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실내악

스트라빈스키/'페트루슈카'에 의한 3개의 악장 - Maurizio Pollini, Piano

로만짜 2008. 3. 22. 04:12

3 Movements from Petruschka

스트라빈스키 / '페트루슈카'에 의한 3개의 악장

Igor Fedorovich Stravinsky 1882∼1971

1장 "러시아 춤" 은 발레 제 1장 마무리 도막이다. 세명의 주요 꼭두각시의 춤이 여기서는 딱딱하고 메마른 움직임으로 묘사된다. 원곡 관현악 악보에서도 피아노가 아주 중요한 역활을 맡던 부분이다.


1악장. 러시안 춤곡 (Danse Russe. Allegro Giusto)
Maurizio Pollini, Piano

2장은 발레의 짤막한 제 2장 "페트루슈카의 방" 에 해당된다. 팬터마임 분위기에 춤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 이 부분은 전체 작품 컨셉트의 출발점이 된 부분이다. 스트라빈스키가 [기록]에서 말한 "악마와도 같은 아르페지오"가 들린다. 양조성 때문에 새로운 감각의 상징 처럼 들리며 , 고뇌하는 분위기가 특징이다. 음악은 조각조각난 채로 신경질적으로 뒤틀리며, 쓰라린 "무참한" 경련으로 진행한다.


2악장. 페트루슈카의 방 (Chez Petrouchka)
Maurizio Pollini, Piano

3장은 발레 제4장 마지막 춤곡까지를 옮긴 것이다.마무리 도막(페트루슈카의 죽음과 환영)은 뺐다. 왁자지껄한 군중, 카니발의 소동으로 음악이 시작해 춤들이 여럿 이어진다.


3악장. 축제 (La Semaine Grasse)
Maurizio Pollini, Piano

['페트루슈카'에 의한 3개의 악장]

페트루슈카’는 원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일종의 협주곡 스타일로 구상되었던 작품이므로, 스트라빈스키가 이 곡의 피아노 버전을 만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921년 스트라빈스키는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을 위해 페트루슈카에서 세곡을 뽑아 피아노 곡으로 편곡 했다.

(루빈스타인은 페트루슈카를 피아노곡으로 편곡 해줄것을 의뢰 하였고, 대가로 지급된 편곡료 5000프랑이였다고 함.)루빈스타인은 여러해 동안이나 이 곡을 즐겨 연주했다.

이 3장에는 1910년 8~9월에서 1911년 5월 26일 사이 써 1911년 6월 13일 역사적인 저녁에 러시아 발레단이 파리에서 초연한 원작 발레의 본질적 특성이-어쩔 수 없이 불와전하기는 하지만 몇가지 담겨있다.

이 곡은 원곡의 개성적인 관현악법이 피아노의 화려한 비르투오서티로 훌륭하게 전환되었다. 이 곡은 비록 편곡 작품이지만 원곡의 존재를 잊게 할 만큼 독주용으로 잘 짜여져 있으며 실연에서의 연주 효과 역시 탁월하여,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 작품 중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편이다.

[내 삶의 기록]에서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음악을 쓰면서 나는 꼭두각시가 갑자기 자유를 얻어 악마와도 같은 아르페지오의 폭포를 쏟아 붓자 잠자던 관현악이 성난 팡파레를 무섭게 울려대는 뚜렷한 이미지를 품고 있었다. 엄청난 법석이 뒤따르고 클라이막스가 지나면서 가련한 꼭두각시는 비통해하며 처량하게 쓰러진다.

발레 아이디어는 본디 순수기악곡 형태로 생겨났고, 곡 특유의 성격이 여기에 암시를 주었다. 이미 음악 개념으로 존재하던 것을 무대위에 눈으로 볼 수있게 옮겨놓은 것이라고도 할 수있다. 노래 정신을 거부하고, 언제나 운동 또는 몸짓으로만 해결을 찾던 스트라빈스키 같은 작곡가에게 이 정도의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 음악의 경우만 보더라도 음악이 만들어내는 몸짓이 꼭두각시의 뻣뻣한 움짐임을 암시하고, 이는 본디 곡의-메마르고 타악기 가깝고 서정적 가능성이라고는 없는 피아노적 음빛깔로, 아니면 양조성의'악마적의 아르페지오' 같은 날카로운 불협화음으로 더욱 강화된다.

당초 기회한 <연주회용 소품>음악에서 태어난 꼭두각시에게는 페트루슈카라는 이름을 붙혔다. 그러나 페트루슈카는 러시아 전통의 상스럽고 거칠고 버릇없는 입담 좋은 꼭두각시가 아니라, 스트라빈스키가 얘기하는 '불행한 주인공'은 피에로와 아주  흡사하다. 블로크나 러시아 상징주의자들에게서 이따금 발견되는 피에로 주제는 라포르그나 베를린 등 프랑스 모델응 염두에 두고있다.

