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럼증도 근원은 고관절
요즘 몸살림운동 홈페이지에는 가끔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상담을 요청해 온다. 앉았다가 일어서면 머리가 핑 도는 정도는 가벼운 증세에 지나지 않고, 심한 경우에는 "어느 날 갑작스런 심한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으로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CT촬영 결과 뇌에는 전혀 이상이 없고 달팽이관의 이상일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었습니다. (중략) 어지러운 증상이 생긴 지 3일 정도 지났는데 처음보다는 다소 나아지긴 하였지만 지금도 한걸음 뗄 때마다 어지럽습니다. 도와주십시오"라는 상담까지 들어온다. 이런 증세는 오래가는 경우에는 몇 년이 돼도 가시지 않고 지속되기도 한다. 어지럼증은 아무래도 연세가 많은 분에게 더 많이 오기는 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온다.
어지럼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보통은 귀의 이상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몸의 운동감각이나 위치감각을 중추신경에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귀에 있는 전정기관(前庭器官)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는 뇌졸중의 증상인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일종의 풍이라고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귀를 검사해서 이상이 없는데도 어지럼증이 있다면 뇌혈관 이상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한다. 뇌혈관이 좁아져 머리로 가는 피가 부족하면 어지럼증이 생기는데, 자꾸 반복되거나 심하게 되면 완전 마비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실제 사례를 통해서 원인과 해법을 찾아보도록 하자. 이 사례를 쓴 분은 정당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모 공단 감사로 계신 L선생인데, 작년 가을에 이 글을 써서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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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다시 생각조차 하기 끔찍한 어지럼증이 찾아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0년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새천년민주당에서 부대변인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부대변인의 일과는 아침 일찍 출근해 조간신문 기사를 점검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각종 회의 브리핑, 논평, 현안 사항에 대한 입장 표명, 저녁 때 나오는 가판신문 분석에 이르기까지 하는 일이 워낙 많았다. 그러니 업무는 보통 밤늦게야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대변인실 업무라는 게 그럴 성질의 되지 못했다. 밤 느지막이 업무가 끝난 뒤에는 기자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더구나 근무환경도 지극히 열악해서 200여 명의 기자들이 부대변인실로 몰려들어서 담배를 피워 댔다. 기자실에서는 금연이기 때문에 부대변인실을 흡연실로 이용하니 자욱한 담배연기가 그칠 새가 잠시도 없었다. 2년 가까이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당 대표가 바뀌어 새로 취임한 대표를 모시고 지역을 순회하는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 부산에서 저녁 모임을 마치고 수행한 기자들과 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진 다음 마산으로 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전날 마신 술이 채 깨지 않은 데다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더 이상 업무를 수행하는 게 무리일 것 같아 서둘러 귀경길에 오르려고 했다. 몸의 컨디션이라는 게 나쁘다가도 조금 쉬면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니 집에 가서 쉬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하늘이 뱅글뱅글 돌고 도무지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동행하던 한겨레신문 기자가 놀라 인근 병원 응급실로 급히 데리고 가 응급처지를 하게 하니 어지럼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가라앉았다. 하지만 바로 서울로 올라가서는 안 될 것 같아 하룻밤 병원 신세를 지고 다음날 혼자서 올라오게 되었다.
서울에 와서 당사에서 가까이 있는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를 하기 위해 각종 검사(CT, MRI촬영, 귀검사, 심전도검사 등등)를 해 보았는데, 아무데도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그 이후 처음 발병할 때처럼 하늘이 팽팽 도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어질어질한 자각증상이 있어 찜찜하고 기분 나쁜 상태는 지속되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 평상시와 똑같이 대변인실에서 논평하랴, 회의 브리핑하랴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다시 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주위 동료들에게 증상을 알리고 전에 진찰을 받은 대학병원에 연락하여 응급차를 불러 다시 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너무나 답답한 것은 병원에 가서 수액만 공급받고 검사만 하고 나서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오니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고 퇴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병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는 이 심한 어지럼증은 수시로 나를 엄습해 왔다. 이것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긴장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나에게는 심한 심리적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원인도 모르는데, 때때로 세상이 뱅뱅 도니 초조한 마음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당시에는 누가 이 어지러운 내 머리만 좀 살려준다면, 나는 그 사람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겠다는 마음까지 절로 들었다.
