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를 보면서
이번까지 '몸살림의 인체학'이라는 부제로 30회를 연재하게 되는 셈이다. 이제 인체학을 정리하고 다음부터 '세대별 건강법'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난자와 정자가 결합해 엄마의 자궁에 착상되고 나서, 태어나서 자라고 성인이 됐다가 죽어 가는 순간까지 각 시기마다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생로병사의 4고(四苦)에서 나머지 세 개의 고(苦)는 생명체로서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만, 병고(病苦)라는 것은 생명체가 꼭 겪어야 할 고는 아니다. 자연의 생명체는 병이 나서 죽는 것이 아니라 늙어서 자연스럽게 죽는다. 생명체로서는 인간만이 문명을 만들어 내고 그 문명의 노예가 돼서 몸이 구부러져 병고를 겪고 나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다음 회부터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어떻게 해서 병의 고통을 당하게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지금까지 썼던 인체학 지식을 토대로 해서 어떻게 하면 인간이 '모든 병에서 해방'돼 건강하게 살 수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사람이 건강하면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삶을 환희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서로를 배려하며 느긋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가는 줄도 모르고 가야 할 곳으로 가게 된다. 이것이 생명체로서 진화의 가지 맨 꼭대기에 올라와 있는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이다. 문명을 꽃피움으로써 외부 생명체에 의한 생명의 위협이 사라지고 먹을 것 걱정할 것이 없어진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혜택이다. 어떻게 하면 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몸살림의 인체학'이라는 부제 하에서는 치골, 공명, 고관절, 턱과 이, 목과 눈·코·귀·입·머리, 두뇌, 허리, 흉추의 순으로 다루어 왔다. 이로써 우리 몸에 대해서는 대충 다 다루었다. 특별히 떼어서 다루지 않은 것이 있다면 손과 발, 피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 간단한 것이고 이미 여기저기에서 한두 번씩 언급한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따로 떼어서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피부에 대해서는 요즘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므로 한번 짚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몸살림운동을 수련하면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다양하다. 주량이 늘었다거나 성기능이 강화됐다거나 감기에 안 걸리게 됐다거나 허리나 다리가 안 아프게 됐다거나 별의별 애기가 다 나온다. 그러나 그런 것은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이 해결되면서 느끼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눈으로 보아서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앉거나 서거나 걸을 때 몸이 점점 더 똑바로 펴지게 된다는 것이다. 몸살림운동의 수련이라는 게 다른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슨 신비의 명약을 선사하는 것이다. 바로 몸을 펴는 것이 몸살림운동의 핵심이기 때문에 점점 더 몸이 펴지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오히려 몸을 펴지 못했다면 이것이 공연히 비싼 수련비만 내고 아무 것도 얻어 가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자가교정도 배우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고가 났을 때 틀어진 뼈대와 근육을 스스로 바로잡는 방법일 뿐 평상시에 몸을 펴고 사는 것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다. 또 타인교정도 가르쳐 주지만, 이는 다른 사람의 몸이 틀어져 있을 때 조금 도움을 주는 것이지 자기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는 것도, 또한 다른 사람을 건강하게 해 주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도 몸을 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고, 타인교정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도 몸을 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피부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에 여드름에 대해서는 예를 들었지만 피부에 나타나는 질환은 모두 몸이 굽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흉추가 틀어져 이곳에서 내분비계통으로 가는 신경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의 흉곽 안에는 내분비계통의 기관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데, 이곳에 탈이 났을 때 피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다음은 몸살림운동 홈페이지 수련체험담 난에 올라와 있는 얘기이다. 글을 쓰신 분은 충남 서산에서 교원 일을 하시면서 1, 2주일 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와 몸살림운동을 배우고, 현재는 서산에서 몸살림운동 동호회를 지도하고 계신다.
머리카락이 다시 납니다(서장욱, 2006. 12. 17)
몸살림 동호회에서 약 4개월 동안 열심히 수련을 하였고, 본인 말씀으로는 저녁에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팔법을 거르지 않는다는 40대 중반의 남자분이신데 '속알머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몸살림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되었는데, 머리카락 다시 난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허리 세우고 가슴 펴는 운동을 열심히 하였더니 머리카락이 난다"고 하면 도무지 믿지를 않고, 무슨 약을 먹느냐고 묻는답니다. 참 답답한 노릇이지요. 가끔 다른 병으로 약을 먹었는데,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난다는 분은 있더군요.
