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피아노)/^^디누 리파티

바르톡/피아노 협주곡 3번 Sz. 119 - 디누 리파티(피아노) 파울 자허(지휘) 쥐드베스트풍크 오케스트라

로만짜 2014. 10. 20. 01:00

 

 

 

 

 

 

 

   

 

 

 

 

Bela Bartok (1881~1945)
Piano Concerto No. 3
in E major, Sz. 119, BB 127

 

 

   I. Allegretto (07'48") 

 

  II. Adagio religioso (10'27")  

 

  III. Allegro vivace (07'19") 

 

 

 
2,3,1 순으로 연속듣기
 
Dinu Lipatti, piano
Paul Sacher, cond
Sinfonie-Orchester des Suedwestfunks
Recording Date: May 30, 1948
Studio Kurhaus, Grosser Buehnensaal, Baden-Baden
Release Date: March 13, 2001 Digital remastering
 
 
 
바르톡은 3곡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하였다.
피아노의 타악기적 사용과, 선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1번은
1926년에 작곡되었으며, 2번은 1930년에서 31년에 걸쳐서,
그리고 3번은 작곡자가 사망하던 1945년의 작품으로서
오케스트라 파트 17마디가 미완성인 작품이었다.

이들 3곡은 하나같이 작품의 완성도와 독창성에서 뛰어난
작품들이며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곡은
간결한 형식과 평이한 화성이 사용되어 있는 3번 협주곡이지만
바르톡의 전형적인 작곡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은
역시 작곡자의 전성기에 즈음하여 작곡된 제 2번 협주곡이다.

협주곡 3번은 코다이와 더불어 20세기, 헝가리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세계적인 작곡가인 바르톡의 '백조의 노래'로서
죽음을 앞둔 그가 늘상 겪었던 병고와 생활고를
극복하게 해 준 20세 연하의 부인 디타 파스토리의
헌신적인 내조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아 쓴 곡이다.
바르톡은 이 곡의 마지막 17마디의 관현악 부분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의 제자인 티보르 셀리가 이 부분을 완성했다.

이 협주곡은 그의 작품 중에서 사람들의 귀에 가장 익은 곡 중의 하나이다.
악상이나 화성이 온화하고, 형식도 모짜르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간결하여 듣기에 쉬우며 곡의 길이도 알맞다.
바르톡이 이 곡의 작곡 시기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해인 1945년의 봄이였다.
 
그가 가장 미워하고 그와 조국을 때어 놓게 한 파시즘은
이 무렵 이미 완전 붕괴 직전에 있었으며,
세계 평화의 징조가 결정적인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르톡의 체내에서는 적혈구의 파괴가 서서히 진행되어,
병의 증세는 혈액 암인 불치의 백혈병으로 진단이 나왔다.

제2악장은 그해 여름, 캐나다 국경에서 가까운
뉴욕 주 북부의 시라나크 호반에서 작곡되엇다.
그러나 혈구수의 감소로 위험 상태가 가까와지자
9월에는 뉴욕으로 돌아와 협소한 아파트의 한 방에서
누운 채 제3악장을 계속 작곡 하였다.

아내 디타 파스트리와 당시 해군 지원병이었던
아들 피엘이 머리맡에서 일을 도왔다 ,
그러나 일이 진전됨에 따라 그의 생명력도 급속히 떨어져
마침내 1945년 9월 26일 새벽에 제 3악장의
17마디를 남겨 놓은채 세상을 떠났다.
 
 
Bartok with his second wife Ditta Pasztory

클라우스 리핑스키의 리뷰(2001. 2. 16)
바르톡 콘체르토는 오케스트라 때문에 게자 안다/프리차이
또는 콕시스/피셔에 비견될 수 없다.
그 당시 쥐드베스트풍크 오케스트라는 3류 오케스트라나
다름 아니었다. 지휘자인 로 스바우트부터 길렌까지의
좋은 시기는 뒤늦게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파티가 첫 테마의 프레이징하는 것에
콘티누이테트(Continuity)를 주고, 오케스트라의 모티브를 지닌
피아노 파트의 밀접한 연결고리 덕택에
오늘날도 여전히 이 연주는 특별하다.

특히나 라벨 (Ravel)-화음을 지닌 2악장에서 빼어나다.
바렌보임/불레즈의 해석의 경우엔 이러한 연결미가 부족하다.
마지막 악장 중심에 푸가를 배치했다.
이 부분을 그는 악장의 나머지 부분과 분명하게 구분했다.

리파티가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루고 관악기를 잘 받쳐준 것은
특히 그가 대단히 뛰어난 비르투오조라는 것을 입증하는 한 예이다.
오늘날 볼로도스와 그 밖의 어떤 다른 연주가도
이처럼 즐거운 쇼를 보여주지 못한다.
<웹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