이 무렵 주위 친구로부터 어지러운 증상은 단학에서 말하는 상기증(上氣症)에 해당하고, 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증상은 분명히 있는데 원인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던 차에 그 길로 단학선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친구와 똑같은 말을 하면서 수련을 하라고 권했다. 어차피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등록을 하고 열심히 다녔는데, 그 덕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 어지럼증은 차츰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올해(2005년) 초에 다시 그 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신촌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이곳에서도 역시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하는 진단결과가 나왔다.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수액만 맞으면서 누워 있다가 퇴원해야 하니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이 무렵 대학 시절부터 친구였던 L이 몸살림운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친구는 대학 때부터 학생운동이니 사회운동이니 시민운동이니 운동을 한답시고 엄한 데만 돌아다녔으니 사람의 몸이나 건강과 관련된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또 그렇게 신통할 것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밑져 봐야 본전이니 전화를 걸어 증상을 얘기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의외로 쉽게 선선한 답이 나왔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목이 접질려서 그런 것이니 당장 오라고 했다. L은 자신이 확실하게 해결해 줄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스승님(김철 선생)께서는 확실한 해법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급한 마음에 그가 경영하는 출판사 사무실로 찾아갔는데, 한눈에 보고는 고관절이 틀어져 있다고 하고, 엎드리게 하고는 등 전체가 많이 굳어 있다고 한다. 우선 그곳 사무실에서 엉덩이를 몇 번 걷어차이고 나서 광화문 수련장에 같이 가서 스승님을 뵙자고 해서 따라갔다. 김철 선생께서는 어지럼증의 원인은 목뼈가 접질려서 신경을 누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목을 잡아 주셨다. 그런 다음 다른 부위도 잡아 주시고는 집에 가서 열심히 숙제를 하라고 하셨다.
뭐 이런 방법도 다 있나 반신반의를 하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어서 열심히 숙제를 했는데, 그 이후로는 믿기지 않게도 어지러운 증상은 씻은 듯이 가셨다. 어지럼증 때문에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검사에만도 수백만 원이 들었는데, 너무나 쉽게 해결이 된 것이었다. 물론 어지럼증은 하나의 증상이기 때문에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모든 어지럼증이 목뼈가 접질린 때문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경우는 결과가 증명해 주듯이 원인이 목뼈가 접질린 것이니, 아무리 CT나 MRI촬영을 해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L의 도움으로 김철 선생님을 만나 어지러운 머리를 살릴 수 있었다. 그때부터 김철 선생이 쓰신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에 참으로 공감이 갔다. 그래서 집사람과 아들에게 그 책을 읽기를 권하고 함께 공부를 하자고 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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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선생은 어지럼증(현기증도 같은 것이다)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했는데, 필자의 경험으로는 일단 어지럼증은 거의 다가 목이 접질려서 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목이 접질려 신경이 잘 통하지 않으면 내이(內耳)에 있는 몸의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전정기관과 중추신경계의 연결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전정기관에 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고 해도 제대로 평형감각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L선생이 대학병원에서 아무리 검사를 해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전정기관이 몸의 평형을 담당한다고 해서 어지럼증이 있는 사람은 이곳을 검사하게 되는데, 실은 이곳에 문제가 생겨서 어지럼증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목이 접질리면 목의 근육이 굳는다. 근육이 굳으면 그 안을 지나가는 신경을 누른다. 신경이 눌리면 통증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경이 통과시켜야 할 정보를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럴 때 필자는 '신경이 약해져 있다'는 표현을 쓴다. 사람들은 신경이 약해져 있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는 대단히 중요한 현상이다. 중추신경계와 우리 몸의 각 기관을 연결시켜 주는 말초신경계가 정보를 주고받지 못하면 그 기관이 잘 작동되지 않을뿐더러 중추신경계에도 이상이 온다. 아주 간단한 예로 전에 썼던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전자의 예이고, 오른쪽 목이 접질리면 편두통이 오는 것이 후자의 예이다. 이렇게 중요한 신경에 대해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신경이 막혀서 병이 올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다. 신경에 대해서는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를 함께 차후에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L선생의 경우 실은 어지럼증이 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고관절이 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지럼증이 있는 사람은 다 마찬가지이다. 고관절이 틀어져 골반이 밑으로 말려 내려가 있고, 이로 인해 허리에 힘을 주지 못하게 되면서 흉추 7번이 밑으로 처진다. 그러면 올라가 있어야 할 등이 밑으로 처지고, 이는 목 근육을 밑으로 잡아당기게 된다. 어지럼증이 5년간이나 지속된 것은 등이 굽어 목을 잡아당겨 접질려 있었는데, 그것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L선생은 고관절이 바로잡힌 가운데 열심히 숙제를 해서 등을 펴려고 했기 때문에 다시 목이 틀어지지 않게 됐고, 그래서 5년 동안 앓던 어지럼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실제로 숙제를 해서 몸을 펴려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다시 목이 접질려서 다시 어지럼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이 있다. 몸을 펴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어지럼증이 나타날 때 구역질이 함께 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는 공명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위(胃)에서 먹은 것을 토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구역질은 공명이 막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임산부가 헛구역질을 하는 것도 실은 공명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이 더 오래 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공명이 더 많이 막혀 있느냐 뚫려 있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헛구역질을 몇 번 하고 나면 그 전보다 몸의 상태가 시원해져 있다고 느끼게 되는데, 이는 헛구역질이 막혀 있는 공명을 스스로 뚫으려고 하는 자구책이기 때문이다. 구역질을 몇 번 하다 보면 막혀 있던 공명이 조금은 풀리는 것이다. 공명이 막히는 것 역시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있기 때문이므로 몸을 펴고 있기만 하면 공명은 뚫린다.
