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고음악

베토벤/장엄미사 전곡 - 필립 헤레베헤 지휘

로만짜 2011. 11. 30. 09:24

 

 

Ludwig van Beethoven : Missa solemnis in D major, Op. 123

 

1. Kyrie  2. Gloria  3. Credo
4. Sanctus  5. Benedictus  6. Agnus Dei 

(연주시간: 약 80분)

 

 

 

Rosa Mannion (Soprano), Birgit Remmert (Mezzo Soprano),
Cornelius Hauptmann (Bass), James Taylor (Tenor), Alessandro Moccia (Violin)

Ghent Collegium Vocale,  La Chapelle Royale Chorus Paris, 
Champs-Élysées Orchestra, Philippe Herreweghe (Cond.)
Date of Recording: 02/1995

 

 

베토벤 장엄미사 : 그 숭고함의 미학 (글쓴 이 - 시골의사 박경철)

 

서기 306년 엘비라 종교회의는 "신앙에 있어서 모든 감각적인 것을 제거하라"고 선포한다.

이것은 교회내의 일치를 앞세운, 성상파괴와 전례에서의 제례적 요소등을 배제하는

극단적 원리주의로 치달았다. 이때 교회내의 모든 성물들과, 조각상, 그리고 성화들이 부숴지고,

미사나 성무에 사용되는 음악마져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감정적 (감상적) 접근으로는 신의 세계를 찬양 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높은 영적 세계는 세속적 아름다움으로는 표방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는

원리주의적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런 중세적 암흑이 몰아치던 와중에도 챤트 ( 그레고리오 성가 )를 비롯한

단선율의 응송들은 허락되었다. 그것은 서기 754년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감각적인 것은 제거하되 수평적인 것은 예외적으로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즉 고대 히브리에서 부터, 그리스도 사후 사도들을 거쳐, 중세 수도원에 이르기까지

신자들이 모여 시편을 중심으로 구절을 암송하고, 음미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운율이므로,

이것은 인간의 감각적 미화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수평적인 선율로서

하느님이 창조한 우주의 소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고저장단이 없이 수평적인 리듬감을 가지는 것만이 허용되던 중세 암흑기에는,

음악뿐 아니라 회화나 건축에 있어서도 수평적 구도를 중시하는 "바실리카 양식"이 "로마네스크 양식"

즉, 로마 교회의 교회양식으로 자리 잡게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俗)을 배제한 성(聖)적 규범들 속에서도 인간에게 본원적으로 잠재 해있는

음악에 대한 갈망은 자연스럽게 그 당시 허용된 유일한 음악이었던 그레고리안 챤트의 변형과

확대를 가져온다, 특히 서기 600년 경에 재위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비잔틴과 로마 전체를

아우르는 지역에서 고유의 예배의식에서 사용된 성가들을 수집하여 미사에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기원이 되어 당시 카톨릭교회의 미사에는 많은 단선율의 음악들이 사용되고
이때 사용되었던 교회음악들을 그레고리안 챤트 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중세의 음송은 이후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폴리포니의 모방양식과 아울러

명확한 악절구분, 가사와 음악과의 밀접한 연결, 균형잡힌 악곡구성등을 선보이게 되고.

이후 17세기에 등장하는 바흐와 헨델로 대표되는 바로크 시대를 거쳐 대위법의 고전시대와,

그리고 탈규범적 낭만 시대로 이어지는 오늘날의 음악체계를 구성하게 된다,
결국 서양음악의 역사는 교회음악과 그 괘를 같이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교향곡과 같은 음악체계는

미사곡의 체계에서 비롯한 점을 아무도 부인 할 수 없다.


그러나 처음 시편을 음송하면서 시작된 단선율의 챤트는 거의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우리는 가끔 동트기전 비구니들이 교육장인 운문사의 새벽 예불에서 지심귀명례를 음송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낭랑한 목소리나, 하루를 세시간씩 여덟개의 시간 단위로 나누어 "초대송, 찬미가,

시편, 성경소구, 응송, 찬가, 본기도"를 하루 일곱번 의무적으로 행하는 카톨릭 수도원의

성스러운 응송들이 너무나 닮아 있음에 놀라곤 한다. 이것은 불가의 경전이나 예불,

혹은 교회의 시편이나 미사전례의 속성상 여러명이 동시에 같은 문장을 반복하면서
소리를 높여 기도하는 경우에 나름의 운율과 높낮이를 통일 할 필요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통일된 소리를 위한 음송들이 어느새 수평적이고 성스러운 고유의 멜로디를 가지게되고 ,

후에 이 운율의 아름다움에 익숙해진 일반인들에게도 감정이 포함되고 기교가 적용된 변형된 형태의

음악으로 퍼져나감으로서 후에 서양음악 발달의 토대가 된다. 이렇게 시작된 서양음악은

여전히 교회음악의 강한 영향력안에 놓여 있었다,


르네상스를 지나, 바로크, 고전 시대에 접어들면서도 교회의 위상은 변화를 겪었을 뿐,

기본적으로 유럽을 지배하는 주된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았고, 때문에 악보를 구매하고

악단을 유지 할 수 있는 권력과 재력을 가진 유일한 집단인 교회와, 왕가의 취향을 무시하는

혁신적인 음악은 부르조아의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진 19세기에 들어서야 가능해 졌다.
따라서, 바흐,헨델,하이든의 바로크를 지나 모짜르트, 베토벤의 고전시대에 이르면 왕가나 귀족,

그리고 교회의 뜻이 반영된 주류 음악외에도 나폴레옹 혁명이후 고양되는 시민들의 취향이

음악에 조금씩 반영되기 시작한다, 아마 이런면에서 갈등과 딜렘마를 가장 크게 겪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베토벤 일것이다.

