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행진 ----------------------------------------------(작사:전인권 작곡:전인권) 2. 그것만이 내세상 -----------------------------(작사:최성원 작곡:최성원) 3. 세계로 가는 기차 ----------------------------(작사:조덕환 작곡:조덕환) 4. 더 이상 내게 -----------------------------------(작사:최성원 작곡:최성원) 5. 축복합니다 -------------------------------------(작사:조덕환 작곡:조덕환) 6. 사랑일 뿐이야 ---------------------------------(작사:최성원 작곡:최성원) 7. 매일 그대와 ------------------------------------(작사:최성원 작곡:최성원) 8. 오후만 있던 일요일 -------------------------(작사:이병우 작곡:이병우) 9. 아침이 밝아 올때까지 ----------------------(작사:조덕환 작곡:조덕환) 10. 우리의 소원 -----------------------------------(작사:안병원 작곡:안석주) |
들국화 1집│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위
1980년 5월 광주학살로 정권을 공고히 한 전두환정권은 1982년부터 문화적인 유화책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게 컬러TV방송, 프로야구출범, 두발․교복자율화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 진행된 정치적인 유화책은 1985년 2월 총선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운 신한민주당이 일대 돌풍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 광주’ 이후 숨죽이며 살던 사람들은 2월 총선 과정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공통된 염원을 확인했고, 자신들의 힘으로 여소야대를 이뤄낸 자그마한 성공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바람이 단지 꿈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산울림의 데뷔 앨범(1977)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의 지평을 새롭게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들국화의 데뷔 앨범은 그런 시대적인 상황 하에서 발매되었고, 그래서 수록곡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는 심상치 않게 여겨졌다.
앨범(‘작품’으로서의 음반) 중심으로 한국대중음악사를 살펴보면 60년대 말 신중현의 덩키스 활동 이래 주목할만한 앨범들이 나오다가 1975년 대마초파동으로 인해 신중현을 비롯한 많은 뮤지션들이 활동 규제를 받으면서부터는 작가주의적인 앨범들이 사라졌다. 1977년에 산울림이라는 한국록의 독보적인 밴드가 등장했지만 오히려 그건 예외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이정선, 정태춘, 조동진과 대학가요제 출신의 작은거인, 송골매 등이 간간이 좋은 앨범들을 발표하긴 했지만 1985년 들국화가 본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10년간은 ‘한국대중음악의 암흑기’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뮤지션들이 멸종된 시기였다. 정확히 말하면 뮤지션들이 그들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던 시기였고,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뮤지션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시기였다. 그래서 들국화가 본 앨범을 발표한 이후로는 마치 ‘어디서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등장한 것’처럼 현재 거장이라고 얘기되는 뮤지션들이 나타났고, 그들이 다양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앨범들을 발표하면서 80년대 중반․후반을 ‘한국대중음악의 르네상스기’로 만들었다. 엄밀히 말해서 들국화의 데뷔 앨범 전에 이주원이 이끄는 ‘따로 또 같이’의 2집(1984)이 창작, 세션, 녹음 면에서 한국대중음악의 진정한 새 출발이었고, 들국화의 예고편이었지만 음악적인 파급력에서 본다면 들국화를 80년대 새로운 음악의 시작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또한 들국화의 데뷔 앨범에 담긴 노래들의 감성은 현재 음악마니아들의 감성과도 동떨어지지 않는데, 이는 70년대 말 산울림의 노래들을 제외한다면 거의 처음이라고 할만한다. 