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림운동

[스크랩]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65〉몸살림의 인체학, 목과 눈·코·귀·입·머리 ⑤

로만짜 2008. 5. 17. 15:29
  고개의 역사 2
  
  고려시대 사람들의 자세를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지난 여름 북에서 남으로 전해졌다. 북에서 온 국보급 문화재인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있는 <왕건상>이 그것인데, 8월 13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북녘의 문화유산: 평양에서 온 국보들 특별전"에서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왕건상>이 쓰고 있는 관은 황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고려가 중국과 대등한 황제국가를 자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이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당시의 국제관계 등 고려해야 할 요인이 너무 많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하고, 다만 그때 황제를 자처했다는 것에 대해 그렇게 자긍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당연히 황제를 자처해야 할 조건에서 황제를 자처하지 못했다면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지, 황제를 자처했다는 것이 자랑할 만한 일은 못 된다는 것이다.
  
  널리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위대한 민족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때 제국주의 시대에 나라를 빼앗기고 동족상잔의 전쟁에 보릿고개까지 경험한 우리 민족은 스스로를 정당하게 보지 못하고 자기를 비하하는 나쁜 버릇을 키워 왔다. 이것이 식민사관이고, 또한 식민사관의 배후에서 이론을 제공하는, 서양이 자기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서양 중심주의를 하늘처럼 우러러보는 우리 안의 서양 중심주의이다. 일제 식민사관에는 서양 중심주의가 핵을 이루고 있고, 여기에서 벗어나야 식민사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정도만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우리가 일제의 유제에서 벗어나려면 일제의 식민사관만 가지고 논란할 것이 아니라 그 식민사관에 기본적인 철학을 제공한 서양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식민사관에서도 벗어나고 서양 중심주의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이것을 모르고 일제 식민사관만 가지고 씨름을 해 왔다. 사실은 일제 식민사관은 서양 중심주의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이제는 우리 안에 너무도 깊이 침투해 있어 그것이 자기 자신인 것으로 알고 있는 서양 중심주의와 본격적인 씨름을 벌여야 한다.
  
  전에도 한번 얘기했지만 서양에서 만들어진 학문을 소개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학자는 그러한 행위 자체가 바로 서양 중심주의를 전파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자연과학과 기술과학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문제는 인문사회과학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서양의 인문사회과학 이론을 한국에 적용시키는 작업을 하는데, 이 역시 서양 중심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번안풍(飜案風)에서 벗어나고 우리의 현실에 기초해 학문의 지평을 훨씬 더 넓힐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일 수 있고, 더 나아가 인류 보편의 것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우리가 인류 보편의 것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 서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를 모르고 서양의 조그마한 방법론에 안주해 대단한 것을 하고 있는 양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위대한 한민족이 왜 그렇게 작은 것에 매달려 자기를 상실하고 남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우리 한민족은 종종걸음 치지 말고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할 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다.
  
  누차 하는 얘기이지만 이제는 세계의 표준을 한민족이 만들어 나가야 할 때이다. 지금 불고 있는 한류는 진짜 한류가 아니다. 처음 태풍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핵을 형성하고 넓은 바다를 지나면서 이 씨앗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는 전 세계를 삼켜 버릴 것이다. "원더풀 코리아"라는 말이 서양 사람들한테서 연방 터져 나올 날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겨우 우리도 고려시대 때 황제의 명칭을 썼다는 것에 만족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세상에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건국의 기치로 들고 나온 나라는 하나도 없다. 5천 년이 지난 지금 써먹어도 너무나 훌륭한 이렇게 통이 큰 철학을 5천 년 전에 건국의 기치로 내세울 만큼 우리 민족은 위대했다.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개인적 이익의 극대화가 사회적 이익과 일치한다는 서양의 개인주의를 넘어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바로 인류를 이롭게 하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
  
