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 Beethoven (1770~1827)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61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을 뽑으라 하면 으레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을 손꼽는다.
이외의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바이올린 협주곡이 거론될 때는 반드시 베토벤의 작품이 중심 소재로 채택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보여주는 감미롭고 여성적인 선율과는 달리 남성적인 비장함과 애수를 느끼게 만드는 이 작품의 품격과 장대함은 지금까지도 이를 능가할 정도의 협주곡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곡을 들으면 움츠려 들었던 마음에 자신감이 충만하게 되고 현실이 어려울 때도 좀 더 적극적으로 현실을 맞이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을 뿐 아니라 삶을 고귀하게 느끼게 하는 품위가 서려 있다.
그러나 이 곡이 불후의 명작으로서 인정을 받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을 필요로 했다. 이곡은 베토벤 나이 38세인 1806년에 작곡되었는데 이 시기에 5번 ‘운명’ 6번 ‘전원’ 교향곡을 쓰기 2년 전으로 창작의 세계가 한창 무르익었을 시기이다.
이곡은 당시 빈 극장의 악장인 프란츠 클레멘트를 염두에 두고 작곡하였는데 초연할 당시 클레멘트가 빈 극장에 당일 악보가 도착하여 오케스트라와 리허설도 없이 이곡을 급하게 연주하여 만족스럽지 못한 공연이 되었다.
한편 청중들의 반응은 그 당시로서는 너무 웅장하고 해석이 어려운데다가 장시간 연주되는데 지쳐 두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평론가 세이야는 “이곡은 독창성과 다양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곡 전체를 수를 놓았고 크레멘트 바이올린의 정평한 기술과 쾌적하고 힘찬 연주는 바이올린의 노예같이 생각되었다.”고 호평을 하였다.
초연 이후 한 동안 작품은 1812년 베를린에서 로마지니, 1828년 파리에서 베이요, 1833년 빈에서 뷔에탕 등이 산발적으로 연주를 하였으나 세인의 관심을 얻지 못하였다가 1844년 브람스의 절친한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요하임이 13세 나이에 멘델스존의 지휘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협연한 이후 세상에 빛을 찬란하게 발하게 된다. 이곡의 카덴자 부분은 베토벤이 써놓지 않았기 때문에 요하임 자신이 작곡한 카덴자와 그이후 레오폴드 아우워, 크라이슬러 등의 카덴자가 남아 있어 최근에는 연주자들마다 다양하게 선택하여 연주하고 있다.
제1악장 Allegro ma non troppo 팀파니의 가벼운 3연타로 시작되는데 이 팀파니의 연타는 전 악장을 통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부드럽고 긴 관현악의 투티(tutti) 뒤에 오케스트라에 의해 제시된 주제가 독주 바이올린에 의해 제시되면서 곡이 펼쳐지게 된다.
팀파니 리듬이 간간히 재현되면서 오케스트라와 독주 바이올린과의 긴밀한 조화를 이루며 발전되어 나가고 있어 곡의 우아함이 돋보이고 있다.
제2악장 Larghetto 거의 전 악장을 통해 단일 주제에 바탕을 투고 있으며 악음기를 단 현악기군의 아름다운 주제가 제시되면서
3개의 변주가 이어지게 되는데 전 악장을 통해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감정이 넘쳐흐르면서 가곡풍의 독주 악기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솟구칠 듯한 약동감과 평화로움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제3악장 Rondo Allegro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황제’의 마지막 악장과 흡사한 화려한 악장으로 민속적인 멜로디를 담고 있는데 반복의 미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론도 주제의 주요한 주제를 바탕으로 찬란하고 화려한 독주 바이올린의 기교가 눈부시게 나타나는 이 악장은 종결부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며 인간적이고 종교적이리만큼 엄숙하고 장중한 막을 내린다.
<출처: Dr.오재원의 오페라(클래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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