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 /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 -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로만짜 2006. 12. 9. 14:18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

Tchaikovskii (1840.5.7 ~ 1893.11.6)

1. Allegro moderato (18:48)

Violin / David Oistrakh

Gennadi Rozhdestvensky - Moscow Philharmonic Orchestra

     

작품해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한슬리크가 말한 것처럼 강렬한 러시아적인 냄새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1악장의 야성적인 주제나 2악장의 슬라브적 애수가 어린 선율, 3악장의 광포한 리듬과 열정적인 끝맺음 등은 러시아외의 유럽 작곡가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민족색채가 넘치는 것들이다. 또한 아우어 교수가 처음에 연주가 불가능할 것이라 예견했을 정도로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는 난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의 신예 바이올리스트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 곡을 자유자재로 연주함으로써 자신의 기교를 세상에 과시하고 있으니 세월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Tchaikovsky의 바이올린협주곡은 초연 때부터 말썽이 있었다. Tchaikovsky는 항상 그 시대의 청중들보다도 항상 50년 후 또는 100년 후의 청중들을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Tchaikovsky는 이 곡이 완성되자마자 그 초고를 하이페츠와 엘만의 스승인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보내 그의 손으로 초연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우어의 대답은 "기교적으로 보아 연주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이 곡을 완전히 연주하려면 상당히 고도의 기교를 필요로 한다고.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안정감이 느껴져 인상이 좋은 연주 중의 하나이다.

     

작품구성

제 1악장, Allegro moderato - Candenza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서주에서 잠시 주제가 암시된 후 바로 바이올린에 의해 낭랑히 울려펴진다. 전개부에서는 화려한 바이올린의 테크닉의 향연이 펼쳐지며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오케스트라의 야성적인 외침은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카덴짜 (독주자가 반주없이 자신의 기교를 최대한 과시하는 즉흥연주를 하는 부분. 고전파 이후 상당수의 작품에서는 작곡자가 대부분 카덴짜까지 겸해서 작곡해두는 것이 대부분이나 일부 연주자들은 자신만의 카덴짜를 연주하기도 한다)가 끝나면 다시 처음의 주제가 반복되고 곡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끝나게 된다.

일반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이 오케스트라가 먼저 제1,2 주제를 연주한 다음 바이올린이 그것을 받아서 주제를 연주하게 되는 형식인데 비해서 이 곡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짧은 서주에 이어 바로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하게 됩니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제1악장은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와 오케스트라의 장쾌함이 절묘하게 어울린 소타나 형식의 악장으로 서주에서 시작되는 주제 부분이 카덴짜(즉흥 연주부분)와 서로 밀고 당기며  계속해서 반복되다가 마지막에 절정에 이르게 되면 숨가쁘게 전개되는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연주들이 정말 눈부신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가슴속이 서늘할 정도로  장쾌함이 밀려 와서 문득 정신을 가다듬으면 바로 1악장의 연주가 끝이 난 것이지요. 여기에서 1악장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2악장, Canzonetta - Andante

David Oistrakh, violin

'칸쪼네타 (작은 노래)' 라고 되어있는 A-B-A의 3부형식으로 되어있다. 애수어린 멜로디가 곡전체를 지배하며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데, 이는 매우 슬라브적인 정서가 풍부한 선율이다. 곡은 명확히 끝나는 부분이 없이 3악장으로 연결된다.

슬라브적 애수 어린 선율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악장입니다. '칸쪼네타(Canzonetta)' 로 되어있는 A-B-A의 3부 형식인데, '칸쪼네타'는 이탈리아의 포퓰러송을 뜻하는 칸초네(canzone)의 축소형으로 주로 16~17세기에 유행했던 가벼운 기분의 작은 가곡작품을 뜻하는 말로, 그냥 '작은 노래' 라고 하면 된다는군요. 흐느끼듯 아름답고 애수어린 멜로디가 곡전체를 지배하며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데, 듣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황홀한 매력에 빠지게 하는 이 2악장은 차이코프스키만의 매우 슬라브적인 정서가 풍부하게 나타나는 선율이라고 평가됩니다. 특히 오늘 여러분께서 감상하시다가 어? 이상하다....라고  생각하실만큼 이 곡은 명확히 끝나는 부분이 없이 첼로 등 현악기들의 저음을 바탕으로  혼(Horn)과 함께 애절함을 장식하다 끝난 것 같지도 않게 연기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이어서 깜짝 놀랄만큼 강렬한 음량이 터지면서 곧바로 열광적인 3악장 연주와 연결됩니다.

