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이를 느껴 보자
우리는 어느새 우리 몸의 자세에 대해 무관심한 가운데 살고 있다.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어른들은 허리를 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귀찮더라도 억지로 펴는 흉내라도 내 보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어떻게 해야 바른 자세가 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허리를 펴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보이지가 않는다. 간혹 학생들에게 똑바로 앉으라는 말씀을 하시는 선생님도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학생들은 뭐 저런 권위주의적인 선생도 다 있느냐며 이상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본다고 한다. 몸이 아프면 병원 가면 되는데, 자세가 어떻고 하는 얘기가 뭐가 필요하냐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 돼 있는 것이다.
그러니 더 나아가 자기 몸을 느껴 보려는 노력 같은 것을 할 리가 없다. 우리가 우리 몸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대개 물리나 화학의 식이나 기호로 표현되는 객관적인 지식일 뿐이다. 이러한 지식은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 봐야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몸에 관한 한, 나아가 마음에 관한 한에 있어서는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지식은 산지식이 되지 못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몸에 대해 알려면 자기 몸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느끼면 답도 찾을 수 있다. 몸을 느끼고 불편한 원인을 알게 되면, 그 원인을 제거해 주기만 하면 편해질 수 있는 것이다.
걸음걸이도 마찬가지이다. 길을 가다 보면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면서 걷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몸을 알면 이것은 고관절이 심하게 틀어졌기 때문임을 알고, 그러면 고관절이 제 자리를 찾아가면 절룩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팔자소관이려니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재활을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는데, 운동을 하면 좋아지기는 한다. 그러나 고관절이 들어맞지 않는 한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는다. 필자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고관절만 맞으면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그걸 모르고 저렇게 얼마나 불편하게 살고 있을까. 빨리 몸살림운동이 번지면 저런 분들도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심하게 절뚝거리지는 않는다고 해도 지금 내 걸음걸이를 한번 점검해 보도록 하자. 걷기 시작할 때 습관적으로 어느 한쪽 발을 먼저 떼는 사람이 있다. 다른 쪽 발을 먼저 떼는 것은 잘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원인이 있다. 예컨대 왼쪽 고관절이 틀어져 있는 사람은 서 있을 때 왼쪽 발에 힘을 주지 못하고 오른쪽 발에 힘을 주고 서 있게 된다. 서 있다가 출발할 때에는 힘을 주고 있는 발을 축으로 삼아서 반대편 발부터 먼저 떼게 된다. 왼쪽 고관절이 틀어져 있는 사람은 대개 왼쪽 발부터 먼저 떼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오른쪽 고관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당연히 오른쪽 발부터 먼저 떼게 된다. 양쪽이 다 틀어져 있을 때에는 복잡하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이렇게 간단하게 자신의 걸음걸이만 느낄 수 있어도 자신의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발목이 삐끗했으면 발목이 삐거나 접질린 것이다. 무릎이 삐끗했으면 슬개골이 내려앉았거나 무릎뼈가 접질린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무슨 큰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므로 공연히 걱정하지 말고, 스스로 바로잡는 방법을 ‘몸살림운동’ 홈페이지에 들어와 배워서 교정하면 된다. 이렇게 알면 문제가 없는데,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발목이 접질려 있는 것은 접질린 뼈를 빼 주기만 하는데, 병원에 가면 수술을 하고 싱을 박기도 하고 깁스를 하기도 한다.
마사이워킹은 바른 것인가?