이는 60․70년대 비틀즈, 홀리스, 배드 핑거, CCR, 스틱스, 레너드 스키너드 등을 듣고 자란 뮤지션들이 역시 그 음악들을 듣고 자란 음악수용자들에게 들려준 ‘창작’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술한 뮤지션들이 영미권 록음악의 현재적인 기원이고, 대중음악의 동시대성을 생각한다면 들국화는 음악적인 트렌드를 벗어나지 않은 ‘세련된’ 한국대중음악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그것만이 내 세상><매일 그대와><오후만 있던 일요일><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와 같이 당대 청년들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감성의 자작곡들은 대중음악 만들기의 새로움을 제시했고, 그들이 직접한 세션으로 자신들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 특히 최구희(기타)와 허성욱(키보드)의 감각적인 연주는 전인권의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을 상승시키는 기본 바탕이다. 만약 <그것만이 내 세상><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에서 전인권이 절규할 때 옆에서 같이 울어대는 최구희의 기타 솔로가 없었다면, <오후만 있던 일요일>에서 허성욱의 무심한 회색빛 피아노 프레이즈가 없었다면 그 노래들이 지금처럼 기억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염두할 점은 전인권 개인의 디스코그라피로만 볼 때 들국화의 본 앨범은 최고작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인권의 최고작은 단연 [머리에 꽃을(1979~1987 추억 들국화)](1987)이다. 음악사적인 평가와 음악비평은 다를 수 있다.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
※ 가슴네트워크, 경향신문 공동기획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위 (가슴에서는 매주 월요일/목요일, 경향신문에서는 매주 목요일 1~100위 ☆☆☆☆☆ | 1985, GMA121188, ㄷ, 가슴네트워크, 들국화, 서라벌레코드 |
Introduction
▶들국화의 등장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당시의 정치적인 분위기는 암흑 그 자체였고 음악적인 분위기는 트롯이라는 장르가 한국인의 정서에 맞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꽤 인기를 얻던 시절이었습니다. 미국의 60년대와 상황이 매우 흡사했으며, 이 상황에 Folk와 Rock의 유입이 급속도로 진행되어 이때 Rock의 선구자라 할수있는 기타리스트 신중현이 나와 우리나라에 Rock의 싹을 키우기 시작했고 Rock매니어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Rock이 뿌리를 내릴 토양이 마련되기 시작하여 이어서 대학 중심으로 그룹 결성 붐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서슬퍼런 유신의 시기에는 대중적인 인기에 영합한 곡들이 아닌 진정한 Rock의 정신에 충실하고자 한 노래들은 방송을 나가기도 힘들었으며 급기야 금지곡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쓰게 되었습니다. 이 금지곡이라는 것이 겨우 뿌리를 내리려던 Rock의 토양 자체를 없애 버리는 계기가 되어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Rock은 그 뿌리를 찾지 못하고 떠돌고만 있는 것입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5년 중반까지 신중현에 의해 뿌리내려지고 성장해온 한국 Rock의 명맥을 이은 Group이 바로 들국화입니다. 쇄퇴할뻔했던 한국 Rock이 들국화로 인해 다시한번 전성기의 시절이 맞이하게 되는데 들국화의 Live음반과 신중현의 Rock을 직접적으로 이어받은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이끄는 한국 Heavy metal 공식 1호 Group인 시나위의「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발표된 1986년을 시작으로 백두산, H2O등 여러 Underground Band들이 한국 Rock을 꽃피웠고 김현식, 유재하, 시인과 촌장, 신촌 블루스 등 언더 그라운드 뮤직이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되면서 우리나라는 다시금 Rock의 토양을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들국화의 영향 특히 들국화는 전인권이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와 그를 주축으로 되어만든 Soft Rock 을 표방한 그룹으로써 한국의 Beatles 라고까지 불리며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또한 H2O, 시나위, 블랙신드롬, 백두산,부활이 이들과는 별도로 Hard Rock과 Metal의 계고를 이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들국화의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합니다.
그들은 지하에서부터 갑자기 나타나 처음부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창작력과 연주력을 보여주면서 직수입된 팝송이나 록 음악에 심취해서 「국산 가요」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청소년들을 단번에 휘어잡아 들국화의 추종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컬트라고 하기엔 너무나 광범위하고, 폭발적인 현상이었죠.