 

제 3악장, Finale (Allegro vivacissimo)

David Oistrakh, violin

자유로운 소나타형식의 악장이다. 전악장에서 이어진 곡은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열광적인 리듬의 축제로 변한다. 중간에 잠시 우수어린 선율이 고개를 내밀다 제시부의 첫선율이 다시 나타나기를 되풀이 하다 점점 열기를 고조시켜 나가면서 마지막에는 환희에 찬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총주로 끝맺는다.

피날레. 화려하고 여유로운 소나타형식의 악장입니다. 2악장에서 이어진 곡은 깜짝 놀라게 할 만큼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열광적인 리듬의 축제로 변하게 됩니다. 중간 부분에서 클라리넷, 바이올린 등의 선율로 잠시 우수어린 연주가 이어지다가 제시부의 첫선율이 다시 나타나기를 되풀이 하면서 점점 열기를 고조시켜 나간 후 마지막에 환희에 넘치는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총연주로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게 됩니다.  이제 3악장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이스트라흐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수 많은 음악 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곡 가운데 하나가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 가운데 하나인 이 곡은 특히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단정하면서도 품격 있는 연주와 유진 오먼디의 섬세한 지휘가 어우러져 최상의 조화를 들려준다.

 

   

이 위대한 곡의 초고가 완성되었을 때, 차이코프스키는 당대 바이올린계의 거장이었던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러시아인 음악가 레오폴드 아우어 교수를 찾아갔다고 한다. 이 곡을 그에게 헌정할 목적이었던 차이코프스키는 그에게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자문과 함께 직접 초연을 맡아줄 것을 청했지만 아우어는 차이코프스키의 초연 청을 거부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기교적으로 보아 도저히 연주가 불가능하다"였다고 한다.

이에 실망한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3년 동안이나 발표를 하지 않고 묵혀 두었는데, 나중에 아돌프 브로드스키라는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곡을 칭찬하면서 발표할 것을 적극 권하여 1881년 12월 4일,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빈 필하모니와 연주함으로써 빛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초연 당시의 평은 무척 나빴다고 한다. 초연을 맡았던 브로드스키의 연주 기교가 처음에는 차이코프스키의 이 곡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곡의 가치를 알고 있던 브로드스키에 의해 유럽 각지에서 계속된 연주로 결국에는 청중들의 인기와 평론가들의 찬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미루어 짐작컨데,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이렇게 인정받게 된 것은 당시의 바이올린 연주 기교 상으로 너무나 어려운 독주 부분들을 연주가 거듭될수록 점차 이해하고 난이도 높은 곡을 재대로 연주할 수 있게 된 연주자 브로드스키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차이코프스키는 나중에 단 하나뿐인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라이프찌히 음악 학교 교수이기도 한 바이올리니스트 아돌프 브로드스키에게 헌정하였다.

이 작품은 특히 바이올린 독주의 눈부신 기교를 충분히 발휘되어야 하는 곡이며 오케스트라에 있어서도 풍부하고 아름다운 색채를 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애수에 젖은 아름다운 선율과 독특한 구성을 가진 이 곡을 오늘날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밀 바이올린 연주자라면 누구나 제대로 연주 할 수 있어야 할 정도로 반드시 뛰어 넘어야 할 필수곡이 되었다. 요즘의 신예 바이올리스트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 곡을 자유자재로 연주함으로써 자신의 기교를 세상에 과시한다고 하니, 차이코프스키 당대와는 그만큼 음악적 기교에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함께 수록된 에밀 길레스와 쥬빈 메타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실황 연주로서 현장의 생동감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 35