다리가 당기는 것도 고관절 때문
마침 L선생의 글은 앞에 싫어 놓은 것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데, 좀 더 따라가 보기로 하자.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겠지만, 산에 가서 사고가 났을 때 응급처치 요령으로 알아 놓으면 약간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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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후에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들과 금강산 등반 일정이 잡혀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L의 식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많고 금강산을 찾는다는 기분에 들떠 우리는 차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부터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범과는 대학 시절부터 술친구였고 함께한 선후배들도 수십 년 지기들이라 기분 좋게 떠들어대면서 술잔을 나누었다. 이렇게 아침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금강산에 도착하고 나서 밤 12시 지나 금강산호텔 앞 포장마차까지 이어졌다. 그날 마신 술의 종류만도 남한 술, 북한 술에 양주까지 합치면 10여 가지에 이르렀다.
이튿날 아침 일찍 기상해서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세존봉(해발 1,132m) 등반길에 나섰다. 일반에게는 비룡폭포까지만 입산을 허용하지만, 특별히 팀을 만들어 요청을 하면 세존봉 등반까지 안내를 해 준다. 어쨌든 전날 그렇게 술을 퍼 마셨건만 다들 멀쩡하게 산행을 잘도 하고 있었다. 나도 속이 부대끼기는 했지만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고 비룡폭포를 지나 세존봉 장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었다. 역시 금강산은 높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는 구름 위로 솟아 끝없이 펼쳐지는 봉우리의 아름다운 자태에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힘든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세존봉 정상을 불과 200~300m 남겨두고 나는 갑자기 허벅지에 쥐가 나서 꼼작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동행하던 P선배가 피를 뽑아야 한다고 해서 L선배가 바늘로 피를 뽑았는데, 별로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정상 바로 밑이라 부축을 받고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 억지로 정상까지 올라갔다. 그곳에서 L을 찾아 근육을 풀려고 했으나, L은 먼저 올라가 어디에서 자리를 잡고 술을 퍼마시고 있는지 아픈 친구를 외면하고 나타나지도 않았다.
대신에 L보다 훨씬 믿음직한 그의 아들이 와서 근육을 풀어 주었다. L의 아들도 몸살림운동 수련을 하고 있었다. 고관절이 틀어져서 근육이 굳은 거라며 엉덩이를 냅다 차고, 허벅지와 종아리의 독맥을 풀어야 한다며 아픈 곳을 손가락으로 푹푹 쑤셔 댔다. 나는 너무나 아파 오만상을 찌푸리며 금강산 세존봉에서 '마루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상에 오른 동료들이 빙 둘러 구경하고 있었는데, 몇몇은 저 녀석 어제 술 퍼마시는 것을 보고 그럴 줄 알았다며 고소해하는 표정을 짓고 실실 웃고 있었다. 나도 산을 잘 타지도 못하는 주제에 전날 술까지 엄청 마셔 댔으니 '내 탓'이라고 후회는 했다. 하지만 천하절경 금강산 세존봉에서 경치 구경은 고사하고 밥도 먹지 못한 채 아파서 끙끙대기만 하는 신세가 너무나 처량하다는 생각도 절로 들었다.
대충 걸을 수 있게 돼서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세존봉에서 하산하는 코스는 경사가 거의 80도가 넘는 절벽에 허술한 사다리를 타고 수백 미터를 내려와야 하는 난코스였던 것이다. 엉금엉금 사다리를 타고 억지로 급경사를 내려오고 나니 조금 풀렸던 근육이 이번에는 바위처럼 딴딴하게 굳어 아예 한 걸음도 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한 사람이 다리를 메고 두 사람이 양 어깨를 각각 메고 내려오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경사가 너무 급해 미끄러졌기 때문에 100미터도 못 가고 포기하고 말았다.
하산 길만 4시간 가까이 걸리는 코스인 데다 그곳은 북한 땅이니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남한 땅이라면 휴대폰으로 119에 구조요청을 하면 금방 헬리콥터가 날아와 실어갈 테지만, 이곳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 지경이 되자 현대아산 측에서 가이드하는 직원도, 북한 측에서 산행을 함께하는 안내원도 바짝 긴장했고, 우리 일행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때 앞에서 말한 아버지보다 훨씬 훌륭한 L의 아들이 정성스레 다리 근육을 풀어 주기 시작했다. 엉덩이 위쪽부터 허벅지까지 계속 치면서 근육을 풀어 주자 20여 분 이후에는 다시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신기하게 그 후 3시간 이상 산길을 걸어 내려왔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근육을 풀어 준 아들은 가만히 있는데 L이 뒤에서 따라오면서 잔소리를 해 댔다. 경사가 심한 이 산길에서 빨리 걷다가 미끄러지면 다시 근육이 놀라서 굳을 수도 있으니 천천히 걸으라는 것이었다. 다시 굳으면 이번에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니, 평지가 나타날 때까지는 천천히 걸으라면서 겁을 주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술을 마셨기 때문에 다급한 순간에 뼈나 근육을 만지면 오히려 실수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들은 전혀 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었다는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사람이 위급한 순간에 처했을 때 도움을 얻는 것은 평상시에 비길 수 없을 만큼 요긴한 것이다. 나는 금강산 세존봉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다음부터는 L의 아들과 마주치면 저절로 손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 일 정도로 그날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L의 아들의 도움으로 금강산에서 굳어진 다리, 아니 목숨을 살렸던 것이다.