요즘 ‘마사이워킹슈즈’라는 것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국내산은 10만원대이고 스위스산은 30만원까지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싼 신발이 날개 돋친 듯이 잘 팔린다고 한다. 한국 사람은 건강에 좋다고 하면 안 하는 게 없으니, 이도 유행 따라 인기가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의 인체공학자 칼 뮬러(53)가 마사이족을 연구해 본 결과 유목민족인 마사이족은 육류가 주식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180㎝가 넘는 큰 키에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고 성인병도 거의 없는 데다 척추 질환도 거의 없는데, 그 비법이 걸음걸이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마사이족의 걸음걸이에 ‘마사이워킹’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러한 보행자세를 유지하는 데 좋은 신발까지 개발해서 팔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마사이워킹을 설명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마사이족은 부드러운 초원을 맨발로 자연스럽게 걷는데, 이때 마사이족은 발바닥 전체가 지면에 닿는 ‘중심부 보행’을 한다. 그런데 현대인은 아스팔트와 시멘트처럼 딱딱한 바닥 위를 딱딱한 밑창의 구두를 신고 걷는다. 무게중심이 발바닥의 중앙을 생략하고 뒤꿈치에서 앞으로 그대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면으로부터 받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면서 보행자세가 뒤틀리고 변형돼 관절이나 척추에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뮬러씨는 “발바닥 전체를 이용해 체중을 이동시키는 마사이워킹은 발에 주어지는 압력을 고르게 분산시켜 발을 편하게 해 주고 걸을 때 무릎과 허리에 오는 충격과 하중을 감소시켜 준다”고 설명한다. 이로 인해 척추나 관절에 이상이 오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걸을 때 발바닥 전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발도 가운데 부분을 조금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면 발바닥 중앙부까지 이용해서 걷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뮬러씨와는 완전히 견해를 달리한다. 우선 지적할 것은 마사이족이 육류를 주식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병이 적은 것은 그들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사이족보다 훨씬 더 육류만을 먹고사는 에스키모인이 현대인보다 더 성인병이 많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주식이 육류인가 채소류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바른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TV에서 마사이족이 걷는 모양을 보면 정말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걷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마사이족이 건강한 이유인 것이다.
다음으로 마사이족의 걸음걸이는 아주 잘못돼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것은 독자들께서 실제로 의식적으로 느끼면서 걸어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허리를 세우고 평지를 걸으면 자연스럽게 발뒤꿈치와 앞발바닥이 거의 동시에 땅에 닿지만 뒤꿈치가 약간은 먼저 닿는다. 그러면서 신체의 무게를 뒤꿈치로 받는 것이 아니라 앞발바닥으로 받게 된다. 무게를 뒤꿈치로 받게 되면 그 충격이 뼈를 통해 무릎과 허리로 전달되기 때문에 관절이 상하기 쉽다. 계단을 내려올 때에는 앞발바닥이 먼저 땅에 닿고 다음에 뒤꿈치가 땅에 닿는데, 이때에는 발바닥이 아니라 뒤꿈치로 무게를 받게 된다. 산에 올라갈 때에는 무릎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내려올 때에 많이 상하는 것은 앞발바닥이 먼저 땅에 닿고 이어서 몸의 전체 무게의 충격이 뒤꿈치를 통해서 바로 무릎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마사이족은 발바닥 전체가 땅에 동시에 닿는데, 이것은 허리를 굽게 한다. 실험을 하기 위해 한번 허리를 많이 구부리고 걸어 보자. 발바닥 전체가 동시에 땅에 닿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발바닥 중앙부까지 이용해서 걷는다는 마사이족의 걸음걸이는 실은 아주 잘못된 자세이고, 그렇게 걷는 자세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개발한 마사이워킹 슈즈는 실은 이렇게 잘못된 자세를 계속하도록 도와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잘못된 보행자세에도 불구하고 마사이족이 건강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평상시에 허리를 세우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걸을 때에도 허리를 세우고 걸을 수 있는 것은 원시상태에서 운동량이 많아 허리의 근육이 튼튼해져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보행자세에도 불구하고 허리의 힘으로 허리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마사이족의 걸음걸이는 이 부족 나름의 독특한 문화의 산물이다. 이미 허리가 많이 굽어 있는 현대인이 이 부족의 걸음걸이를 모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더 잘 모방하기 위해 신발까지 바꾼다는 것은 본(本)과 말(末)이 전도된 것이다.
양반걸음이 가장 좋은 보행자세
자세도 일종의 문화이다. 장수마을(長壽村)이 따로 있는 것은 그 지역의 사람들이 허리를 세우는 자세에 익숙해 있고, 후대는 선대의 그러한 자세를 보고 본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TV에 나오는 장수촌 사람들의 자세를 눈여겨보면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허리가 꼿꼿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사이족의 보행자세가 따로 있듯이 우리 한민족에게도 좋은 걸음걸이가 있었다. 서양 문물이 밀려들어오면서 우리 것은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두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사라졌지만, 우리에게 고유한 걸음 자세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양반걸음이었다.
