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을 곳은 비어 있어야 한다
공명(空明)이라는 소리를 들어 본 사람은 몸살림운동을 하는 사람을 빼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이나 자기공명장치(磁氣共鳴裝置)라고 할 때 공명이라는 말이 쓰이는 것은 보았어도, 빌 공(空)자에 밝을 명(明)자를 쓰는 공명은 누구나 처음 접하는 용어일 것이다. 국어사전이나 그 어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밝게 비어 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단전(下丹田)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기공을 하시는 분들은 하단전으로 호흡을 한다고 한다. 몸살림운동에서 말하는 공명의 위치는 이 하단전과 똑같다. 그렇다고 같은 의미로 쓰는 것은 전혀 아니다. 몸살림운동에서는 공명이라는 말을 하단전과 같이 추상적인 의미로 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몸에 존재하는 '기관'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보고 있다. 다만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으니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서양화에는 여백이라는 것이 없다. 화지 가득 색깔이 들어차 있어야 제대로 그린 그림이 된다. 그러나 동양화에는 반드시 여백이 있는데, 여백이 있음으로써 느끼는 아름다움을 일러 '여백의 미'라고 한다. 동양화에 여백이 없다면 그림은 답답하기 짝이 없게 될 것이다. 동서양의 그림에 이런 차이가 나는 데는 세상을 보는 눈, 즉 철학의 차이가 놓여 있다.
세상을 유(有), 즉 존재로 가득 차 있다고 보는 서양인의 입장에서는 비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신을 증명하는 서양식의 삼단논법을 빌어서 얘기하자면 이렇게 될 것이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비어 있는 부분이 있었다면 이는 실수한 것이다. 하느님은 완벽한 존재이므로 실수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로 비어 있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하느님이 만든 세상이 꽉 차 있으니 그림도 꽉 차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근대 철학의 산실인 독일과 영국의 기후와 지형이 한몫 했을지도 모른다. 대서양성 기후인 이들 나라에서는 여름 몇 달을 제외하고는 거의 항상 우중충하게 구름이 끼어 있고 비도 많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내린다. 맑은 하늘이었다가 10분도 채 안 돼서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내린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10분도 안 돼서 다시 갠다. 또 비가 내리고 또 개고 한다. 그래서 영국 신사들은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음산한 날씨인 것이다.
땅은 유년기 지형이라 우리나라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산은 없고, 그냥 넓은 평원에 어쩌다가 구릉지가 나타날 뿐이다. 한국 사람들이 볼 때에는 산도 아닌데, 이들 나라의 사람들은 산이라고 한다. 음산한 날씨에 시선을 둘 만한 적당히 높은 곳은 없다. 하늘을 보아야 먹구름이 가득 낀 우중충한 모습뿐이다. 그러니 고개를 떨어뜨리고 땅을 쳐다본다. 땅에는 원래 빈 공간이 없다. 꽉 차 있다. 이런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꽉 차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면 한국인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보면 하늘은 쪽빛으로 텅 비어 끝을 알 수 없게 전개된다. 적당하게 고개를 들고 시선을 두면 앞에 산이 있고 나무가 있다. 그 외의 공간은 다 비어 있다. 그 비어 있음에서 시선의 트임을 느낀다. 시선이 트였을 때 마음의 한가로움을 느끼는 한국인의 눈으로 볼 때 꽉 차 있다는 것은 답답함이고 스트레스일 뿐이다. 장마철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습기 때문에 구질구질한 것도 있겠지만, 먹구름이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비어 있어야 시선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탁 트이게 한다. 세상은 적당히 차 있고 적당히 비어 있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서양에서는 인공(人工)을 좋아했고, 동양에서는 자연(自然)을 좋아했다. 덕분에 서양에서는 과학기술 문명을 꽃피웠고, 이에 뒤진 동양은 서양의 힘에 밀려 뼈아픈 식민지 시대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우월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이런 문화도 있는 것이고 저런 문화도 있는 것이다. 모든 문화에는 일장(一長)이 있으면 일단(一短)도 있는 것이고, 일단이 있으면 일장도 있는 법이다.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보는 것은 자민족, 나아가서는 자기 인종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비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인류 문명의 방향에 대해서도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앞으로 인류 문명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취해 나가야 한다.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난 자연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 가장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는 이제 정신 차리고 그런 조건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 놓은 인공의 문명을 모두 거부하거나 다 때려 부수고 원시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자고 해도 그 실현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 엄청난 힘을 가진 문명을 이용해서 이 지구의 환경을 자연상태로 되돌려 놓고 사람들이 그러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방안일 것이다.
