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종달새가 날으는 밀밭 (Wheat Field with a Lark)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새소리는, 불행하게도 내 귓가에서 지지배배 지저귀던 이발가위 소리였다. 어릴적 이발소에 가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졸음에 수시로 고개를 떨궈대면서 이발사의 가위질을 방해했고, 보다못한 엄마가 이발 끝날 때까지 내 머리통을 잡아줘야 했다. 참새소리, 제비소리처럼 종달새 소리도 언젠가 한번쯤 들어보긴 했을 터였지만, 이 나이 먹도록 나는 종달새 우는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알지 못한다. 그냥 국어책에 나온 의성어대로 지지배배 울겠지.. 하고 만다. 그렇다. 그 불쌍한 아스팔트 베이비는 이발가위 소리를 종달새 우는 소리로 알면서 늙어야 했다. 종달새... 하이든의 현악4중주의 느낌과는 달리 별로 기분 좋은 새는 아닌듯 하다. 아를의 밀밭에 울리는 한 발 총성. 그 총성에 놀라 푸드득 날아오르는 종달새가 유일한 목격자였다. 고흐의 강렬한 삶에 더 없이 어울리는 그 핏빛 종말 위 푸른하늘을 종달새가 날고 있었고 은반위의 요정 김연아가 실수연발을 할 때도 본 윌리암스의 종달새가 날고 있었다. 고흐 정도는 아니겠지만, 글링카와 본 윌리암스의 종달새에도 분명 우울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 "저 새소리 좀 들어봐. 치매 치매 하고 우는 것 같지 않어?" 오늘 아침 일찍 창가에 멍하게 앉아있던 그녀가 힘없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이젠 새들 까지 나를 우습게 보고 놀리는군." 가벼운 갱년기 우울증의 그녀는 침울한 표정으로 창문을 닫았다. 연일 계속되는 월드컵 경기들을 밤새워 재방송까지 챙겨보느라 까칠한 얼굴. 그리스 전 끝난 다음날 아침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2:0. 그녀는 아침 일찍 식구들 깨워 밥 먹이고 여름맞이 대청소 한다고 룰루랄라 온집안을 히떡 뒤집어놓고 친구들과 종일 전화로 수다 떨지 않았던가. 1:4의 아르헨 전은 하루아침에 그녀의 세상을 회색빛 우울로 덧칠해버린 것이었다. 난 오늘 아침 새소리를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필시 지지배배 종달새였을 거란 생각을 한다. "걱정마. 나이지리아 전 이긴 날 아침엔 까마귀가 찾아와서 까르르~ 웃어댈 거야." 유령 같이 흰 손으로 그녀는 냉장고에서 백세주 병을 꺼내고 있었다. x-text/html; charset=iso-8859-1" autostart="true" volume="0" loop="-1" EnableContextMenu="0" showstatusbar="1">
1. Mikhail Glinka: The Lark (Zhavronok) - Evgeny Kissin, piano 2. Ralph Vaughan Williams; The Lark ascending (본 윌리암스; 종달새의 비상) Hilary Hahn (Violin) & London Symphony Orchestra / Sir Colin Davis (C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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