양반걸음 하면 우리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뒷짐을 지고 팔자(八字)로 느릿느릿 거드름을 피우고 위세를 부리면서 걷는 해학적인 모습일 뿐이다. 양반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느긋하게 천천히 걸어야 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걸음걸이가 무엇이 좋다는 말인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또 한번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양반걸음이라는 것을 어디에서 보고, 이것이 바로 양반걸음이라고 믿게 됐는지 검토해 보자. 우리는 양반걸음을 거의 탈춤이나 코미디를 통해서 보고 있다. 탈춤은 조선 후기에 썩어빠진 양반들을 비판하면서 형성됐다. 때문에 탈춤에 등장하는 양반은 제대로 된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 한심한 작자로만 등장한다. 이런 양반이 걷는 자세라고 해서 똑바를 리가 없다. 코미디에서는 이렇게 희화화된 양반걸음을 더 강조해서 표현한다. 이런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양반의 걸음걸이다.
이제 제대로 된 양반걸음을 복원해 보도록 하자. 필자 세대가 어렸을 때 양반들이 걷던 모습을 기억해서 복원하기만 해도 제대로 된 양반걸음은 나온다. 이 걸음도 글을 읽는 것에 그치지 말고 스스로 해 보도록 권하고 싶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바른 자세를 갖는 데 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뒷짐을 진다. 뒷짐을 진다고 해서 두 손을 엉덩이에 갖다 대기도 하는데, 이렇게 해서는 부족하다. 이것은 탈춤에서 본 한심한 양반의 모습이다. 요추 1번이 시작되는 지점 바로 위에 대는 것이 허리를 세우는 데 훨씬 더 좋은 자세가 된다. 허리 중에서 가장 안으로 들어간 지점에 댄다고 하면 훨씬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살짝 힘을 주어 누르면 허리는 만곡을 그리면서 세워진다. 그리고 어깨가 뒤로 펴지면서 가슴도 쫙 펴진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는 당당한 사람의 자세가 나온다.
보폭은 크게 뗀다. 종종걸음을 걸으면 허리가 굽지만, 다리를 길게 뻗으면 허리가 세워진다. 속도는 빨라도 되고 늦어도 된다. 그러나 조금 더 빨리 걸으면 허리가 더 세워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성큼성큼 걷는다는 말이 있는데, 양반걸음은 성큼성큼 걷는 것이다.
이렇게 허리가 세워지면 눈은 자연스럽게 멀리 보게 된다. 멀리 보면 시야가 넓어지고, 시야가 넓어지면 작은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된다. 허리와 등이 굽은 사람은 땅바닥을 보고 걷게 된다. 마치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전이라도 주으려고 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남의 것을 훔치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금살금 걷는 도선생처럼 이런 사람은 작은 욕심을 부리게 될 뿐만 아니라 자잘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낸다.
하나 더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양반걸음은 배를 앞으로 쑥 내밀고 걷는 것으로 오인되고 있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자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뒷짐을 지고 성큼성큼 걸으면 배는 쑥 들어가게 돼 있다. 허리가 서면 뒤로 가 있던 척추가 S자의 밑부분처럼 앞으로 휘는데, 그러면 배가 튀어나오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사람의 몸의 구조를 잘못 알고 있는 데서 오는 오해이다. 배가 앞으로 나오는 것은 허리가 세워지지 않으면 상체의 무게를 척추가 다 받지 못하고, 뱃살로 이를 보충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허리로 상체의 무게를 받으면 불필요한 배는 들어가게 돼 있다.