들국화가 결성되기 l년 전인 1984년에 발매된 동아기획 옴니버스 음반「우리 노래 전시회」는 최성원이 Produce 하고 전인권이「그것만이 내 세상」을 불 렀으며 , 허성욱이 Piano 주자로 참여했습니다. Rock, Fork, Blues, Fussion 등 1970-80년대 Underground의 다양한 실험은 들국화 l집에 총집결되었으며, 그 속에서 새로운 감성 의 Rock 음악이 탄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기교를 당시 우리 젊은이들과 청소년의 정서와 절묘하게 결합시켰고 이것을「한국적인 록」의 등장이라고들 평가하였습니다. 들국화의 혁명적 돌파는 음악적 차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촌 크리스탈 백화점 소극장의 첫 공연을 시발로한 전국 순회 공연과 더블 라이브 앨범의 발매로 결실로 이들의 성공에 고무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소극장 공연의 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들국화의 쇠퇴 그러나 들국화의 찬연한 개화는 그다지 길지 않았습니다. l집 발표 직후 기타리스트 조덕환이 밴드를 탈퇴했고, l집에도 참여한 최구희를 멤버로 참여시켜 다소 급조해낸 기미가 보이는 2집을 발표하긴 했지만, 당시 밴드는 분열되고 있었습니다. 들국화 해산의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밴드의 쌍두마차인 전인권과 최성원의 음악적 견해차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들의 전진을 가로막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예상을 뛰어넘은 대중적 성공이 었습니다. 그들은 대중의 엄청난 반응에 대비할 준비를 미처 갖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들국화가 사라진 1980년 말 H2O, 시나위, 블랙신드롬, 백두산,부활등 많은 그룹들도 하나 둘 기억속으로 사라지고 2인조 밴드였던 시인과 촌장 역시 함춘호가 빠지고 혼자 남은 하덕규도 가스펠 가수로 귀화하기에 이르렀으며 엄인호를 중심으로 한 신촌블루스도 매 앨범 고정 멤버를 갖지 못한 불안한 상태로 유지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한국 Rock의 토양이 얼마나 허술한지 그리고 나아가 한국 대중음악이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들국화의 재결성 지난 1983년 전인권·최성원·허성욱·주찬권씨로 결성된 들국화는 기타리스트 조덕환과 함께 1985년「행진」이 담긴 1집, 1986년「제발」이 담긴 2집을 잇따라 내며 언더그라운드 록밴드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으나 1989년 돌연 해체되었습니다.
해체 이후 전인권님은 솔로음반 2장과 라이브 앨범 등을 발표하였고 최성원님 역시「제주도의 푸른밤」이 들어 있는 1집과「어린왕자」의 2집을 발표, 주찬권님도 넉 장의 앨범을 발표하는 왕성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손진태님과 최구희님의 들국화 해산 이후 발표된 음반들도 역시 멋있고 좋았지만, 그건 단지「좋은 음악」뿐이었습니다.「그것만이 내 세상」의 절규도「세계로 가는 기차」의 흥겨움도 맛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리움의 두께만큼 안타까움이 더해갔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3J(지미 핸드릭스, 짐 모리슨, 제니스 조플린)의 죽음과 함께 미국의 히피 정신도 사이키델리 락도 하향곡선을 그렸습니다. 들국화의 해체 이후 90년대의 우리의 처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후로도 꽤 많은 락 그룹들이 부침을 거듭했지만, 아직까지 들국화가 이루어 놓은 높이와 깊이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던중 들국화는 지난 1997년 미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허성욱의 사망을 계기로 1998년 다시 모여 「안녕하세요, 들국화」란 공연을 가지며 들국화를 재결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워낙 급하게 모인 터라 서로 음악적 입장도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고 더구나 전인권님이 히로뽕 복용혐의로 다시 구속되어 활동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기간 동안 최성원님, 주찬권님 등이 자주 면회를 오고 그의 석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서로간의 믿음이 깊어졌습니다. 2000년 전인권님이 출소하자 그들은 다시 뭉쳤고 미사리의 <엉클톰>이란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호흡을 맞춘 끝에 지난 9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재기 공연을 가졌습니다.