머리가 허전하신 분들 용기 잃지 마시고, 허리 세우고 가슴 펴는 몸살림운동을 열심히 하시면 새해에는 더 젊어지시리라 믿습니다.
눈길 조심하십시오. 고맙습니다.
머리만 다시 나는 것이 아니다. 그 지겨운 비듬도 사라진다. 비듬이 사라지니 그 많던 귀지도 줄어든다. 그러면 그렇게 가려워서 면봉으로 귀를 긁어 대던 버릇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에게 "허리 세우고 가슴 펴는 운동을 열심히 하였더니 머리카락이 난다"고 하면 도무지 믿지를 않고, 무슨 약을 먹느냐고 묻는답니다. 참 답답한 노릇이지요." '약'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사람은 무언가 몸이 좋아진 것이 있으면, 무슨 좋은 약을 먹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스스로 다 낫게 돼 있는 이 좋은 몸은 놔두고, 조금만 몸에 이상이 있으면 약부터 찾는다. 큰 돈이 들더라도 신비의 영약을 먹고 한방에 나음으로써 건강을 구매하고 싶어 한다. 한방이든 양방이든 현재의 의료체계가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어쨌든 10년 전만 해도 아토피성 피부염은 주로 아기나 어린이들에게 나타나는 질환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정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전설로만 남게 됐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던 아토피가 지금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20대의 아토피 발병비율이 10년 전에 비해 20배나 높아졌다고 한다. 심지어 70대 할머니까지 아토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우연히 <KBS 2TV>의 'VJ특공대'를 보니까 아토피의 해법도 가지가지이다. 10년 이상 병원이니 한의원이니 찾아다녀도 안 낫는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자는 중에도 가려워서 긁어 대니 피부에 상처를 덜 입으려고 손에다 두툼한 면양말을 끼고 자는 사람도 있다. 얼굴에 염증이 나 있는 사람은 보기가 흉하니 대인 기피증에다 우울증까지 걸린다고 한다. 지푸라기라도 부여잡고 싶어 하는 환자의 절실함 때문에 돈을 아끼지 않으니 약을 먹는 것은 기본이고 침, 약초를 풀어 놓은 물에서 목욕하기, 특별히 담근 된장 팩, 구절초 진흙 팩에 바르는 약도 가지가지에 별의별 치료법이 다 등장하고 있다. 인스턴트식품이나 육류, 지방질 음식, 달걀흰자, 땅콩, 유제품 같은 것을 먹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현대의학에서는 아토피성 피부염은 아토피의 여러 증세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머크 매뉴얼>에서는 'Section 12 면역; 알레르기 질환' 중 'Chapter 148 과민성 질환'에서 Gell과 Coombs의 분류에 따라 '제I형 과민반응에 의한 질환'에서 아토피를 다루고 있다. 피부의 과민반응 때문에 아토피가 생긴다고 하는 것인데, 여기에서도 역시 원인에 대한 서술은 없고 '증상 및 징후'에 이어 '진단'법이 나오고, 이어서 '치료'법이 나온다. 원인도 모르면서 치료를 한다는 것은 재수가 좋으면 우연히 나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치료 매뉴얼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할 가치도 없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아토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가계적 또는 유전적으로 나타나는 알레르기성 소인"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원인을 모르면 도피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므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분명히 얘기하는데, 병에는 유전이나 가족력이 없다. 다만 엄마 뱃속에서 눌려 있어 태어날 때부터 병을 가지고 태어나거나, 태어나고 나서 애기 때 부모가 잘못 안아서 척추가 틀어지거나, 부모의 잘못된 자세를 2세가 따라 해서 부모의 병을 2세도 갖게 되는 것일 뿐이다. 아이가 잘못되면 우선 엄마가 아이를 뱃속에 가지고 있을 때 구부리고 있었거나, 잘못 안아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성인이 돼서 부모와 같은 성인병을 앓게 되면 부모와 똑같이 잘못된 자세를 따라서 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유전이라는 근거가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유전일 확률이 몇 퍼센트라고 얘기하는 것은 현대의학의 무책임한 태도이다. 또 가족력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혀지지도 않은 가운데 가족력이 있으면 어쩌고 하는 것 역시 무책임한 태도이다.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면 얘기를 안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럴 수도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사람의 몸을 다루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될 무책임한 태도인 것이다. 현대의학은 이렇게 무책임의 극치 위에서 성립하고 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이러한 사실이 모두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오히려 현재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일 뿐이다.