발레 플릇에서 이중인격체, 인간도 아니고 인형도 아닌 애매함, 가면과 현실 사이에 괸계의 낭만적, 세기말적 주제는 뚜렷이 부각되면서 더 없이 불안한 함의를 띈다. 그러나 <페트루슈카>의 독창성을 얘기하는데 결정적안 것은 사순절에 앞서 여는 카니발 민속의 분위기에서 나온 배경이다.

카니발은 모여든 군중, 그 주간의 소란과 혼란은 음악에서 감상적인, 베를렌 풍 분위기를 씻어내고 꼭두각시 이야기를 개관화 해 마치 스트라빈스키가 군중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형식는 주제의 발전에는 관심초차 없다. 그 대신 짧고 단순한 가락 악상들이 날카롭게 제시되고 이 악상들은 제각기 독립해 러시아 민요, 프랑스 샹송, 빈 왈츠 등갖가지 원천에 끈을 댄다.

악상 하나만으로는 노래 같지도 않고 서정적 매력도 없어 메마른 리듬이나 제스처의 운율같다, 이런 악상으로는 발전이란 것을 쌓아올릴 수가 없다. 대신에 반복과 병치와 중첩으로 투명하고, 거친 음빛깔과 화성, 유난히 리듬을 강조한 창의성을 띠는 진행이 있을 뿐이다.

<페트루슈카>에 깔린 형식개념의 본질적 요소 다수가<3장>, 특히 가장 방대한 마지막 장에서도 발견된다.

[페트르슈가 작품배경]

한 여자를 사랑한 두 명의 남자,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페트루슈카>는 스트라빈스키와 디아킬레프가 손잡고 만든 작품으로, <불새>이후에 작곡된 두 번째 발레음악이다. 현재까지 꾸준히 연주되고 사랑 받는 현대 명곡 가운데 하나이다.

1830년경, 러시아의 수도에서 열린 사육제를 배경으로, 세 개의 손가락 인형에게 생명이 부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발레니나 인형을 사랑한 페트루슈카 인형. 하지만 발레리나는 그의 고백을 거절하고 페트루슈카는 슬픔에 빠져 괴로워한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그녀에게 다가가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인형, 무어인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된다.

스트라빈스키의 자서전에 의하면, 그는 이 작품을 완성한 후, 주연 인형의 개성을 표현할 만한 이름을 고심하던 중 ‘페트루슈카’라는 이름을 생각해내고 뛸 듯이 기뻐했다 한다. ‘페트루슈카’는 러시아 농민의 흔한 이름인 페터의 애칭이다.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하고 결국 악한에게 비참한 말로를 맞는 주인공을 통해 당시 러시아 농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민족주의적 성향과 함께 탁월한 심리묘사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스트라빈스키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담고 있는 곡으로 평가받는 <페트루슈카>는 민요선율의 차용과 더불어 전개 없이 반복되는 모티브가 특징적인 곡이다. 또한 작품명을 그대로 인용한 ‘페트루슈카 화음’은 스트라빈스키만의 음악어법을 탄생시켰다

스트라빈스키 / 페트루슈카(Petrushka)

예술형식에 있어서 발레는 마치 오페라의 경우처럼 여러 장르의 예술이 모여서 하나로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음악은 춤으로 나타나고, 미술은 무대세트와 의상을 통해서 보여지고, 문학은 이야기를 만드는 형태로 나타난다. 청중은 이러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통해서 정서적 반응을 보이게 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막강하게 다가서는 부분은 춤이다. 게다가 춤이 錚?이야기의 틀 속에서 추어지게되면 청중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정서적 반응을 보이게된다.

사랑을 거절 당하고, 감금당하고, 쫓겨 다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페트루슈카는 청중들을 사로잡는 엄청난 매력에 넘치는 발레 작품이다. 청중들이 그들의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로 거의 충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심지어는 청중들 자신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스스로가 속하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상연이 모두 끝나고 나면 자신들이 한낮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이 작품은 인형이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지녔기 때문에 갖가지 고통과 비극을 겪어야하는 인형 '페트루쉬카'의 심리적 묘사를 음악의 주제로 삼은 발레음악이다. '불새'를 발표하고 일약 세계적인 작곡가로 부상한 이 작곡가가 어느때보다도 자신감과 불타는 의욕을 지니면서 1911년 로마에서 페트루쉬카를 완성시켰다.