▲ <왕건상> ⓒ프레시안

  어쨌든 <왕건상>은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를 하고 있다. 그것도 똑바로 앉은 것이 아니라 약간 뒤로 기대앉은 자세를 하고 있다. 그래서 등이 약간 굽으면서 목은 1자를 이루고 있다. 기대앉지 않았다면 아랫배가 나오지 않았을 텐데, 뒤로 기대앉았기 때문에 아랫배가 나와 있다. 이는 어깨가 당당하게 펴져 있어 갑바가 윗부분이 더 크게 튀어나와 있고, 윗배 부분이 잘록하게 들어가 있다는 데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갑바나 윗배의 형태를 보면 이는 허리가 서고 가슴이 펴져 있기 때문에 서 있을 때의 모습은 아랫배가 나와 있지 않은 것인데, 의자에 뒤로 기대앉아 있기 때문에 아랫배가 나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은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 있는데, 이 동상을 만들 당시에 목이 약간 접질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비스듬히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개가 약간 들려 있는데, 이는 평상시에 고개를 버쩍 쳐들고 당당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근육은 완전히 연성근육인지는 판단할 수 없어도 적어도 강성근육이 아니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렇게 힘을 주지 않는 상태로 앉아 있을 때에는 손과 발 가슴, 배 등에 뱀처럼 징그러운 근육이 돋아나 있으면 안 된다. 전회에 그림을 통해서도 보았지만, 동상을 통해서도 우리와 서양이 어떤 형태의 인간을 추구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비교해 보면 연성근육을 추구하던 우리의 문화와 강성근육을 추구하던 서양문화의 차이를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왕건은 천하를 호령하던 무인(武人)이었음에도 힘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떻게 보면 팔이 너무 가녀리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연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하는 사람>은 무인인지 문인(文人)인지는 알 수 없지만, 깊이 생각하고 있을 때에도 힘을 빡 주지 않으면 생기지 않을 근육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
  
  저렇게 힘을 주면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모습이다. 마치 격투기를 하는 근육질의 밥샙이 스트레스를 새기지 못해 구부리고 앉아 있는 자세이다. 허리를 구부리고 가슴을 움츠리면 그 자세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트레스받는 사람>이라고 불러야 정확한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사람이 생각에 집중할 때에는 몸에 힘이 빠져 있어야 한다. 마치 고구려에서 6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국보 78호 <반가유사유상>처럼 말이다. 생각을 하는 것과 기가 푹 죽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반가사유상>처럼 자연스럽게 세워진 허리에 자연스럽게 풀어져 있는 근육에 열반에 들어가 있는 듯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있어야 정말로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다. 근육에 힘을 주면서 동시에 깊은 생각에 빠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컨대 축구를 할 때 운동장을 누비면서 깊은 생각에 빠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축구를 할 때에는 자기가 하고 있는 축구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축구를 하면서 딴 생각을 하다가는 경기를 망치고 만다. 축구할 때 고개를 들라는 것은 실제로 고개를 숙이고는 빨리 뛸 수가 없고 시야도 좁아지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축구라는 것은 넓은 시야를 가지고 전체를 조망하면서 하는 추구를 말한다.
  
  그럼에도 <생각하는 사람>이 울퉁불퉁한 근육을 내놓고 있는 것은 누차 하는 얘기이지만 서양 사람들의 이상형이 근육질의 몸매이기 때문이다. <아담의 창조>에서 아담과 하느님이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듯이 이 <생각하는 사람>도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다. 전회에 얘기했던 대로 미의 여신 비너스는 실제 여자의 모습을 보고 인체의 원리에 맞게 그린 것이라면, 이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프레시안

  <왕건상>에서 느껴지는 실제 왕건의 모습은 역시 영웅다운 기상을 가졌다는 것이다. 의자에 뒤로 약간 기대고 앉아 있어 아랫배가 나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허리가 쭉 서고 어깨가 떡 벌어져 있고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MBC 드라마 <주몽>의 주인공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과 대조가 된다. 천하를 호령하는 사람은 덩치가 큰 사람이 아니라 왕건처럼 허리가 쭉 선 사람이다. 나폴레옹은 키는 작지만 당당하게 몸을 세우고 있다. 그 조그마한 덩치에서 전 유럽을 상대할 만한 기개가 나오는 것은 몸이 쭉 펴져 세상에 대해 자신감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 국보 45호 <부석사소조여래좌상> ⓒ프레시안