고초열이라는 것은 봄에서 여름에 걸쳐 식물의 개화기에 나타나는 알레르기성 비염을 말한다. 꽃이 피면서 꽃가루가 날리게 되면 나타나는 증세이기 때문에 화분병(花粉病), 건초열(乾草熱)이라고도 한다. 코의 점막이 충혈되거나 붓고 가려움증을 느끼며 콧물이 심하게 나기도 한다. 계속해서 재채기가 나기도 하고 눈이 충혈돼 가렵고 눈물이 계속 흐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병으로 크게 고생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데, 황사가 불거나 버드나무 꽃가루가 날릴 때 이 증세가 심해진다. 미국 사람은 8~10%가 이 비염을 가지고 있는데, 치료법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를 피하는 것 외에는 없다고 한다. 항히스타민제, 부신피질 호르몬을 투여하며 항원탈감작요법(抗原脫感作療法)을 쓰기도 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어떤 종류의 물질에 대한 선천적 과민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과민성을 보이는 것이니 꽃가루를 피하거나 약을 먹거나 주사하여 잠시 이 증세로부터 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내 잘못이 아니고 유전적으로 주어졌으니 유전자를 바꾸지 않으면 방법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미 태어나 있으니 팔자를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조심하면서 평생 이 질환과 함께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현대의학이 병을 보는 방법은 대개 이와 같다.
그러나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1천만 년 전에 고인류(古人類)로 진화하기 시작할 때 자연환경은 어떠했는가? 여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10만 년 전에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의 초원과 열대우림 속에서 탄생할 때의 자연환경을 생각해 보자. 그곳에서 현생인류는 그곳의 자연환경에 적합하게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도 꽃은 있었을 것이고 꽃가루도 날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에도 미국처럼 8~10% 정도가 선천성으로 고초열에 시달렸을까? 이렇게 진화했다고 가정한다면 이 진화는 실패한 진화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선천적인 질환은 용납되지 않는다. 선천적인 질환이 있다면 이는 면역체계가 잘못돼 있다는 얘기인데, 면역체계가 잘못돼 있는 상태로 진화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더 나아가 한국에는 이 질환이 별로 없는데, 미국에는 이 질환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달리고 있을까를 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 사람은 선천적으로 이 병을 앓지 않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미국 사람은 원래부터 이 병을 앓도록 유전자지도가 만들어져 있을까? 그러면 조금 비약해서 미국인은 열등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한국 사람은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런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미국은 다인종 사회이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유전자도 다양할 것이다. 이를 단일한 인종으로 반만년을 살아온 한국 사람과 비교할 수는 없다. 선천성으로는 도대체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무언가 다른 진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서 합리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도록 하자. 현대의학은 합리주의적 전통에 따라 과학적인 의학을 형성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현대의학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음은, 오히려 비과(非科學)학 내지는 반과학(反科學)의 극치를 달리고 있음은 그 동안 누누이 지적했다. 어떻게 합리주의적 전통을 따르는 현대의학이 거꾸로 비과학 내지는 반과학의 극치를 달리게 되는가는 합리주의의 역사적 위치를 제대로 이해하면 쉽게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합리주의를 어떤 절대적 가치로 설정해 놓고 보면 합리주의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유교나 불교, 기독교, 힌두교가 어떤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시기에 탄생해 일정한 과정을 거쳐 현재에 도달했듯이 합리주의라는 것도 특정한 지역에서 일정한 시기에 탄생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각 종교에도 수많은 종파가 있듯이 합리주의를 보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합리주의가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했듯이 1960년대 이후 이루어졌던 우리나라의 근대화 역시 서양화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서양화는 합리주의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생활하고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였다. 이런 과정에서 합리주의는 상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를 잡아 버리고 말았다. 누가 화를 좀 내면 "화 내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자"고 말한다. 이성적이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합리적인 것은 좋은 것의 대명사가 되고 만 것이다.
서양에서 합리(合理)주의는 근대의 시기에 섭리(攝理)주의에 대항해서 성장했다. 중세 신 본위의 사고에서 인간 본위의 사고로 전환하자는 것이었다. 인간 본위로 사고하고자 할 때 그 기준으로 세운 것이 이성(理性)이었다. 이성은 두뇌로 사고하는 것이었다. 두뇌 중에서도 감성적인 부분을 제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것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감성이라는 것은 이성이 사고하고 판단하는 데 자료를 제공하는 기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물론 낭만주의의 흐름이 이러한 이성 중심의 답답한 사고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감성은 오감(五感)을 통해 이성에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이었다.
