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gei Rachmaninoff (1873~1943)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18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첫 부분의 피아노 터치가 인상적인 곡이다. 이 부분은 '크렘린의 종소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만큼 장중하고 아름답다. 누가 들어도 단번에 러시아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애수에 찬 감미로운 2악장, 빛나는 3악장도 많은 영화, 드라마, CF에 삽입되어, 이 곡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아주 친숙하게 느껴진다.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도 유명하지만, 그 자신이 아주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아주 손이 크고 테크닉도 뛰어나, 힘과 기교를 겸비한 빼어난 연주를 하였다. 그의 피아노 곡들은 당연히 직접 연주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작곡되었으니, 연주하는데 피아니스트의 엄청난 기량이 필요하다. 관객들에게는 피아노의 능력을 극대화한 명곡이지만,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난곡들이기도 하다. 현재는 라흐마니노프를 마판증후군 환자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병은 손가락을 길고 유연하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그러니 정상적인 사람이 라흐마니노프의 테크닉을 쉽게 따라 하기란 애당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도 역시 마판증후군 환자로 의심된다. 그는 평생 4개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2번과 3번이 가장 유명하다. 1번은 10대 후반에 작곡했다가 나중에 전면적으로 수정해서, 실질적으로는 이 2번이 첫 번째 협주곡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에서 차이콥스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평가 받는다.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에게 배웠으며 그를 멘토로 삼았다. 차이콥스키가 죽었을 때 그를 '위대한 예술가의 회상'이라는 곡을 쓰기도 했다. 그래서 라흐마니노프의 경향을 회고적이라고하기도 하고, 그를 낭만파의 마지막 작곡가라고 하기도 한다.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이 보았을 때는 좀 구닥다리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어쨌던 간에 라흐마니노프는 10대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많은 훌륭한 곡을 쓴다. 피아니스트로의 기량도 뛰어나서 연주자로도 인정받고, 지휘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가 24세 되던 해부터 약 3~4년간 작곡가로 큰 슬럼프를 겪게 된다. 사실상 그 기간 동안 아무 곡도 쓰지 못했다. 그 이유는 1897년에 초연한 교향곡 1번이 무지막지한 악평을 들어 작곡에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적인 불행도 겹쳐서 그는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협주곡 2번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작곡가로서의 그의 명성은 그 후로 확고 부동하게 된다. 그런 사연으로 이 곡이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되었다. 후에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에서도 활동하여 큰 명성을 쌓는데, 그런 계기로 나중에 러시아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된다. 러시아 쪽 음악가 중 그와 비슷하게 미국에 정착하게 된 경우가 여럿 있다.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도 그 중 한 사람인데 라흐마니노프는 호로비츠가 자신의 곡, 특히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것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웹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