  왼쪽의 불상은 고려 중기 때 만들어진 우리나라 국보 45호 <부석사소조여래좌상>이다. 이 정도로 고개가 들려 있으면 거의 정상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턱이 거만하게 보일 정도로 위로 올라가야 목이 곡선을 긋게 되는데, 이 불상은 그런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다음에 보이는 은진미륵(보물 218호. 정식 명칭은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땅에서 솟아나온 돌을 새긴 것이라 하는데, 돌의 모양이 원래 굽어 있어서 그렇게 조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영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아마 누군가 이 돌을 발견하고 부처님을 모시기에 좋은 돌이라 여기고 조각을 하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좋은 모양을 내기에는 돌의 생김새가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머리 위의 긴 관이라든지 손의 모양을 보면 정상적인 모양을 내기 어려운 돌에 돌의 모양에 따라 조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1자 목에 고개가 숙여져 있을 뿐만 아니라 턱살도 두툼하게 쪄 있다. 턱살이 두툼하다는 것은 등이 굽어 고개가 숙여져 있고, 그로 인해 목도 자라목이 돼 있다는 것을 말한다. 등이 굽었다는 것은 허리가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이는 또 고관절이 틀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개에 주름이 져 있다는 것 역시 고개를 숙이고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숙이고 살아 주름이 생긴 것이 고개를 들었을 때 드러난 모양이라고 보면 된다.
  
  스님들 중 참선을 하실 때 방석을 반으로 접어서 궁둥이에 대고 해야 안정이 되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이는 고관절이 틀어져 허리가 세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한 분들은 모두 이 경우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고관절이 제대로 맞아 있고 허리가 서 있으면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가 않다. 책상다리나 반가부좌의 자세가 가장 안정되게 앉는 자세인데, 이런 자세가 불편하다면 또는 이런 자세 자체가 안 된다면 무조건 고관절이 틀어져 허리까지 구부러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여자 분의 경우에는 치골이 틀어져 이로 인해 고관절이 틀어져 있는 경우가 70% 이상은 될 것이다.
  
  원석의 생김새 때문에 은진미륵의 모양새가 기괴하게 되기는 했지만, 얼굴과 목의 모습만 가지고 얘기한다면 인체의 원리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개를 숙이고 살았는데 턱살이 없다면 이것이 오히려 인체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인데, 정확하게 표현돼 있는 셈이다. 그리고 고개는 숙였을망정 여유 있게 웃음을 띤 표정에는 오랜 참선을 통해 쌓은 번뜩이는 선기(禪氣)가 느껴진다. 실제로 관촉사에 가서 이 불상을 보면 처음에는 덩치가 너무 커 위압감을 느끼지만, 조금 있으면 털털한 젊은 선승의 날카로운 눈매가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있으면 친근한 청년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게 된다.
  
▲ ⓒ프레시안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사회가 문반(文班)을 중심으로 하는 양반사회가 된다. 양(兩) 반(班)이 공존했기 때문에 양반이었는데, 태종 이방원이 호족을 척결하면서 무반(武班)은 실제로는 설 자리를 잃었다. 무반은 일종의 잡직으로 간주되게 됐던 것이다. 그래서 양반이라 하면 글을 읽는 선비를 지칭하는 것이고, 칼을 쓰고 활을 당기는 무반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양반으로 간주하지 않게 되었다.
  
  조선시대 양반의 건강법은 고려시대 때부터 정착됐는지 아니면 조선시대 어느 시점부터 정착되게 됐는지는 몰라도 양반걸음과 양반다리였다. 양반걸음은 걸을 때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고 걷는 것이었고, 양반다리는 앉을 때 이렇게 하는 것이었다.
  
  다음 그림은 신윤복의 <봄소풍>인데, 즐거운 소풍에 아이도 아닌 어른들의 마음이 들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걷는 모양이 고개를 바짝 들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이런 자세를 보면 대개는 고개를 어색하게 뒤로 젖히고 있다고 평할 것이다. 이런 자세가 정상인데도 말이다.
  
▲ 신윤복의 <봄소풍>ⓒ프레시안

  다음의 사진은 숙명여자대학교 부설기관인 아태여성정보통신센터(APWINC) 홈페이지(http://apwinc.sookmyung.ac.kr/) '한국의 여성' 코너에 '그림으로 보는 한국여성' 중 개화기 사진 페이지에 나와 있는 것들이다.
  