4대 바이올린 협주곡중의 하나누가 붙인 별명인지는 알 수 없으나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들은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칭호를 누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멘델스죤 (E단조)을 제외한 세 곡의 협주곡이 모두 D장조로 쓰여진 것인데, 이것은 아마도 바이올린이 가장 아름다운 울림을 낼 수 있는 조성이 D장조이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 중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 화려함과 애절한 멜로디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곡이며,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비해 이 장르의 작품을 처음 접하기에 좀 더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마찬가지로 처음 작곡될 당시 많은 말썽을 일으켰었던 작품이었다. 이 곡은 차이코프스키가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심한 우울증 증세에 빠져서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에서 요양생활을 하던 중에 작곡되었다. 1878년, 당시 38세). 이 기간은 그가 교향곡 제 4번과 "에프게니 오네긴" 등을 작곡한 시기이기도 한데, 이 때 그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코데크라는 친구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그의 도움으로 이 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초고가 완성된 후 차이코프스키는 당대 러시아 바이올린계의 거장이었던 레오폴드 아우어 교수에게 헌정할 목적으로 그에게 작품에 대한 자문 및 초연을 맡아줄 것을 구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의 답변은 차갑기만 했다. 아우어는 차이코프스키에게 "기교적으로 보아 도저히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초연을 거부했던 것이다. 실망한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3년 동안이나 발표하지 않고 묻어두었는데, 아돌프 브로드스키라는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곡을 칭찬하면서 발표할 것을 적극 권하여 1881년 12월에 빈 필과 한스 리히터의 반주로 브로드스키에 의하여 초연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초연당시의 평은 무척 나빴다. 지휘자나 오케스트라 단원들부터 이 곡에 호의적이지 못했고 브로드스키의 완성되지 못한 기교는 청중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으며, 결정적으로 독설가였던 평론가 한슬리크는 이 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혹평하였다.

"우리는 천하고 품위없는 얼굴만 봤고 거칠은 고함소리만 들었으며, 싸구려 보드카의 냄새만 맡았다. 프리트리히 피셔는 짜임새없는 그림을 비평할 때 '보고 있노라면 냄새가 나는 그림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차이코프스키의 이 곡은 음악작품에도 들어서 냄새가 나는 작품이 있을수 있다는 두려운 생각을 우리에게 처음으로 알려주었다."

한슬리크의 혹평을 들은 차이콥스키는 실망을 금치 못했으나 이 곡의 가치를 굳게 믿고 있던 브로드스키는 유럽 각지에서 이 곡을 계속 연주하여 결국 청중들의 인기를 얻는데 성공하였고, 나중에는 아우어 교수도 이 곡의 가치를 인정하여 스스로도 연주함으로써 대성공을 거두고 그의 제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가르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곡은 많은 공로를 가진 브로드스키에게 헌정되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한슬리크가 말한 것처럼 강렬한 러시아적인 냄새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1악장의 야성적인 주제나 2악장의 슬라브적 애수가 어린 선율, 3악장의 광포한 리듬과 열정적인 끝맺음 등은 러시아외의 유럽 작곡가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민족색채가 넘치는 것들이다. 또한 아우어 교수가 처음에 연주가 불가능할것이라 예견했을 정도로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는 난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의 신예 바이올리스트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 곡을 자유자재로 연주함으로써 자신의 기교를 세상에 과시하고 있으니 세월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구성 제 1악장, Allegro moderato - Candenza소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서주에서 잠시 주제가 암시된 후 바로 바이올린에 의해 낭랑히 울려펴진다. 전개부에서는 화려한 바이올린의 테크닉의 향연이 펼쳐지며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오케스트라의 야성적인 외침은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카덴짜 (독주자가 반주없이 자신의 기교를 최대한 과시하는 즉흥연주를 하는 부분.

