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onin Dvorak (1841~1904) Violin Concerto in A minor, Op. 53
루마니아 태생의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한 기품을 지닌 정연하고 우아한 연주로 마니아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요한나 마르치(1924-1979)
많은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정열적이고 남성들보다 오히려 더 감성적인 연주로 유명하지만 마르치는 여성스럽고 기품있는 군계일학의 연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쥐어 짜내며 폭발시키는 긴장감과 웅대한 스케일 감, 그리고 섬세함으로 극도의 긴장과 이완을 넘나들며 풀어나가는 연주는 과연 최고라 찬사를 받았다.
그녀는 지네트 느뵈, 이다 헨델 등과 함께 1950년을 전후해서 연주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세상에 참 수많은 음반들이 있지만,
어떤 것들은 애호가들의 외면을 받아 여기저기 널려 있는가 하면 어떤 음반들은 수집가들이 필사적으로 찾아다니고, 수입되는 즉시 동이 나는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1964년에 존 프리차드(John Prichard)가 지휘하는 런던 필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런던 연주회를 마쳤을 때 타임즈는 그녀의 연주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마르치는 빼어난 주법을 구사하는 위대한 연주자다. 그녀는 서정적인 음악에 따뜻한 감성을 불어넣을 때나 역동적인 부분에 힘을 불어넣을 때 언제나 전력을 다해 연주한다.
첫 번째 악장의 트리플-스토핑(triple stopping)부분은 번득이는 힘을 담고 있었다. G현과 D현으로부터 그가 뽑아내는 톤의 정열적인 긴장감은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이 진행되면서 고요한 부분을 흔치 않은 고귀함으로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음악적인 기질이 폭넓기 때문이다. 가끔 잘못된 음을 짚기도 하지만 재치있게 처리를 해내고 있으니 도대체 누가 불평을 하겠는가?
느린 아다지오 악장의 탁월함은 어떤가. 고음부에는 마르치만의 비단결같은 순결함이 있고 격조 높은 부분에는 잘 통제된 감정과 유연함이 있었다.
마지막 악장에서 머뭇거리듯 연주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곧 제맛을 되찾았다. 주제부에는 힘찬 리듬을 담아냈고, 옥타브 주제의 가락은 힘차고 믿음직스러웠으며 코다의 16분음표에서는 발랄함을 보여주었다."
마르치는 1979년 8월 13일, 54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취리히의 한 병원에서 암으로 영면했다. 그녀의 죽음은 '짧고 심각한 질병'으로 기술되었다.
그녀는 같은 고향 대 선배인 칼 플레쉬를 존경하였으며, 유연하여 새털 같은 따스한 감성, 고전주의적인 양식미가 넘치는 매력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마르치를 필두로 이다 헨델, 오클레르 등 모노 녹음 시기의 여성 연주가들은 후기 신 고전주의 연주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명성에 비해 그녀가 남긴 음반은 턱없이 적다.
그 이유는 그녀가 세르지우 첼리비다케나 레오니 리자넥처럼 레코딩을 싫어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소속사였던 EMI의 프로듀서였던 월터 레그의 성적요구를 일언지하에 거부한 댓가였다고 전해진다.
금발에 흰살결의 단아한 용모를 지녔던 마르치에게 레그가 음욕을 품고 정복하려 들었다가 거부당하자 보복을 했다는 것이다. 글렌 암스트롱이란 조각가는 마르치에 미쳐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쿠 다르셰라는 레이블을 만들기에 이른다.
마르치 음반만을 내는 것이 목적인 이 레이블에는 기존의 EMI나 캐피톨과는 겹치지 않는 굵직한 레퍼토리와 연주들이 애호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모두 7타이틀의 쿠 다르셰 음반은 어느 하나 반갑지 않은 것이 없지만, 레퍼토리면에서 보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처, 라벨, 헨델, 프랑크, 브람스 등 소나타와 모차르트,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드보르자크 트리오 '둠키' 등이 눈길을 끈다.
아름다운 여성이었기에, 한 프로듀서의 헛된 욕망에 희생된 그녀의 음반들이 공교롭게도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리마스터링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르치처럼 기품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연주자는 드물다. 그녀가 남긴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기교의 과시없이 정신적 깊이로 바흐를 풀어낸 그녀의 명연중의 명연이다. <웹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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