로 건너가,1954년부터 1963년까지는 버펄로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1963년부터 1970년까지는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그 사이의 1963년에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의 지휘를 통해 코벤트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에 데뷔하였으며,1966년부터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도 객원 지휘를 하게 되었다. 크리프스는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그가 창설했던 런던 베토벤 페스티벌에는 매년 참가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1970년부터는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의 지휘자로 영입되어 활동하다 1974넌 10월 13일,스위스의 제네바에서 72세를 일기로 운명하였다. 크리프스는 전형적인 빈 스타일의 지휘자였다. 그의 연주는 부드럽고 우아하며,그가 뽑아내는 소리는 아름답고 안정감이 있다. 그것은 스승이엇던 바인가르트너와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에 대한 깊은 지식과 그 뛰어난 통솔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의 레퍼토리는 독일 고전에서 낭만파 전기를 이르는 독일 음악이 중심이어서 범위는 결코 넓지 않지만,그 때문에 연주하는 곡목에 더 깊히 성찰하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휘자로서는 가장 온당한 길을 크리프스는 걸어갔던 것이다. 크리프스는 빈에서 특히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는데,빈과 인연이 많았던 고전파와 낭만파의 작품에서는 전후의 빈 음악 애호가들을 매우 기쁘게 하였다. 그는 표현력과 구축성이 약한 개성의 부족함은 있었지만 빈 특유의 감성과 잘 직결되는 크리프스만이 창출할 수 있는 색감을 단아하게 펼치고 있다. 그가 남긴 레코드로는 역시 빈 필하모니를 지휘한 것에 좋은 것이 있다. 하이든의 <교향곡 제94번 - 놀람>과 <제99번 교향곡> 결합반,챠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5번>,<비엔나 왈츠집> 등이 명연주로 꼽힌다. 그밖에는 피아니스트 루빈쉬타인과의 협연과 빅터 교향악단을 지휘한 슈만과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결합반이 매우 좋다. 그 밖에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를 지휘한 모짜르트의 교향곡 <제25번>,<제31번>,<제35번>,<제36번>(필립스)과 오페라반으로 빈 국립 오페라 극장 멤버들에 의한 모짜르트의 <후궁으로부터의 탈주> 전곡반,<돈 지오반니> 전곡반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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