여기에서 이성과 감성의 관계를 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또 이성과 감성의 관계를 논하게 되면 서양적 사고의 틀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서양의 논의를 다시 반복할 필요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서양에서 이런 논의가 있었는데 그 줄기는 어떠했고, 또 왜 그렇게 됐는가 하는 과정만 이해하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논의 자체를 진리로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한 진리에 휘둘려 자기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생명체에 비교하면 하나의 뜬구름에 불과하다. 생명체가 바로 하늘이라면, 한 생각의 줄기라는 것은 그 하늘을 떠도는 구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생각에 매달려 하늘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낸다. 그 생각에 푹 빠져 버리는 것이다. 이 생각의 구름이라는 것은 비가 돼서 한번 땅에 쭉 내리고 나면 다 없어지고 만다. 그 거대한 구름이라는 게 실은 비가 돼서 내리고 나면 아무 것도 안 남고 없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가 생각도 하고 행위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이성의 문제와 관련시켜 보면 이성은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생명체가 진화의 과정에서 더 잘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내고 발전시킨 수단인 것이다. 인간 이전의 포유류가 두뇌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해서 생명체가 아닌 것은 아니다. 생명체가 두뇌를 발전시킨 것이다. 필자가 두뇌가 중심이 아니라 흉추가 중심이라고 하는 데는 이런 의미가 내포돼 있다. 중추신경계에서 생명의 근원인 흉추가 진화의 과정에서 두뇌를 비대화시켜 자기의 의지를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이성은 자신을 키워 낸 부모의 뜻에 따르게 돼 있다. 자기 혼자 한껏 생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지만, 이렇게 생각의 나래를 펼친 덕분에 문명의 꽃도 피우게 됐지만, 결국은 생명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인간이 두뇌로 아무리 발달한 문명을 만들어 내도 이는 결국 생명체가 살기 위한 것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이성이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는 소위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한 번 비가 내리면 꺼져 버리고 말 뜬구름을 진리라 믿고 이의 전파에 목을 맨다. 내가 믿고 있는 종교가, 나의 철학이, 나의 이데올로기가 온 세상에 퍼져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다. 20세기가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됐던 것은 결국 이성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 이데올로기에 그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헌신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때문에 생명을 죽이는 전쟁도 하고 혁명도 하고 동과 서로 편을 가르고 냉전을 벌이기도 했다.
자기가 만들어 낸 것을 우선하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자기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즉 생명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만들어 낸 것을 우선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생명의 문제, 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명의 문제를 우선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철학이고 사상이고 문화고 무엇이고 간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생명의 문제이다.
근대 이성의 시기에 합리주의로 무장한 유럽 사람들은 비(非)유럽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생각했다. 야만에 대해서는 문명이 이를 깨우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도 문명화이고 철도를 놓는 것도 문명화였다. 그리고 야만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들이 사는 지역에서 자연자원을 약탈해 가고 이들을 노예화시키는 것도 문명화였다. 합리주의로 무장한 유럽이 하는 일은 모두 진리에 합당한 일이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미국을 진리로 자부하면서 비(非)진리인 악의 축을 절멸시키고 이들 나라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심어야 한다고 전쟁을 벌였다. 문명과 진리가 생명보다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를 우상숭배의 종교로 만드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합리주의라는 것은 이렇게 서양 사람들이 만들어 낸 자기 중심주의였다. 결국 합리주의는 서양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제멋대로 해석되는 잡동사니였다. 이 사람의 합리주의는 저 사람에게는 합리주의가 아니고, 저 사람의 합리주의는 이 사람의 합리주의가 아니었다. 합리주의는 섭리주의에서 인간 본위로 나아가는 데는 기여했지만, 그것은 결국 서양 사람들 본위로 나아가는 데 기여했을 뿐, 인류 차원으로 범위를 넓힌 것은 아니었다. 서양 근대의 합리주의는 서양 중심주의였고 서양 사람 중심주의였다.
