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아티스트

스타니슬라브 부닌(Stanislav Bunin, 피아니스트, 1967- )

로만짜 2015. 8. 17. 00:08

       

       



      사진 / 일본에서 지휘자로 변신하여 포디엄에 선 모습

      ** 유투브 감상
      쇼팽-폴로네이즈 op.53
      http://www.youtube.com/watch?v=fUCFQlXeTuc&feature=player_detailpage


      1996년 6월 24일, 베를린 필하모니커의 정기 시즌 마지막을 장식한 이날, 청중
      들은 패기 넘치면서도 시적인 부닌의 쇼팽 연주(지휘, 크리스티안 틸레만)에
      압도되어 연신 탄성을 발했다. 기립박수가 터졌고, 커튼 콜이 계속 이어졌다.
      이에 부닌은 협연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쇼팽의 녹턴 작품 15-1을 앙코르로 연
      주했다.

      이날의 연주에 대해서 부닌은 "기립박수는 연주자에 대한 최고의 존경이자, 연
      주자로서는 영원히 잊지 못할 황홀한 순간입니다. 청중들이 까다롭기로 유명
      한 베를린에서 기립박수를 받은 것은 분명 하나의 사건입니다. 아주 성공적이
      고 흥분되는 공연이었지요. 베를린 필의 연주뿐만 아니라 청중들의 수준도 매
      우 높았습니다.”라고 회고한다.

      부닌이 이러한 황홀한 순간을 처음 맛본 것은 1985년 10월, 폴란드 바르샤바
      에서 열린 제11회 쇼팽 콩쿠르 결선에서였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 표
      출된 그의 강렬한 개성은 심사위원과 청중 모두를 놀라게했고, 그 결과 쇼팽
      콩쿠르 사상 최연소(19세) 우승과 함께 콘체르토 상, 폴로네이즈 상까지 휩쓸
      었다. 일본 빅터 레코드사에서 ‘부닌 - 충격 쇼팽 콩쿠르 라이브 I, II, III’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된 그의 쇼팽 콩쿠르 실황음반은 발매 6개월만에 40만 장이 팔려
      나가는 대 히트를 기록하며 세계 음악계에 ‘부닌 신드롬’에 불을 당긴 것이다.

      부닌의 집안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빛나는 성공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할아버지 엔리히 네이가우스는 피아노를 독학
      으로 마스터한 피아니스트인데 에밀 길렐스·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등 거장
      들을 조련한 러시아 피아니즘의 원류였고, 심장마비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
      지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 역시 쇼팽 전문 연주가이자 교육자였다. 어머니
      루드밀라 부니나 또한 엔리히 네이가우스가 아끼던 피아니스트였다.

      부닌은 1966년 9월, 그런 음악가문에서 태어났다. 처음부터 피아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고 태어난 셈이다. 부닌의 첫 번 째 스승은 어머니였다.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한 부닌은 어머니를 통해 음악의 기초뿐 아니라 음
      악에 대한 지적인 감각과 정열을 키워나갔다. 아들의 모스크바 음악원 입학 준
      비까지 도맡아 했던 루드밀라는 나중에는 아들의 매니저 역할까지 하며 부닌
      을 보살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해서는 도렌스키를 비롯해 그에게 콩쿠르의 길을 열어
      준 엘레나 리히테르 등 명교수들을 통해 러시아 피아니즘의 진수를 전수 받았
      다. 특히 엘레나 리히테르의 감각적이고 섬세한 피아니즘은 그에게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는 여덟 살부터 열아홉살 때까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엄격하고
      미세한 부분까지 철저하게 교육하는 사회주의식 예술교육을 받으며 장차 세계
      적인 피아니스트로의 꿈을 키웠다.

