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7번 B♭장조 K.595
작곡 : 1791년 1월 5일(완성) ㅣ 출판 : 1791년. 초판 빈 알타리아사
편성 : 피아노. 플루트, 오보에2, 바순2, 호른2, 바이올린2부, 비올라,베이스
초연 : 1791년 3월 4일. 궁정 요리사 이그나츠 얀의 저택. 클라리넷 연주자 요제프 베어의 음악회. 모차르트의 피아노
1791년 12월 5일 모차르트는 길지 않은 삶을 마감하지만,이 해 초 1월 5일 그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이 된 이 [B♭장조 K.595]를 완성한다. 1788년 2월 24일 이미 빈의 청중들로부터 외면당하게된 모차르트가 그 전해 프라하에서의 대성공과 '황실 궁정 실내 작곡가'라는 칭호를 받게 된것을 계기로, 빈에서의 인기를 되찾으려고 썻던 소위 [대관식 협주곡,K.537] 이후 3년만의 피아노 협주곡 창작이었다. 이 27번 제1악장의 첫 부분이 씌여진 오선지가, 모차르트가 1788년경에 자주 사용했던 것이라는 사실에서 이 곡도 대관식,K.537과 같은 시기에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어쨋든 이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에서도 '대관식'과 마찬가지로 당분간 음악회를 열 수가 없어서 더욱 어려워진 경제적 상황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1790년 10월 레오폴드 2세의 대관식이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거행되어 궁정악단원이 그 곳으로 가게 되지만 모차르트는 그 멤버에 속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귀족들을 상대로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프랑크푸르트로 떠난다. 모차르트는 10월 15일 시립국장에서 음악회를 열고, 소위 '대관식 협주곡'외에 교향곡이나 아리아 등도 연주한다. 댜행히도 음악회는 성공했지만 수입은 예상외로 적었다. 프랑크푸르트를 떠난 모차르트는 도중에 들린 마인츠에서도 선제후 궁정에서 연주했으나 여기서도 수입은 조금밖에 얻지 못하면서 결국 궁지에서 벗어나려 했던 여행이 거꾸로 건강 샹태를 악화시키며 경제 상태도 한층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된다. 그러나 음악회의 성공이 피아노 협주곡의 창작을 다시 촉진하였든, 혹은 여행에서 기대한 수입을 올리지 못했든, 이 여행중에 모차르트는 다시 예약 연주회를 열 결심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미 몇 차례나 실패했슴에도 이같은 계획을 한 것으로 보아 궁지에 빠진 경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약 음악회를 여는 길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월 5일 완성된 이 협주곡은, 2개월 후인 3월 4일에 궁정 요리사 이그나츠 얀의 집에서 열린 클라리넷 연주자 요재프 베어의 음악회에서 모차르트 자신에 의해 초연 되었다. 이 음악회는 또한 모차르트가 연주가로서 섰던 마지막 무대가 되고 만다. 이 협주곡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자주 지적되는 것처럼 모차르트 음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물흐르는듯이 유연하게 흘러가며, 더할 나위 없이 맑고 투명한 음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때때로 나타나는 단조 부분은 장조와의 격렬한 대조를 낳지만, 곧 다시 장조의 밝고 깨끗한 분위기 속으로 흠수되며 맑고 투명하게 이어진다. '대관식 협주곡'에서는 조심스럽게 처리되었던 관악기가 다시 효과적으로 사용되며 그 아름다운 색채는 이 곡의 맑은 분위기와 음을 한층 빛나는 것으로 만든다. 또한 관현악과 독주 피안노는 극히 자연스럽게 융화한다. 그리고 이 곡은 모차르트의 죽음이 몇 년만 더 있다가 찾아왔다면 아마도 피아노 협주곡 장르에 새로운 길을 열었을 것으로 언급되는 것처럼, 그때까지 없었던 신선한 울림을 지닌 작품으로 자리하고 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0번 d단조 K.466
작곡 : 1786년 2월 10일(완성) ㅣ 출판 : 1796년
편성 : 피아노. 플루트, 오보에2, 바순2, 호른2, 트럼펫2, 팀파니, 바이올린2부,비올라,베이스
초연 : 1786년 2월 11일, 빈 시립집회소(추어 멜그루베)의 예약연주회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모차르트의 약 30곡에 달하는 피아노 협주곡(다른 사람의 독주 피아노 소나타를 편곡한 작품 포함)가운데 특히 1783년 이후 빈에서의 예약 연주회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쓴 작품은, 이 쟝르의 고전적 완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1785년의 3곡, K.466,467,482도 오늘날 매우 자주 연주되는, 명곡이지만 대작 [피가로의 결혼]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모차르트의 창작력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와 합치될 뿐만아니라 그 전해부터 2년 이상 한곡도 쓰지 않았던 교향곡에 대한 모차르트의 의욕이 분출되어 바로 여기에서 발휘되고 있다.
1785년 2월 11일 빈 시립 집회소(추어 멜그루베)에서의 예약 연주회를 위해 작곡되고 초연된 이 K.466 은 최초의 단조 협주곡일 뿐만아니라 특별히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점을 지니고 있다. 저음역을 사용하고 어둡고 슬픈 그림자가 드리워질 뿐만 아니라, 제2악장 로망스에서의 따스한 주부와 g단조의 어지러운 듯 빠른 중간부가 강렬하게 대조를 이루고, 격렬한 상승 음형의 피날레 론도 주제가 나타나는 등, 지금까지의 작품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며 더 나아가 베토벤을 예견케 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곡은 모차르트의 협주곡 중에서는 낭만파 작곡가들에게 가장 공감을 얻었으며, 베토벤이나 브람스도 즐겨 연주하여 이 곡을 위한 카덴자도 남기고 있을 정도이다.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의 모차르트가 쓴 카덴자는 현재 남아있지 않다.) (참고로 이 피레스의 연주의 카덴자도 베토벤의 것이다)
초연이 이루어진 2월 11일에는 마침 아버지 레오폴드가 빈에 도착하여 아들의 음악회 가운데서 가장 빛나게 된 이날 연주회를 직접 볼 수 있었다. [... 음악회는 더할 나위없이 훌륭하고 오케스트라도 뛰어났다.... 드디어 볼프강의 훌륭한 신작 클라비어 협주곡이 이어졌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사보하는 사람이 아직 일을 끝내지 않았으므로 네 동생은 론도를 한 법도 연주해 볼 시간이 없었다. 필사 악보를 고쳐야 했기 때문이다. ... 네 동생이 무대를 떠날 때, 황제는 모자를 손에 들고 인사하며 '브라보, 모차르트'라고 소리쳤다. ...]라고 레오폴드는 난 네를에게 보낸 2월 16일자 편지에 기쁜에 넘쳐서 들뜬 마음으로 전하고 있다. 아울러 요제프 하이든이 [나는 성실한 인간으로서 맹세코 말하지만 당신의 아들은 내가 개인적으로, 혹은 이름만이라도 아는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입니다.]라고 했던 유명한 말은, 이 연주회 다음날 모차르트의 집에서 레오폴드에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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