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빈스타인 (Rubinstein, Anton Grigor'yevich, 1829~1894)
안톤 루빈스타인의 이름은 19세기의 러시아 음악사상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존재이다. 리스트의 계통에 속하는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이자, 러시아 음악 협회, 페테르스부르크 음악원의 설립자로서 유럽의 음악적 전통을 러시아에 이식한 공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단지 작곡가로서의 그는 모든 분야에 걸친 수많은 작품을 작곡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에 전해질 정도의 걸작은 그다지 남기지 못했다. 그 스타일이 당시의 국민악파와는 정반대의 이른바 유럽파의 그것이었으며, 특히 멘델스존의 아류라고 불리는 독일 음악의 전통적 양식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그것은 그가 폴란드계의 유대인과 독일계의 유대인을 양친으로 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피아노 작품으로는 5곡의 협주곡, 4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하여, 소품이 다수 있으나 오늘날 흔히 연주되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러시아의 세계적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아버지는 폴란드계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독일계 유대인이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워 피아노의 신동이라는 평판을 들었다. 1840~43년 유럽 각지를 순회연주했으며, 1844~46년에는 동생 니콜라이와 함께 베를린에서 데인에게 작곡을 배웠다.
유럽에서 리스트와 더불어 19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하였으나 그는 리스트에게 배운 일도 있다. 루빈스타인은 독일 낭만파풍의 작품을 썼는데, 지금은 피아노 소품 〈천사의 꿈〉 등만이 남아 있다.
1862년 러시아에서 최초로 조직적인 음악교육기관인 페테르부르크음악원을 설립, 그 원장에 취임하였다. 여기에서 차이코프스키가 첫 제자의 한 사람으로 배출되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삼중주곡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은 그를 추도하는 작품이다.
루빈스타인은 러시아음악의 아카데미즘을 확립한 음악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으며,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로서 활약하였으나, 작곡에서는 독일낭만파의 영향 아래 절충적인 경향을 풍겨 국민음악파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오페라 《악마》 《네로》 외에, 6곡의 교향곡, 5곡의 피아노협주곡과 실내악곡, 피아노독주곡 《천사의 꿈》 《f조의 선율》 《페테르부르크의 야회》, 가곡 《그대는 꽃과 같이》 《페르시아의 노래》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요제프 호프만 (Josef Hofmann)
호프만을 가리켜 스승인 모조코프스키는 '그는 아무 것도 배울 게 없다'고 했고, 라흐마니노프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차 대전때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완벽한 테크닉과 풍부한 감수성, 넘치는 에너지로 미국 전역을 흥분시켰다. 라흐마니노프 3번 협주곡을 그에게 헌정했으나 손이 작아 연주하지 못한 이야기와 스타인웨이사가 그의 작은 손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그에게 선물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음원출처: http://mediafile.par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