금강산을 다녀오고 나서 평소에 목이 좋지 않다고 하소연하던 아내와 앉는 자세가 좋지 않아 정형외과에서 교정을 받던 아들을 데리고 광화문 수련장을 다시 찾았다. 김철 선생님으로부터 교정을 받은 아내와 아들은 그날 이후 집에서 꾸준하게 숙제를 하고 있다. 엄마, 아빠에 오빠까지 뒷짐을 지고 가슴을 펴고 걷노라면 8살 된 딸도 재미가 있는지 자기도 뒷짐을 지고 따라서 걷는다. 이렇게 한바탕 걷고 나면 답답하던 가슴도 시원해지고 가족들 간에 일체감도 형성되는 것 같아 참으로 좋다.
처음에는 잘 받아들이지 않던 우리 식구들이 이제는 어느덧 자발적으로 몸살림 가족이 돼 가고 있다. 바른 자세로 건강을 지키자는 김철 선생님과 우리 친구 L의 노력이 크게 뜻을 이루어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는 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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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선생이 허벅지에 쥐가 난 것은 고관절이 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뼈가 틀어져 있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 그 뼈와 관계가 있는 독맥이라는 곳에서 이제 그만 움직이라고 경고를 보내는데, 그것이 근육이 심하게 굳는 형태로 나타난다. 팔꿈치에 엘보가 오는 것은 손목이 틀어져 있을 때 팔뚝의 독맥이 경고를 보내는 것이고, 종아리에 쥐가 나는 것은 발목이 틀어져 있을 때 종아리의 독맥이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는 사람이 꽤 있는데, 이런 사람은 발목이 뼈 있다고 보면 된다.
L선생은 당시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L선생에게는 무리한 등산을 하니, 이제 큰일이 나기 전에 그만 좀 하라고 허벅지가 스스로 굳어 버렸다. 아프면 못 움직이니 이렇게 해서 못 움직이게 한 것이다. 참으로 오묘한 우리 몸의 조화다. 그것을 겨우 풀었는데, 가파른 경사를 눈으로 보면서 내려오다 보니 그 근육이 심하게 놀라 이제는 전혀 걷지 못할 만큼 굳어 버렸다. 이때 다시 허벅지 독맥을 쳐서 허벅지 근육을 풀어 주었다. 그래서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다. L선생 본인이야 처음 당하는 일이라 많이 놀랐겠지만, 이렇게 간단한 것이다. 우리 몸이 보이는 반응은 이렇게 원인이 단순하고, 원인이 단순하니 해법도 단순하다. 그래서 몸의 원리를 알고 나면 몸이 아픈 것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없어진다.
필자를 찾아오는 사람 중에는 다리가 당기고 아프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이런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이것도 원인은 간단하다. 기본적으로는 고관절이 틀어져서 그 틀어진 쪽의 다리 근육이 굳어서 아픈 것이고, 또는 고관절이 틀어진 쪽의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니까 반대편 다리에만 힘을 주어 과부하가 걸려 그쪽 다리의 근육이 굳어서 아픈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도 간단하다. 고관절을 바로잡고 굳은 근육을 풀어 주기만 하면 된다. 이런 증세를 신경통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냥 고관절이 틀어져서 생긴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단순히 무릎이 틀어져 있는 것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퇴행성관절염이라는 거창한 잘못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증세도 대개는 고관절이 틀어져서 오는 것일 뿐이다. 고관절이 틀어져서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하니 삐끗하면서 무릎이 틀어지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발목이 삐거나 접질리는 것도 대개는 고관절이 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하나라고 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고관절이다. 우리 몸에서 주춧돌 역할을 하는 고관절이 틀어지면, 그 위의 구조물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그 아래의 구조물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렇게 원리는 단순한 것인데, 세상 사람들은 단순한 사실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복잡하게 보고 있다. 그리고 복잡하게 보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문명의 병폐이다.
사람의 몸은 단순하게 봐야한다. 그러면 자기 몸이 보일 것이고, 자기 몸이 보이면 건강에 대해서 걱정할 것도 없게 된다. 어디가 아프면, 아 이게 문제로구나 하고 금방 알 수 있고, 원인을 아니 해법도 금방 찾을 수 있게 된다.
정확한 원인을 모르면서(실제로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항상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았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이 약을 먹으면 좋아질 확률이 몇 퍼센트이고, 저런 방법으로 수술을 하면 나을 확률이 몇 퍼센트라는 식으로 복잡한 확률게임을 한다. 이 길로 가면 부산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몇 퍼센트이고, 제주도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몇 퍼센트라는 식이다. 이 미로에서 벗어나 곧게 뻗은 탄탄대로로 쉽게 가자는 것이 몸살림운동의 취지이다.
