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트를 위한 음악이 유럽에서 현저하게 일어난 것은 15∼16세기의 르네상스 시대이다. 가장 일찍 류트를 위한 태블라추어*악보집이 출판된 것은 1507년의 이탈리아로서, 독일(1511), 프랑스(1529) 등이 거기에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다 밀라노(Francesco da milano), 독일의 노이지들러(Hans Newsidler), 프랑스의 르 르아(Adrian Le Roy), 헝가리의 바크파르크(Valent in Bakfark) 등이 류트 음악의 초기에 있어서 대가(명연주가 겸 작곡가)였다. 다소 뒤늦게 영국도 1600년 전후에 류트 음악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다울란드(John Dowland) 같은 인재가 뛰어난 활동을 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대의 프랑스에서 활동한 브자르(Jean-Baptiste Besard) 정도까지를 악곡의 스타일, 악기의 조현 등의 점에서 [르네상스 류트 악파]라 불러 하나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당시의 폴리포닉한 가곡을 독주용으로 편곡한 것, 당초부터 기악적으로 착상된 고도로 폴리포닉한 악곡(판타지아 등), 극히 자유로운 기악곡(프렐류드 등), 일정한 리듬을 수반하는 무곡(파바나, 갈리아르다 등) 따위를 포함했고, 또 류트 반주용의 가곡도 적지 않다. 이들 내용은 일반적으로 높고, 그 속에는 기악 작품으로 16세기를 대표하는 갖가지 명곡도 포함된다.
1630년경 류트 음악은 특히 프랑 스에서 새로운 진전을 보여 주고, 고티에(Denis Gauthier)를 중심으로 하는 [파리악파]의 류트 주자들이 당시의 신양식이였던 모음곡을 비롯한 악곡의 스타일에, 또 조현면에 신기축(新機軸)을 정립했다. 이 유파는 17 세기 후반부터 독일 방면의 음악가들에 의해 계승되고 고명한 바이스(Leopold Sylvius Weiss)를 정점으로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뛰어난 [바로크 류트 악파]를 이루었다. J. S. 바흐의 류트곡도 이 시기에 쓴 것이다 . 그러나 류트와 그 음악은 18세기 중반부터 차츰 쇠퇴하고, 크게 발달을 보고 있던 건반악기의 세력 앞에 잊혀져 갔다. 류트와 그 광범한 레퍼토리는 현대에 이르러 재평가되었지만, 현대 작곡가에 의해 이 악기를 위 해 신곡이 만들어지는 예는 지금으로서는 매우 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