▲ 왼쪽 : 전통복장은 입은 조선여인(1890년대, 알네벡크 찍음), 가운데 : 가족사진(1900년대, 작자 미상), 오른쪽 : 이화학당의 소풍 행렬(1908년, 작자 미상)ⓒ프레시안

  여자 분들의 고개가 바짝 들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화학당 어린 학생들의 고개도 요즘 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임을 알 수 있다. 학생들 역시 옛날처럼 쭉 펴져 있어야 하는데, 굽을 대로 다 굽어 있다. 소아들이 성인병을 앓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어야 할 때 기지 못하게 생후 3개월 만에 보행기 태우고, 걸어 다녀야 할 때 걸어 다니지 못하게 차를 태우며, 놀이와 운동이 분리된 게임만 하게 된 결과이다. 이 이화학당 여학생들의 쭉 펴진 모습을 보면 병이 침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의 사진은 구한말 시골 장터의 모습을 영국의 비숍 여사가 찍은 모습이다. 우측 남자 옆에 앞을 보고 걷고 있는 여자 분은 밑을 바라보면서 걷고 있지만, 허리가 똑바로 서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프레시안

  헤르만 잔더 씨가 구한말(1906년 9월) 성진에서 길주로 가는 도중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장승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인데, 안내하는 남자 역시 허리가 똑바로 서 있다.
  
▲ ⓒ프레시안

  
▲ ⓒ프레시안

  왼쪽은 구한말 장승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인데 역시 허리가 서고 고개가 들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김구 선생의 모습을 보면 마치 먼 산을 바라보는 듯한데, 먼 사늘 바라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 정확한 자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대개가 굽어 있으니까 이러한 자세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김구 선생만큼은 아니지만 이승만 박사 역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공도 많지만 오래 살면서 못된 짓도 많이 하게 된 것은 이 박사가 건강하기 때문이었다. 건강은 자세에서 오는 것인데, 이 사진을 보면 이 박사가 건강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운형 선생이나 조만식 선생을 보아도 고개를 들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개를 번쩍 들고 있어야 기개가 살아나는 것이고, 그래야 고난에 찬 환경 하에서도 꿋꿋하게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이 차츰 굽은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은 전에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서양 문물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면서부터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8.15광복 때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달라지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이사하게 보이고, 서양 사람들처럼 구부러진 모습이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 왼쪽부터 김구, 이승만, 여운형, 조만식. ⓒ프레시안

  우선 의자 생활이 일상화되게 됐다. 온돌방에서 벽에 기대지 않고 앉아 있으려면 허리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허리를 세우지 않으면 장시간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똑바로 앉으라는 어른들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허리를 세우는 시늉이라도 내야 헸다. 온돌방 문화는 허리를 세우고 사는 문화인 것이다.
  
  반대로 의자 문화는 뒤로 구부리면서 등받이에 기대는 문화이다. 이것이 의자 문화권의 사람들이 허리와 등이 굽는 이유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귀족들의 문화는 몸을 구부리는 문화가 아니었다. 음식을 먹을 때 가슴에 턱받이 같은 천을 대고 무릎 위에는 냅킨을 얹고 먹는 것은 이곳에다 흘려도 좋으니 구부리지 말고 쭉 펴고 먹으라는 것이었다. 귀족들은 이 정도로 몸을 펴고 살려고 노력했는데, 지금은 이런 전통이 상류층 사회에 많이 남아 있다. 상류층 사람들이 비교적 몸을 펴고 있고 몸매가 단정한 것은 이런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1980년대 중반부터 보행기가 보편화되면서 고관절이 약해지고 허리가 굽게 되어 아이들의 몸이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현재의 대학생들은 과반수 이상이 보행기를 타고 자라난 세대일 것이다. 이 보행기 세대의 30% 이상이 척추측만증이 있는데, 이 측만증은 대개가 보행기를 탔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보행기를 타면서 왼쪽 고관절이 틀어져서 측만증이 오는 것이다. 치과에 갔다 오면 거의 턱관절이 틀어지듯이, 그래서 요즘 젊은 연예인들이 대개가 짝눈에 턱이 한쪽으로 밀려 있듯이, 보행기를 오래 탔으면 대개 고관절이 틀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고관절이 틀어져 있다고 모두 측만증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고관절리 틀어지지 않고 측만증이 되는 경우는 없다.
  