요즘 몸살림운동 홈페이지에는 가끔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상담을 요청해 온다. 앉았다가 일어서면 머리가 핑 도는 정도는 가벼운 증세에 지나지 않고, 심한 경우에는 "어느 날 갑작스런 심한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으로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CT촬영 결과 뇌에는 전혀 이상이 없고 달팽이관의 이상일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었습니다. (중략) 어지러운 증상이 생긴 지 3일 정도 지났는데 처음보다는 다소 나아지긴 하였지만 지금도 한걸음 뗄 때마다 어지럽습니다. 도와주십시오"라는 상담까지 들어온다. 이런 증세는 오래가는 경우에는 몇 년이 돼도 가시지 않고 지속되기도 한다. 어지럼증은 아무래도 연세가 많은 분에게 더 많이 오기는 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온다.
어지럼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보통은 귀의 이상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몸의 운동감각이나 위치감각을 중추신경에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귀에 있는 전정기관(前庭器官)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는 뇌졸중의 증상인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일종의 풍이라고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귀를 검사해서 이상이 없는데도 어지럼증이 있다면 뇌혈관 이상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한다. 뇌혈관이 좁아져 머리로 가는 피가 부족하면 어지럼증이 생기는데, 자꾸 반복되거나 심하게 되면 완전 마비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실제 사례를 통해서 원인과 해법을 찾아보도록 하자. 이 사례를 쓴 분은 정당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모 공단 감사로 계신 L선생인데, 작년 가을에 이 글을 써서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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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다시 생각조차 하기 끔찍한 어지럼증이 찾아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0년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새천년민주당에서 부대변인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부대변인의 일과는 아침 일찍 출근해 조간신문 기사를 점검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각종 회의 브리핑, 논평, 현안 사항에 대한 입장 표명, 저녁 때 나오는 가판신문 분석에 이르기까지 하는 일이 워낙 많았다. 그러니 업무는 보통 밤늦게야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대변인실 업무라는 게 그럴 성질의 되지 못했다. 밤 느지막이 업무가 끝난 뒤에는 기자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더구나 근무환경도 지극히 열악해서 200여 명의 기자들이 부대변인실로 몰려들어서 담배를 피워 댔다. 기자실에서는 금연이기 때문에 부대변인실을 흡연실로 이용하니 자욱한 담배연기가 그칠 새가 잠시도 없었다. 2년 가까이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당 대표가 바뀌어 새로 취임한 대표를 모시고 지역을 순회하는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 부산에서 저녁 모임을 마치고 수행한 기자들과 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진 다음 마산으로 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전날 마신 술이 채 깨지 않은 데다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더 이상 업무를 수행하는 게 무리일 것 같아 서둘러 귀경길에 오르려고 했다. 몸의 컨디션이라는 게 나쁘다가도 조금 쉬면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니 집에 가서 쉬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하늘이 뱅글뱅글 돌고 도무지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동행하던 한겨레신문 기자가 놀라 인근 병원 응급실로 급히 데리고 가 응급처지를 하게 하니 어지럼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가라앉았다. 하지만 바로 서울로 올라가서는 안 될 것 같아 하룻밤 병원 신세를 지고 다음날 혼자서 올라오게 되었다.
서울에 와서 당사에서 가까이 있는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를 하기 위해 각종 검사(CT, MRI촬영, 귀검사, 심전도검사 등등)를 해 보았는데, 아무데도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그 이후 처음 발병할 때처럼 하늘이 팽팽 도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어질어질한 자각증상이 있어 찜찜하고 기분 나쁜 상태는 지속되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 평상시와 똑같이 대변인실에서 논평하랴, 회의 브리핑하랴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다시 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주위 동료들에게 증상을 알리고 전에 진찰을 받은 대학병원에 연락하여 응급차를 불러 다시 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너무나 답답한 것은 병원에 가서 수액만 공급받고 검사만 하고 나서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오니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고 퇴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병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는 이 심한 어지럼증은 수시로 나를 엄습해 왔다. 이것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긴장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나에게는 심한 심리적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원인도 모르는데, 때때로 세상이 뱅뱅 도니 초조한 마음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당시에는 누가 이 어지러운 내 머리만 좀 살려준다면, 나는 그 사람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겠다는 마음까지 절로 들었다.