현대의학을 합리주의와 연결시켜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굳건한 철학적 토대도 없고 앞뒤가 연결되지도 않는 구멍이 숭숭 난 이론체계를 가지고도 결국 현대의학은 이 지구상에 현대의학 중심주의를 관철시켰다. 유럽에서 탄생한 것이면 모두 문명이고 비(非)유럽의 것이면 모두 야만이라고 주장하는 서양 중심주의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현대의학은 각 나라의 전통적인 방법을 야만으로 치부하고 몰아내면서 문명의 표징으로서 모든 나라에 퍼져 갔던 것이다. 특히 근대화가 초미의 과제였던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 현대의학은 근대화의 상징 중의 하나로서 법적으로 독점권을 누리게까지 됐다.
합리주의는 비합리주의를 야만으로 취급했지만, 근대의 시기에 합리주의만큼 사람들을 '야만'적으로 취급한 사상은 없었다. 합리주의자들에게 자기 인종은 사람이었지만, 타 인종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동물에 비해 기억력이 뛰어나고 말을 할 수 있는 동물일 뿐이었다. 서양에서도 중세 이전, 즉 고대 로마에서나 존재하던 노예제가 미국 땅에서 10세기를 지나 부활했다. 이 노예제를 부활시켜 낸 사람들은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프로테스탄트였다. 유일신을 믿고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합리주의 문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들을 보고 문명화된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합리주의 안에는 문명과 함께 지독한 야만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합리주의를 자신의 전통으로 삼고 있는 현대의학에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문명과 야만이 공존하고 있다. 현대의학에서 문명은 화학물질에 지나지 않는 약과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 기기이고, 야만은 원인을 모르면서 하고 있는 '치료'이다. 원인을 모르면서 치료를 하고 있는 이 놀라운 야만이 약과 의료기기에 의해 문명으로 포장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의 근대가 군함과 대포라는 근대 과학기술의 산물을 문명으로 치장하고 타 민족을 착취하고 노예로 삼는 야만을 저질렀던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합리주의, 즉 이성으로 잘 판단해 보면 병이라는 것은 유전될 수 없다. 야생의 동물은 병으로 죽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잡아먹혀서 죽거나 못 먹어서 죽거나 살 만큼 다 살고 나서 죽는다.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 종이 멸종해 버릴 수는 있지만, 병으로 죽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람도 야생의 동물로부터 진화했다. 그런데 인간만이 병이 유전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현대의학은 논리적 사고로부터도 너무 많이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누누이 써 왔지만 현대의학은 온통 논리의 비약을 통해서 체계가 구축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래 위에 세워진 누각, 바로 사상누각이라고 했던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왜 피부가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소위 '과민반응'을 일으키는가 알아보도록 하자. 몸살림운동에서는 사람의 몸을 볼 때 몸을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의 몸을 볼 때 몸을 중심으로 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모든 체계는 한방이든 양방이든 그 무엇이든 사람의 몸을 보면서도 몸을 중심으로 보지 않았다.
사람의 몸보다는 근대 이후의 시기에는 약이나 수술을, 전근대의 시기에는 신(神)을 중심으로 보았다. 몸에 탈이 났으면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인데, 그러면 몸의 이상을 바로잡으면 되는 것인데, 전근대의 시기에는 기도나 주술, 즉 신의 힘을 빌려 악령을 쫓아내면 낫는다고 보았고, 근대의 시기에는 약이나 수술의 힘을 빌리면 낫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몸의 이상은 내가 스스로 낫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을 빌려서 낫는다고 생각했고 지금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신에서 약과 수술로 바뀌었을 뿐이다.
필자는 이런 사고에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돌고 있다는 잘못된 중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스스로 돌고 있다는 것을 밝혀낸 코페르니쿠스는 천문학에서 근대를 열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면서(空轉) 계절이 바뀌고 스스로 돎으로써(自轉) 낮과 밤이 생겨난다는 것이 지금은 상식이 돼 있다. 그런데 이미 근대를 벗어나고 있는 이 시점이 돼서도 우리 몸에 대해서는 지구가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돌고 있다는 천동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몸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외물(外物)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몸이 어디가 잘못되면 우선 무슨 영양분이 부족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비타민 C가 부족해서, 철분이 부족해서, 칼슘이 부족해서 등등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북한이나 아프리카의 빈민들처럼 먹을 것이 부족해 배를 곯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어날 수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처럼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영양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흡수한 영양분을 가지고 새로운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떨어져 있는 것일 뿐이다. 이런 물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떨어진 것은 몸이 틀어져 신경이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몸이 바로잡히면 이런 능력은 바로 회복이 된다. 이런 관점이 외물이 아니라 몸을 중심으로 보는 방법이다.
