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바이올린)/^^야샤 하이페츠

브람스/바이올린 협주곡 Op. 77 - 야샤 하이페츠(바이올린)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지휘) 보스톤 교향악단

로만짜 2016. 7. 2. 00:30

 

 

 

 

 

 

 

 

  

 

Johannes Brahms (1833~1897)
Concerto for Violin & Orchestra in D major, Op. 77

 

 

 

  1. Allegro non troppo (20'36")  

 

  2. Adagio (09'04") 

 

  3. Allegro giocoso, 
                            ma non troppo vivace (07'44")

   

1 ~ 3 순으로 연속듣기
 
 
Jascha Heifetz, violin
Serge Koussevitzky, cond
Boston Symphony Orchestra
Recorded in 1939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베토벤, 멘델스존의 작품과 함께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불려지는 걸작인 바이올린 협주곡은 브람스가 이탈리아 여행 후에
휴양지 페르차하에서 창작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1978년 봄에 브람스는 처음으로 동경하던
신중한 준비까지 하며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

돌아온 후 여름에는 마음에 드는 페르차하에서 창작에 몰두했고,
이탈리아 여행에서의 음악적 영향은
이 바이올린 협주곡과 무관치 않으며, 이탈리아 여행중에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려고 생각하여 스케치도 시작하였지만
결국은 바이올린 협주곡에 집중했다.
처음으로 다룬 작품이자 그의 단 하나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곡의 초연은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 1879년 라이프치히의
게스트반하우스 관현악단 제11회 예약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이 협주곡의 작곡에 브람스와 논의를 지속했던
요하임이 바이올린을, 지휘는 브람스가 했다.

초연에 사용된 악보는 논의와 수정을 거치며
초연 논의 등의 사정으로 인해, 손으로 씌여진 악보로 행해졌다.
초연은 대성공으로 대부분의 비평가로부터 절찬을 받았다.

초연 이 후에도 부다페스트. 빈, 런던,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급속하게 각지로 퍼져나가며 절찬 속에 재현되었다.  
 

 

 
 
세르게이 쿠세비츠키는 1874년 7월 26일 러시아의
비시니-보로초크(Vyshny Volochyok, 현재의 칼리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14세때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했고,
1903년부터 콘트라베이스 독주자로서 활약했다.

또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협주곡과 소품들을 작곡하였는데,
그것은 많지 않은 이 악기의 레퍼토리 가운데서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쿠세비츠키는 콘트라베이스 연주가로 활동하면서 베를린의
대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쉬의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아
지휘자로서의 길을 가고자 결심하였다.

그는 현대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스크리아빈, 글라주노프,
프로코피에프 등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채택 연주하였다.
그러다가 러시아 혁명을 맞은 쿠세비츠키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으나, 1920년에 러시아를 떠나 파리로 갔다.

거기서 다시 자기의 악단을 창립하였고,
새로운 러시아 음악을 적극적으로 소개하였다.
1922년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오케스트레이션을
라벨에게 위촉하여 초연한 것이 이때의 일이다.

1924년엔 미국의 명문 보스톤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고
보스톤 교향악단은 쿠세비츠키의 손끝에서
가장 감각적인 탁월한 악기가 되었다.

그는 러시아나 파리시대와 마찬가지로 현대 미국 작곡가들을
지원했고, 새로운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는데
그가 미국 음악계에 끼친 공헌은 그야말로 막대한 것이었다.

로이 핼리스, 아론 코플랜드, 랜덜 톰프슨, 하워드 핸슨 등은
쿠세비츠키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진 작곡가들이다.
또한 1940년에는 매사추세츠주(州)의 산중에 있는
피서지 탱글우드에 버크셔 음악센터를 설립하여
해마다 여름이면보스톤 교향악단 멤버가 참가하는
버크셔 음악제를 창시하여 후진들의 육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가 전쟁의 어려운 시기에 불구의 몸으로
미국에 건너 간 바르토크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의 작곡을 위촉한
이야기도 후일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쿠세비츠키는 오늘날 레코드 녹음을 한
지휘자로서가 아니라 넓게는 세계의 현대음악,
좁게는 미국의 현대음악에 불멸의 공적을 남긴
지휘자로서 길이 기억되고 있다.

그가 보스톤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취임 25주년으로 은퇴하고
3년 후인 1951년 6월 4일에 보스톤에서 향년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작곡가인 루카스 포스는 이렇게 썼다.
"그의 죽음으로써 러시아 출신 미국인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

그가 남긴 레코드로는 음악사의 견지에서도 뜻깊은
무소르그스키-라벨의 전람회의 그림이
보스톤 교향악단 지휘로 나온 것이 있다.
<웹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