어쨌든 공명은 비어 있는 것이다. 비어 있는 여백의 미로 해서 동양화가 확 살아나듯이 우리 몸에서도 비어 있는 부분, 바로 공명이 있음으로 해서 기운을 차리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비어 있어야 할 부분이 비어 있지 않고 차 있으면 사람은 기운을 못 차리고 쉬 피로함을 느낀다. 보통 늘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람은 공명이 막혀 있는 것인데, 이것이 아주 심해져 화병으로 진전되면 몸이 너무 아파 세상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싫어진다.
현대의학에서는 공명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대부분의 배 해부도에서 이 비어 있는 부분이 전혀 표시가 되지 않는다. 필자는 이를 공명이 막혀 있는 사람의 배를 그려 놓은 것으로 이해를 한다. 간혹 방광의 위, 충수의 좌측 옆에 빈 공간이 있는 해부도도 있는데, 이는 공명이 트여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그려 놓았다고 해도 이 빈 공간이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이 아름다운 여백의 미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명은 횡격막이 좌와 우로 겹치면서 그 틈새에 럭비공 모양의 공간이 생긴 것인데, 이를 실제로 알아보려면 하단전이라고 부르는 위치를 눌러 보면 된다. 정자세로 누워서 배꼽에서 밑으로 손가락을 횡으로 세 개 정도 포갠 위치를 손가락을 모아 눌러 보면,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손가락이 부드럽게 말려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서 아픈 사람도 있을 것이며 그냥 아무런 느낌도 없이 쑥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이곳이 바로 공명이라는 아무 것도 없는 기관이 위치한 곳이다.
이 중에서 부드럽게 말려들어가는 경우는 공명이 틔어 있는 것이고, 나머지 두 경우는 공명인 막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명은 완전히 막히거나 완전히 틔어 있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막혀 있고 조금은 틔어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딱히 이 세 가지만으로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완전히 틔어 있는 것이 가장 좋고, 완전히 막혀 있는 것이 가장 나쁘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면 된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에도 산소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태반 안의 아기는 폐로 호흡하지 않고 탯줄을 통해 공급받은 산소를 작은 공기 주머니 안에 담아 놓고 쓴다. 이 공기 주머니가 바로 공명인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나와 첫울음을 터뜨리면서 아기는 처음으로 폐호흡을 하게 된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탁 치면 폐에서 양수가 빠져 나오면서 아기는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첫울음을 터뜨리면서 처음으로 폐로 호흡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공명은 어른이 되어도 크게 자라지는 않아 주먹 반 정도의 크기를 갖는다. 좌와 우에서 오는 횡격막이 겹치는 부위에 있으므로 생김새는 납작한 럭비공처럼 생겼다.
이렇게 작게 비어 있는 곳이지만, 이 공명이 인간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서 하는 역할은 너무나 커서 몸살림운동에서는 공명을 인체의 3대 근본기관 중의 하나라고 부른다. 인체의 나머지 2대 근본기관은 척추와 오장육부이다. 척추는 인체의 기둥이므로 기둥이 똑바로 서 있어야 건강한 것이고, 오장육부는 뱃속에 함께 모여 있으므로 서로 누르거나 눌리지 말고 원래 있어야 할 제 자리에 원래의 모양대로 있어야 건강한 것이다. 또한 공명이 틔어 있어야 사람은 기운을 차리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면 공명은 어떨 때 막히고 또 어떨 때 트이는가? 몸이 심하게 굽었을 때 꽉 막히고, 몸이 펴지면 뚫린다. 몸의 원리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너무나 단순한 것이다. 독자들께서 한번 자기 몸을 가지고 실험을 해 보면 이 또한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누차 강조하는 것이지만, 몸에 대한 지식은 머리로 외워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런 지식은 몸에 탈이 나면 약 먹고 수술하라고 하는 잘못된 지식일 뿐이다. 몸에 관한 지식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느낌으로써만 가능하다.