고전파 이후 상당수의 작품에서는 작곡자가 대부분 카덴짜까지 겸해서 작곡해두는 것이 대부분이나 일부 연주자들은 자신만의 카덴짜를 연주하기도 한다)가 끝나면 다시 처음의 주제가 반복되고 곡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끝나게 된다. 제 2악장, Canzonetta (Andante)'칸쪼네타 (작은 노래)' 라고 되어있는 A-B-A의 3부형식으로 되어있다. 애수어린 멜로디가 곡전체를 지배하며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데, 이는 매우 슬라브적인 정서가 풍부한 선율이다. 곡은 명확히 끝나는 부분이 없이 3악장으로 연결된다. 제 3악장, Finale (Allegro vivacissimo)자유로운 소나타형식의 악장이다. 전악장에서 이어진 곡은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열광적인 리듬의 축제로 변한다. 중간에 잠시 우수어린 선율이 고개를 내밀다 제시부의 첫선율이 다시 나타나기를 되풀이 하다 점점 열기를 고조시켜 나가면서 마지막에는 환희에 찬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총주로 끝맺는다. 추천음반인기있는 곡이라 너무도 많은 레코드가 나와 있어 어떤 판을 추천할 것인가가 무척 고민되는 곡이다. 정통적인 권위자로는 오이스트라흐와 하이페츠 두 사람을 꼽아야 할 것이며, 한 명을 더 추가한다면 역시 같은 아우어 계열의 러시아 바이올린의 맥을 이어받은 밀스타인을 추천할 수 있겠다. 이들은 모두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이 곡이 가지는 슬라브적인 정취와 테크닉의 화려함을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있다. 풍부한 음색과 안정된 기교, 품위있는 표현 등으로 정평있는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로는 13가지 종류의 음반이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국내에서 구입이 용이한 것은 대략 4-5가지 정도이다. 그 중 연주의 수준에 있어서는 모노음반인 키릴 콘드라신과의 협연 (MELODIYA)이 제일 뛰어나지만, 녹음의 취약함이나 구입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그다지 권할만하지 않다. 1959년 녹음인 오먼디와의 협연 (SONY essential classics) 도 매우 우수하며 이 연주를 최고로 꼽는 사람도 많으나, 구녹음과 비교해 볼 때 오이스트라흐의 감정표현이나 테크닉적인 면이 다소 처진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으며, 스테레오로서는 녹음상태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편이다. DG에서 2 for 1 으로 발매되어 바흐, 브람스 등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같이 커플링된 음반은 꽤 만족스러운 연주이긴 하지만 역시 모노녹음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현재로서는 MELODIYA에서 최근에 발매되었던 오이스트라흐 전집 (5CD)에 포함된 음반이 녹음이나 연주, 구입의 용이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가장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전집이라서 이 음반이 부담스럽다면 소니에서 발매된 오먼디와의 협연을 구입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겠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877년 9월, 차이코프스키는 안토니나 밀류코바와의 지옥 같은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거의 광기에 가까운 상태로 도망치듯 모스크바를 떠났다. 그는 결혼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동생과 함께 베를린, 로마, 파리, 베니스, 비엔나 등 을 떠돌았다. 몇 달 동안 정처 없이 방랑의 생활을 계속했던 차이코프스키는 1878년 봄에 스위스의 클라랭에 머물며 서서히 정신적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그의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폰 메크 부인의 풍부한 재정 지원과 따뜻한 편지로 용기를 얻어 새로운 삶의 의욕을 느끼게 되었다.

그해 3월 14일, 한 음악가가 차이코프스키를 방문했는데, 그는 차이코프스키가 각별히 아꼈던 그의 제자이자 베를린에서 당대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에게 사사한 바이올리니스트 코텍이었다. 그는 클라랭에 머무는 동안 차이코프스키에게새로운 음악을 선보였으며 그 중에는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도 포함되어 있었다.

차이코프스키는 특히 색채감이 풍부한 랄로의 바이올린 음악과 코텍의 연주에 깊이 매료되었고, 그로부터 사흘 뒤인 3월 17일에 당장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을작곡하기 시작했다. 작곡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차이코프스키는 창작의 기쁨에 흠뻑 도취해 있었다.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내는 1878년 3월 19일자 편지에서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해 언급했다.

"오늘 1악장이 완성됐고, 내일 2악장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저의 음악적 영감은 지금 절정에 도달했습니다.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할 틈도 없이 작곡에 몰두하고 있어요. 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의식하지 못할 지경입니다. 이것이 바로 작곡의 순수한 기쁨이죠."

순수한 창작의 기쁨에 몰두한 차이코프스키가 이 대작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5일. 당시 그가 얼마나 창작 의욕에 불타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했을 때 코텍은 연주 기술의 문제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차이코프스키는 이미 당대의 명 피아니스트인 루빈슈타인 이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가리켜 "피아노 연주에 적합하지 않다"고 혹평했던 사실에 크게 상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바이올린 협주곡만은 그런 비판을 받지 않도록 코텍의 충고에 열심히 귀 기울였다. 코텍은 차이코프스키에게 1악장 의 몇 군데를 수정하도록 권유하고 완성된 2악장 안단테 대신 새로운 안단테를 작곡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며, 차이코프스키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차이코프스키가 본래 바이올린 협주곡의 2악장으로 작곡했던 안단테 악장은 후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명상'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는데, 이 곡에 비해 새로 바이올린 협주곡의 2악장으로 새로 작곡된 칸초네타는 훨씬 더 우아하고 독창적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완성되기까지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은 코텍은 이 작품을 무척 아름답게 연주했지만, 자신이 직접 스승의작품을 초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이코프스키는 이 협주곡을 당시 러시아 바이올린 음악의 '신'으로 추앙되고 있었던 바이올린의 거장 레오폴트 아우어에게 헌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아우어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이 이 작품 을 바이올린에 맞게 고치지 않는 한, 이걸 그대로 연주할 수는 없소."