"나이가 들고 이젠 오래 음악을 했다는 생각도 드니까 책임감은 아니고 사명감 같은 게 생겨요. 후배들 보기도 미안하고. 해준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들은 이 땅에서 록음악이 아사 직전의 상태에 와 있는 것을 먼저 음악하는 사람들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최근 젊은 음악평론가들이 선정한 가요사의 명반 가운데 압도적인 표차로「왕중왕」의 반열에 오른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80년대엔 희망을 말하고 싶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외롭잖아요. 그런 외로움을 잊도록, 우리를 속박하는 억압적 상황을 잠시나마 달래주는게 들국화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저항을 달랜다, 이런 느낌으로 노래했죠."
청중들은 들국화를「추억」하며 공연장으로 가겠지만, 들국화는 공연장에 모인 청중들에게「추억」이 아닌 새로운 「힘」과「정신」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프로필 (Profile)
홈페이지 (Homepage) : http://www.dkh1985.net/ 결성 (Formed) : 1983년 10월 / 한국 (Rep. of Korea) ♡1982년 8월 : 이촌동 까스등 공연(전인권, 허성욱) ♡1982년 9월 : 신촌 모노 공연(전인권, 허성욱) ♡1983년 4월 : 이태원 뮤직라보 공연(전인권, 허성욱, 최성원) ♡1983년 6월 : 이태원 자마이카 공연(전인권, 허성욱, 최성원) ♡1983년 8월 : 서초동 환타지아 공연(전인권, 허성욱, 최성원) ♡1983년 10월 : 이태원 장글 공연(전인권, 허성욱, 최성원) ♡1983년 10월 : 이태원 자마이카 공연(전인권, 허성욱, 최성원) ♡1983년 11월 : 피카디리 옆 에스엠 공연(들국화) ♡1983년 12월 : 신촌 뮤직스페이스 공연(들국화) ♡1984년 5월 : 압구정동 샤라자드 공연(들국화) ♡1984년 12월 :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 젊음의 록싸운드 공연(들국화) ♡1985년 1월 : 파랑새 소극장 공연(조덕환) ♡1985년 2월 16일 :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 라이브 디스크쇼 공연(들국화) ♡1985년 5월 11일 :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 라이브 디스크쇼 공연(들국화) ♡1985년 5월 : 파랑새 소극장 공연(들국화) ♡1985년 5월 : 파고다 연극관 공연(들국화) ♡1985년 6월 8일 :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 라이브 디스크쇼 공연(들국화) ♡1985년 9월 16일 : 들국화 1집 디스크 출반 공연(들국화) ♡1985년 12월 13일 ~ 31일 : 신촌 크리스탈 문화센터 공연(주찬권) ♡1985년 12월 31일 : 롯데호텔 송년의 밤 공연(들국화) ♡1986년 1월 12일 : 대전 공연(들국화) ♡1986년 1월 24일 ~ 26일 : 대구 동아문화 센터 공연(들국화) ♡1986년 1월 28일 ~ 31일 : 파고다 연극관 공연(들국화) ♡1986년 2월 1일 : 국립극장 공연(들국화) ♡1986년 2월 6일 ~ 8일 : 진부령 스키콘서트 공연(들국화) ♡1986년 2월 15일 ~ 19일 : 대구 공연(들국화) ♡1986년 3월 1일 : 숭의음악당 공연(들국화) ♡1986년 3월 25일 ~ 4월 30일 : 신촌크리스탈 문화센타 공연(들국화) ♡1986년 5월 22일 : 서강대축제공연 공연(들국화) ♡1986년 5월 24일 ~ 25일 : 문화체육관 공연(손진태, 최구희) ♡1986년 5월 25일 : 라이브앨범 출반 공연(들국화) ♡1986년 6월 21일 ~ 22일 : 문화체육관 공연(들국화) ♡1986년 7월 5일 ~ 6일 : 춘천시립문화회관 공연(들국화) ♡1986년 7월 5일 ~ 12일 : 대한극장 라이브콘서트 공연(들국화) ♡1986년 7월 18일 : 문화체육관 이종환의 