몸을 앞으로 심하게 굽혀 보자. 그러면 허리는 뒤로 굽고 가슴은 움츠러들며 고개는 숙여질 것이다. 이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배와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은 가슴 위에서만 달싹거리며 급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번에는 반대로 몸을 쭉 펴 보자. 그러면 허리는 세워지고 가슴은 펴지고 고개는 들릴 것이다. 이때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속이 시원해지고 호흡은 배꼽 밑까지 쭉 내려가며 깊고 느긋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이 공명이 막히고 트이는 원리이다. 몸이 앞으로 굽으면 오장육부가 가슴과 배와 골반에서 각자가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야 할 공간이 좁아지고, 그러면 서로 누르고 눌리거나 밑으로 처지게 된다. 그러면 공명이 차지하고 있는 빈 공간은 줄어든다. 공명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몸이 심하게 굽으면 공명이 차지해야 할 공간은 아예 없어진다. 공명이 꽉 막히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학에서는 전혀 관심도 두지 않고 있는 현상이지만, 오장육부가 처지고 서로 누르고 눌리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속이 답답해질 뿐만 아니라 호흡도 얕아진다.
호흡에는 복식호흡과 흉식호흡이 있다?
서양의 인체학은 현상을 나열하는 데 그치고 있다. 왜 그렇게 되는지 원인은 모르고 이러저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평면적으로 서술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현대의학은 이러한 서양의 현상 나열적인 인체학에 기초해서 사람의 병을 본다. 그래서 현대의학은 원인을 모르고 현상에만 빠져 헤매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호흡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서양의 인체학은 인간에게 너무도 중요한 호흡에 대해서도 현상을 나열하는 데 머물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호흡에는 복식호흡과 흉식호흡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복식호흡을 하는 사람도 있고 흉식호흡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면 아무런 의미도 없이 현상을 나열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왜 이렇게 다른 호흡을 하게 되는지 원인을 밝히고, 그리고 어떻게 호흡하는 게 좋은 것인지 해법을 내놓아야 '과학'이라는 이름에 값하게 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알면 말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서는 현상을 서술하는 데에도 왜 그렇게 되는지 원인을 모르고 있으니 잘못된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자와 어린아이는 흉식호흡을 하고, 성인 남자는 복식호흡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여자들 중에 흉식호흡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자들의 일반적인 호흡이 흉식호흡인 것은 아니다. 더구나 어린아이는 거의 흉식호흡을 하지 않는다. 자고 있는 갓난아이를 보라. 모두 배가 위로 볼록 올라왔다 아래로 쑥 내려갔다 하는데, 이것이 흉식호흡인가. 아마 보행기를 많이 타고 다녀서 몸이 많이 구부러져 있는 서양 아이들을 관찰해 보니 흉식호흡이 많다는 결과를 얻었을지는 모르겠다. 남자들 중에는 흉식호흡을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이렇게 되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복식호흡은 몸이 펴져서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좋은 호흡이고, 흉식호흡은 몸이 굽어서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나쁜 호흡이다. 호흡에는 복식호흡과 흉식호흡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복식호흡과 비정상적인 흉식호흡이 있는 것이다. 복식호흡은 공명이 트여 있어 아랫배까지 쭉 내려오는 아주 좋은 호흡이고, 흉식호흡은 공명이 막혀 있어 가슴으로만 달싹거리는 아주 나쁜 호흡이다. 숨을 거두기 직전에 헐떡거리는 호흡이 흉식호흡 중에서도 가장 나쁜 흉식호흡이다.
