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빌 마리너 경 (Sir Neville Marriner,1924. 4. 15 잉글랜드 링컨셔 링컨~.) < FONT>
영국의 바이올린 연주자, 교사, 지휘자. 1959년 대중과 비평가에게 모두 호평을 받고 있던 런던의 실내합주단인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드'를 결성했다.
마리너는 1944년 런던의 왕립 음악 칼리지를 졸업한 뒤 계속해서 5년 동안 파리 음악원에서 르네 베네데티에게 배웠다. 초기에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했으며 작은 합주단에서 많이 연주했는데, 그중에는 고(古)음악 전문가인 서스톤 다트와 함께 연주하던 자코비언 합주단이 있다. 1952~56년 런던 필하모니아와 1956~68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동했다. 1949~59년 왕립 음악 칼리지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피에르 몽퇴의 권고에 의해 지휘로 전향했는데, 특히 바로크 음악을 전문으로 했다. 이후 10년 동안 아카데미를 조직하여 명성을 확보하고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녹음했으며 전세계의 유수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1969년 로스앤젤레스 쳄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겸 지휘자가 되었고, 1978년 미네소타 심포니의 감독 겸 지휘자로 지명되어 1979~80년 시즌부터 지휘를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오페라도 지휘하게 되었다.
아카데미 어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1950년대 후반, 영국 런던 심포니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네빌 매리너는 그와 뜻이 맞는 연주자들과 함께 트라팔가 부근에 있는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교회에 정기적으로 모여 음악적 토론과 연주회를 벌였다. 당시의 주제는 주로 바로크 음악. 지휘자에 의해 자의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작품 본연의 성격에 따라 음악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1959년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이하 ASM)의 출발이었다. 그 ASM이 올해로 창립 40년을 맞았다. 네빌 매리너경은 여전히 구심점으로, 또 리더로 ASM을 이끌고 있다. 그 세월 동안 이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활발히 연주활동―특히 레코딩 ―을 펼치는 음악단체로 자리잡았다. 실제로 네빌 매리너경은 오랫동안 카라얀의 차지였던 ‘최다 레코딩’ 기록을 몇년 전에 갈아치웠다. 지금껏 내놓은 음반만 1000여종. 그러나 이들의 레코딩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최다 레코딩’이라는 기록이 꼭 영예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네빌 매리너경과 ASM은 레코딩 관계자들로부터 ‘저렴한 제작비로, 놀라울 만큼 빠르게, 그것도 늘 만족스러운 연주수준을 유지하는’ 음악단체로 확고하게 인정받았으며, 지금도 그러한 평가는 유효하다. 네빌 매리너가 ‘경’ 칭호를 받은 것이나, ASM이 영국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각광받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매년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1400만파운드 이상의 ‘외화’ 중 대부분이 그간 녹음된 음반 판매 수입이기 때문이다. 여덟번의 에디슨상, 수십번의 골든디스크상, 아카데미 음악상(영화 ‘아마데우스’) 등 상복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