 

그는 모짜르트와 달리 치밀하고 조직적이며, 성실한 작곡가 였다. 모짜르트가 천재적 영감의 의지한

"창의적이고 영롱한" 음악들을 "쏟아 냈다"면, 베토벤은 초기 뿐 아니라 후기 장엄미사에 이르기까지

모짜르트,헨델,하이든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했다.

모짜르트가 끊임없이 떠오르는 영감을 바탕으로 건반을 날아다니면서 작곡을 한 것에 비한다면,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모티브를 창안하고, 대위법의 틀속에서 화성과 조성을 두텁께 쌓고,

변조를 반복하면서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서 한마디 한마디를 써나갔던 베토벤의 음악세계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 이었다.

 

 

그는 미사 솔렘니스 (장엄미사)를 작곡하는데 무려 5년의 세월을 소모한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뜨거운 신앙심과, 일생의 음악적 성과를 이 한곡에 담아 내는데는

어쩌면 그정도의 시간도 부족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미사 솔렘니스를 작곡할 당시.

일전에 언급한대로 개인사의 절망속에 미들링의 시골마을에 도피해 있었는데, 그는 그런 상황에서

젊은 시절 작곡했던 오라토리오 감람산의 그리스도와 미사 c 장조를 넘어서는 필생의 교회음악을

작곡함으로서 세상과 화해하고 자신의 난청을 비롯한 모든 세속적 고통을 초극하고 싶었다.


이때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그의 상황을 제자 신들러는 이렇게 전한다,

"우리가 베토벤을 방문 햇을때 출입문을 잠근 거실에서 베토벤이 크레도(Credo)의 푸가(Fuga)절을

노래하고 외치고 박자를 맞추는 소리를 들었다. 이 무서울 정도의 소리에 장시간 귀를 기울인 다음

그 자리를 떠나려 했을 때, 문이 열렸다. 베토벤이 공포가 날 정도의 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우리들 앞에 섰다. 그는 우리들이 엿듣고 있었다는 것이 불쾌했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는 곧 이날의 사건에 관해 침착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큰 소동이었습니다. 모두들 도망갔지요. 나는 어제 낮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으니까요".
나는 그를 달래고 옷을 갈아 입혔다. 우리는 극도로 배고픈 거장에게 뭔가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식당으로갔다. 그는  대위법이나 그의 영원한 음악적 숙적들과 치열한 정신적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어려운 상황 아래서 저 위대한 장엄 미사는 쓰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대작 장엄미사는 이렇게 뼈를 깎는 노력끝에 가까스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이미 나폴레옹 혁명을 지지하고, 시민사회의 태동을 열망하던 개혁가였지만,

스스로는 독실한 신자라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는 신앙인으로서는 더 이상 바랄나위없는

고원한 독실한 신앙을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교회가 주도하는 사회 이데올로기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베토벤의 이러한 정신적 괴리는 귀족과 교회에 봉사하는 동시대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던져진

딜렘마 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던 그는 평생의 음악적 후원자인 루돌프 대공이 오르미츠 교구의 대주교가 될 때

주교취임 미사에 사용 될 미사곡을 자신이 써서 헌정 하기로 작정하고 이 곡 장엄 미사를 작곡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는 보은이지만, 철학적으로는 합당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기서 타협한다,

 

 

그의 장엄미사는 교회 특유의 형식을 벗어난 것이다.

원래 미사통상문은  통상문(Missa Ordinario- 모든 미사에서 항상 행하는 전례)인

" 기리에(Kyrie: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글로리아(Gloria: 하늘에서는 천주께 영광),

크레도(Credo: 나는 믿나이다), 상투스-베네딕투스(Santus-Benedictus: 거룩하시다) ,

아뉴스 데이(Agnus Dei: 천주의 어린양) "과  고유문인 (Missa Propia- 교회력에 따라 내용이 달라짐)

" 인트로이투스(Introitus: 입당송), 그라두알레(Graduale: 층계송). 알렐루야(Alleluia: 야훼를 찬미하나이다),

오페토리움(Offetorium: 봉헌송) , 코뮤니온(Communion: 영성체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베토벤은 곡의 마디를 이러한 미사의 전례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구성하고,

곡의 양식이나 구성에서 전례적 고려를 적용하지 않았다.

이점에 대해 파울베커(Paul Bekker)는 이렇게 말한다


"장엄 미사에 있어서는 예배 의식에 대한 갖가지 고려, 또 갖가지 직접적인 관여가 포기되고 있다.