필자의 경험을 예로 들어서 한번 얘기해 보겠다. 여자 분들 중에 얼굴이 핏기가 없이 허였고 몸에 기운이 쭉 빠져 있는 분이 수련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런 분은 분명히 공명이 꽉 막혀 있어 가슴으로만 달싹거리는 흉식호흡을 하고 있다. 누워 있는 상태에서 보면 호흡이 가슴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이런 분의 공명을 쳐서 틔워 드리면 금방 호흡이 달라진다. 가슴에서만 이루어지던 호흡이 아랫배까지 쑥 내려온다. 아랫배가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분은 공명을 틔우고 잠시 앉아 있으면 얼굴이 발그레하게 홍조를 띠기 시작한다. 깊은 호흡이 이루어지게 돼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되면서 기운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분은 보름 동안만 몸을 펴는 운동을 하면 원래대로 기운이 살아난다. 물론 계속 몸을 펴는 운동을 하면 세상이 달리 보일 만큼 몸의 상태가 좋아진다.
공명이 트이면 기력이 살아나는 원리도 너무나 간단하다. 흉식호흡은 몸이 구부러져 있는 상태에서 숨을 쉬는 것인데, 이는 허파가 오그라들어 있는 상태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허파가 오그라들어 있으면 허파의 꽈리가 공기와 접할 수 있는 면적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원래 허파 꽈리의 면적을 최대로 한 상태에서 숨을 쉬어야 필요로 하는 산소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것인데, 오그라들어 있는 상태에서 필요한 만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몸에 필요한 산소가 부족하게 되면 아무리 몸에 영양분이 많아도 이를 태울 수가 없게 된다. 영양분을 태워서 에너지로 쓰는 게 사람의 몸인데, 태우지를 못하게 되니까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맥이 빠지는 것이다. 조금만 일을 해도 쉽게 피로함을 느낀다.
이런 사람들은 보약을 먹게 되는데, 이 경우 보약은 아무리 많이 먹어 보아야 아무 소용도 없다. 보약은 몸에서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먹으면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공명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먹으면 쓸데없이 돈과 자원만 낭비하고 있는 셈이 된다. 보약 역시 약을 위주로 해서 사람의 건강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의 산물일 뿐이다. 기본은 몸을 펴는 것이다. 제대로 몸을 펴기만 하면 기운을 차리고 살아갈 수 있게 돼 있는 것이다.
몸이 충분히 펴져 있는 상태에서는 공명이 트이게 되고, 공명이 트이게 되면 허파가 충분히 펴져 있는 상태에서 호흡을 하게 된다. 그러면 필요한 만큼 충분히 산소를 공급받게 되므로 몸에 활력이 생긴다. 여자 분들 공명을 틔워 주면 잠시 후에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것은 허파가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호흡하게 되어 금방 산소의 공급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은 진화의 과정에서 완벽하게 만들어졌다. 직립하는 동물로서 완벽하게 만들어졌다. 신의 조화인지 자연의 섭리인지 따질 필요도 없이 직립만 제대로 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게 만들어졌다. 문제는 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차 몸을 구부리게 되어, 드디어 정보화시대에 들어서 인간은 컴퓨터로 일을 하면서 직립하기 이전의 자세로 퇴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공명이 막혀 깊은 호흡을 하지 못하고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임종 직전의 사람처럼 할딱거리는 얕은 호흡을 하게 되는 것도 몸을 구부리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은 몸이 구부러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경우 대부분 수십 년 동안 몸을 구부리고 살아왔기 때문에 몸을 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그렇게 살아와 몸이 그렇게 구조화돼 있기 때문에, 몸을 펴려고 하면 아프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수십 년 동안 구부리고 살아왔는데, 진통제 먹고 고통을 잊듯이 그렇게 쉽게 몸이 펴지겠는가. 꾸준하게, 그리고 의식적으로 펴다 보면 어느 날부터인가 몸을 펴고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거꾸로 몸을 구부리고 사는 것이 얼마나 몸을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하는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보약 먹지 않아도 몸이 따뜻하고 기운이 넘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이 맑아지면서 고통이던 삶이 환희로 다가오게 된다.