디스크쇼공개방송 공연(들국화) ♡1986년 7월 26일 ~ 27일 : 부산 구덕 체육관 공연(들국화) ♡1986년 7월 30일 ~ 31일 : 청평 안전유원지 (리바이스) 공연(들국화) ♡1986년 8월 2일 : 경주 도투락 공연(들국화) ♡1986년 8월 9일 : 강원도 용평리조트 잔디밭 공연(들국화) ♡1986년 8월 15일 : 용인자연농원(이종환의 디스크쇼) 공연(들국화) ♡1986년 8월 22일 ~ 23일 : 대전 시민회관 공연(들국화) ♡1986년 9월 15일 ~ 17일 : 장충 체육관 86 아시안팝스 공연(들국화) ♡1986년 9월 25일 : 들국화 2집 디스크 출반 공연(들국화) ♡1986년 10월 : 삼성카세트 마이마이 Sign판매 동방프라자 공연(들국화) ♡1986년 10월 26일 : 용인자연농원(별이빛나는 밤에) 공연(들국화) ♡1986년 10월 28일 : MBC 정동라디오 공개홀(이종환의 디스크쇼) 공연(들국화) ♡1986년 11월 16일 : 문화체육관 공연(들국화) ♡1986년 12월 6일 : 잠실 실내 체육관 삼성 MYMY 공연(들국화) ♡1986년 12월 7일 : 가배상(록그룹상) 시상식 롯데호텔 공연(들국화) ♡1986년 12월 23일 : 제1회 골든디스크상 10대 가수상 수상 공연(들국화) ♡1986년 12월 18일 : L.A 한국 청년회의소 초청공연(들국화) ~ Korean Young Festival 공연(들국화) 1987년 2월 2일 알래스카(3일간) Notheren Rite Hotel Music Hall 공연(들국화) LA Rose Garden 공연(들국화) 스타다스트 Music Hall 공연(들국화) ♡1987년 3월 16일 ~ 26일 : 춘천소양강서 발성 노래연습 공연(들국화) ♡1987년 3월 30일 ~ 4월 5일 : 대구 각 대학공연(들국화) ♡1987년 4월 11일 ~ 12일 : 제1회 일간스포츠 젊음의 축제 잠실체육관 공연(들국화) ♡1987년 4월 17일 : 그룹활동 1년 '휴식'선언 공연(들국화) ♡1987년 5월 1일 ~ 2일 : 부산 이사벨여고 강당 공연(들국화) ♡1987년 5월 4일 : 광주 YWCA 강당 공연(들국화) ♡1988년 4월 2일 ~ 3일 : 봄 우리모두 여기에 63빌딩 공연(들국화) ♡1989년 6월 3일 ~ 4일 : 아듀 들국화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공연(들국화) ♡1989년 6월 11일 : 아듀 들국화 대구 실내체육관 공연(들국화) ♡1989년 6월 17일 ~ 18일 : 아듀 들국화 부산 구덕체육관 공연(들국화) ♡1989년 6월 24일 ~ 25일 : 아듀 들국화 대전 충무체육관 공연(들국화) ♡1989년 7월 1일 ~ 2일 : 아듀 들국화 광주 실내체육관 공연(들국화) ♡1998년 6월 4일 ~ 6일 : KBS홀 10년만의 해후 공연(들국화)-1997년 11월 20일 허성욱의 사망을 계기로... ♡1998년 7월 : 학전블루콘서트 공연(들국화) ♡1998년 12월 16일 ~ 17일 : 워커힐호텔 가야금홀 스탠딩 콘서트 공연(들국화) ♡2000년 9월 2일 ~ 3일 : 예술의전당 '안녕하세요 들국화' 공연(들국화, 사랑과평화) ♡2000년 10월 6일 ~ 22일 : 학전그린 앵콜 들국화 콘서트(들국화, 사랑과평화) ♡2000년 12월 24일 : 잠실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륨 '고교생 입장가' 공연(들국화, 사랑과 평화)
구성 (Group Members) : 전인권 - 보컬, 기타 / 민재현 - 보컬, 베이스 기타 / 이건태 - 드럼
락 밴드 "들국화" 의 인원 구성 변화
들국화 1기 구성원(1985) 전인권(보컬, 어쿠스틱 기타) 조덕환(기타) 최성원(베이스 기타, 보컬, 어쿠스틱 기타, 신시사이저) 허성욱(피아노, 신시사이저) 주찬권(드럼)
들국화 2기 구성원(1986) 전인권(보컬, 어쿠스틱 기타) 최구희(기타) 최성원(베이스 기타, 보컬, 어쿠스틱 기타) 손진태(어쿠스틱 기타, 신시사이저) 허성욱(피아노) 주찬권(드럼)
들국화 3기 구성원(1995) 전인권(기타, 보컬) 민재현(베이스 기타. 보컬) 이건태(드럼) |
들국화의 탄생과 데뷔앨범
