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환상곡 f단조, D.940 (Op.103)
슈베르트 생애의 마지막해인 1828년 1월부터 4월사이에 작곡된 3곡의 네 손용 피아노 곡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완성된것이 이 작품이다. 슈베르트는 가끔 헝가리를 방문하였는데, 1818년과 1824년에는 조금 길게 머물렀으며 모두 제리츠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백작의 별장에서 체제하였다. 1818년에는 백작의 두 명의 딸인 마리와 카롤리네의 음악교사로 채용되었다. 두 번째 방문은 에스테르하지 백작의 초청으로 여름 휴가를 겸해서 제리츠의 별장에 머물며 많은 연탄곡을 작곡하였는데, 4년 후에 작곡된 이 작품에서도 시작 첫 부분의 리듬과 장식음형에 헝가리적인 성격이 나타있어 제리츠에서의 추억을 엿 볼 수 있다.
이 곡의 헌정도 첫 방문에서 가정교사로 있으며 가르치던 백작의 두 딸 중에서 막내 딸인 카롤리네에게 헌정되었다. 이것은 1828년 2월 21일자로 슈베르트가 출판업자인 쇼트에게 보낸 편지 중에 헌정자의 이름을 밝힘으로서, 생전의 슈베르트의 뜻에 따른 것이며 연탄곡이 주는 가정음악적인 이미지를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개적인 연주기록은 없지만 완성 후 얼마 안 된 1828년 5월에 친구인 바우른펠트((Fduard von Bauernfeld)를 위해서 슈베르트와 라흐너(Franz lachner)가 연탄으로 연주하였다고 한다. 초판악보는 슈베르트가 사망한지, 반 년 후인 1829년 3월16일에 빈의 A. 디아벨리사에서 간행되었다.
전곡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전체가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크게 보면 4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것을 4악장으로 본다면 알레그로 악장-느린 악장-스케르초 악장 - 피날레 악장으로 피날레 악장은 알레그로(1악장)의 재현적 성격을 지닌다. 연탄곡이 주는 가정음악적인 이미지에 어울리는 따스하고 서정적인 가요적 선율은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되어 발전되어 가지만 주제선율은 크게 나누어 지지 않으며 새로운 주제와 함께 반복되는 주제 선율은 슈베르트 특유의 조바꿈으로 인한 화성적 색체와 리듬으로 느낌을 달리하며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
슈베르트. 론도 A장조, D.951(Op.107)
슈베르트는 피아노 연탄곡을 가장 많이 작곡했다. 그의 작품을 연대별로 정린한 D 번호중에 1번이 [G장조 환상곡]이라는 연탄곡이라는 것은 하단의 총설에서도 서술했지만 , '행진곡', 환상곡', '서곡',나아가서 '소나타'등 여러 형태로 마지막 해까지 거의 매년에 걸쳐 연탄곡을 작곡하였다. 그 작품 수도 상당하여 구 전집에 수록되어 있는 것맘 34곡에 달한다.
1828년 6월에 완성된 곡으로 슈베르트 생애의 마지막해인 1월부터 4월사이에 작곡된 이 분야의 3곡 중에서 마지막에 해당하는 곡이다. 자필악보는 베를린의 프로이센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초판 악보는 이 곡의 작곡을 의뢰하였던 빈의 알타리아 출판사에서 1828년 12월 11일 [그랜드 론도 작품.107]로 출판되었다.
구조적으로는 론도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제3주제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이 간결한 두 주제의 전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소나타적인 인상을 주기도 한다. 춤곡을 생각나게 하는 리듬을 가진 주제가 제2피아노의 규칙적인 반주 음형위에 장식음형을 부가시켜 발전되어 가면서, 슈베르트 만년의 눈부신 조바꿈과 화성에 관한 지식을 생생한 소재를 잘 일체화시킨 작품이다.
슈베르트의 연탄곡 총설
슈베르트의 1000곡에 달하는 작품을 연대순으로 정리하고 기본적인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O.E.도이치의 슈베르트 작품의 연대별 정리번호(D번호)중 제1번을 부여받은 슈베르트의 최초의 작품이 연탄곡이라는 것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며, 슈베르트에게 있어서 피아노 연탄곡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슈베르트는 생애를 통해 35곡의 연탄곡을 작곡하였고, 그 형식은 여러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군대 행진곡]이나, 슈만이 [그문덴 가스타인 교향곡]의 피아노 편곡판이라고 지적하고, 훗날 요하힘이 오케스트라판으로 편곡하여 초연까지 행한 [그랜드 소나타 C장조,D.812]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밖에도 폴로네에즈나 렌틀러 같은 춤곡, 또는 이탈리아풍 서곡과 론도, 변주곡과 같은 다양한 양식에 의해서 생애의 마지막 해까지 거의 매년 연탄용 피아노 작품을 작곡하였다.
슈베르트가 '연탄용 작품부터 작곡을 시작한것 것은 역시 슈베르트답다. 경쟁적인 2대의 피아노 협주곡풍이 아니라 한대의 피아노를 네손으로 연주하는 것은 우정의 상징이다.' 라는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이 표현도 있지만 1818년에 작곡된 [론도 D장조, D.608]의 초판 악보에는 '우리들의 우정에는 변함이 없다' 라는 타이틀 도 있다. 이 우리들이라는 것은 켈츠슈(Hans Koltzsch)가 그의 연구에서 주장한 요제프 갈히(Josef von Garhy)라는 것은 슈파운, 쿠벨비져, 쇼버등 많은 슈베르티아데의 사람들에 증언에 의해 확인된다. 그러나 슈베르트에게 있어서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자신을 중심으로 모이는 예술가 친구(슈베르티아데)들 전원에 대한 우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이 당시 피아노는 급속하게 개량되며 널리 보급되어 가정음악에 가장 적합한 악기로 정착되었다. 이와함께 연탄곡은 독주 피아노 곡과 비교하여 보면 아마추어적인 요소가 강하기도 하며 위에서 언급한것처럼 한 대의 피아노에서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며 우정, 혹은 사랑의 정담을 나누는 분위기로 가정음악이나 살롱,거실음악으로 가장 적합한 음악으로 정착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