공명(空明)이라는 소리를 들어 본 사람은 몸살림운동을 하는 사람을 빼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이나 자기공명장치(磁氣共鳴裝置)라고 할 때 공명이라는 말이 쓰이는 것은 보았어도, 빌 공(空)자에 밝을 명(明)자를 쓰는 공명은 누구나 처음 접하는 용어일 것이다. 국어사전이나 그 어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밝게 비어 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단전(下丹田)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기공을 하시는 분들은 하단전으로 호흡을 한다고 한다. 몸살림운동에서 말하는 공명의 위치는 이 하단전과 똑같다. 그렇다고 같은 의미로 쓰는 것은 전혀 아니다. 몸살림운동에서는 공명이라는 말을 하단전과 같이 추상적인 의미로 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몸에 존재하는 '기관'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보고 있다. 다만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으니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서양화에는 여백이라는 것이 없다. 화지 가득 색깔이 들어차 있어야 제대로 그린 그림이 된다. 그러나 동양화에는 반드시 여백이 있는데, 여백이 있음으로써 느끼는 아름다움을 일러 '여백의 미'라고 한다. 동양화에 여백이 없다면 그림은 답답하기 짝이 없게 될 것이다. 동서양의 그림에 이런 차이가 나는 데는 세상을 보는 눈, 즉 철학의 차이가 놓여 있다.
세상을 유(有), 즉 존재로 가득 차 있다고 보는 서양인의 입장에서는 비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신을 증명하는 서양식의 삼단논법을 빌어서 얘기하자면 이렇게 될 것이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비어 있는 부분이 있었다면 이는 실수한 것이다. 하느님은 완벽한 존재이므로 실수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로 비어 있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하느님이 만든 세상이 꽉 차 있으니 그림도 꽉 차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근대 철학의 산실인 독일과 영국의 기후와 지형이 한몫 했을지도 모른다. 대서양성 기후인 이들 나라에서는 여름 몇 달을 제외하고는 거의 항상 우중충하게 구름이 끼어 있고 비도 많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내린다. 맑은 하늘이었다가 10분도 채 안 돼서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내린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10분도 안 돼서 다시 갠다. 또 비가 내리고 또 개고 한다. 그래서 영국 신사들은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음산한 날씨인 것이다.
땅은 유년기 지형이라 우리나라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산은 없고, 그냥 넓은 평원에 어쩌다가 구릉지가 나타날 뿐이다. 한국 사람들이 볼 때에는 산도 아닌데, 이들 나라의 사람들은 산이라고 한다. 음산한 날씨에 시선을 둘 만한 적당히 높은 곳은 없다. 하늘을 보아야 먹구름이 가득 낀 우중충한 모습뿐이다. 그러니 고개를 떨어뜨리고 땅을 쳐다본다. 땅에는 원래 빈 공간이 없다. 꽉 차 있다. 이런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꽉 차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면 한국인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보면 하늘은 쪽빛으로 텅 비어 끝을 알 수 없게 전개된다. 적당하게 고개를 들고 시선을 두면 앞에 산이 있고 나무가 있다. 그 외의 공간은 다 비어 있다. 그 비어 있음에서 시선의 트임을 느낀다. 시선이 트였을 때 마음의 한가로움을 느끼는 한국인의 눈으로 볼 때 꽉 차 있다는 것은 답답함이고 스트레스일 뿐이다. 장마철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습기 때문에 구질구질한 것도 있겠지만, 먹구름이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비어 있어야 시선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탁 트이게 한다. 세상은 적당히 차 있고 적당히 비어 있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서양에서는 인공(人工)을 좋아했고, 동양에서는 자연(自然)을 좋아했다. 덕분에 서양에서는 과학기술 문명을 꽃피웠고, 이에 뒤진 동양은 서양의 힘에 밀려 뼈아픈 식민지 시대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우월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이런 문화도 있는 것이고 저런 문화도 있는 것이다. 모든 문화에는 일장(一長)이 있으면 일단(一短)도 있는 것이고, 일단이 있으면 일장도 있는 법이다.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보는 것은 자민족, 나아가서는 자기 인종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비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인류 문명의 방향에 대해서도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앞으로 인류 문명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취해 나가야 한다.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난 자연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 가장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는 이제 정신 차리고 그런 조건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 놓은 인공의 문명을 모두 거부하거나 다 때려 부수고 원시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자고 해도 그 실현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 엄청난 힘을 가진 문명을 이용해서 이 지구의 환경을 자연상태로 되돌려 놓고 사람들이 그러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방안일 것이다.