베토벤은 교회와 세속 사이에 장벽을 무너뜨렸다. 그의 눈이 가는 곳이 자기의 교회이다.

그는 자신의 재단을 세속의 한가운데에 쌓았다. 종교적인 울타리를 그는 참지 못했다"

아울러 " 이 미사곡은 특정 종파의 도그마에 종속되지 않은 범종교성과 심지어는 종교를 초월 하는

독특한 베토벤적 신앙고백이 깃든 작품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엄미사는 형식적 측면과, 혹은 작곡가의 내면적 정신세계 모두에 있어서 전례적이 아니다, 
다시말해, 베토벤의 장엄미사는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하는 장엄미사의 형식을 취하였지만,

특정한 종파나 전례에 구애 받지 않는 범종파성과, 베토벤으로 자신으로 대표되는 당시 신앙인들의

순수한 신앙고백이 만들어 낸 찬란하고 성스러운 작품이다.


덧붙여 말하는 장엄미사란, 원래 성식(盛式)미사라고도 하는 미사의 한 형식이다.

이것은 카톨릭 교회의 정규미사외에 성탄절이나 부활절과 같은 특별한 날이나,

교황이나 추기경,대주교의 취임과 같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사제가 부제와(副祭)와 복사(服事) 등을

거느리고 특별한 음악 연주 속에서 성가대가 답창하는 장엄한 규모의 노래미사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큰 의미에서는 신의 대리인인 사제들이 공동으로 집전(共同執典)하는 공동미사를 가리킨다.


베토벤은 그의 음악적 후원자인 루돌프 대공의 주교 취임식에 그에 합당한 규모의

성스럽고 장엄한 미사곡을 작곡하여 선물 함으로서 그동안의 그의 은혜에 감사하고,

아울러 이것을 기화로 그가 오랫동안 꿈꾸었던 헨델의 메시아를 넘어서는 대작을 작곡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그에 합당한 규모의 작품으로 장엄미사 형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 곡 장엄미사는 그 편성에 있어서 미사전례의 범위를 넘어선다.

즉 4명의 독창자, 혼성 4 부합창, 그리고 파이프 오르간이 딸린 관현악(管絃樂)이 기본으로 편성되며,
곡 자체도 5악장으로 이루어져 한번 연주에 약 1시간 반이 걸리는 대미사곡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비전례적 형식으로 인해 이곡은 베토벤이 단지 미사곡의 형식을 빌린 교향적 음악을

작곡한 것이었다는 설과,  반대로 오히려 이곡은 카톨릭 전례에서 연주 될 때 가장 성스럽고

잘 어울린다는 점을 감안 할 때 베토벤이 그야말로 자신의 혼신의 힘을 쏟아 미사곡의 결정판으로

작곡한 성스럽고 찬란한 교회음악이라는 주장이 양립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후세의 호사가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던 이곡은 베토벤의 개인적인 종교관이 강하게 표현된

음악이라는 점과, 형식상 분명한 미사곡이라는 두가지 사실만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곡을 살펴보면  제1곡 ( Kyrie )의 3부 구성과,  6부로 나뉘어 진 제2곡 (Gloria- 영광송),

그리고 3부로 나뉜 제3곡( Credo -사도신경) . 다시 2부로 구성된 제4곡 ( sauctus- 거룩하시다),

그리고  3부구성의 제5곡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양)의 5악장으로  이루어지는데,,,
이중에서도 특히 절대자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상투스의 성스러운 합창과

상투스를 베네딕투스로 구분하는 간주곡에 사용된 바이올린 오브리가토는 끊어질 듯 끊어 질 듯

애절한 선율은 음악이나 신앙에 문외한인 사람들 조차 가슴속에 뜨거운 감동이 밀려들 정도로

베토벤 정신의 정수를 담고 있다.


또 이곡은 그 곡의 명성이나 음악사적 지위만큼이나 많은 지휘자들과 악단들이 연주와 녹음을 남겼는데

필자는 그중에서도 필 하모니아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연주한 오토 클렘페러반과 (EMI)과

상젤리제 오케스트라와 콜레기움 보칼레 합창단을 이끈 헤르베헤반 (HMF) 의 두가지를 추천하고 싶다,

이중 전자는 장엄함과 거룩함, 그리고 성스러움을 극적으로 고양하기 위해 대편성의 악단과

합창단을 동원하여 연주하였는데. 클렘페르는  이 연주에서 미사곡이 도달 할 수 있는 거의 한계점에
도달한 느낌을 줄 정도로 극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그에 반해 헤르베헤의 연주는 당시의 편성과 같은 원전연주이다.

이 연주는 비록 필자의 개인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이지만 장작이 타는것 같이 서서히 타오르면서

단아하고 정갈한 베토벤을 들려주고 있으며, 헤르베헤의 군더더기 없는 연주와 감정의 과잉을
적절히 통제한 원전 연주 본래의 맛을 잘 살려주는 명연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녹음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후자가 탁월하다,  


이제 한해의 마지막을 맞이 하면서 당신의 종교가 무엇이던, 당신의 믿음이 무엇이던,

장엄미사를 통해 한시대의 인간들이 가졌던 숭고한 열정과 예술혼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