결국 이 작품은 몇 년 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1881년 12월 4일에 비엔나에서 아돌프 브로즈키의 바이올린 연주와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 필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그러나 초연 당시의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다. 바이올리니스트 아돌프 브로즈키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이 작품을 연주하겠다고 나섰으나 오케스트라와 단 한 번의 리허설밖에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길고 어려운 작품을 단 한 번의 리허설로 완벽하게 연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단 한 번뿐인 리허설 시간은 오로지 스코어에 잘못 기보된 음표를 수정하는 데에 전부 써버렸으니 연주가 잘 될 리 없었다. 이 생소한 악보를 거의 초견으로 연주하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혹시나 큰 실수를 할까 두려워 지나치게 작은 소리로 연주했고 독주자와의 앙상블도 삐걱거렸다. 결국 비평가들은 이 작품에 대해 매우 차가운 반응을 보이며 "야만스럽고 불쾌한 음악", "광포한 러시아 니힐리즘"이라고 혹평했다. 그 중에서도 음악평론가 한슬릭은, 오늘날 베토벤과 브람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꼽히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음악평론가로서의 경력에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그날 저녁 음악회를 지켜본 한슬릭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해 이렇게 썼다.

"바이올린의 명인 아돌프 브로즈키는 그의 비엔나 데뷔 무대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는 무분별한 일을 저질렀다. 차이코프스키는 확실히 보편적인 재능이라곤 없는 음악가이고, 온실 속에서 자라난 방종한 천재다. 그의 작품은 뛰어나지도 않고 매력도 없다. 그의 음악에는 독창성과 야만성,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와 불안한 예민함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런 특징은 그의 최근작인 길고 난해한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처음 얼마 동안 이 음악은 음악적으로 꽤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곧 1악장이 끝날 때까지 그 무자비한 야만성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바이올린은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마구 긁히고 찢기고 두들겨 맞았다. 머리칼을 쭈뼛 서게 하는 이 복잡한 악구를 과연 누가 깨끗하게 연주할 수 있는지는 정말 의문스럽다. 브로즈키는 이를 시도했으나 그 자신이나 우리 모두를 괴롭혔다. 부드러운 슬라브 풍의 감상적인 느린 악장에서 청중들은 다시 편안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빨리 중단되고 광포하고 우울한 마지막 악장으로 이어졌는데, 거기서 우리는 타락하고 거친 얼굴을 보고, 야비한 저주를 들었으며, 질 낮은 술 냄새를 맡았다. 프리드리히 피셔는 음란한 그림에 대해 이렇게 단언한 적이 있다.

그림 속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를 분명히 눈으로 볼 수 있다고. 마찬가지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사상 처음으로 음악 작품에서도 악취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한슬릭의 무자비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리니스트 브로즈키는 차이코프스키 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는 이 작품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1882년 8월 20일에는 이 곡을 모스크바에서도 연주했는데, 그때는 훨씬 더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때부터 브로즈키는 이 협주곡을 독일과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연주했고, 1890년대 초에는 뉴욕에서도 연주했다.

결국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청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바이올리니스트의 필수 레퍼토리로 정착되었다. 처음에는 이 곡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던 아우어 마저도 몇 년이 지나가 이 협주곡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고 차이코프스키가 죽기 얼마 전에 드디어 이 작품을 연주하게 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이 작품의 가치를 알게된 아우어는 이 작품의 위대한 해석자가 되었으며 그 의 제자들에게도 이 곡을 가르쳤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 작품이 바이올린 협주곡들 가운데서도 가장 바이올리니스틱하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처음에 이 작품이 거부된 이유는 바이올린 연주에 적합하지 않다는 데 있었다. 바이올린의 거장 아우어 마저도 이 작품이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기에는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생각했는데,그것은 이 작품이 바이올린의 기술적 한계와 표현 가능성을 크게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사실 1악장과 3악장은 길이도 매우 긴데다 두세 음악을 한꺼번에 소리내야하는 중음 주법이나, 활을 튀어 오르듯이 연주하는 스피카토 등의 난해한 주법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이 곡을 익히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복잡한 악구들이라도 일단 손에 익으면 손가락을 움직이기가 편하고, 기본 조성이 바이올린 연주에 적합한 D장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어떤 선율이라도 잘 공명된 소리로 연주할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협주곡은 바이올리니스틱하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이라면 감미롭고 서정적인 선율로 가득해서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음색과 표현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난해한 기교로 가득 찬 1악장에서도 두 개의 주제만큼은 매혹적인 서정성을 풍기고 있기 때문에 선율 악기인 바이올린의 노래하는 듯한 특성을 마음껏 뽐낼 수 있다.

