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érénade mélancolique in B minor '우울한 세레나데', Op.26
바이올린 협주곡이 완성되기 조금 전, 차이코프스키는 오케스트라 반주를 동반하는 바이올린 소품 2곡을 작곡하였다. 그 중 하나인 '우울한 세레나데는 1875년 아우어의 의뢰를 받고, '피아노 협주곡 제1번'과 발레 '백조의 호수'등의 작곡이 진행중이던 시기. 어깨의 무거운 짐을 덜어내는 듯한 가벼운 터치로 썻다고 전한다. 다른 한 곡은 '왈츠 스케르초, Op.34'이다
이즈음 차이코프스키 주변에는, 아우어, 라우프, 코제크, 브로츠키 등,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크들이 있어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표현력과 기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충분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는 근간이 되었으며, '우울한 세네나데'는 그러한 의미에서도 의미있는 작품의 하나가 된것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에는 '현악 합주를 위한 세레나데' 가 있기는 하나, 다악장의 기악 작품의 세레나데였다. 거기에 반하여, 이 우울한 세레나데는 연인의 집 창문 아래서 부르는 사랑의 노래, 성악곡으로서의 세레나데 기악판이라고도 말 할 수 있는 성격의 소품, 멜랑콜리한 적적함, 애수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마음 속 깊이 와 닿는 소품이라 말 할 수 있다. 아우어의 의뢰로 쓴 곡 이기는 하지만, 초연은 아돌프 브로츠카(바이올린 협주곡도 그가 했다.)에 의해 모스크바에서 1876년 1월 28일에 이루어 졌다. 헌정은 작곡을 의뢰한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헌정되었다.
Souvenir d'un lieu cher '그리운 마을의 추억', Op.42
명 피아니스트였던 차이코프스키는 유명한 '협주곡 1번, Op.23' 에서 어린이용의 소품까지 다수의 피아노 곡을 남겼으나, 바이올린 곡은 4곡 뿐. 라우프(Ferdinand Laub, 1832~1875)와 아우어(Loepold Auer, 1845~1930)등의 명 바이올리니스트와의 두터운 교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그 수가 매우 적다.
제1곡 '명상곡, Op.42-1' 은 1878년 3월 23일부터 26일에 걸쳐 스위스의 클라란 체제중에 바이올린 협주곡 제2악장으로 쓰여졌다. 이 곡이 코제크(Yosif Kotek,1855~1884.- 차이코프스키와 라우프의 제자로서 폰 케크 부인의 가정 음악회회의 일원)와 동생 모데스크의 공감을 얻지 못한 안단테인 것이다.
작곡자 자신은 이 소품을 버리기 아까운 매력을 느끼고 있었는지, 같은 해 봄. 귀국과 더불어 폰 메크 부인의 영지 브라이로프에서 새로이 쓴 '스케르초,Op.42-3' 와 '멜로디, Op.42-3'를 추가하여 '그리운 마을' 이라고 이름 붙혔다. 이 소품집은 그가 처음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쓴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명상곡 Op.42-1'은 주선율이 입체적인 대비감이 없는, 약간 기계적으로 이어지는 단조로움까지도 느껴진다. 그러나 선율 자체는 세밀하고 아름다우며, 차이코프스키의 매력을 전하기에 충분한 소품으로 자주 연주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