어쨌든 공명은 비어 있는 것이다. 비어 있는 여백의 미로 해서 동양화가 확 살아나듯이 우리 몸에서도 비어 있는 부분, 바로 공명이 있음으로 해서 기운을 차리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비어 있어야 할 부분이 비어 있지 않고 차 있으면 사람은 기운을 못 차리고 쉬 피로함을 느낀다. 보통 늘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람은 공명이 막혀 있는 것인데, 이것이 아주 심해져 화병으로 진전되면 몸이 너무 아파 세상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싫어진다.
현대의학에서는 공명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대부분의 배 해부도에서 이 비어 있는 부분이 전혀 표시가 되지 않는다. 필자는 이를 공명이 막혀 있는 사람의 배를 그려 놓은 것으로 이해를 한다. 간혹 방광의 위, 충수의 좌측 옆에 빈 공간이 있는 해부도도 있는데, 이는 공명이 트여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그려 놓았다고 해도 이 빈 공간이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이 아름다운 여백의 미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명은 횡격막이 좌와 우로 겹치면서 그 틈새에 럭비공 모양의 공간이 생긴 것인데, 이를 실제로 알아보려면 하단전이라고 부르는 위치를 눌러 보면 된다. 정자세로 누워서 배꼽에서 밑으로 손가락을 횡으로 세 개 정도 포갠 위치를 손가락을 모아 눌러 보면,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손가락이 부드럽게 말려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서 아픈 사람도 있을 것이며 그냥 아무런 느낌도 없이 쑥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이곳이 바로 공명이라는 아무 것도 없는 기관이 위치한 곳이다.
이 중에서 부드럽게 말려들어가는 경우는 공명이 틔어 있는 것이고, 나머지 두 경우는 공명인 막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명은 완전히 막히거나 완전히 틔어 있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막혀 있고 조금은 틔어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딱히 이 세 가지만으로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완전히 틔어 있는 것이 가장 좋고, 완전히 막혀 있는 것이 가장 나쁘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면 된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에도 산소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태반 안의 아기는 폐로 호흡하지 않고 탯줄을 통해 공급받은 산소를 작은 공기 주머니 안에 담아 놓고 쓴다. 이 공기 주머니가 바로 공명인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나와 첫울음을 터뜨리면서 아기는 처음으로 폐호흡을 하게 된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탁 치면 폐에서 양수가 빠져 나오면서 아기는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첫울음을 터뜨리면서 처음으로 폐로 호흡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공명은 어른이 되어도 크게 자라지는 않아 주먹 반 정도의 크기를 갖는다. 좌와 우에서 오는 횡격막이 겹치는 부위에 있으므로 생김새는 납작한 럭비공처럼 생겼다.
이렇게 작게 비어 있는 곳이지만, 이 공명이 인간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서 하는 역할은 너무나 커서 몸살림운동에서는 공명을 인체의 3대 근본기관 중의 하나라고 부른다. 인체의 나머지 2대 근본기관은 척추와 오장육부이다. 척추는 인체의 기둥이므로 기둥이 똑바로 서 있어야 건강한 것이고, 오장육부는 뱃속에 함께 모여 있으므로 서로 누르거나 눌리지 말고 원래 있어야 할 제 자리에 원래의 모양대로 있어야 건강한 것이다. 또한 공명이 틔어 있어야 사람은 기운을 차리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면 공명은 어떨 때 막히고 또 어떨 때 트이는가? 몸이 심하게 굽었을 때 꽉 막히고, 몸이 펴지면 뚫린다. 몸의 원리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너무나 단순한 것이다. 독자들께서 한번 자기 몸을 가지고 실험을 해 보면 이 또한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누차 강조하는 것이지만, 몸에 대한 지식은 머리로 외워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런 지식은 몸에 탈이 나면 약 먹고 수술하라고 하는 잘못된 지식일 뿐이다. 몸에 관한 지식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느낌으로써만 가능하다.