들국화는 1982년 8월에 이촌동 ‘까스등’에서 전인권과 허성욱이 함께 공연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전인권은 이주원이 이끄는 ‘따로 또 같이 1집’(79)에 참여한 이후 솔로 독립을 한 상태였고, 비공식 앨범 두 장을 79년과 80년에 각기 발표했다. ‘까스등’ 공연 전에도 전인권은 ‘조·이’라는 듀엣으로 활동하던 조덕환, 특별한 음악경력이 없었던 허성욱과 함께 강릉에 있는 나이트클럽 등에서 노래하곤 했다.
그러다가 이영재, 이승희와 함께 트리오로 앨범(80)을 발표한 최성원을 82년 말에 만났고, 이듬해 4월의 이태원 ‘뮤직라보’ 공연부터는 최성원도 참여하여 3인조 체제가 되었다. 최성원이 팀명 후보로 ‘코스모스’ ‘들장미’ ‘들국화’ 등의 이름을 제시한 것 가운데 ‘들국화’를 선택함써 오늘날의 들국화가 있게 되었다. 현재의 팀명으로 공연을 한 것은 83년 11월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 옆 ‘에스엠’ 공연부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덕환이 참여함으로써 완벽한 라이업이 형성되었고, 85년 9월에 ‘역사적인’ 데뷔 앨범(사진)을 발표했다.
들국화의 데뷔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말 그대로 ‘역사적’인데, 왜냐하면 들국화 이전과 이후를 나눠서 얘기해도 좋을 만큼 ‘80년대 새로운 대중음악의 시작’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뮤지션 세대교체, 창작, 세션, 녹음 모든 부분에서 분기점이었던 이 앨범은 당시 언더그라운드에서 조용하게 창작에 몰두하던 신진 뮤지션들 중에서 먼저 치고 올라온 경우였고, 그 결과물은 이후 몇년간 유지된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기’에서 전범 역할을 했다. 마치 90년대 얼터너티브록을 폭발시킨 촉매제 역할을 했던 너바나의 ‘Nevermind’(91) 같은 앨범이 들국화 데뷔 앨범이었다.
이후 들국화는 서울스튜디오에 그들의 팬 수백명을 데려다놓고 만든 ‘라이브 콘서트’(86)와 조덕환이 빠지고 최구희, 손진태, 주찬권이 가입한 ‘들국화 2집’(86)을 발표하고 나서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한다. 멤버들은 각기 활동을 했고, 들국화 재건에 몰두했던 전인권이 태백산맥 출신의 민재현, 송골매 출신의 이건태와 함께 ‘들국화 3집’(95)을 발표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2000년에는 윤도현밴드, 크라잉 넛, 델리 스파이스, 동물원, 언니네이발관, 강산에 등이 참여한 트리뷰트 앨범 ‘A Tribute To 들국화’가 나왔다.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2007년 08월 23일 |
+ 대중음악 100대 명반 ‘들국화’1위 :
1- 207(45) 들국화 [들국화] (1985/서라벌레코드) 2- 182(41)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1987/서울음반) 3- 154(35) 김민기 [김민기] (1971/대도레코드) 4- 146(33) 어떤날 [1960.1965] (1986/서라벌레코드) 5- 142(32) 산울림 [산울림 1집] (1977/서라벌레코드) 6- 128(30) 산울림 [산울림 2집] (1978/서라벌레코드) 7- 127(29) 신중현과 엽전들 [신중현과 엽전들] (1974/지구레코드) 8- 120(26) 한대수 [멀고먼 길] (1974/신세계레코드) 9- 117(34) 델리 스파이스(Deli spice) [Deli spice] (1997/도레미레코드) 10- 111(31) 이상은 [공무도하가] (1995/Polygram)
11- 110(28) 어떤날 [어떤날 Ⅱ] (1989/서울음반) 12- 109(32) 사랑과 평화 [한동안 뜸 했었지] (1978/서라벌레코드) 13- 107(30) 김현식 [김현식 Ⅲ] (1986/동아기획) 14- 101(23) 시인과 촌장 [푸른 돛] (1986/서라벌레코드) 15- 99(29)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1997/킹레코드) 16- 97(28) 이문세 [이문세 4] (1987/서라벌레코드) 17- 93(29) 김현철 [김현철 Vol.1] (1989/서라벌레코드) 18- 92(26) 부활 [Rock Will Never Die] (1986/서울음반) 19- 91(28) 한영애 [바라본다] (1988/동아기획) 20- 91(26) H2O [오늘 나는] (1993/로얄레코드)
