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시대의 음악가들은 모두 귀족이나 교회에 소속된 하인 비슷한 신분이었다. 모차르트도 당연히 고향 잘츠부르크의 성당에서 일하는 것이 ‘정해진 팔자’였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1781년 멋대로 빈으로 달아났고 당연히 잘츠부르크의 대주교의 미움을 받았다. 자유인이 되고 싶었던 모차르트는 빈의 프리랜서 음악가로 자곡하고 연주하고 레슨도 했다. 오페라 작곡하랴, 아버지가 부탁한 작품을 만들랴, 하숙집 딸이던 콘스탄체 베버와 연애하고 또 결혼도 하랴 몹시 바빴던 시기에 나온 작품이 바로 이 C단조 미사곡이다. 이 작품은 누군가 의뢰한 것이 아니고 모차르트가 스스로 만든 곡인데 일설에는 콘스탄체의 성악 솜씨를 최대한으로 살린 작품을 만들어 결혼에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하려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1783년 10월 26일 잘츠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이 콘서트에서는 소프라노가 부르는 ‘크레도’ 부분의 ‘몸을 받아 인간이 되다’가 연주되었다.
1. I : KYRIE / II : GLORIA 2. Gloria in excelsis Deo 3. Laudamus te 4. Gratias agimus tibi 5. Domine Deus 6. Qui tollis peccata mundi 7. Quoniam tu solus Sanctus 8. Jesu Christe 9. Cum Sancto Spiritu 10. III : CREDO Credo in unum Deum 11. Etincarnatus Deum 12. IV : SANCTUS 13. Osanna 14. V : BENEDICTUS
1783년에 쓰여진 미사곡으로 그 해에 모짜르트는 교향곡 36번 린츠를 비롯한 많은 곡을 작곡하였습니다. 1780년대는 모짤트는 인생의 황금기로 콘스탄체와 결혼을 하고 오랫동안 예속되어왔던 콜로레도대주교로 부터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하이든의 천지창조 대본을 쓴 것으로 잘 알려진 즈비텐 남작과의 교분으로 음악에 대하여 더욱 폭 넓은 풍성함을 가지게 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곡은 콘스탄체와 결혼을 위하여 작곡한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교회음악의 관습이나 제한을 벗어나 자유로움을 마음것 표현한 곡이라고 할수 있으며 과장된 로코코풍의 양식을 넘어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여 정교한 대위법을 자유롭게 사용하였습니다.
이 대위법의 도입은 모짜르트에게는 독창적인 것으로 그는 바하의 대위법에 의한 미사곡이나 칸타타 수난곡 등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당시 바하는 거의 잊혀진 작곡가였기 때문입니다.
또 이 곡은 미완성미사곡으로 알려지기도 했는 그것은 안톤 안드레에 의해 1840년에 처음 출판된 악보가 완성된 형태로는 키리에와 8곡으로 구성된 글로리아 뿐이며, Sanctus와 Benedictus는 합창 성부가 약간 빠져 있고, Credo 부분은 관현악이 많이 빠져있기 때문이나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 설은 설득력이 없고 완전한 형태로 완성되어 생전에도 연주되었다는 것이 오늘 날의 정설입니다.
글출처: 웹사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