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피아노 3중주 a단조 Op.50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단편등을 별도로 하고도 모두 5곡이 되는 차이코프스키의 실내악곡 중에서, 오늘날까지 가장 자주 연주되는 것이 이 장대한 피아노 3중주곡이다. 이 곡은 1881년, 차이코프스키가 42세되던 해의 작품이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직접적인 스승에 해당하는 안톤 루빈슈타인의 친동생으로, 당시의 러시아르 대표하는 명피아니스트, 지휘자인 동시에 교육자이기도 했던 니콜라이 루빈슈타인(Nikolay Grigorievich Rubinstein,1835~1881)의 죽음을 애도하려 작곡한 작품이다.
한때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Op23]에 대하여, 작품이 범용 그 자체라는 냉혹한 평을 하여, 차이코프스키를 크게 분개시킨적이 있는 루빈슈타인도, 그 후 이 협주곡에 대해 호평을 하였다. 더욱이 뷜로를 비롯해 많은 명피아니스트들에 의해 연주되어져 각지에서 호평을 받은 사실, 그리고 작곡가로서 매번 뛰어난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는 차이코프스키의 실력과 성실함에 경의를 표하게 된 것이다. 한편, 차이코프스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연장자이며 음악적 경력도 풍부한 선배에 대하여 비뚤어진 생각을 떨쳐 버리게 되었으며, 오히려 존경심까지 가지게 되었다.
특히 루빈슈타인이 1878년 파리에서 이 협주곡을 연주했을 당시의 명연주는 상당한 효평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로인해 이 곡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연주자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그러한 루빈슈타인이 파리에서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된것이 1881년 3월 23일이다. 그리고 나서 모스크바 음악원의 초대 교장이었던 그의 후임에 차이코프스키가 선출되었으나, 차이코프스키는 이를 고사하고 그해 11월에 로마로 여행을 떠난다. 거기에서 체제중, 선배의 죽음을 애도하여 그에게 헌정할 목적으로 이 3중주곡에 작곡에 착수하여, 이듬해 2월에 완성하였다. 완성된 원고에는 'a la memoired' un grand artiste(어떤 위대한 예술가를 기념하여)'라고 적고 있다.
곡은 단순히 2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으나, 변주곡인 제2악장은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마지막 변주와 코다는 이것만으로 일부를 구성할 정도로 대규모의 것으로 되어 있다. 주요 악상은 모두 쓰여졌던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제3악장으로 볼 수 있다. 존경하는 선배의 주음을 애도하여 쓰여진 작품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더라도 항상 특유의 감상에 젖어 있는 그의 음악은, 여기에서 한층 슬픈 정서를 그려내고 있다. 작곡 기교의 치밀한 점에 있어서는 차이코프스크의 작품 가운데 최상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피아노 파트가 특히 장대하고 수려하게 쓰여진 것은, 명피아니스트로서 명예가 높았던 고인을 생각하여 쓰여진 것이라고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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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의 주제는 'Pezzo Elegiaco 비가적 악장' 이라고 지시어에도 있듯이, 감상적이며 애조를 띄고 있으면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선율이다. 조용하게 흐르는 피아노의 펼침화음을 타고 첼로의 풍부한 음에 실린 애조띈 주제선율이 시작된다. 위치를 바꾸어 피아노가 다시 주제를 이어가다 경과부등을 거치며 변주 되다, 아픔을 잊으려는 듯한 새로운 제2주제가 피아노에 의해 나타나며, 2주제를 기조로 한 새로운 선율이 피아노로 제시되고, 두개의 주제가 교차되며 변주되다가 1주제에 의한 조용한 코다로 끝맺는 소나타 형식에 의한 웅대한 악장이다.
2악장은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1부는 주제와 11개의 변주, 2부는 변주 피날레와 코다로 되어 있다. 1부의 주제는 1873년, 피아노 협주곡을 둘러싼 분쟁이 있기 이전, 차이코프스키가 루빈슈타인을 비롯한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들과 교외로 나간적인 있는데, 이 때 루빈슈타인의 청에 의해 농부들이 춘 춤과 노래를 회상하여 생각해낸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