특히 가장 나중에 작곡된 제2악장 안단테 칸초네타의 흐느끼는 듯한 주제는 일품이다. 이 감각적인 선율에 풍부한 감정을 실어 연주하는 것은 바이올리니스트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며, 그 달콤한 선율에서 무한한 세계를 발견하는 것은 그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리라.

2악장에 비해 마지막 피날레는 러시아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활발한 음악이다. 피날레의 첫 주제는 분명히 민속 음악적인 요소에서 온 것으로 러시아의 민속 춤곡의 리듬을 연상시킨다. 피날레의 두 번째 주제 역시 민요적이지만 여기에는 집시 풍의 요소도 끼여들어 좀 더 이국적이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집시 바이올리니스트들과 집시 현악 밴드들이 대 유행이었는데, 차이코프스키 역시 이런 종류의 음악을 음식점이나 길거리에서 들었을 것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에는 그 당시 차이코프스키가 길거리에서 들었을법한 집시 음악의 자취가 발견된다. 여기에다 긴박감 넘치는 러시아 민속 춤곡의 리듬이 결합되어 이 협주곡의 피날레에서 우리는 불꽃 튀는 듯한 음악적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초연 당시의 평가가 어떠했든 오늘날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무르익은 낭만주의 음악을 대변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의 걸작으로 꼽힌다. 또한 이 작품에는 유럽과 러시아 민속음악을 결합시킨 음악적 드라마가 나타나며 서정성, 그리고 눈부신 기교까지 갖추고 있어서 바이올리니스트를 가장 돋보이게 해주는 음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처음 작곡되었을 당시 러시아 바이올린 악파의 대부인 아우어마저도 이 협주곡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을 보면 명곡을 이해하는 데는 얼마간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에 관한 Q & A

이 작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바이올린 곡은?

차이코프스키는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바이올린 협주곡 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누구에게 헌정되었나?

차이코프스키는 원래 이 작품을 레오폴트 아우어에게 헌정하려 했으나 그가 연주를 거부하는 바람에, 나중에 이 작품을 초연해준 아돌프 브로즈키에게 헌정했다.

3악장의 주제는 다른 작곡가의 작품에 사용된 주제와 매우 비슷하다. 어떤 작품인가?

3악장의 주제는 글린카의 '카마린스카야'의 주제와 매우 비슷한데, 그 이유는 두주제가 모두 러시아의 민속 춤곡 리듬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협주곡의 기본 조성인 D장조는 특히 바이올린의 연주 효과가 좋다. 그 이유는?

D장조의 으뜸음인 D와 딸림음인 A는 모두 바이올린의 개방현이기 때문에 D장조의 바이올린 곡은 잘 공명된 소리로 연주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바이올린 명곡들은 대개 D장조이거나 d단조로 되어있다.

 

*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제1악장 심층 분석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1969년 녹음(BMG 74321 34178 2)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볼 수 있지만 오케스트라의 제시부가 생략되고 독주자의 카덴차가 재현부 앞에 온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협주곡 형식을 약간 벗어나있다. 그러나 1악장은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로분명하게 구분되며, 으뜸조와 딸림조로 된 두 개의 주제가 있기 때문에 소나타형식으로서의 필수적인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는 셈이다.