      17세 때, 부닌은 롱 티보 콩쿠르에서 슈만의 '클라이슬레리아나'를 연주해 우
      승을 차지했다. 우승 직후 멜로디아 레이블로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꽃
      노래' '토카타 C장조'등을 담은 데뷔 음반을 발표했다. “슈만의 선율은 어느 악
      기로 연주하든 낭만적인 아름다운 포에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슈
      만 음악의 매력이다”라는 부닌의 주장처럼, 이 음반에는 이미 로맨틱한 정취
      속에 경묘하게 노래하는 부닌의 특징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2년 뒤 쇼팽 콩쿠르에 도전했고, 이 콩쿠르를 통해 일약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
      덤에 올랐다. 그 선풍의 진원지는 일본이었다. 쇼팽 콩쿠르 라이브 레코딩으
      로 먼저 선풍을 일으킨 일본에 그가 상륙한 것은 1986년. 도쿄·오사카 공연은
      티켓 발매 전날부터 음악팬들이 밤을 새워가며 긴 행렬을 이뤘을 만큼 선풍적
      이었다. 일본 언론들은 ‘부닌 열풍’이란 타이틀로 이를 대서특필했다. 이러한
      부닌 열풍은 근 5년 이상 계속 이어졌다. 특히 1987년 12월 31일 밤 11시부터
      1988년 1월 1일 새벽 1시까지 오사카의 ‘더 심포니 홀’에서 열린 부닌 콘서트
      는 각계각층의 음악팬들로 대성황을 이루었으며, 연주실황이 일본 전 민방 텔
      레비전 네트워크의 신춘 프로그램으로 소개되어 일본 전역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현상은 곧 유럽으로 이어졌다. 1988년 초에 구 소련을 떠나 밀라노를
      거쳐 함부르크에 정착한 그는 모스크바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피아
      노 협주곡 A장조 K.414를 갖고 이탈리아 순회공연을 나섬으로써 이탈리아에
      서 먼저 주목받기 시작했다. 로마를 시작으로 3개월 이상 계속된 이 순회연주
      회는 한동안 이탈리아 방송과 신문 문화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콜리엘레 델
      라 세라’지의 음악평론가 마야 타넨바움의 연주 평은 당시 이탈리아에서의 부
      닌 선풍이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부닌의 모차르트 연주는 마치 모차르트의 소년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약동
      감 넘치는 음악, 경쾌한 리듬, 부드러운 손, 심한 몸짓 등, 그는 마치 작곡가 자
      신인 양 거침없이 모차르트를 다루었다. 안단테의 눈부신 도입, 로코코 풍의
      주관적이라 할 알레그레토 등은 특히 압권이었다. 공연장을 꽉 채운 청중들로
      부터 압도적인 박수갈채를 받은 그는 현대 피아노계의 새로운 스타임이 분명
      했다.”

      그의 다음 공략지는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이었다. 루돌프 제르킨 대신 출연
      했던 이 페스티벌에서 시노폴리가 지휘하는 런던 필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
      곡 K.488을 협연한 그는 자신의 모차르트 해석이 '사고의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며 유럽 음악계에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히 각인 시켰다.

      그의 행보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뉴욕 카네기 홀 데뷔·스칼라 극장 데뷔·빈 뮤
      직 페라인 리사이틀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순간 순간 즉흥성이 돌출하
      는 그의 개성 강한 연주는 청중들에게는 무한한 찬사를 받았지만, 평론가들에
      게는 찬·반이 엇갈리는 논쟁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연주에 부정적
      인 시각을 보이는 평론가들에 대해 이렇게 반론했다. "천재라는 평판이 자자했
      던 미켈란젤리나 호로비츠가 지금까지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연주를 한 적이
      있었던가. 어떤 피아니스트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연주를 한다면 그것은 아무
      런 재미도 느낄 수 없는 콘서트가 되고 말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틀에서 벗어
      났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영광이다."

      부닌의 이러한 강한 개성은 1989년 내한 공연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바흐의 이탈리아 협주곡을 비롯해 슈베르트·리스트·슈만·쇼팽 등을 선보인 이
      날 공연에 대해 피아니스트 이귀영은 "그 날렵하고 가벼운 터치로 빠른 패시지
      를 연주할 때 정확한 터치와 테크닉은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의 테크닉
      은 아주 내추럴한 것으로, 독특하고 풍부한 음악을 만들어내기에 좋은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었다. (…) 또한 그가 내는 피아니시모는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하
      고 아름다웠고, 몰아치고 큰 소리를 낼 때는 억제할 수 없는 흥분과 긴박감을
      이끌어 냈다”라고 평가했다.

