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브람스/바이올린 협주곡 Op. 77 - 안데-소피 무터(vn) 쿠르트 마주어(cond) 뉴욕 필 하모니 Orch

로만짜 2013. 10. 29. 00:30
 
 
Johannes Brahms (1833 - 1897)
Concerto for Violin & Orchestras  in D major, O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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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llegro non troppo    
     2. Adagio
     3. Allegro giocoso, ma non troppo vivace
Anne-Sophie Mutter , violin
Kurt Masur . conductor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Live Rec. Avery Fisher Hall, New York, 07/1997
이 곡은 많은 명반들을 남기고 있지만, 소피 무터의 연주는 브람스의 협주곡 음반들중에서 인지도가 조금은 뒤진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브람스의 곡 중에서도 평온, 온화한 서정성이 뛰어난 선율미를 가진 이 협주곡을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의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잘 표현되고 있는것 같다. 물론 오이스트라등의 비루투오적인 깊은 느낌은 없다. 그의 보잉과 활의 터치에서 나오는 바이올린 소리는, 첼로나 비올라를 무색하게 할만큼 풍성한 울림을 들려주며 강렬함과 여리고 세심한 서정성이 동시에 느껴진다. 오이스트라의 이런 서정성은 그의 이미지와는 상반되게 보일 수 있는, 모차르트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오이스트라흐의 모차르트 협주곡 음반들도 그 만한 명반을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곡의 심포닉한 웅장함과 상반되어 공존하는, 평온하며 목가적인 한가로움까지 느끼게 하는 이 협주곡의 서정적인 선율에서 본다면, 여성 바이올리니스 특유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성의 무터의 연주는 이를 잘 표현해주고 있고,  편안히 빠져 들을 수 있는 연주인 것 같다. 개인적 느낌이겠지만 음악도 청취시의 환경과 심적 상태, 그리고 시각, 이미지적인 면도 조금은 있다고 본다. 어린 시절 천재성을 나타내며 캬라얀의 열열한 지지를 받으며 성장한 무터의 아름다운 외모도 연주자로서, 또한 상업적인 그녀의 성공에 한 몫을 했을 것이고.. 가끔 무터의 음반에 손이 가는 것도 그녀의 출중한 외모에서의 매력에서 찾는 것일 수도 있다. ^^*
브람스 -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77
베토벤, 멘델스존의 작품과 함께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불려지는 걸작인 바이올린 협주곡은 브람스가 이탈리아 여행 후에 휴양지 페르차하에서 창작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1978년 봄에 브람스는 처음으로 동경하던 신중한 준비까지 하며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 돌아온 후 여름에는 마음에 드는 페르차하에서 창작에 몰두했고, 이탈리아 여행에서의 음악적 영향은 이 바이올린 협주곡과 무관치 않으며, 이탈리아 여행중에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려고 생각하여 스케치도 시작하였지만 결국은 바이올린 협주곡에 집중했다. 처음으로 다룬 작품이자 그의 단 하나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곡의 초연은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 1879년 라이프치히의 게스트반하우스 관현악단의 제11회 예약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이 협주곡의 작곡에 브람스와 논의를 지속했던 요하임의 바이올린을, 지휘는 브람스가 했고다. 초연에 사용된  악보는 논의와 수정을 거치며 초연 논의 등의 사정으로 인해, 손으로 씌여진 악보로 행해졌다. 초연은 대성공으로 대부분의 비평가로부터 절찬을 받았다. 초연 이 후에도 부다페스트. 빈, 런던,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급속하게 각지로 퍼져나가며 절찬 속에 재현되었다.
이 협주곡은 페르차하에서 완성된 D장조의 협주곡은 제2교향곡과 마찬가지로 D장조의 조성이다. D장조의 조성의 이 밝고 낭만적인 색채는 브람스가 이탈리아 여행 후 머물며 창작에 몰두하던 페르차하의 아름다운 풍경과 여유로운 생할이 담겨져 있는 온화하고 평온하며, 전원적인 면을 가진 서정적인 선율을 담아내고 있다. 이런 아름다운 선율미의 강조는 1877년. 막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의 초연 현장에서 브람스가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 1844~ 1908)의 탐미적인 감미로운 음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며 받았던 인상을 이 곡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클라라 슈만의 표현처럼 - '오케스트라는 독주자와 완전히 융화되었고, 1 악장의 정서는 마찬가지로 D장조의 제2 교향곡의 그것과 아주 비슷합니다.' -클라라의 표현에서 보듯이, 이 협주곡은 오케스트라와의 조화가 완벽히 이루어지며 구성적으로도 완벽함을 보여주는 곡이다. 곡의 구성은 특별히 새로운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고, 베토벤의 협주곡과 비슷하며 보수적이다. 이 협주곡은 이탈리아 여행 후의 작품으로 바이올린이라는 선율악기를 주역으로 하게 되면서 선율미를 중시하고 있다. 사라사테는 제2악장의 오보에 주제를 전곡에서의 유일한 선율이라고 했지만, 실은 노래하는 선율은 이 곡의 곳곳에 펼쳐져 있어 매우 서정적인 감미로움을 주고 있는 곡이다.
제1악장은 보수적인 고전 협주곡에서처럼 관현악의 제시부만으로 시작되고 있지만, 제3악장은 론도로 독주 바이올린이 먼저 주제를 제시하는 이례적이고, 당시의 협주곡으로서도 진귀한 것이다. 특히 이 곡의 특히한 점은 제1악장에 다른 사람의 손에 카덴자를 삽입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데 이것은 브람스와 오랜 교분을 가지며 바이올린 협주곡의 작곡 뿐 아니라 바이올린에 관한 여가가지 조언과 논의를 하던 요하임의 체면과 명분을 세워주기 위한 배려 일 수도 있다. 이 곡은 많은 카덴자를 남기고 있다. 요하임이 쓴 것이 가장 인기를 얻고 있고, 이것과 나란히 사랑받고 있는 카덴자는 크라이슬러가 1928년의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거장적인 기교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하이페츠의 것이라 할 수 있다.
-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의 카덴자를 만든 주요 바이올리니스트 -
레오폴드 아우어(Leopold Auer, 1845~1930), 아돌프 부슈(Adolf Bush, 1891~1952), 후고 세르만(Hugo Hernamn, 1844~1935), 토르 아우린(Tor Aulin, 1866~1914), 앙리 마그리트(Henri Marteau, 1874~1934), 야사 하이페츠(Jascha Heifetz, 1902~1987)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과 의견을 주고받은 작곡과정
브람스의 최초의 음악친구는 레메니(Eduard Remeni,1830~1898)이며, 레메니의 소개로 '요하임 Joseph Joachim (1831~1907)'과 알게 된 요하임은 브람스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며 많은 조언과 논의를 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두터운 교분을 맺으며, 아래 글에서 보듯이, 브람스는 요하임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감명을 받았고,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의 집시 양식으로의 접근은 요하임의 곡과 얼마간의 관계가 있기도 하다. 브람스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에서 과장된 것도 있지만, 실제로 브람스와 요아힘이 교환한 편지를 보면, 이 두 사람은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 받았다.

