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무언가, OP.109
총 8집, 49곡으로 이루어진 멘델스존의 무언가집은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표되며 그의 인생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피아노 소품곡집이다. 이 중에서 [무언가, Op.109]는 무언가집에서 유일하게 첼로와의 이중주로 되어있는 실내악 작품이다. 두 곡의 첼로 소나타와 [협주적 변주곡, Op.17]과 함께, 4곡의 첼로를 위한 실내악 작품중의 하나이다. 사망하기 두해 전인 1845년작품으로 만년의 원숙하고 따스함이 배어있는 아름 다운 곡이다. 1845년. *게반트하우스(Gewandhaus)의 연주회에서 첼리스트 리사 크리스티아니(Lisa Cristiani)를 위해 작곡, 초연되었다.
*게반트하우스는 직물회관이라는 뜻이며, 18세기 중반부터 부유한 직물 상인들이 유능한 연주가들을 초빙해 소규모 공연을 하면서 정규 관현악단으로 발전, 창설되었으며, 구 동독을 대표하는 200여년 전통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성 토마스 교회의 종교음악 연주회, 라이프치히 오페라극장의 관현악단 역할도 겸하고 있다. 2001년부터 이태리 출신의 명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Ricardo Chailly)가 맡고 있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역사를 통해서도 일전에 포레의 피아노 소품을 호스팅하며 언급했던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한 부의 축척으로 새롭게 탄생한 부르조아와 중산층의 출현은 이들의 삶에 있어 과시와 문화적 욕구의 표출로 인한 피아노의 공급과 수요의 증가, 가정 음악회, 살롱음악, 더 나아가 연주단체의 창설로 이어지며, 일반 대중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음악의 역사적 흐름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멘델스존의 유태계 독일인으로, 은행가였던 아버지와 역시 은행가 집안의 딸이였던 어머니, 조부는 철학자, 증보부는 교사였다. 이런 좋은 환경속에서 성장하며 1919년 피아니스트로서 첫 공개연주를 시작으로 1921년. 13세의 어린시절부터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며 괴테를 방문하기도 하였고, 이 후로 매주 일요일마다 쩰터, 훔불트, 헤겔,모셀리스등 문인과 철학자와의 교류하며 일요일마다 수준 높은 음악회를 열었다.
이런 멘델스존의 어린시절부터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재능과 그의 부유한 가정환경으로 일생동안 끊임없이 이루어진 많은 해외여행을 통하여 훔멜, 로시니, 베버, 리스트, 베를리오즈, 필드, 슈만, 바그너 등 당대의 유명했던 거의 모든 음악가들과의 만남, 그리고 괴테, 헤겔, 훔볼트등... 다양하고 저명한 문인, 철학가들과의 교류와 배움으로 형성된 논리적인 사고와 품위있는 인성을 바탕으로 낭만적이고 시적서정이 가득한 작품을 탄생시킬수 있었다. 특히 멘델스존의 [무언가 집]은 일생을 통해 지속되며, 그의 정신세계, 음악세계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전후로 멘델스존은 건강의 악화되어 있던 시절이다. 1844년 미완성으로 남겨져 있던, 유명한 [e단조 바이올린 협주곡, Op.64]을 완성시키고 이 후 건강이 악화되어 1845년 이 협주곡의 초연에도 참석할수 없었다. 이 후 잠시 기력을 회복하여 라이프치히의 음악학교에서 다시 수업하며 몇 작품을 남겼지만, 다시 기력이 쇠진되며 스위스의 바덴바덴에서 정양생활을 계속했으나 1847년 11월 라이프치히에서 사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