다음으로는 약을 찾는다. 약으로 도움을 받아서 나으려고 한다. 그러나 몸이 잘못된 것은 어디까지나 내 몸 자체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틀어진 몸을 바로잡으면 몸은 스스로 낫게 돼 있다. 자연치유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아무리 심한 병도 몸이 바로잡히면 다 낫게 돼 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외물이 아니라 몸을 중심으로 보는 방법이다.
다음으로는 수술을 하는데, 이 또한 불필요한 일이다. 물론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졌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 이런 수술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수술이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의 수술은 하지 말아야 한다. 몸이 바로잡히면 다 스스로 낫게 돼 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외물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중심으로 보는 방법이다.
몸에 탈이 났으면 몸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무한한 능력인 자연치유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낫게 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낫지도 않으면서 평생 외물인 약을 먹고 살라고 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능력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인간을 모독하는 방법이 지배를 하고 있다.
아토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보면 된다. 우리 몸이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면, 왜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우리 몸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우리 몸에서 원인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선천성 운운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아토피에는 여러 가지 증세가 있다. 아토피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 놓고 있지만 실은 이는 현대의학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토피성 피부염은 내분비계통으로 가는 신경이 많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질환이다. 이 질환에 걸려 있는 사람들의 자세를 한번 자세하게 살펴보자. 시쳇말로 하면 개판 오 분 전일 것이다. 이 질환이 있는 사람은 모두 똑같다. 흉추 4, 5, 6번이 심하게 틀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내분비계통의 기능이 심각하게 떨어져 피부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서 보내주지를 못한다. 이것이 아토피성 피부염의 원인이다. 이런 경우 내분비계통에서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무슨 약초니 팩이니 목욕이니 할 것 없이 구부러진 등을 펴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자세는 엉망인 채로 10년 동안 약을 먹고 무엇을 하고 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현대의학에서 아토피의 일종이라고 보고 있는 천식은 이와는 전혀 다른 원인 때문에 생긴다. 마찬가지로 흉추가 틀어져 있기는 하지만 천식은 기관지로 가는 신경이 갈라져 나오는 흉추 2, 3번이 틀어져 있을 때 생기는 질환이다. 똑같은 과민성이 아니라 기관지로 가는 신경이 약해져서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질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동일하다. 허리가 서고 흉추 7번이 제자리를 잡으면 그 위에 있는 흉추도 함께 제자리를 잡는다. 걷기숙제와 2번 방석숙제를 함께 병행하면 허리가 세워지고 흉추가 제자리를 잡게 된다. 허리가 너무 심하게 굽어 있는 사람은 1번 방석숙제까지 병행해야 이 지긋지긋한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몸살림운동의 방법은 자기의 몸을 중심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자력으로 안 될 경우에는 타력이라도 빌려야 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자기 몸을 믿고 스스로 몸을 펴자는 것이다.
이번까지 '몸살림의 인체학'이라는 부제로 30회를 연재하게 되는 셈이다. 이제 인체학을 정리하고 다음부터 '세대별 건강법'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난자와 정자가 결합해 엄마의 자궁에 착상되고 나서, 태어나서 자라고 성인이 됐다가 죽어 가는 순간까지 각 시기마다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생로병사의 4고(四苦)에서 나머지 세 개의 고(苦)는 생명체로서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만, 병고(病苦)라는 것은 생명체가 꼭 겪어야 할 고는 아니다. 자연의 생명체는 병이 나서 죽는 것이 아니라 늙어서 자연스럽게 죽는다. 