이 무렵 주위 친구로부터 어지러운 증상은 단학에서 말하는 상기증(上氣症)에 해당하고, 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증상은 분명히 있는데 원인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던 차에 그 길로 단학선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친구와 똑같은 말을 하면서 수련을 하라고 권했다. 어차피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등록을 하고 열심히 다녔는데, 그 덕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 어지럼증은 차츰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올해(2005년) 초에 다시 그 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신촌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이곳에서도 역시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하는 진단결과가 나왔다.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수액만 맞으면서 누워 있다가 퇴원해야 하니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이 무렵 대학 시절부터 친구였던 L이 몸살림운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친구는 대학 때부터 학생운동이니 사회운동이니 시민운동이니 운동을 한답시고 엄한 데만 돌아다녔으니 사람의 몸이나 건강과 관련된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또 그렇게 신통할 것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밑져 봐야 본전이니 전화를 걸어 증상을 얘기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의외로 쉽게 선선한 답이 나왔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목이 접질려서 그런 것이니 당장 오라고 했다. L은 자신이 확실하게 해결해 줄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스승님(김철 선생)께서는 확실한 해법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급한 마음에 그가 경영하는 출판사 사무실로 찾아갔는데, 한눈에 보고는 고관절이 틀어져 있다고 하고, 엎드리게 하고는 등 전체가 많이 굳어 있다고 한다. 우선 그곳 사무실에서 엉덩이를 몇 번 걷어차이고 나서 광화문 수련장에 같이 가서 스승님을 뵙자고 해서 따라갔다. 김철 선생께서는 어지럼증의 원인은 목뼈가 접질려서 신경을 누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목을 잡아 주셨다. 그런 다음 다른 부위도 잡아 주시고는 집에 가서 열심히 숙제를 하라고 하셨다.
뭐 이런 방법도 다 있나 반신반의를 하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어서 열심히 숙제를 했는데, 그 이후로는 믿기지 않게도 어지러운 증상은 씻은 듯이 가셨다. 어지럼증 때문에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검사에만도 수백만 원이 들었는데, 너무나 쉽게 해결이 된 것이었다. 물론 어지럼증은 하나의 증상이기 때문에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모든 어지럼증이 목뼈가 접질린 때문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경우는 결과가 증명해 주듯이 원인이 목뼈가 접질린 것이니, 아무리 CT나 MRI촬영을 해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L의 도움으로 김철 선생님을 만나 어지러운 머리를 살릴 수 있었다. 그때부터 김철 선생이 쓰신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에 참으로 공감이 갔다. 그래서 집사람과 아들에게 그 책을 읽기를 권하고 함께 공부를 하자고 했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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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선생은 어지럼증(현기증도 같은 것이다)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했는데, 필자의 경험으로는 일단 어지럼증은 거의 다가 목이 접질려서 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목이 접질려 신경이 잘 통하지 않으면 내이(內耳)에 있는 몸의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전정기관과 중추신경계의 연결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전정기관에 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고 해도 제대로 평형감각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L선생이 대학병원에서 아무리 검사를 해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전정기관이 몸의 평형을 담당한다고 해서 어지럼증이 있는 사람은 이곳을 검사하게 되는데, 실은 이곳에 문제가 생겨서 어지럼증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목이 접질리면 목의 근육이 굳는다. 근육이 굳으면 그 안을 지나가는 신경을 누른다. 신경이 눌리면 통증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경이 통과시켜야 할 정보를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럴 때 필자는 '신경이 약해져 있다'는 표현을 쓴다. 사람들은 신경이 약해져 있다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는 대단히 중요한 현상이다. 중추신경계와 우리 몸의 각 기관을 연결시켜 주는 말초신경계가 정보를 주고받지 못하면 그 기관이 잘 작동되지 않을뿐더러 중추신경계에도 이상이 온다. 아주 간단한 예로 전에 썼던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전자의 예이고, 오른쪽 목이 접질리면 편두통이 오는 것이 후자의 예이다. 이렇게 중요한 신경에 대해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신경이 막혀서 병이 올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다. 신경에 대해서는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를 함께 차후에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L선생의 경우 실은 어지럼증이 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고관절이 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지럼증이 있는 사람은 다 마찬가지이다. 고관절이 틀어져 골반이 밑으로 말려 내려가 있고, 이로 인해 허리에 힘을 주지 못하게 되면서 흉추 7번이 밑으로 처진다. 그러면 올라가 있어야 할 등이 밑으로 처지고, 이는 목 근육을 밑으로 잡아당기게 된다. 어지럼증이 5년간이나 지속된 것은 등이 굽어 목을 잡아당겨 접질려 있었는데, 그것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L선생은 고관절이 바로잡힌 가운데 열심히 숙제를 해서 등을 펴려고 했기 때문에 다시 목이 틀어지지 않게 됐고, 그래서 5년 동안 앓던 어지럼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실제로 숙제를 해서 몸을 펴려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다시 목이 접질려서 다시 어지럼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이 있다. 몸을 펴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어지럼증이 나타날 때 구역질이 함께 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는 공명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위(胃)에서 먹은 것을 토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구역질은 공명이 막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임산부가 헛구역질을 하는 것도 실은 공명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이 더 오래 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공명이 더 많이 막혀 있느냐 뚫려 있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헛구역질을 몇 번 하고 나면 그 전보다 몸의 상태가 시원해져 있다고 느끼게 되는데, 이는 헛구역질이 막혀 있는 공명을 스스로 뚫으려고 하는 자구책이기 때문이다. 구역질을 몇 번 하다 보면 막혀 있던 공명이 조금은 풀리는 것이다. 공명이 막히는 것 역시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있기 때문이므로 몸을 펴고 있기만 하면 공명은 뚫린다.