바른 자세를 하면 배는 들어가고 뱃살도 함께 빠진다. 이와 관련된 복부비만에 대해서는 다음에 비만 일반을 다룰 때 자세하게 얘기하도록 하겠다. <계속>
우리는 어느새 우리 몸의 자세에 대해 무관심한 가운데 살고 있다.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어른들은 허리를 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귀찮더라도 억지로 펴는 흉내라도 내 보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어떻게 해야 바른 자세가 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허리를 펴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보이지가 않는다. 간혹 학생들에게 똑바로 앉으라는 말씀을 하시는 선생님도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학생들은 뭐 저런 권위주의적인 선생도 다 있느냐며 이상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본다고 한다. 몸이 아프면 병원 가면 되는데, 자세가 어떻고 하는 얘기가 뭐가 필요하냐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 돼 있는 것이다.
그러니 더 나아가 자기 몸을 느껴 보려는 노력 같은 것을 할 리가 없다. 우리가 우리 몸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대개 물리나 화학의 식이나 기호로 표현되는 객관적인 지식일 뿐이다. 이러한 지식은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 봐야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몸에 관한 한, 나아가 마음에 관한 한에 있어서는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지식은 산지식이 되지 못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몸에 대해 알려면 자기 몸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느끼면 답도 찾을 수 있다. 몸을 느끼고 불편한 원인을 알게 되면, 그 원인을 제거해 주기만 하면 편해질 수 있는 것이다.
걸음걸이도 마찬가지이다. 길을 가다 보면 지팡이를 짚고 절뚝이면서 걷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몸을 알면 이것은 고관절이 심하게 틀어졌기 때문임을 알고, 그러면 고관절이 제 자리를 찾아가면 절룩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팔자소관이려니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재활을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는데, 운동을 하면 좋아지기는 한다. 그러나 고관절이 들어맞지 않는 한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는다. 필자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고관절만 맞으면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그걸 모르고 저렇게 얼마나 불편하게 살고 있을까. 빨리 몸살림운동이 번지면 저런 분들도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심하게 절뚝거리지는 않는다고 해도 지금 내 걸음걸이를 한번 점검해 보도록 하자. 걷기 시작할 때 습관적으로 어느 한쪽 발을 먼저 떼는 사람이 있다. 다른 쪽 발을 먼저 떼는 것은 잘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원인이 있다. 예컨대 왼쪽 고관절이 틀어져 있는 사람은 서 있을 때 왼쪽 발에 힘을 주지 못하고 오른쪽 발에 힘을 주고 서 있게 된다. 서 있다가 출발할 때에는 힘을 주고 있는 발을 축으로 삼아서 반대편 발부터 먼저 떼게 된다. 왼쪽 고관절이 틀어져 있는 사람은 대개 왼쪽 발부터 먼저 떼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오른쪽 고관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당연히 오른쪽 발부터 먼저 떼게 된다. 양쪽이 다 틀어져 있을 때에는 복잡하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이렇게 간단하게 자신의 걸음걸이만 느낄 수 있어도 자신의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발목이 삐끗했으면 발목이 삐거나 접질린 것이다. 무릎이 삐끗했으면 슬개골이 내려앉았거나 무릎뼈가 접질린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무슨 큰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므로 공연히 걱정하지 말고, 스스로 바로잡는 방법을 ‘몸살림운동’ 홈페이지에 들어와 배워서 교정하면 된다. 이렇게 알면 문제가 없는데,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발목이 접질려 있는 것은 접질린 뼈를 빼 주기만 하는데, 병원에 가면 수술을 하고 싱을 박기도 하고 깁스를 하기도 한다.
마사이워킹은 바른 것인가?