  다음으로 소파와 침대가 이용되기 시작했다. 침대는 아무리 과학이라도 침대일 뿐이다. 딱딱한 평상을 올려놓지 않는 한 등이 뒤로 굽게 돼 있다. 소파는 더하다. 몸을 공처럼 굽게 한다. 요새 결혼 때 침대는 필수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이불과 요를 깔고 개고 하는 귀찮은 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면서 헬스장에 가서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쓸데없는 운동을 잘도 한다. 좁은 집에 살 때에는 소파를 들여놓을 수 없지만, 큰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 가면 당장 소파부터 들여놓는다. 노는 날에는 소파에서 뒹구는 것이 일과가 돼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러니 몸이 굽지 않을 수 없다. 성인병, 현대병이 많아지는 것은 이렇게 몸이 굽어 있기 때문인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몸을 펴면 어른이든 아이든 성인병, 현대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데, 현대의학에서는 약과 수술로 치료를 하고 있다. 약과 수술이 굽은 몸을 펴게 해 주지는 못한다. 몸을 펴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현재로서는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몸이 펴져 있다. 일본이 세계 최장수국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 사람들은 다다미에서 무릎 꿇는 자세로 사로 있다. 무릎 꿇는 자세 역시 몸을 펴는 데 우주 좋은 자세이다. 그런데 일본의 가옥은 비좁다. 비좁다 보니 침대를 들여놓을 수 없다. 소파도 엄두를 내지 못하게 돼 있다. 그 결과 일본 사람들은 곧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우리와 비교해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넓은 집에서 살아 몸이 굽고 좁은 집에서 살아 몸이 펴져 있다니, 이 어찌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참고로 몸살림운동에서 일하고 있는 이재승 사범(이범 대표의 둘째아들. 연대 지질학과 휴학 중)의 변한 모습을 보도록 하자. 이 사범 역시 보행기를 타고 자라났다. 그 덕분에 소화불량, 두통, 어지럼증, 여드름 등 고질적인 증세에다 기흉으로 터진 허파 꽈리를 잘라내는 수술까지 했다. 또 기흉 수술 덕분에 현역으로 가야할 군대를 공익으로 때우게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앞의 것은 3년 전에 인도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이다(왼쪽 사람). 환하게 웃고 있지만, 몸이 오른쪽으로 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목도 1자이고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있다. 공익 근무를 하게 된 덕분에 이범 대표와 함께 몸살림운동을 공부하기 시작한 지 2년여가 된 현재의 시점에 찍은 사진이 뒤의 것이다. 고개를 들고 똑바로 선 곧은 몸매가 눈에 뜨일 것이다. 이 사범은 그 동안 가지고 온갖 고질적인 증상이 모두 사라졌다. 이렇게 몸을 펴면 온갖 병은 스스로 물러간다.
  
▲ ⓒ프레시안

  가슴을 보면 갑바가 보기 좋게 나와 있는데, 이것은 바벨을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몸을 펴면서 저절로 나온 것이다. 젊은이들은 가슴 나오게 하려고 바벨 운동을 많이들 하고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몸을 펴면 갑바는 저절로 나오게 돼 있다. 이런 근육이 연성근육이다. 억지로 운동을 해서 갑바가 나오면 그것은 강성근육이 된다. 잘못 운동하면 견비통이나 올 뿐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더 좋은 것은 사범으로서 활약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진은 애리조나주의 섀도나에서 찍은 것인데, 옆에 계신 분은 피닉스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심재석 원장님이다. 미국에서도 몸살림운동을 배우고 싶다는 심 원장님의 요청에 따라 지난 8월 피닉스에 가서 운동을 알려드리던 중에 새도나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심 원장님의 열정과 교포들의 높은 관심으로 이제 미국에도 몸살림운동의 씨앗을 뿌리게 됐다. 몸살림운동의 세계화는 한인 교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 우리 것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세울 때이다. 우리에게 좋을 게 별로 없는 서양문화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이다. 우리나라 '고개의 역사'에서 고개가 굽기 시작한 것은 8.15광복 이후이다. 이 짧은 시간에 우리의 고개는 서양을 닮아 가고 있다. 다시 이전의 당당한 고개로 돌아가야 한다. 고개의 역사를 돌아봄은 이를 위한 것이다.
   
 
  김철/몸살림운동가
출처 : 몸살림운동 부산동호회
글쓴이 : 공구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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