      부닌의 개성있는 해석은 레코드라는 결과물로 세상에 속속 그 모습을 드러냈
      다. 사고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긴 모차르트 소나타와 협주곡(도시바
      EMI), 서정시인 같은 천성이 확인된 바흐 소나타(도시바 EMI), 드라마틱한 면
      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열정적인 베토벤 소나타(도시바 EMI), 작곡가에 대한
      커다란 공감이 ‘음의 시’로 변형된 쇼팽(RCA 빅터)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중 쇼팽 음반은 1987년 일본의 그랑프리 음반상을 수상했으며, 바흐 피아
      노 독주회 실황음반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음반은 골든 디스크 상을 수상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닌에게는 쇼팽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
      이 사실이다. 쇼팽 콩쿠르는 그에게 쇼팽 스페셜리스트라는 명성과 함께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반면, 그를 쇼팽 연주가라는 한정된 틀 속에 가둬
      버리는 역기능을 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서방으로 이주한 이후 10년은 그런
      부닌에게 있어 쇼팽에서 탈출하는 이미지 변신기였다. 그가 “쇼팽 스페셜리스
      트라고 불리는 것은 즐거움일 수 있다. 그러나 나를 쇼팽만을 잘 연주하는 연
      주가로 몰아가는 것은 분명 부당하다. 실제로 쇼팽뿐만 아니라 바흐·모차르트·
      슈만·드뷔시 등을 많이 연주하고 있고, 몇 년 전부터는 바르토크·스크랴빈 등에
      도 흥미를 갖고 있다”라며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변신은 러시아를 떠난 이후 발터 기제킹·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슈바츠
      트코프· 호로비츠·미켈란젤리 같은 옛 대가들의 음반을 들으면서 시작되었고,
      러시아 피아니즘의 거장이었던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를 만나면서 구체성
      을 띠기 시작했다. "기제킹·슈바르츠코프 같은 거장들의 음반은 저에게 하나
      의 숙제를 던져줬어요. 저는 그들의 다양한 음반을 들으면서 모차르트와 슈만
      등의 해석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미켈란젤리·호로비츠·글렌 굴드의 그 무엇
      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연주와 번뜩이는 감각에서 저의 길을 발견했습
      니다. 또한 리히테르와도 자주 만났는데, 그는 제 연주에 항상 훌륭한 힌트를
      제공해 주었어요. 그는 일급의 피아니스트라기보다는 진정한 예술가였습니
      다. 그가 제게 연주 요청을 해왔을 때 한번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런 인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30대로 접어든 부닌은 나름대로 성숙기로 접어든 듯하다. 그것은 음악
      경향뿐만 아니라, 청중들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발견된다. “연주자에게 명성은
      그리 중요치 않아요. 명성보다는 제가 하는 연주 행위로 세계 여러 곳의 다양
      한 청중들과 훌륭한 관계를 맺는 것이 더 보람있는 것이지요. 제가 뛰어난 피
      아니스트보다는 존경받는 예술가가 되기를 원하는 것도 그것과 무관치 않아
      요.”

      그가 일본 등지에서 후진 향성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
      할 수 있다. 그의 마지막 꿈은 할아버지인 엔리히 네이가우스나 아버지 스타니
      슬라프 네이가우스 같은 대교육자가 되는 것. "제 꿈은 재능이 뛰어난 어린애
      들을 위해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겁니다. 가능하다면 재단 같은 것을 설립할 생
      각입니다. 연주가로서 최선을 다해 좋은 연주를 들려줘야겠지만, 음악가로서
      궁극적인 완성은 과거 저의 스승들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줬듯, 다음 세대를
      이어갈 연주가를 키워내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은 것은 행운입니다."

      대개의 음악가가 그러하듯 부닌도 극도의 완벽주의자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
      면 누구도 말리지 못할 연습광이어서 다른 취미나 남는 시간 등은 생각할 겨를
      도 없이 피아노 앞에서 살다시피(?) 한다고 한다. 또한 연주 전에는 식사를 잘
      하지 못할 정도로 긴장하며,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
      기도 하는 모양이다. 허지만 이는 쇼팽의 피아니즘에서 결코 네가티브적인 요
      소가 아니며, 부닌의 예술 세계에서 이런 기질들은 오히려 그만의 분위기를 만
      들어내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바탕 색깔이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
      다.

      그러나 이렇게 연약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외면적인 모습만이 부닌을 대변하
      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본에서 발매된 여러 종류
      의 레이저 디스크나 비디오에 담겨 있는 가볍고 깔끔한 (어떤 때는 너무 새침
      해 여성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무대 매너와는 달리, 레코드에서 만나는 부닌
      은 의외로 푸근하고 따뜻하며 낙천적이다. 도시바 EMI에서 발매된 ‘바흐 리사
      이틀’ ‘쇼팽 프렐류드’, 그리고 실황녹음인 모차르트의 협주곡 등에서 들려주
      는 그의 음악은 우선 자연스러운 템포의 들고 남이 편안함을 주고, 음색 면에
      서도 자신만의 ‘특별한’ 소리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내추럴한 악기 자체의
      소리를 즐기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앞서 설명한 요소와는 대조적으
      로 할아버지 네이가우스가 갖고 있던 기질이 분명하다. 적당히 낭만적이고,
      그 감상적인 유혹을 여유만만하게 즐길 줄도 아는 ‘흥’과 ‘멋’이 있는 예술가이
      다.

      ** 음반
      Bunin Plays Chopin and Debussy (1999)
      Format: Classical, Color, Dolby, DVD-Video, NTSC
      Language: English
      Region: All Regions
      Aspect Ratio: 1.33:1
      Studio: Geneon [Pioneer]

      Schumann: Kinderszenen; Arabeske; Faschingsschwank aus Wien
      Audio CD (May 9, 1989)
      Label: Polygram Records

      Mozart: Marcia alla Turca
      Audio CD (March 21, 2005)
      Label: EMI

      Stanislav Bunin Plays Mozart Piano Sonata No 11 in A K331; Haydn Piano Sonata No 23 in F; Chopin Piano Sonata No 3 in B minor op 58
      Audio CD (September 20, 1993)
      Label: Mezhdunarodnaya Knig

      ** 퍼 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출처를 밝히시기 바랍니다.

      출처: 곽근수님의 음악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