다리가 당기는 것도 고관절 때문
마침 L선생의 글은 앞에 싫어 놓은 것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데, 좀 더 따라가 보기로 하자.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겠지만, 산에 가서 사고가 났을 때 응급처치 요령으로 알아 놓으면 약간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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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후에 198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들과 금강산 등반 일정이 잡혀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L의 식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많고 금강산을 찾는다는 기분에 들떠 우리는 차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부터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범과는 대학 시절부터 술친구였고 함께한 선후배들도 수십 년 지기들이라 기분 좋게 떠들어대면서 술잔을 나누었다. 이렇게 아침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금강산에 도착하고 나서 밤 12시 지나 금강산호텔 앞 포장마차까지 이어졌다. 그날 마신 술의 종류만도 남한 술, 북한 술에 양주까지 합치면 10여 가지에 이르렀다.
이튿날 아침 일찍 기상해서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세존봉(해발 1,132m) 등반길에 나섰다. 일반에게는 비룡폭포까지만 입산을 허용하지만, 특별히 팀을 만들어 요청을 하면 세존봉 등반까지 안내를 해 준다. 어쨌든 전날 그렇게 술을 퍼 마셨건만 다들 멀쩡하게 산행을 잘도 하고 있었다. 나도 속이 부대끼기는 했지만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고 비룡폭포를 지나 세존봉 장상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었다. 역시 금강산은 높이 올라갈수록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는 구름 위로 솟아 끝없이 펼쳐지는 봉우리의 아름다운 자태에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힘든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세존봉 정상을 불과 200~300m 남겨두고 나는 갑자기 허벅지에 쥐가 나서 꼼작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동행하던 P선배가 피를 뽑아야 한다고 해서 L선배가 바늘로 피를 뽑았는데, 별로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정상 바로 밑이라 부축을 받고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 억지로 정상까지 올라갔다. 그곳에서 L을 찾아 근육을 풀려고 했으나, L은 먼저 올라가 어디에서 자리를 잡고 술을 퍼마시고 있는지 아픈 친구를 외면하고 나타나지도 않았다.
대신에 L보다 훨씬 믿음직한 그의 아들이 와서 근육을 풀어 주었다. L의 아들도 몸살림운동 수련을 하고 있었다. 고관절이 틀어져서 근육이 굳은 거라며 엉덩이를 냅다 차고, 허벅지와 종아리의 독맥을 풀어야 한다며 아픈 곳을 손가락으로 푹푹 쑤셔 댔다. 나는 너무나 아파 오만상을 찌푸리며 금강산 세존봉에서 '마루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상에 오른 동료들이 빙 둘러 구경하고 있었는데, 몇몇은 저 녀석 어제 술 퍼마시는 것을 보고 그럴 줄 알았다며 고소해하는 표정을 짓고 실실 웃고 있었다. 나도 산을 잘 타지도 못하는 주제에 전날 술까지 엄청 마셔 댔으니 '내 탓'이라고 후회는 했다. 하지만 천하절경 금강산 세존봉에서 경치 구경은 고사하고 밥도 먹지 못한 채 아파서 끙끙대기만 하는 신세가 너무나 처량하다는 생각도 절로 들었다.
대충 걸을 수 있게 돼서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세존봉에서 하산하는 코스는 경사가 거의 80도가 넘는 절벽에 허술한 사다리를 타고 수백 미터를 내려와야 하는 난코스였던 것이다. 엉금엉금 사다리를 타고 억지로 급경사를 내려오고 나니 조금 풀렸던 근육이 이번에는 바위처럼 딴딴하게 굳어 아예 한 걸음도 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한 사람이 다리를 메고 두 사람이 양 어깨를 각각 메고 내려오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경사가 너무 급해 미끄러졌기 때문에 100미터도 못 가고 포기하고 말았다.
하산 길만 4시간 가까이 걸리는 코스인 데다 그곳은 북한 땅이니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남한 땅이라면 휴대폰으로 119에 구조요청을 하면 금방 헬리콥터가 날아와 실어갈 테지만, 이곳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 지경이 되자 현대아산 측에서 가이드하는 직원도, 북한 측에서 산행을 함께하는 안내원도 바짝 긴장했고, 우리 일행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때 앞에서 말한 아버지보다 훨씬 훌륭한 L의 아들이 정성스레 다리 근육을 풀어 주기 시작했다. 엉덩이 위쪽부터 허벅지까지 계속 치면서 근육을 풀어 주자 20여 분 이후에는 다시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신기하게 그 후 3시간 이상 산길을 걸어 내려왔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근육을 풀어 준 아들은 가만히 있는데 L이 뒤에서 따라오면서 잔소리를 해 댔다. 경사가 심한 이 산길에서 빨리 걷다가 미끄러지면 다시 근육이 놀라서 굳을 수도 있으니 천천히 걸으라는 것이었다. 다시 굳으면 이번에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니, 평지가 나타날 때까지는 천천히 걸으라면서 겁을 주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술을 마셨기 때문에 다급한 순간에 뼈나 근육을 만지면 오히려 실수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들은 전혀 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었다는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사람이 위급한 순간에 처했을 때 도움을 얻는 것은 평상시에 비길 수 없을 만큼 요긴한 것이다. 나는 금강산 세존봉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다음부터는 L의 아들과 마주치면 저절로 손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 일 정도로 그날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L의 아들의 도움으로 금강산에서 굳어진 다리, 아니 목숨을 살렸던 것이다.
