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피아노)/^^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브람스/피아노 협주곡 2번 Op. 83 -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피아노) 에리히 라인스도르프(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만짜 2016. 9. 18. 23:42

 

 

 

 

 

 

 

 

  

 

Johannes Brahms (1833~1897)
Piano Concerto No. 2 in B flat major, Op. 83

 

 

 

  1. Allegro non troppo (16'51")

 

  2. Allegro appassionato (08'50")

 

  3. Andante (12'47")

 

  4. Allegretto grazioso (09'05") 

 

 

1 ~ 4 순으로 연속듣기
 
 
Sviatoslav Richter, piano
Erich Leinsdorf, cond
Chicago Symphony Orchestra
Recorded: October 17, 1960
Venue: Orchestra Hall, Chicago
 
 
 
 
 
1878년 4월에 브람스는 봄날에 이탈리아를 방문했는데,
그 눈부신 자연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제 2번 협주곡을 썼다.
그러나 완성하지는 못하고, 1881년
다시 이탈리아를 찾아갔을 때 이것을 완성했다.

제1악장 Allegro non troppo.
봄을 맞는 해맑은 기쁨과, 신록에 불타는 숲을 묘사하는
듯한 호른의 음이 나타나고, 피아노는 그 위를
상쾌하게 높이 날아 노래하면서 희롱한다.

그 평화로운 가락은 급격한 변화와 폭풍우 같은
주제에 의해 흐트러지지만,
호른의 부드러운 음에 의해 봄의 여신은 또다시 불려 나오게 된다.

제2악장 Allegro appassionato.
단순한 제1악장에서 다음으로 옮길 때 브람스는
어떤 아쉬움을 느꼈는지, 그는 이 곳에 악장을 삽입했다.

불 같이 초조해진 선언이 연주되면,
그 뒤에 격심한 동경과 의혹이 생기고 이따금
깊은 생각과 우울한 기분에 잠긴다.

흘깃 보이는 농민의 춤과 같은 쾌활한 리듬은
의혹적인 감정에 휩싸여 브람스의 철학적인 면이 주장된다.

제3악장 Andante.
이탈리아의 봄은 여기에 또다시 전개된다.

제4악장 Allegretto graziso.
환희는 제1악장의 정취를 또다시 강조해서 표현한다.
태양의 뜨거운 광선, 저절로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과
환희, 현란한 봄의 광선은 피아노로 나타낸다.
 

20세기에 걸출한 피아니스트들은 수 없이 탄생해 왔지만,
그 중에서도 거의 전설에 가깝게 회자되는 존재가 있다.
바로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그인데,
음악적인 면은 물론이거니와 음악 외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공연을 할때 조명을 완전히 꺼버리고 무대 안쪽의 작은
조명만을 살려 악보를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조명만을 켜기를 고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청중들이 자신의 공연을 보러 오길 원한 것이 아니라,
들으러 오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악보를 외울 시간에 연습을 더 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대부분의 공연을 암보하지 않고 악보를 지참하고 연주했다.

리히터 전까지는 리스트의 곡들은 100여년간 암보로 연주하는 것이
암묵적인 관행이었지만 그는 그 관행을 깨고
항상 연주회마다 페이지 터너를 동행했다고한다.

피아니시트 아쉬케나지는 러시아의 수많은 피아노 거장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1915-1997)를 꼽았다.

"다른 연주자와는 달리 그는 언제나 피아노 앞에서 정의를
실현하려고 했다”고 아쉬케나지는 말했다.
1950년대 말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는 강철 같은 타건과
웅혼한 음색으로 서방 음악계를 주눅들게 했다.

그러나 이들을 더욱 주눅들게 한 것은 길렐스의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만약 나를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생각했다면 리히터를
만날 때까지 그러한 생각을 보류하십시오"


1958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미국의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리히터의 따뜻하고 로맨틱한 연주는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연주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당시 콩쿠르 심사위원이던 리히터는 클라이번에게만
10점 만점을 주고 나머지 참가자들에게는
0점을 매겨 또다른 화제를 낳았다.
리히터는 서방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이미 전설이 되어 있었다.

1960년 그가 45세의 나이로 서방 무대에 등장하면서 그 전설은
더욱 확고 해졌는데, 특히 미국의 비평가들은
"이제껏 만난 연주자들 중 가장 빼어난 피아니스트"라거나
"오케스트라 전체와 맞먹는 소리","연주곡 에 대한 경이적인
통제력" 등등의 찬사로 그를 경배했다.

분명 리히터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였으며,
거장이나 대가라는 칭호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드문 예술가였다.
그의 뛰어난 곡 해석력은 바하의 평균율 전곡 녹음반에서 특히
두러지는데, 일본에서 발매된 이 평균율의 해설지에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과 바하의 평균율을 모두
최고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가'라는 구절이 있다.

공통분모가 그다지 없는 이 둘의 음악을 거의 최고 수준으로 소화하기는
일반적으로는 매우 힘들지만 리히터는 특이하게도 이 둘을 모두
소화할 정도로 폭넓은 음악 수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리히터는 말년으로 접어들수록 화려함을 기피했다.
거대한 공연장보다 이름없고 한갓진 공회당에서의 연주를 더 선호했다.
러시아나 일본의 궁벽한 마을에서,
그는 음악을 모르는 이들과 함께 음악을 즐겼다.

그의 80회 생일 때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영감과 미에 대한 사랑의 원천"이라고 그를 칭송했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살아남은 자들은 오랫동안 그의 음반으로부터
영감과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웹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