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현악 사중주

현악 4중주 21번 K. 575 '프러시안 1번' - 이탈리아 사중주단

로만짜 2014. 1. 27. 01:00

 

   

    

 

    

 

 

 

  

 

W.A. Mozart (1756~19791)
String Quartet No. 21
in D major, K. 575 'Prussian No.1'
 

 

  1. Allegretto (7'24")

 

  2. Andante (4'49")

 

  3. Menuetto (Allegro) (6'06")

 

  4. Allegretto (6'16")

 
 
   
1 ~ 4 순으로 연속듣기  
  
 
Quartetto Italiano
Mozart Complete Works Edition, 2005
 
 

 

1789년 5월 모짜르트는 프러시아의 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베를린 궁전을 방문했다.
그는 왕의 실내악 연주자들과 함께 현악 4중주를 연주했는데,
소문에 의하면 왕은 "이 곳에서 이러한 현악 4중주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은 모짜르트에게 궁전에서 지위를 제안했지만
비엔나의 황제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그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베를린을 떠나며 왕을 위한
6개로 구성된 현악 4중주 세트와 함께
프리데리케 여왕을 위한 6개으의 피아노 소나타를 위촉받았다.

그가 흔히 사용하지 않던 필사본 종이를 사용했다는 사실로 인해
언제쯤 이 사중주들을 작곡하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지만,
모짜르트는 어린 시절에 작곡하다 중지한 몇몇 단편들을 복원하여 사용했다고 생각된다.
분명한 사실은 모짜르트가 D장조 현악 4중주(K.575)에 1789년 6월이라는
날짜를 적어 자신의 작품 목록에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모짜르트가 6개로 계획했던 현악 4중주의 두 번째 곡을 쓸 무렵
오페라 '코지 판 투테'의 의뢰가 들어오는 바람에
작업 스케줄이 겹쳐버리게 되었다. 6개로 계획했던 피아노 소나타 역시
단 한 작품만이 작곡되어 있었고, 현악 4중주도
1790년 6월 5일에 완성한 K.589와 K.590만을 더 작곡한 상태였다.

이 시기에 모짜르트의 고질적인 재정적 어려움은 최악의 상태에 빠졌는데
병에 걸린 아내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1790년 5월경 모짜르트는 그의 프리메이슨 동지인 미하엘 푸흐베르크에게 자주
편지를 보내 자신의 집에서 현악 4중주를 들려주고자 한다며 초대를 했다.

다음 달 편지에서는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쥐기 위해 하찮은 보수의
이 4중주들(이 공 들인 작품들)을 포기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모짜르트가 빈의 아르타리아 출판사에
이 현악 4중주를 팔아버린 이유로 받아들여졌고
실제로 작곡가가 사망하기 몇 주 전인 1791년 말경에 이 작품들은 출판되었다.

 

모짜르트가 이 '프러시아 4중주’들을 '공 둘인 작품'이라고
언급한 것으로부터 위촉과 둘러싼 특별한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직접 첼로를 연주할 수 있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장-피에르 뒤포르와 같은 유럽에서 제일가는 첼리스트를 고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짜르트는 일반적으로 반주의 기능을 담당하는 첼로에
앙상블 밸런스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특별함을 부여해야만 했다.
모짜르트는 이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했는데,
제1바이올리니스트(음향에서 상성부를 담당하기 위해서)와
첼리스트(왕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서)를 다른 두 연주자들보다
조금 더 두각을 보이게 한 것이다.

‘프러시아 4중주’의 첫 번째 곡인 D장조 K.575는 모짜르트가
빈으로 온 후 즉시 쓰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 곡이 적힌 오선지가 보헤미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에서
베를린에서 돌아오는 도중 드레스덴이나 프라하에서
쓰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1악장과 2악장의 주제는
20년 전쯤에 모짜르트가 처음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을 때 쓴 것으로
급하게 작곡하느라 그것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돼 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추정을 부정하며, 이 시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푸흐베르크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모짜르트는
이 곡을 자신의 자비로 출판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곡으로 그는 100프리드리히스돌(프로이센 금화)이 든 단지를 받았다고 한다.

왕의 위촉에 대한 첫 번째 응답으로 모차르트는 D장조를 선택했다.
처음 등장하는 주제는 소토 보체(sotto voce, '소리를 낮추어, 작은 소리로'라는 뜻)임에도
불구하고 상승 3화음을 예견하는 팡파르처럼 등장한다.

첼로는 처음에는 침묵하다가 주제를 재현하는 비올라를 반주하기 위해
일련의 대범한 D코드만을 연주하다가 결국
상성부로 편입되며 멜로디를 이끌어나간다.
또한 부주제에서는 상당 부분을 담당하기도 하고
또 다른 상승 3화음이 등장하면서는 전개부의 대부분을 연주한다.

A장조 안단테에서 첼로는 중간 멜로디 부분을 전면적으로 이끌며
시작부의 반복과 코다를 주도한다. 미뉴에트 악장은
업비트 형태의 네 개의 16분음표를 처음부터 집중적으로 사용하며
옥타브의 급작스러운 분출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트리오는 첼로의 선율적인 프레이즈를 인도하는
보조 역할로서 바이올린으로 시작한다.
마지막 알레그레토 악장에서 첼로에 의해 유도되는 주제는
상승 3화음으로 시작되는데, 이러한 모습은 이 창의적인 악장을
 강조하는 많은 발전부 에피소드들에서 주도적으로 나타난다.
<웹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