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8번 G장조 Op.30-3
작곡 : 1801~1802년년 ㅣ 출판 : 1803년 ㅣ 헌정 : 헌정 :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로 1세.
작품30으로 츨판된 바이올린 소나타는 모두 3곡으로 1803년에 출판되어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로 1세(재위. 1801~1825년)에게 헌정되었다. 그래서 이 작품30은 '알렉산드로 소나타'로 불린다. 이 작품이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 1802년은 베토벤의 귓병이 더욱 악화되었으며 10월에는 잘 알려진대로 '하일겐슈타트의 유서'를 썻다. 이듬해에는 교향곡 3번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무렵 그는 중기의 충실했던 작품 세계로 급속히 내딛기 시작했다.
작품30으로 작곡된 3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제1번은 A장조로 쓰여져 밝고 여유가 있어서 친숙하기 쉽고 모차르트적인 면도 있었다. 그러나 2번은 1번과 완전히 달라져서 어둡고 엄격하며 운명적인 C단조로 작곡되어 강렬한 열기가 넘쳐 흐르는 역작이었다. 그리고 이 3번에서는 G장조로 바뀌어 밝고 경쾌하며 힘이 넘친다. 곡마다 느낌을 바꾸어서 작품 30의 세곡이 서로 다른 분위기를 갖도록 한 시도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9번 A장조 Op.47 '크로이처'
작곡 : 1802~1803년 ㅣ 출판 : 1805년 ㅣ 헌정 : R. 크로이처
초연 : 1803년 5월 24일. 빈의 아우가르텐에서 브리지타워의 바이올린과 베토벤의 피아노
베토벤은 이 곡을 출판할 때 표지에 '거의 협주곡처럼, 아주 협주풍으로 쓰여진 바이올린 오블리카토의 피아노 소타나'라고 적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즉 두 개의 악기가 협주풍으로 주고 받는 형태로 작곡한 의도가 이 말에서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된다. 바흐는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에서 바이올린, 쳄발로의 오른손과 왼손. 이 세개의 성부가 서로 주고 받는 형태를 만든다. 즉 바이올리스트와 쳄발리스트가 반주자로서가 아니라, 연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서로 주역이 되는 것이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이미 지향되었다.
모차르트는 피아노에 스포트라이트를 주고 바이올린은 피아니스트의 활약을 돕는 형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여러 곡 썻다. 베토벤도 이런 모차르트 양식을 토대로 바이올린 소나타를 쓰기 시작하였으나, 바이올리니스트도 적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서서히 바이올린 파트를 충실하게 만들어 나간다. 이처럼 바이올린에게도 주도적인 역활을 부여한 것이 바로 이 '크로이처 소나타'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이 두 악기의 대등성을 주려고 했던것은 이후 낭만파 작곡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베토벤의 이 '크로이처 소나타'는 강한 에너지와 내면의 견실함이 공존하는 고금의 바이올린 소나타중에서 최고의 작품의 하나로 빛나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9번 소나타가 작곡된 시기는 교향곡 3번이 나오기 직전이다. 이 시기 베토벤은 중기의 원숙기에 발을 내딛고 있었다. 시험의 시대가 끝나고 자신의 기법에도 자신을 갖기 시작하여, 창조에 대한 의욕과 강렬한 에너지를 가지고 이 곡에서 두 대의 악기를 협주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곡은 유명한 바이올린스트인 브리지타워가 연주할 것이라 생각하고 작곡한 점도 바이올린 파트가 충실해진 한 가지 원인이라고 보여진다. 브리지타워는 폴란드인과 흑인의 혼열인, 영국 국적의 명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러나 그와 베토벤은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 초연 후에 베토벤은 이 곡을 브리지타워가 아닌 루돌프 크로이처(1766~1831)에게 헌정한다. 이 곡이 '크로이처 소나타'전해지게 된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크로이처는 지금도 바이올린 학습자를 힘들게 하는 '42 연습곡'의 작곡자로도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