이미 정평이 내려졌다시피 '불새'와 더불어 그의 불세출의 걸작이기도한 이 작품은 처음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순수 기악곡으로 착상되어 일단 완성되었다가 디아길레프가 '발레 루스(Ballet Russes)'를 위한 새로운 발레작품을 의뢰하자 발레곡으로 형태가 변경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의 제1경과 2경에서 피아노가 마치 협주곡의 경우처럼 중심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발레음악 장르에서 '예술성'에 있어서는 그의 어떠한 작품보다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여러 도시에 살고 있었던 여러 예술가들의 협동이 있었다. 당시 스트라빈스키는 로잔느·페테르부르크·로마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대본작가인 브노아(Benois)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대본을 썼고, 안무가 포킨은 파리와 로마에서 이 작업에 참여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초연 수주 전까지도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스트라빈스키의 자서전에는 "곡을 쓰는 동안 내 마음에 갑자기 생명이 주어진 인형에 대한 명료한 그림이 들어왔다. 그것은 악마적인 아르페지오의 폭포를 동반한 오케스트라의 울림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트럼펫의 맹렬한 응수가 더해진다. 그 결과  가엾은 인형의 의기소침과 슬픔을 오케스트라의 총주 속에서 클라이맥스가 엄청난 소음으로 표현된다"라고 쓰고 있다. 결국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도적으로 박진감 넘치고 익살스럽고 즐거운 작품으로 완성시키고 있다. 이 곡이 초연될 무렵 음악가들은 '아주 거친 작품'으로 인식했다. 실제로 처음 악보를 받아본 연주자들은 비웃거나 연주를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상 이 작품은 연주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페트루쉬카 코드'라고 불려지는 복조의 조성이 늘 문제가 되고 있다. 이것은 동시에 존재하는 2개의 조성을 말하는 것인데, 스트라빈스키는 C major와 이와는 가장 먼 F# major를 동시에 연주하는 2개의 코드를 즐겨 쓰고 있다. 이것은 페트루쉬카가 지니고 있는 2개의 캐릭터, 즉 인간적인 것과 인형적인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페트루쉬카는 마술사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하고 동시에 발레리나를 사랑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가 한낱 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페트루쉬카 코드는 바로 이러한 2개의 입장을 아주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작품에 러시아 민요들을 도입하거나 다른 작곡가들의 도움을 얻어 그들의 아이디어를 채택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베버의 플루트 협주곡에서 빌려온 선율이 마술사의 프루트 음악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 : 곽근수

마무리치오 폴리니 (Maurizio Pollini 1942~이탈리아 밀라노)

폴리니는 미켈란젤리에게 고작 6개월간 배웠으나 가장 큰 영향을 받은 피아니스트이자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로 꼽는다.아르헤리치도 미켈란젤리에게서 배운 적이 있다. 미켈란젤리는 세상을 떠났고, 폴리니와 아르헤리치도 나름대로의 예술세계를 찾아 비상하고 있는 중이지만, 이들이 후대에 하나의 유파로 묶여 분류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지금 보기엔 이들의 공통점은 예민함밖에는 없어 보이지만. 예술이라는 마법의 세계에서 스승과 제자의 얘기는 신비로움을 더하는 면이 있다.폴리니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1960년 쇼팽 콩쿠르에서의 심사위원 만장일치 우승이라는 경력과 함께 거기에 딸린 유명한 일화들을 떠올릴 것이다.

당시 심사위원장이던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이 ‘우리 심사위원들 중에 과연 누가 폴리니 만큼 연주할 수 있겠는가?’ 하며 감탄했다는 것과, 협주곡이 끝난 후 한 심사위원이 ‘그는 음표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어지는 또 하나의 유명한 일화는 폴리니가 콩쿠르 우승 후 곧 바로 잠적했다가 약 10년이 흐른 후에 무대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사이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는 일설도 있지만, 이는 분명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폴리니는 쇼팽 콩쿠르 우승 후 약 1년간 꽉찬 일정으로 순회 연주회를 가졌고, 다시 1년간은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5년간 많지는 않았지만 규칙적으로 연주회를 열었고, 1968년부터 본격적으로 연주회 수를 늘려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르헤리치와의 묘한 인연을 갖고 있다. 그보다 한 해 먼저 태어난 아르헤리치가 1957년 제네바 콩쿠르에서 우승할 당시 폴리니는 2위를 차지했다.

다음해 폴리니는 제네바 콩쿠르에 재차 도전해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다. 쇼팽 콩쿠르에서의 우승은 폴리니가 먼저 따냈다. 다음회인 1965년의 쇼팽 콩쿠르에서는 아르헤리치가 우승했다. 이는 두사람이 그 세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연주가였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연주 스타일을 한마디로 잘 깎여진 다이아몬드에 비교하기도 한다. 그만큼 완벽하게 다듬어진 치밀함과 빈틈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김용배는 그의 연주에 대해 ‘기교가 기교로 느껴지지 않는다. 피나는 노력이 전혀 없이 얻어진 듯한, 즉 선천적으로 그저 타고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 엄청난 기교가 그의 몸에 융해되어 있었다’고 평했다.

그런 폴리니가 최근 들어 많이 유해졌다는 평가가 많이 나오고 있다. 전에는 맑고 투명하기 그지없어 순수한 얼음같이 차가웠던 연주를 들려주던 그가 천부적 기교의 바탕 위에 인간적인 면모를 쌓아가는 법을 터득했다는 얘기다. 그의 음반으로 손꼽히는 것은 역시 쇼팽의 녹음들이다. 하지만 그의 레코딩에서의 관심도 워낙 넓은 편이어서 현대곡에서 그의 진정한 면모를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음원출처:향기로운삶의쉼터

위의 곡과 글은 하늘바람꽃님께서 올려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