생명체로서는 인간만이 문명을 만들어 내고 그 문명의 노예가 돼서 몸이 구부러져 병고를 겪고 나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다음 회부터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어떻게 해서 병의 고통을 당하게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지금까지 썼던 인체학 지식을 토대로 해서 어떻게 하면 인간이 '모든 병에서 해방'돼 건강하게 살 수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사람이 건강하면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삶을 환희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서로를 배려하며 느긋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가는 줄도 모르고 가야 할 곳으로 가게 된다. 이것이 생명체로서 진화의 가지 맨 꼭대기에 올라와 있는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이다. 문명을 꽃피움으로써 외부 생명체에 의한 생명의 위협이 사라지고 먹을 것 걱정할 것이 없어진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혜택이다. 어떻게 하면 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몸살림의 인체학'이라는 부제 하에서는 치골, 공명, 고관절, 턱과 이, 목과 눈·코·귀·입·머리, 두뇌, 허리, 흉추의 순으로 다루어 왔다. 이로써 우리 몸에 대해서는 대충 다 다루었다. 특별히 떼어서 다루지 않은 것이 있다면 손과 발, 피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 간단한 것이고 이미 여기저기에서 한두 번씩 언급한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따로 떼어서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피부에 대해서는 요즘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므로 한번 짚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몸살림운동을 수련하면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다양하다. 주량이 늘었다거나 성기능이 강화됐다거나 감기에 안 걸리게 됐다거나 허리나 다리가 안 아프게 됐다거나 별의별 애기가 다 나온다. 그러나 그런 것은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이 해결되면서 느끼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눈으로 보아서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앉거나 서거나 걸을 때 몸이 점점 더 똑바로 펴지게 된다는 것이다. 몸살림운동의 수련이라는 게 다른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슨 신비의 명약을 선사하는 것이다. 바로 몸을 펴는 것이 몸살림운동의 핵심이기 때문에 점점 더 몸이 펴지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오히려 몸을 펴지 못했다면 이것이 공연히 비싼 수련비만 내고 아무 것도 얻어 가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자가교정도 배우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고가 났을 때 틀어진 뼈대와 근육을 스스로 바로잡는 방법일 뿐 평상시에 몸을 펴고 사는 것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다. 또 타인교정도 가르쳐 주지만, 이는 다른 사람의 몸이 틀어져 있을 때 조금 도움을 주는 것이지 자기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는 것도, 또한 다른 사람을 건강하게 해 주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도 몸을 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고, 타인교정으로 도움을 받은 사람도 몸을 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피부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에 여드름에 대해서는 예를 들었지만 피부에 나타나는 질환은 모두 몸이 굽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흉추가 틀어져 이곳에서 내분비계통으로 가는 신경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의 흉곽 안에는 내분비계통의 기관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데, 이곳에 탈이 났을 때 피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다음은 몸살림운동 홈페이지 수련체험담 난에 올라와 있는 얘기이다. 글을 쓰신 분은 충남 서산에서 교원 일을 하시면서 1, 2주일 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와 몸살림운동을 배우고, 현재는 서산에서 몸살림운동 동호회를 지도하고 계신다.
머리카락이 다시 납니다(서장욱, 2006. 12. 17)
몸살림 동호회에서 약 4개월 동안 열심히 수련을 하였고, 본인 말씀으로는 저녁에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팔법을 거르지 않는다는 40대 중반의 남자분이신데 '속알머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몸살림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되었는데, 머리카락 다시 난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허리 세우고 가슴 펴는 운동을 열심히 하였더니 머리카락이 난다"고 하면 도무지 믿지를 않고, 무슨 약을 먹느냐고 묻는답니다. 참 답답한 노릇이지요. 가끔 다른 병으로 약을 먹었는데,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난다는 분은 있더군요.
머리가 허전하신 분들 용기 잃지 마시고, 허리 세우고 가슴 펴는 몸살림운동을 열심히 하시면 새해에는 더 젊어지시리라 믿습니다.
눈길 조심하십시오. 고맙습니다.