몸을 앞으로 심하게 굽혀 보자. 그러면 허리는 뒤로 굽고 가슴은 움츠러들며 고개는 숙여질 것이다. 이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배와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은 가슴 위에서만 달싹거리며 급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번에는 반대로 몸을 쭉 펴 보자. 그러면 허리는 세워지고 가슴은 펴지고 고개는 들릴 것이다. 이때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속이 시원해지고 호흡은 배꼽 밑까지 쭉 내려가며 깊고 느긋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이 공명이 막히고 트이는 원리이다. 몸이 앞으로 굽으면 오장육부가 가슴과 배와 골반에서 각자가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야 할 공간이 좁아지고, 그러면 서로 누르고 눌리거나 밑으로 처지게 된다. 그러면 공명이 차지하고 있는 빈 공간은 줄어든다. 공명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몸이 심하게 굽으면 공명이 차지해야 할 공간은 아예 없어진다. 공명이 꽉 막히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학에서는 전혀 관심도 두지 않고 있는 현상이지만, 오장육부가 처지고 서로 누르고 눌리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속이 답답해질 뿐만 아니라 호흡도 얕아진다.
호흡에는 복식호흡과 흉식호흡이 있다?
서양의 인체학은 현상을 나열하는 데 그치고 있다. 왜 그렇게 되는지 원인은 모르고 이러저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평면적으로 서술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현대의학은 이러한 서양의 현상 나열적인 인체학에 기초해서 사람의 병을 본다. 그래서 현대의학은 원인을 모르고 현상에만 빠져 헤매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호흡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서양의 인체학은 인간에게 너무도 중요한 호흡에 대해서도 현상을 나열하는 데 머물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호흡에는 복식호흡과 흉식호흡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복식호흡을 하는 사람도 있고 흉식호흡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면 아무런 의미도 없이 현상을 나열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왜 이렇게 다른 호흡을 하게 되는지 원인을 밝히고, 그리고 어떻게 호흡하는 게 좋은 것인지 해법을 내놓아야 '과학'이라는 이름에 값하게 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알면 말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서는 현상을 서술하는 데에도 왜 그렇게 되는지 원인을 모르고 있으니 잘못된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자와 어린아이는 흉식호흡을 하고, 성인 남자는 복식호흡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여자들 중에 흉식호흡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자들의 일반적인 호흡이 흉식호흡인 것은 아니다. 더구나 어린아이는 거의 흉식호흡을 하지 않는다. 자고 있는 갓난아이를 보라. 모두 배가 위로 볼록 올라왔다 아래로 쑥 내려갔다 하는데, 이것이 흉식호흡인가. 아마 보행기를 많이 타고 다녀서 몸이 많이 구부러져 있는 서양 아이들을 관찰해 보니 흉식호흡이 많다는 결과를 얻었을지는 모르겠다. 남자들 중에는 흉식호흡을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이렇게 되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복식호흡은 몸이 펴져서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좋은 호흡이고, 흉식호흡은 몸이 굽어서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나쁜 호흡이다. 호흡에는 복식호흡과 흉식호흡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복식호흡과 비정상적인 흉식호흡이 있는 것이다. 복식호흡은 공명이 트여 있어 아랫배까지 쭉 내려오는 아주 좋은 호흡이고, 흉식호흡은 공명이 막혀 있어 가슴으로만 달싹거리는 아주 나쁜 호흡이다. 숨을 거두기 직전에 헐떡거리는 호흡이 흉식호흡 중에서도 가장 나쁜 흉식호흡이다.
