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법학(平法學)
백제시대에 박사 왕인(王仁)이 왜국에 <논어>, <천자문>과 함께 <평법학>(平法學)을 전했는데, 이 <평법학>에 의해 무술과 함께 인술이 전해졌다는 기록이 일본의 고서 <니혼쇼기>(日本書記)에 남아 있습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도인술'(導引術), ‘정복술'(整復術), ‘이소가이 역학요법' 등의 이름으로 각종 도관(道館)에서 의술이 행해지고 있는데, 여기에 우리 전래인술(仁術)의 일부가 남아 있습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도 <도인술>, <이소가이 역학요법> 등의 책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 남아 있는 인술(仁術)은 고관절과 엉치, 허리 등 우리 몸의 중심의 문제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카이로프락틱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고관절의 문제를 일부 이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바로잡는 방법이 어설플 뿐만 아니라 몸을 전체로서 하나로 보지 못하고 복잡하게 유형화시켰기 때문에 크게 효과가 있는 운동법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습니다.
몸살림운동의 내력
이 인술은 아직 그 연원이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대개 두 가지 경로를 통해서 현재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습니습니다. 한 경로는 오대산(五臺山) 상원사(上院寺)가 창건된(724년, 통일신라 성덕왕 23년) 이후 어느 시점부터 이 절의 스님들에게 면면히 전승돼 온 것이 아닌가 여겨지고 있습니습니다.
조선조의 세조(世祖, 재위 1455~1468)가 온몸에 퍼진 종기를 제거하기 위해 전국에 효험이 있다는 곳은 다 찾아서 돌아다녔지만 낫지 못하다가, 결국은 상원사에 가서 불력(佛力)을 빌어 나았다(재위 3년째)는 것은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로 너무나 유명합니습니다. 이는 세조가 냇물에서 목욕하고 있는 중에 문수 동자보살이 나타나 등을 닦아 주고 나니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다는 전설로도 전해지고 있는데, 실제로 몸살림운동에서도 큰 피부병은 흉추를 바로잡아 내분비와 면역계통으로 가는 신경을 터 주면 낫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습니다. 세조의 둘째딸 의숙(懿淑) 공주 부부가 세조 12(1466)년에 이를 기리기 위해 상원사에 기증한 상원사목조문수동자좌상(上院寺木彫文殊童子坐象)은 1984년에 국보 제221호로 지정되기도 했습니습니다.
또 하나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 동남쪽 자락에 무산(茂山)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도 이 인술이 전승돼 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습니다. 이 무산에 무산신궁(茂山神宮)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는데, 일반 사람들에게는 도를 닦는 사람들이 사는 신비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고 합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그곳을 스스로 인촌(仁村)이라 불렀는데, 이는 인술을 펴는 사람, 즉 의자(醫者)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었다고 합니습니다.
무애 스님의 스승인 최천리 선생께서는 이곳을 거점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인술을 베푸셨습니습니다. 한반도에는 백두대간이 있어 우리 몸으로 치면 척추를 형성하고 있는데, 백두산에서 시작돼 마천령산맥을 거쳐 함경산맥, 태백산맥,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백산맥의 지리산에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 백두대간을 타고 수천 년 전부터 선맥(仙脈)이 형성돼 있었는데, 조선시대 중후기에 이르면 대개 오대산을 분기점으로 해서 북맥(北脈: 白頭脈, 七寶脈 金剛脈 등)과 남맥(南脈: 智異脈, 俗離脈 등)이 형성돼 서로 교류를 하기도 했지만 각기 뚜렷한 특징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인술과 관련해서 얘기하자면 북맥은 뼈대를 바로잡는 것을 위주로 했고 남맥은 주로 기도를 통해서 낫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식사에 관해 얘기하면 북맥은 소식(小食)을 위주로 했고, 남맥은 일반인들과 똑같이 먹었다고 했습니다. 오대산맥은 백두대간의 중간 지점에 있어서 양 맥의 특징이 함께 섞여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오대산에 자리하고 있는 상원사는 남과 북을 오가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들르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천리 선생과 무애 스님이 만나 오늘날 몸살림운동의 기원이 이루어졌다는 것도 우연은 아닌 듯싶습니다.
