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만년의 소품세계 '고뇌의 자장가'
오늘 포스팅하는 5곡의 '인테르메쵸'는 브람스 만년에 작곡된 20개의 피아노 소품들중의 한 곡들로 루빈스타인의 이 앨범에서는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와 함께 이 소품들에서 '인테르메쵸' 부분만 선곡된 음반이다. 이 20곡의 피아노 소품들은 브람스가 자신의 '고뇌의 자장가'로 표현했던 작품들이다. 바트 이슐에서의 생활 속에서 일어났던 감정이나 영감을 브람스가 가장 자신있는 피아노로 표현한 것으로 브람스 만년의 음악적 수상(隨想)이다. 1892년. [7개의 환상곡 Op.116]부터 시작되어 [3개의 인테르메초 Op.117], 1893년. [6개의 소품, Op.118]과 [4개의 소품, Op.119]까지의 작품들이다.
바트 이슐(Bad Ischl)의 브람스 집
브람스는 1889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896년까지, 매년 여름을 빈 서쪽 200km 정도 떨어진 광천이 있는 휴양지 바트 이슐에서 보내며 창작에 몰두했다. 만년의 브람스는 자신의 창작력이 급격하게 쇠퇴한 것을 느끼며, '영감이 모자랄 때는 단 한 마디도 작곡하지 않는다.'라는 자신의 평소의 주장대로 대곡의 창작을 그만두고 그가 다루었던 곡들의 정리나 즉흥적인 소품 작곡등을 하면서 여생을 평화롭게 보내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 사망해도 문제가 없도록, 유산의 분배나 남긴 초고의 정리등을 적은 유서가 작성하였다.(1891년 5월부터 8월).
1892년 1월에 *엘리자베트 폰 헤르초겐베르크(하단참조)*가 사망하였고, 브람스는 그것을 추도하기 위한 교향칸타타를 작곡하려고 했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6월에는 누이를 잃게 되었다. 이런 어둡고 침체된 기분이 몇 개의 피아노 수품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함께 하며 브람스에게는 창작력이 되살아 나며 이 주옥같은 피아노 소품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와함께 브람스는 클라리넷 주자인 뮐펠트(Richard Muhlfeld,1856~1907)를 알게 되며, 또 하나의 브람스 만년의 주옥 같은 명곡인 클라리넷을 사용한 [클라리넷 3중주곡, Op.l4], [클라리넷 5중주곡, Op.115]와 두개의 [클라리넷 소나타, Op120]등, 4개의 실내악곡을 쓰게 된다. 브람스는 이 피아노 소품들을 자신의 '고뇌의 자장가'라고 부른 적이 있는데 낙심한 감정이나 고독감을 여기에 집어 넣은 것이며, 브람스가 만년을 거치며 일어났던 감정이나 영감, 회상을 적은 브람스 만년의 음악적 수상(隨想)이다.
개인적으로 브람스의 음악에서 즐기는 곡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비교적 브람스는 작곡에 있어 그의 완벽성때문일까?, 많은 수정을 거치며 완성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로인해 브람스 음악에서는 신선한 투명성이 결여되며 뭔가 부자연스런 갑갑함을 느끼게 되는 면이 있다. 여기에 후기 낭만파음악의 일부에서 느끼게 되는 음악에 어떤 스토리를 삽입시키려는 경향으로 발생되는 인위적인 부자연스러움이 더해져 갑갑함이 더 해지는 곡들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의 극단적인 비교를 하자면, 다른 예술의 쟝르와 다르게 시간과 공간이 기묘하게 배분되며 창조되능 음악... 음악자체에 충실한 '모차르트의 물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일것이다.
하지만 브람스 만년의 이 피아노 소품들과 실내악들은 수채화 같이 맑은 담백함과 투명감이 느껴진다. 이 투명성이란 이 작품들이 주는 어두운 면... 음과 양, 밝음이나 어두운 정서와는 또 다른 투명성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나이들면 모든것을 내려놓고 비운다고 하는데 이 브람스 만년의 일련의 이 곡들에서는, 작곡가로서의 브람스가 열정적으로 바쳤던 지난 시절을 뒤로 하며 노년의 원숙한 마음과 정서로,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후회없이 끌어 안는듯이 담백한 필치의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이글거린던 여름의 태양이 지고, 가을이 다가서며 비까지 내리는 가을 밤, 지난 세월의 회상에 잠기며,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과 포근한 정감을 새삼 느끼게 되는 아름다운 곡들이다.
** 엘리자베트 폰 헤르초겐베르크(Elisabeth von Herzogenberg) - 엘리자베트는 음악에 뛰어난 감각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으로, 오래전부터 브람스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브람스는 그녀의 뛰어난 재능과 미모때문에 그녀에게 끌릴것을 두려워하여 친구의 제자로 두었다. 이 후 그녀는 라이프치히 바흐협회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하인리히 폰 헤르초겐베르크와 결혼하였다. 브람스는 우정관계를 유지하며 편지를 주고 받고 신작에 대한 비평도 받았다. 클라라와 함께 브람스에게는 둘도 없는 여성이었다. 브람스가 라이프치히를 방문할때마다 부부의 집에 머물렀으며 바이올린 협주곡 Op.77의 초연때에도 부부의 신세를 졌다. 브람스의 친구이자 이해자이며, 브람스 작품의 진심어린 충고자이기도 했다. [2개의 랩소디, Op.79]는 그녀에게 헌정 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