21- 89(24) 동물원 [동물원] (1988/서울음반) 22- 88(26) 봄여름가을겨울 [봄여름가을겨울] (1988/서라벌레코드) 23- 87(26) 유앤미 블루(U&Me Blue) [Cry... Our Wanna Be Nation!] (1996/LG미디어) 24- 86(22)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1992/반도음반) 25- 84(22)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1995/킹레코드) 26- 83(25) 노 브레인(No Brain) [청년폭도맹진가] (2000/문화사기단) 27- 83(24) 노이즈가든(Noizegarden) [Noizegarden] (1996/베이프로덕션) 28- 83(20) 작은거인 [작은거인 2집] (1981/오아시스레코드) 29- 82(21) 조용필 [조용필 1집] (1980/지구레코드) 30- 81(21)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Ⅱ] (1993/반도음반)
31- 79(21) 시인과 촌장 [숲] (1988/동아기획) 32- 78(26) 시나위 [Heavy Metal Sinawe] (1986/서라벌레코드) 33- 78(25) 마그마(Magma) [Magma] (1981/힛트레코드) 34- 78(24) 언니네 이발관 [비둘기는 하늘의 쥐] (1996/석기시대) 35- 78(23) 듀스(Deux) [Force Deux] (1995/월드뮤직) 36- 77(20)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Ⅳ] (1995/반도음반) 37- 76(27) 낯선 사람들 [낯선 사람들] (1993/하나뮤직) 38- 76(26) 넥스트(N.EX.T)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 (1994/대영AV) 39- 76(20) 조동진 [조동진] (1979/대도레코드) 40- 75(22) 전인권&허성욱 [1979-1987 추억 들국화] (1987/동아기획)
41- 74(20) 유앤미 블루(U&Me Blue) [Nothing's Good Enough] (1994/Nices) 42- 71(21) 신촌블루스 [신촌 Blues] (1988/지구레코드) 43- 70(20) 동물원 [두 번째 노래모음] (1988/서울음반) 44- 66(19)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 1] (1984/서라벌레코드) 45- 65(20) 신촌블루스 [신촌블루스 Ⅱ] (1989/서라벌레코드) 46- 64(18) 조동익 [동경] (1994/킹레코드) 47- 63(21) 마이 앤트 매리(My Aunt Mary) [Just Pop] (2004/Fresh Entertainment) 48- 62(19) 송골매 [송골매 2] (1982/지구레코드) 49- 61(20) 루시드 폴(Lucid Fall) [Lucid Fall] (2000/라디오뮤직) 50- 61(19) 이문세 [이문세5] (1988/킹레코드) 50- 61(19) 삐삐밴드 [문화혁명] (1995/디지탈미디어)
52- 61(18) 부활 [부활 Ⅱ: Remember] (1987/서울음반) 53- 61(17)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 2] (1989/서울음반) 54- 60(19) 봄여름가을겨울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1989/동아기획) 55- 59(21) 다섯손가락 [다섯손가락] (1985/서울음반) 56- 59(18) 정태춘 [시인의 마을] (1978/서라벌레코드) 57- 59(17)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 III] (1994/반도음반) 58- 57(16) 김광석 [다시 부르기 1] (1993/서울음반) 59- 56(19) 못(MOT) [Non-Liner] (2004/Bounce) 60- 55(22) 아소토 유니온(Asoto Union) [Sound Renovates A Structure] (2003/Omnione)
