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짤뜨옹 스페셜

모짜르트/프리메이슨 장송음악 K. 477 - 브루노 발터(지휘) 콜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만짜 2015. 10. 25. 00:30

 

 

 

 

엄밀하게 말하자면 죽음은 우리 삶의 최종 목적이므로, 저는 지난 몇년 동안 인간의 이 진정한 최상의 벗과 친숙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죽음의 이미지는 저에게 더이상 섬뜩한 모습을 전혀 띄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참으로 매우 아늑한 위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기꺼이 행운을 허락하셔서 죽음을 우리의 진정한 축복을 여는 열쇠로 알아볼 기회를 주셨으니
저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늘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가 지금 젊기는 하지만 혹시 더 이상 다른 날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깊이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저를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제가 사람들과 어울릴 때 침울하거나 슬픈 기색을 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겁니다.
저는 그 축복에 대하여 매일 창조주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곁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 축복이 함게 하기를 바랍니다. - 모차르트가 31살 때 아버지에게 쓴 편지 가운데 -

 

W. A. Mozart: Maurerische Trauermusik (Masonic Funeral Music), K 477

Columbia Symphony Orchestra / Bruno Walter, Cond.

 

17세기 초 영국을 기원으로 하는 프리메이슨은, 모차르트가 살던 17세기 후반의 오스트리아에도 퍼져있었으나

18세기 이후 유럽전역에 걸쳐 프리메이슨 활동이 보여준 개혁적인 면모와는 사뭇 다른, 귀족중심의,
지적인 엘리트 사교문화의 한 형태로 표현되었고 비밀결사라고는 하지만 매우 친 왕권적인 성향으로
오스트리아 왕의 인가를 통해서 활동하던 '공공연한 비밀결사'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역사와 문화를 통해 승인 받아온 기독교 종파들의 입장에선 이단으로 분류되어 인정 받지 못했고
하여 주류 기독교 문화에 신앙심의 뿌리를 두고 있던 대다수의 유럽인들에겐 온갖 속설과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모차르트는 1784년에 프리메이슨에 가입하였다. 역시 프리메이슨의 단원으로 가입하였으나 중도에 탈퇴한
하이든과는 달리 모차르트는 도제, 직인의 단계를 거쳐 자신이 속한 지부의 Master Mason이 되기까지
헌신적인 프리메이슨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이는 1791년 사망할때까지 지속되었다. - 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