필자의 경험을 예로 들어서 한번 얘기해 보겠다. 여자 분들 중에 얼굴이 핏기가 없이 허였고 몸에 기운이 쭉 빠져 있는 분이 수련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런 분은 분명히 공명이 꽉 막혀 있어 가슴으로만 달싹거리는 흉식호흡을 하고 있다. 누워 있는 상태에서 보면 호흡이 가슴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이런 분의 공명을 쳐서 틔워 드리면 금방 호흡이 달라진다. 가슴에서만 이루어지던 호흡이 아랫배까지 쑥 내려온다. 아랫배가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분은 공명을 틔우고 잠시 앉아 있으면 얼굴이 발그레하게 홍조를 띠기 시작한다. 깊은 호흡이 이루어지게 돼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되면서 기운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분은 보름 동안만 몸을 펴는 운동을 하면 원래대로 기운이 살아난다. 물론 계속 몸을 펴는 운동을 하면 세상이 달리 보일 만큼 몸의 상태가 좋아진다.
공명이 트이면 기력이 살아나는 원리도 너무나 간단하다. 흉식호흡은 몸이 구부러져 있는 상태에서 숨을 쉬는 것인데, 이는 허파가 오그라들어 있는 상태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허파가 오그라들어 있으면 허파의 꽈리가 공기와 접할 수 있는 면적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원래 허파 꽈리의 면적을 최대로 한 상태에서 숨을 쉬어야 필요로 하는 산소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것인데, 오그라들어 있는 상태에서 필요한 만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몸에 필요한 산소가 부족하게 되면 아무리 몸에 영양분이 많아도 이를 태울 수가 없게 된다. 영양분을 태워서 에너지로 쓰는 게 사람의 몸인데, 태우지를 못하게 되니까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맥이 빠지는 것이다. 조금만 일을 해도 쉽게 피로함을 느낀다.
이런 사람들은 보약을 먹게 되는데, 이 경우 보약은 아무리 많이 먹어 보아야 아무 소용도 없다. 보약은 몸에서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먹으면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공명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먹으면 쓸데없이 돈과 자원만 낭비하고 있는 셈이 된다. 보약 역시 약을 위주로 해서 사람의 건강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의 산물일 뿐이다. 기본은 몸을 펴는 것이다. 제대로 몸을 펴기만 하면 기운을 차리고 살아갈 수 있게 돼 있는 것이다.
몸이 충분히 펴져 있는 상태에서는 공명이 트이게 되고, 공명이 트이게 되면 허파가 충분히 펴져 있는 상태에서 호흡을 하게 된다. 그러면 필요한 만큼 충분히 산소를 공급받게 되므로 몸에 활력이 생긴다. 여자 분들 공명을 틔워 주면 잠시 후에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것은 허파가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호흡하게 되어 금방 산소의 공급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은 진화의 과정에서 완벽하게 만들어졌다. 직립하는 동물로서 완벽하게 만들어졌다. 신의 조화인지 자연의 섭리인지 따질 필요도 없이 직립만 제대로 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게 만들어졌다. 문제는 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차 몸을 구부리게 되어, 드디어 정보화시대에 들어서 인간은 컴퓨터로 일을 하면서 직립하기 이전의 자세로 퇴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공명이 막혀 깊은 호흡을 하지 못하고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임종 직전의 사람처럼 할딱거리는 얕은 호흡을 하게 되는 것도 몸을 구부리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 좋지 않은 사람은 몸이 구부러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경우 대부분 수십 년 동안 몸을 구부리고 살아왔기 때문에 몸을 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그렇게 살아와 몸이 그렇게 구조화돼 있기 때문에, 몸을 펴려고 하면 아프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수십 년 동안 구부리고 살아왔는데, 진통제 먹고 고통을 잊듯이 그렇게 쉽게 몸이 펴지겠는가. 꾸준하게, 그리고 의식적으로 펴다 보면 어느 날부터인가 몸을 펴고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거꾸로 몸을 구부리고 사는 것이 얼마나 몸을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하는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보약 먹지 않아도 몸이 따뜻하고 기운이 넘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이 맑아지면서 고통이던 삶이 환희로 다가오게 된다.
김철/몸살림운동가 |
출처 : 몸살림운동 부산동호회
글쓴이 : 공구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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