61- 55(16) 김수철 [김수철 1집] (1983/신세계음향) 62- 55(15) 장필순 [Soony6] (2002/하나뮤직) 63- 55(14) 정태춘·박은옥 [92년 장마, 종로에서] (1993/삶의문화) 64- 54(18)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 [18일의 수요일] (1998/강아지문화예술) 65- 54(17) DJ DOC [The Life... DOC Blues] (2000/디지털미디어) 66- 52(19)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 [일상다반사] (2000/Cream) 67- 52(18) 양희은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1971/유니버샬레코드) 68- 52(15) 언니네 이발관 [후일담] (1999/석기시대) 69- 51(15) 김두수 [자유혼] (2002/Riverman Music) 69- 51(15) 미선이 [Drifting] (1998/라디오뮤직)
71- 50(17) 패닉(Panic) [Panic] (1995/신촌뮤직) 72- 49(15) V.A. [우리 노래 전시회] (1984/서라벌레코드) 73- 49(14) 산울림 [산울림 3집] (1978/서라벌레코드) 74- 48(16) 김광석 [김광석 네번째] (1994/킹레코드) 75- 46(14) 크래쉬(Crash) [Endless Supply Of Pain] (1994/Metal Force) 76- 46(13) 조용필 [조용필 7집] (1985/지구레코드) 77- 45(17) DJ 소울스케이프(SoulScape) [180g Beats] (2000/MP) 78- 45(15) 안치환 [안치환 4집] (1995/킹레코드) 79- 45(14) 강산에 [강산에 Vol.0] (1992/킹레코드) 80- 45(12) 정태춘 [아, 대한민국…] (1990/삶의문화)
81- 44(16) 가리온(Garion) [Garion] (2004/Ales Music) 82- 44(13) 한대수 [무한대] (1989/신세계음향) 83- 43(14) 이정선 [30대] (1985/한국음반) 84- 43(13) 듀스(Deux) [Deuxism] (1993/지구레코드) 85- 42(13)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 [올랭피오의 별] (2004/Sha label) 86- 41(16) 이승열 [이날, 이때, 이즈음에...] (2003/플럭서스뮤직) 87- 41(13) 이장혁 [이장혁 Vol.1] (2004/12Monkeys) 88- 41(12) 빛과 소금 [빛과 소금 Vol.1] (1990/동아기획) 89- 40(15) 패닉(Panic) [밑] (1996/신촌뮤직) 90- 40(14) 두 번째 달 [두 번째 달] (2005/Triangle)
91- 39(13) 양희은 [1991] (1991/킹레코드) 91- 39(13) 클래지콰이 프로젝트(Clazziquai Project) [Instant Pig] (2004/플럭서스뮤직) 93- 38(14) 강산에 [나는 사춘기] (1994/킹레코드) 93- 38(14) 이소라 [눈썹달] (2004/T-Entertainment) 95- 38(12) 전인권 [전인권] (1988/동아기획) 96- 37(12) 시나위 [Down And Up] (1987/오아시스레코드) 97- 37(11) W [Where The Story Ends] (2005/플럭서스뮤직) 98- 35(15) 브라운 아이즈(Brown Eyes) [Brown Eyes] (2001/갑엔터테인먼트) 99- 35(13) 이상은 [외롭고 웃긴 가게] (1997/킹레코드) 100- 35(10) 동서남북 [아주 오래된 기억과의 조우] (1988/예음)
Tape 빼고 내가 가지고 있는 앨범이 16개(굵은 부분)나 들어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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