천리 선생은 성은 최(崔)씨이지만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은데, 하루에 천리를 왔다 갔다 하실 정도로 신출귀몰하다고 해서 별명이 천리(千里)였다고 했습니다.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신동(神童)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두뇌가 명석했는데, 두 분의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한 분으로부터는 골상법(骨相法), 즉 뼈를 교정하고 신경을 트이게 함으로써 사람의 병을 잡는 법을 배웠고, 한 분으로부터는 하지수(下地數), 즉 땅에서 생장하는 생물의 원리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천리 선생은 경상남도 서남 지역에 장티푸스가 창궐할 때 한 마을 사람 수십 명을 교정해 주고는 진흙으로 자은 집에 함께 기거하게 함으로써 모두 살려내셨다고 했습니다. 또한 천리 선생은 침술(鍼術)도 아주 뛰어나 다 죽아 가는 아이를 끝이 마름모꼴로 돼 있는 삼릉침(三稜鍼) 한 방으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선생은 전국을 돌며 인술을 베푸셨는데, 인연이 닿는다고 생각되면 도와주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면 피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방법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풀어 보았자 봉변만 당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 그 당시 사람들에게도 몸살림운동의 방법은 낯선 것으로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무애(無愛) 스님은 집안 살림이 어려워 어렸을 적에 오대산(五臺山) 상원사(上院寺)에 동자승으로 맡겨졌는데, 이곳에서 젊었을 때 최천리 선생과 인연이 닿아 30년을 따라 다니면서 인술을 배우셨습니다. 이후 다시 상원사로 돌아와 계시다가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일으킨 불교 법난 때 하산하셔 이 상원사 아래에 있는 평창군 진부면의 한 산자락에 움집을 짓고 기거하시면서 주변의 마을 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푸셨습니다. 스님은 모름지기 중은 대중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대중을 위로 보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스님께서는 당신의 삶은 없고 오로지 가난한 중생들에게만 마음을 쓰시면서 사셨습니다. 인술 역시 무릎을 꿇고 아픈 사람의 마음이 돼서 펼치라고 하셨고 스님 스스로가 그렇게 하셨습니다.
1974년 가을 우연한 기회에 무영(無影) 김철 선생은 무애 스님을 찾아뵙고 4년 동안 함께 기거하면서 스님의 인술을 전수받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세상에 신비하거나 신기한 것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직 별로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누군가가 나쁜 짓을 하기 위해 그렇게 보이도록 속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스님께서 가르치실 때에는 철저하게 자기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경험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생명체로서 자연에서 나온 존재이므로 자연으로 돌아가서 사는 것이 가장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지금의 몸살림운동에서도 이러한 스님의 철학과 방법론을 좇아 신비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직접 느끼는 공부를 하고 있으며, 이미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생명체의 자연치유력을 극대화시킴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몸살림운동을 국민운동으로
무영 선생께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무애 스님께 배운 이 인술로 사람들이 몸 편하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으로 스님의 뜻을 받드는 일이라 생각하고 인술을 펴는 데 전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 인술을 선생 혼자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익히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데 훨씬 더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게 됐습니다.
그 결과 2000년에 ‘활선’(活禪)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이 인술을 보급하는 운동을 펴시게 됐습니다. 특히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빠른 시간 내에 이 인술을 배우고 익히게 하려면 국민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이 인술에 숙달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했습니다.
2004년 6월에 스스로 인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돼서 광화문에 수련장을 냈는데, 이들의 요청에 따라 이들에게 인술을 가르치시게 됐습니다. 이 해 9월에는 뜻을 같이하는 제자들과 함께 단체의 이름을 ‘몸살림운동'으로 개칭했는데, 무영 선생은 이 단체의 상임지도위원으로서 이 운동을 가르치는 데 심혈을 기울이시고 있습니다.
2005년 2월에 무영 선생께서는 <몸의 혁명>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사람들이 몸살림운동의 철학과 방법론을 쉽게 이해하고 스스로 운동함으로써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또 몸살림운동 본부에서는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한국어를 알기만 하면 지구촌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라도 무영 선생이 제시하시는 방법을 배우고 익힐 수 있게 했습니다. 2006년 4월에는 1년 동안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 몸은 스스로 낫는다>를 보충하고 확장하여 상, 하 두 권의 책으로 엮어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자연적으로 타고난 인간의 능력을 죽이고 약(藥)과 수술(手術)이라는 인공에 의존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을 퇴화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의학의 폐해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 내기 위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