금강산을 다녀오고 나서 평소에 목이 좋지 않다고 하소연하던 아내와 앉는 자세가 좋지 않아 정형외과에서 교정을 받던 아들을 데리고 광화문 수련장을 다시 찾았다. 김철 선생님으로부터 교정을 받은 아내와 아들은 그날 이후 집에서 꾸준하게 숙제를 하고 있다. 엄마, 아빠에 오빠까지 뒷짐을 지고 가슴을 펴고 걷노라면 8살 된 딸도 재미가 있는지 자기도 뒷짐을 지고 따라서 걷는다. 이렇게 한바탕 걷고 나면 답답하던 가슴도 시원해지고 가족들 간에 일체감도 형성되는 것 같아 참으로 좋다.
처음에는 잘 받아들이지 않던 우리 식구들이 이제는 어느덧 자발적으로 몸살림 가족이 돼 가고 있다. 바른 자세로 건강을 지키자는 김철 선생님과 우리 친구 L의 노력이 크게 뜻을 이루어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는 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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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선생이 허벅지에 쥐가 난 것은 고관절이 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뼈가 틀어져 있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 그 뼈와 관계가 있는 독맥이라는 곳에서 이제 그만 움직이라고 경고를 보내는데, 그것이 근육이 심하게 굳는 형태로 나타난다. 팔꿈치에 엘보가 오는 것은 손목이 틀어져 있을 때 팔뚝의 독맥이 경고를 보내는 것이고, 종아리에 쥐가 나는 것은 발목이 틀어져 있을 때 종아리의 독맥이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는 사람이 꽤 있는데, 이런 사람은 발목이 뼈 있다고 보면 된다.
L선생은 당시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L선생에게는 무리한 등산을 하니, 이제 큰일이 나기 전에 그만 좀 하라고 허벅지가 스스로 굳어 버렸다. 아프면 못 움직이니 이렇게 해서 못 움직이게 한 것이다. 참으로 오묘한 우리 몸의 조화다. 그것을 겨우 풀었는데, 가파른 경사를 눈으로 보면서 내려오다 보니 그 근육이 심하게 놀라 이제는 전혀 걷지 못할 만큼 굳어 버렸다. 이때 다시 허벅지 독맥을 쳐서 허벅지 근육을 풀어 주었다. 그래서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다. L선생 본인이야 처음 당하는 일이라 많이 놀랐겠지만, 이렇게 간단한 것이다. 우리 몸이 보이는 반응은 이렇게 원인이 단순하고, 원인이 단순하니 해법도 단순하다. 그래서 몸의 원리를 알고 나면 몸이 아픈 것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없어진다.
필자를 찾아오는 사람 중에는 다리가 당기고 아프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이런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이것도 원인은 간단하다. 기본적으로는 고관절이 틀어져서 그 틀어진 쪽의 다리 근육이 굳어서 아픈 것이고, 또는 고관절이 틀어진 쪽의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니까 반대편 다리에만 힘을 주어 과부하가 걸려 그쪽 다리의 근육이 굳어서 아픈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도 간단하다. 고관절을 바로잡고 굳은 근육을 풀어 주기만 하면 된다. 이런 증세를 신경통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냥 고관절이 틀어져서 생긴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단순히 무릎이 틀어져 있는 것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퇴행성관절염이라는 거창한 잘못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증세도 대개는 고관절이 틀어져서 오는 것일 뿐이다. 고관절이 틀어져서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하니 삐끗하면서 무릎이 틀어지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발목이 삐거나 접질리는 것도 대개는 고관절이 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하나라고 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고관절이다. 우리 몸에서 주춧돌 역할을 하는 고관절이 틀어지면, 그 위의 구조물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그 아래의 구조물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렇게 원리는 단순한 것인데, 세상 사람들은 단순한 사실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복잡하게 보고 있다. 그리고 복잡하게 보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문명의 병폐이다.
사람의 몸은 단순하게 봐야한다. 그러면 자기 몸이 보일 것이고, 자기 몸이 보이면 건강에 대해서 걱정할 것도 없게 된다. 어디가 아프면, 아 이게 문제로구나 하고 금방 알 수 있고, 원인을 아니 해법도 금방 찾을 수 있게 된다.
정확한 원인을 모르면서(실제로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항상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았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이 약을 먹으면 좋아질 확률이 몇 퍼센트이고, 저런 방법으로 수술을 하면 나을 확률이 몇 퍼센트라는 식으로 복잡한 확률게임을 한다. 이 길로 가면 부산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몇 퍼센트이고, 제주도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몇 퍼센트라는 식이다. 이 미로에서 벗어나 곧게 뻗은 탄탄대로로 쉽게 가자는 것이 몸살림운동의 취지이다.
김철/몸살림운동가 |
출처 : 몸살림운동 부산동호회
글쓴이 : 공구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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