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첼로 소나타

베토벤/첼로 소나타 3번 Op. 69 - 파블로 카잘스(첼로) & 오토 슐호프(피아노)

로만짜 2015. 9. 6. 00:44

 

 

 

 

 

 

 

 

  

 

L.V. Beethoven (1770~1827)
Cello Sonata No. 3 in A major, Op. 69

 

 

 

  1. Allegro ma non tanto (09'33")

 

   2. Scherzo (Allegro molto) (03'12")

 

  3. Adagio cantabile -
                                Allegro vivace (07'20") 

 

 

1 ~ 3 순으로 연속듣기
 
 
Pablo Casals, cello
Otto Scuulhof, piano 
Date of Recording: London, 6/7.IIi.1930
 
 
 
 
 
첼로를 독주악기의 반열에 올려놓은 베토벤의 천재성
베토벤이 작곡한 다섯 개의 첼로 소나타는 피아노와
첼로의 매개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더군다나 작곡가가 이 작품을 작곡하고자 마음먹었을 당시,
이 장르에 대한 모델조차 없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놀라울 따름이다.
첼로는 16세기부터 콘티누오와의 듀오 악기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교적 첼로를 많이 사용한 보케리니나 비발디의 경우에도
첼로의 역할과 형식은 바이올린 소나타와 다를 것이 없었고,
여전히 베이스 아리아와 같은 오블리가토를
위한 악기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경우도 첼로와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을 작곡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단히 흥미롭다.
이 '하찮은 저음악기'를 결정적으로 독주악기의
반열로 올려놓은 장본인이 바로 베토벤이다.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소나타 3번 A장조 Op.69
1. 알레그로 마 논 탄토
2. 스케르초: 알레그로 몰토
3. 아다지오 칸타빌레 - 알레그로 비바체

Op.69는 시작부부터 솔로 첼로가 오프닝을 담당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동일한 조성의 '크로이처 소나타'와 같은
바이올린 소나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시작부터 피아노와 첼로가 같은 음역을
 연주하도록 의도한 모습이 엿보인다.

음악은 점점 에너지감이 고조되다가 분위기는 갑자기
단조로 변화하지만 '크로이처 소나타' 처럼 변화는
잠시 동안 제시되고 이내 평온한 서정성으로 돌아간다.

피아노로 제시되는 첫 2주제는 첼로와 함께 천천히 진행되면서
베토벤은 두 악기 사이의 대화를 솜씨 있게 지속시켜나간다.
단조의 분위기는 발전부에 이르러 역동적으로 변하며
긴 코다에서는 보다 완화된 스타일이 제시된다. 
 

다시금 단조로 되돌아간 스케르초는 베토벤 특유의
싱코페이션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 장조 조성의 트리오는
렌틀러를 연상시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베토벤은 되풀이하는 스케르초(ABABA) 사이에서
두 개의 동일한 트리오를 위치시켜 확장된 형식을 사용했다.
E장조의 아다지오는 악장 전체로 발전할 수 있듯이 시작하지만,
실제로 결국에는 피날레를 위한 비교적 짧은 도입부로 사용된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우아한 주제가 날렵한 스케일과
몇몇 감동적인 탄식과 결합하며 끝을 맺는다.
이 곡은 1808년 봄에 완성되었다.

이 무렵 5번과 6번 교향곡,피아노협주곡 4번과
합창환상곡 등이 줄지어 완성 되었는데,
베토벤의 다섯 소나타 중에서도 이 작품이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것도 작곡자의 창작력이 최절정기에 달했던
시기의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아마츄어 첼리스트이자 베토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글라이헨슈타인 남작(Ignaz von Gleichenstein)에게 헌정되었다.
남작은 베토벤을 돕는 후원회를 결성하였던 장본인이었고 ,
작곡자는 이에 대한 고마움을 이 작품을 통해 표현 하였던 것이다.

완성 이듬해인 1809년 라이프치히에서 출판이 이루어졌지만,
초연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지금은 첼로 레퍼토리 중에서도 빛나는 걸작이지만,
작곡자는 이 작품을 그리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1812년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Carl Czerny)와
첼리스트 린케(Joseph Linke)에
의한 연주가 기록으로 남아있는 최초의 연주이다.
후일 린케는 작곡자의 나머지 두 소나타 (OP.102)를
초연 하게 되는 장 본인 이기도 하다.
<웹 발췌 글 박제성 /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