요즘 ‘마사이워킹슈즈’라는 것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국내산은 10만원대이고 스위스산은 30만원까지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싼 신발이 날개 돋친 듯이 잘 팔린다고 한다. 한국 사람은 건강에 좋다고 하면 안 하는 게 없으니, 이도 유행 따라 인기가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의 인체공학자 칼 뮬러(53)가 마사이족을 연구해 본 결과 유목민족인 마사이족은 육류가 주식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180㎝가 넘는 큰 키에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고 성인병도 거의 없는 데다 척추 질환도 거의 없는데, 그 비법이 걸음걸이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마사이족의 걸음걸이에 ‘마사이워킹’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러한 보행자세를 유지하는 데 좋은 신발까지 개발해서 팔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마사이워킹을 설명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마사이족은 부드러운 초원을 맨발로 자연스럽게 걷는데, 이때 마사이족은 발바닥 전체가 지면에 닿는 ‘중심부 보행’을 한다. 그런데 현대인은 아스팔트와 시멘트처럼 딱딱한 바닥 위를 딱딱한 밑창의 구두를 신고 걷는다. 무게중심이 발바닥의 중앙을 생략하고 뒤꿈치에서 앞으로 그대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면으로부터 받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면서 보행자세가 뒤틀리고 변형돼 관절이나 척추에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뮬러씨는 “발바닥 전체를 이용해 체중을 이동시키는 마사이워킹은 발에 주어지는 압력을 고르게 분산시켜 발을 편하게 해 주고 걸을 때 무릎과 허리에 오는 충격과 하중을 감소시켜 준다”고 설명한다. 이로 인해 척추나 관절에 이상이 오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걸을 때 발바닥 전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발도 가운데 부분을 조금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그러면 발바닥 중앙부까지 이용해서 걷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뮬러씨와는 완전히 견해를 달리한다. 우선 지적할 것은 마사이족이 육류를 주식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병이 적은 것은 그들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사이족보다 훨씬 더 육류만을 먹고사는 에스키모인이 현대인보다 더 성인병이 많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주식이 육류인가 채소류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바른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TV에서 마사이족이 걷는 모양을 보면 정말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걷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마사이족이 건강한 이유인 것이다.
다음으로 마사이족의 걸음걸이는 아주 잘못돼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것은 독자들께서 실제로 의식적으로 느끼면서 걸어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허리를 세우고 평지를 걸으면 자연스럽게 발뒤꿈치와 앞발바닥이 거의 동시에 땅에 닿지만 뒤꿈치가 약간은 먼저 닿는다. 그러면서 신체의 무게를 뒤꿈치로 받는 것이 아니라 앞발바닥으로 받게 된다. 무게를 뒤꿈치로 받게 되면 그 충격이 뼈를 통해 무릎과 허리로 전달되기 때문에 관절이 상하기 쉽다. 계단을 내려올 때에는 앞발바닥이 먼저 땅에 닿고 다음에 뒤꿈치가 땅에 닿는데, 이때에는 발바닥이 아니라 뒤꿈치로 무게를 받게 된다. 산에 올라갈 때에는 무릎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내려올 때에 많이 상하는 것은 앞발바닥이 먼저 땅에 닿고 이어서 몸의 전체 무게의 충격이 뒤꿈치를 통해서 바로 무릎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마사이족은 발바닥 전체가 땅에 동시에 닿는데, 이것은 허리를 굽게 한다. 실험을 하기 위해 한번 허리를 많이 구부리고 걸어 보자. 발바닥 전체가 동시에 땅에 닿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발바닥 중앙부까지 이용해서 걷는다는 마사이족의 걸음걸이는 실은 아주 잘못된 자세이고, 그렇게 걷는 자세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 개발한 마사이워킹 슈즈는 실은 이렇게 잘못된 자세를 계속하도록 도와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잘못된 보행자세에도 불구하고 마사이족이 건강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평상시에 허리를 세우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걸을 때에도 허리를 세우고 걸을 수 있는 것은 원시상태에서 운동량이 많아 허리의 근육이 튼튼해져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보행자세에도 불구하고 허리의 힘으로 허리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마사이족의 걸음걸이는 이 부족 나름의 독특한 문화의 산물이다. 이미 허리가 많이 굽어 있는 현대인이 이 부족의 걸음걸이를 모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더 잘 모방하기 위해 신발까지 바꾼다는 것은 본(本)과 말(末)이 전도된 것이다.
양반걸음이 가장 좋은 보행자세
자세도 일종의 문화이다. 장수마을(長壽村)이 따로 있는 것은 그 지역의 사람들이 허리를 세우는 자세에 익숙해 있고, 후대는 선대의 그러한 자세를 보고 본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TV에 나오는 장수촌 사람들의 자세를 눈여겨보면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허리가 꼿꼿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사이족의 보행자세가 따로 있듯이 우리 한민족에게도 좋은 걸음걸이가 있었다. 서양 문물이 밀려들어오면서 우리 것은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두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사라졌지만, 우리에게 고유한 걸음 자세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양반걸음이었다.