제1 바이올린 파트만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길고 화려한 바이올린 협주곡의 도입부치고는 매우 섬세하고 실내악적이지만, 곧 관현악의 각 파트가 합세하여 점점 세게 연주되고 독주 바이올린의 느린 서주로 이어진다(0:45). 이윽고 모데라토 아싸이(충실한 보통 빠르기로)로 넘어가면서 템포는 좀 더 안정되고 독주 바이올린은 제1주제를 제시하는데, 여기서 오이스트라흐는 매우 여유 있는 템포와 견고한 소리로 차이코프스키 선율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표현해낸다. 제1주제는 곧 부점 음표와 6연음부로 된 경과구로 넘어간다. 이때 오이스트라흐는 경과구로 넘어가는 부점 음표들의 템포를 늦추어(2:12) 여유 있는 템포로 설정된 경과구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대부분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이 부분에서 악보에 표기된 소스테누토를 무시하고 템포의 변화 없이 경과구로 넘어가는 것과 비교한다면 오 이스트라흐는 악보에 충실한 해석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점차 음역 이 올라가고 음량이 커질수록 템포를 당기기 시작해(2:27) 제2주제로 넘어가기 직전까지 음악을 급격하게 몰아붙이는데, 이러한 해석은 그 뒤에 이어지는 감미로운 제2주제와 성격을 뚜렷하게 대비시켜 음악적인 김장감을 높여주기 때문에 매우 설득력이 있다.

'매우 표현적으로'(con molto espressivo)라 표기된 제2주제는 상당히 서정적이고 아름답지만 아주 여러 번 반복되어 지루하게 느껴지기 쉽다. 그러나 오이스트라 흐는 아주 여린 피아노로 시작해 주제가 반복될수록 점차 다이내믹과 표현의 강도를 높여 마지막으로 주제가 고음역에서 등장할 때는(4:42) 그 특유의 견실하고 힘있는 음색으로 흡인력 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더욱 빠르게'(Piu mosso)로 표기되어 있는 작은 코다(5:36)가 시작되면 바이올린은 활털의 탄력을 이용해 활을 현으로부터 튀어 오르게 하는 스피카토 주법을 구사하면서 긴장감을 높인다. 얼마 후 음악평론가 한슬릭이 이 곡이 초연될 당시 '바이올린이 마구 긁히고 찢기고 두들겨 맞았다'고 표현한 악구가 나타나는데(5:47), 오이스트라흐는 이 부분에서 차이코프스키가 본래 작곡한 원전 악보를 사용하지 않고 나중에 아우어가 수정한 악보를 사용하여 단음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한슬릭의 비판을 실감하기는 어렵다.

독주 바이올린의 기교가 정점에 다다라 화려한 고음에 이르면 전 오케스트라가 시원한 총주를 터뜨리며 발전부로 넘어간다(6:26). 여기서 폴로네즈 풍으로 된 트럼펫의 리듬을 타고 현 파트가 연주하는 제1주제는 누구나 한 번만 들어도 벅차오르는 감동을 맛볼 수 있을 만큼 찬란하게 빛난다. 오케스트라의 찬란한 합주가 진정되면 독주 바이올린이 다시 그의 존재를 알리고 나서(7:38) 제1주제를 기본으로 한 악구들을 연주하기 시작한다(7:46). 오이스트라흐는 특히 주제 선율의 윤곽을 드러내기 위해 중요한 음을 악센트로 강조해서,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악구들을 명쾌한 구조로 풀어낸다. 발전부의 음악이 점차 고조되면 오케스트라는 다시 한 번 벅찬 총주를 연주하지만 이번에는 급격하게 빨라지며 카덴차로 이어진다(9:50). 카덴차는 차이코프스키 자신이 직접 작곡했으며 특이하게도 재현부 앞 에 온다. 카덴차는 매우 기교적이지만 음악적인 내용도 충실하다. 카덴차에서는오이스트라흐 특유의 힘차고 견고한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독주자가 카덴차의 마지막 트릴을 연주하는 사이 플루트가 살며시 끼여들어 제1주제를 연주하면서 재현부가 시작된다(12:33). 제시부의 제2주제가 D장조의 딸림조인 A장조로 제시되었던 데 비해 재현부에서는 원조인 D장조로 재현된다. 여러번 반복되는 제2주제에 변화를 주기 위해 차이코프스키는 제2주제를 고음으로 반복 연주할 때는 제시부와 달리 오히려 피아니시모로 연주할 것을 악보에 지시했는데(15:31), 이는 무척 효과적이다. 재현부의 후반부는 제시부와 거의 비슷하게 진행되다가 1악장을 화려하게 마무리하는 종결부로 넘어간다(17:32). 이때 템포는 갑자기 알레그로 지우스토(빠르고 정확하게)로 약간 브레이크가 걸리지만 곧 스트링젠도(점점 빠르게)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오이스트라흐는 강렬한 운궁과 충실한 톤, 그리고 흔들림 없는 리듬으로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감히 따를 수 없는 압도적인 종결부를 연출해낸다.

2001. 4. 최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