'나의 오랜 친구인 당신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얼마나 마음이 설레였는지. 더군다나 4악장의 협주곡이라니……. 독주 부분을 세심하게 보고 있는데 몇 군데는 손을 좀 봐야할 것 같더군요. 물론 총보가 아닌 파트보만을 보고서 판단하기는 좀 어렵지만 말입니다. 이 협주곡은 대단히 독창적인 것 같습니다. 실제 연주할 때의 효과가 어떨지는 지금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이 삼일 내로 함께 만나서 여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1878년 10월 23일, 브람스는 요아힘에게 '지금 아다지오와 스케르초 부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라는 편지를 보낸다. 한 달 후에는 '원래 계획했던 2개의 중간 악장을 빼버리기로 결심했고 대신 아다지오를 넣었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전체적인 구성에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요아힘의 역할은,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그러나 브람스가 요아힘의 기술적인 조언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요아힘은 너무 어려운 기교적인 부분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결국 완성된 판본은 브람스의 굳은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아힘의 역할은 비록 한정된 부분이지만, 분명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탄생에 하나의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영향을 비친 작곡가, 연주자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비오티(Giovanni Battista, 1831~1902)'의 [바이올린 협주곡 22번 a단조]에서도 영항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브람스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스케치하고 있던 1878년 6월. 뒤셀도르프 연주회에서 요함임의 지휘와 바이올린에 의해 브람스의 신작인 교향곡2번과 비오티의 협주곡등의 연주를 들은 후, 페르차하에서 클라라 슈만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것은 비오티의 '협주곡 22번'입니다. 대단히 독창적인 상상력이 인상적이었고 요아힘의 연주도 최고였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훌륭한 작품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이것은 이탈리아인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비루투오의 요소가 짙은 풍부한 환상성과 정열적인 솔직함에 사로 잡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고, 이러한 것이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비오티 외에 브람스가 젊은 시절에 매료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는 '요하임 Joseph Joachim (1831~1907)'의 것이 있다. 이것은 1861년에 완성된 [1악장의 협주곡 g단조,Op.3]과 [헝가리조의 협주곡(Konzert in ungarischer Weise,Op.11)]으로 브람스에게 헌정된 두 곡 이다. 이 곡의 완성 과정에서도 두 사람은 두터운 교분으로 악보를 주고 받으며 의견을 주고 받은 것으로 보이며, '헝가리조의 협주곡'의 요하임의 곡에서 바이올린의 기교적이 패시지 기법과 집시 양식의 음악 처리를 익힌 것 같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의 집시 양식으로의 접근은 요하임의 곡에서의 영향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브람스는 같은 시대의 '막스 브루흐(Max Bruch, 1838~1920)'의 3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 곡중에서 제1번과 3번을 특히 높히 평가했는데, 3번은 1981년에 출판된것으로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이 후의 것으로 특별히 관계는 없다. 제1번에 관해서는 1879년 가을의 요하임과의 연주 여행 프로그램에 이 1번을 넣을 것을 요하임에게 권했다. 그러나 이 두 협주곡은 브람스에게 강한 영항을 주지는 않은것 같다.
하지만 1877년 여름 바덴바덴에서 파블로 데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 1844~ 1908)'가 연주하는 막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의 초연 현장에 있던 브람스는 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요하임의 바이올린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사라사테의 탐미적인 감미로운 음에 상당한 매력을 느겼던 것 같다. 그것과 동시에 브람스는 권위적인 거장 연주의 본질에 의문을 품으며, 재인식한 바이올린의 음과 협주곡의 모습을 자기나름대로 살린 협주곡을 쓰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해에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