양반걸음 하면 우리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뒷짐을 지고 팔자(八字)로 느릿느릿 거드름을 피우고 위세를 부리면서 걷는 해학적인 모습일 뿐이다. 양반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느긋하게 천천히 걸어야 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걸음걸이가 무엇이 좋다는 말인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또 한번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양반걸음이라는 것을 어디에서 보고, 이것이 바로 양반걸음이라고 믿게 됐는지 검토해 보자. 우리는 양반걸음을 거의 탈춤이나 코미디를 통해서 보고 있다. 탈춤은 조선 후기에 썩어빠진 양반들을 비판하면서 형성됐다. 때문에 탈춤에 등장하는 양반은 제대로 된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 한심한 작자로만 등장한다. 이런 양반이 걷는 자세라고 해서 똑바를 리가 없다. 코미디에서는 이렇게 희화화된 양반걸음을 더 강조해서 표현한다. 이런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양반의 걸음걸이다.
이제 제대로 된 양반걸음을 복원해 보도록 하자. 필자 세대가 어렸을 때 양반들이 걷던 모습을 기억해서 복원하기만 해도 제대로 된 양반걸음은 나온다. 이 걸음도 글을 읽는 것에 그치지 말고 스스로 해 보도록 권하고 싶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바른 자세를 갖는 데 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뒷짐을 진다. 뒷짐을 진다고 해서 두 손을 엉덩이에 갖다 대기도 하는데, 이렇게 해서는 부족하다. 이것은 탈춤에서 본 한심한 양반의 모습이다. 요추 1번이 시작되는 지점 바로 위에 대는 것이 허리를 세우는 데 훨씬 더 좋은 자세가 된다. 허리 중에서 가장 안으로 들어간 지점에 댄다고 하면 훨씬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살짝 힘을 주어 누르면 허리는 만곡을 그리면서 세워진다. 그리고 어깨가 뒤로 펴지면서 가슴도 쫙 펴진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는 당당한 사람의 자세가 나온다.
보폭은 크게 뗀다. 종종걸음을 걸으면 허리가 굽지만, 다리를 길게 뻗으면 허리가 세워진다. 속도는 빨라도 되고 늦어도 된다. 그러나 조금 더 빨리 걸으면 허리가 더 세워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성큼성큼 걷는다는 말이 있는데, 양반걸음은 성큼성큼 걷는 것이다.
이렇게 허리가 세워지면 눈은 자연스럽게 멀리 보게 된다. 멀리 보면 시야가 넓어지고, 시야가 넓어지면 작은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된다. 허리와 등이 굽은 사람은 땅바닥을 보고 걷게 된다. 마치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전이라도 주으려고 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남의 것을 훔치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금살금 걷는 도선생처럼 이런 사람은 작은 욕심을 부리게 될 뿐만 아니라 자잘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낸다.
하나 더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양반걸음은 배를 앞으로 쑥 내밀고 걷는 것으로 오인되고 있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자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뒷짐을 지고 성큼성큼 걸으면 배는 쑥 들어가게 돼 있다. 허리가 서면 뒤로 가 있던 척추가 S자의 밑부분처럼 앞으로 휘는데, 그러면 배가 튀어나오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사람의 몸의 구조를 잘못 알고 있는 데서 오는 오해이다. 배가 앞으로 나오는 것은 허리가 세워지지 않으면 상체의 무게를 척추가 다 받지 못하고, 뱃살로 이를 보충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허리로 상체의 무게를 받으면 불필요한 배는 들어가게 돼 있다.
바른 자세를 하면 배는 들어가고 뱃살도 함께 빠진다. 이와 관련된 복부비만에 대해서는 다음에 비만 일반을 다룰 때 자세하게 얘기하도록 하겠다. <계속>
김철/몸살림운동가 |
출처 : 몸살림운동 부산동호회
글쓴이 : 공구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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