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짤뜨옹 실내악

모짜르트/피아노 소나타 11번, K.331 -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로만짜 2010. 12. 23. 00:00

       

      한수산 필화사건 - 전두환, 노태우가 득세한 1981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의 정치군인들한테는 소설가 하나가 '군인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알아서' 잠깐 맛 좀 보여준 사건에 불과하지만
      한수산한테는 그야말로 '영혼이 침식당하고 신과 인간을 불신하게 만드는' 깊은 고통과 상처로 남는다.

      한수산은 그때 쯤 어느 신문에 '욕망의 거리'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그 소설 중 몇 마디가 정치군인한테 거슬려 정보기관에 끌려가 무지한 고문을 받고 넋나간 사람이 되어 온다.

      “월남전 참전 용사라는 걸 언제나 황금빛 훈장처럼 닦으며 사는 수위는 키가 크고 건장했다.
      그는 지금도 그 수위 복장에 대해서 남모를 긍지를 가지고 있는 듯 싶었다.”

      “그는 자신의 그 꼴 같지 않게 교통순경의 제복을 닮은 수위 제복을 여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여튼 세상에 남자 놈 치고 시원치 않은 게 몇 종류가 있지. 그 첫째가 제복 좋아하는 자들이라니까.
      그런 자들 중에는 군대 갔다 온 얘기 빼놓으면 할 얘기가 없는 자들이 또 있게 마련이지.”

      이런 내용인데, 지금 읽어봐도 분명 80년대 초반의 군인들을 한수산이 비꼬는 냄새가 역력하다.
      하여간, 그 모진 고문을 받고 한수산은 제주도 어느 마을로 가서 대인기피증과 알콜중독으로 은거를 한다.
      거의 매일 혼자 바닷가에 앉아 소주를 마시며 분을 삭히고 날이 저물면 비척거리며 거처에 돌아오는...


             

              W.A. Mozart: Piano Sonata No.11 in A, K.331 "Alla Turca"

                        1. Thema (Andante grazioso) con variazioni 1 - 6 [10:55]
                        2. Menuetto [5:56]
                        3. Alla Turca (Allegretto) [3:35]

             

                    Christoph Eschenbach, piano (May. 1967 / Jesus-Christus Church, Berlin)

      그리고 대략 93년 쯤일꺼다. 어느 오디오 잡지에 한수산의 그때를 회고하는 글이 실렸는데,
      지금 기억에 필화사건의 내용은 별로 언급하지 않고 모차르트의 이 음악에 대해 쓰면서
      그렇게 한스러운 세월을 보내던 어느날, 우연히 에센바흐의 이 연주가 귀에 들어와 밤새워 들으면서
      그 지고한 모차르트의 아름다움 앞에 무릎 꿇어 통곡을 했고, 결국 군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는 거다.

      '방랑시인 김삿갓'과 '베사메 무쵸'를 즐겨 부른다는 전임 대통령 두 분의 문화적 안목을 탓할 수야 없지만
      자기가 수여하고 자기가 받는 훈장을 평생의 대견스러운 업적으로 여기는 그들에게,
      모차르트의 눈물겨운 이 한 조각 아름다움이 어찌 포착되겠는가.

      당시 소수의 철 없는 정치군인들로 인해 운명적인 슬픔의 세월을 꽤 오랫동안 보내야 했던 한수산.
      작가의 내면세계까지를 내 어찌 알겠냐만, 모차르트를 통해 뭘 모르는 필부들을 용서한 그야말로
      과연 천의무봉의 아름다움을 모차르트와 함께 공유할 만한 인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