머리만 다시 나는 것이 아니다. 그 지겨운 비듬도 사라진다. 비듬이 사라지니 그 많던 귀지도 줄어든다. 그러면 그렇게 가려워서 면봉으로 귀를 긁어 대던 버릇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에게 "허리 세우고 가슴 펴는 운동을 열심히 하였더니 머리카락이 난다"고 하면 도무지 믿지를 않고, 무슨 약을 먹느냐고 묻는답니다. 참 답답한 노릇이지요." '약'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사람은 무언가 몸이 좋아진 것이 있으면, 무슨 좋은 약을 먹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스스로 다 낫게 돼 있는 이 좋은 몸은 놔두고, 조금만 몸에 이상이 있으면 약부터 찾는다. 큰 돈이 들더라도 신비의 영약을 먹고 한방에 나음으로써 건강을 구매하고 싶어 한다. 한방이든 양방이든 현재의 의료체계가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어쨌든 10년 전만 해도 아토피성 피부염은 주로 아기나 어린이들에게 나타나는 질환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정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전설로만 남게 됐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던 아토피가 지금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20대의 아토피 발병비율이 10년 전에 비해 20배나 높아졌다고 한다. 심지어 70대 할머니까지 아토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우연히 <KBS 2TV>의 'VJ특공대'를 보니까 아토피의 해법도 가지가지이다. 10년 이상 병원이니 한의원이니 찾아다녀도 안 낫는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자는 중에도 가려워서 긁어 대니 피부에 상처를 덜 입으려고 손에다 두툼한 면양말을 끼고 자는 사람도 있다. 얼굴에 염증이 나 있는 사람은 보기가 흉하니 대인 기피증에다 우울증까지 걸린다고 한다. 지푸라기라도 부여잡고 싶어 하는 환자의 절실함 때문에 돈을 아끼지 않으니 약을 먹는 것은 기본이고 침, 약초를 풀어 놓은 물에서 목욕하기, 특별히 담근 된장 팩, 구절초 진흙 팩에 바르는 약도 가지가지에 별의별 치료법이 다 등장하고 있다. 인스턴트식품이나 육류, 지방질 음식, 달걀흰자, 땅콩, 유제품 같은 것을 먹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현대의학에서는 아토피성 피부염은 아토피의 여러 증세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머크 매뉴얼>에서는 'Section 12 면역; 알레르기 질환' 중 'Chapter 148 과민성 질환'에서 Gell과 Coombs의 분류에 따라 '제I형 과민반응에 의한 질환'에서 아토피를 다루고 있다. 피부의 과민반응 때문에 아토피가 생긴다고 하는 것인데, 여기에서도 역시 원인에 대한 서술은 없고 '증상 및 징후'에 이어 '진단'법이 나오고, 이어서 '치료'법이 나온다. 원인도 모르면서 치료를 한다는 것은 재수가 좋으면 우연히 나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치료 매뉴얼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할 가치도 없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아토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가계적(家系的) 또는 유전적으로 나타나는 알레르기성 소인(素因). 1925년 미국의 A. 코카가 인간에 특유한 어떤 종류의 물질에 대한 선천적 과민성에 대하여 명명한 것이다. 나타나는 경향은, ① 고초열(枯草熱), 천식, 아토피성 피부염 등이 가족 내에 많다. ② 여러 가지 알레르겐(난백, 비듬, 꽃가루, 먼지 등)에 대하여 피내반응(皮內反應)의 양성률(陽性率)이 높다. ③ 혈청 내 항체(아토피성 알레르겐)의 존재, ④ 혈액호산구증다증(血液好酸球增多症), ⑤ 각종 스트레스(온도, 습도, 외상, 정신적 긴장, 감염 등)에 대하여 비정상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것 등이다. 이 개념의 확립으로 어린이천식, 아토피성 피부염 등 병인의 해명에 큰 진보를 가져왔다. |
"가계적 또는 유전적으로 나타나는 알레르기성 소인"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원인을 모르면 도피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므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분명히 얘기하는데, 병에는 유전이나 가족력이 없다. 다만 엄마 뱃속에서 눌려 있어 태어날 때부터 병을 가지고 태어나거나, 태어나고 나서 애기 때 부모가 잘못 안아서 척추가 틀어지거나, 부모의 잘못된 자세를 2세가 따라 해서 부모의 병을 2세도 갖게 되는 것일 뿐이다. 아이가 잘못되면 우선 엄마가 아이를 뱃속에 가지고 있을 때 구부리고 있었거나, 잘못 안아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성인이 돼서 부모와 같은 성인병을 앓게 되면 부모와 똑같이 잘못된 자세를 따라서 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유전이라는 근거가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유전일 확률이 몇 퍼센트라고 얘기하는 것은 현대의학의 무책임한 태도이다. 또 가족력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혀지지도 않은 가운데 가족력이 있으면 어쩌고 하는 것 역시 무책임한 태도이다.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면 얘기를 안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럴 수도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사람의 몸을 다루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될 무책임한 태도인 것이다. 현대의학은 이렇게 무책임의 극치 위에서 성립하고 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이러한 사실이 모두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오히려 현재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일 뿐이다.
고초열이라는 것은 봄에서 여름에 걸쳐 식물의 개화기에 나타나는 알레르기성 비염을 말한다. 꽃이 피면서 꽃가루가 날리게 되면 나타나는 증세이기 때문에 화분병(花粉病), 건초열(乾草熱)이라고도 한다. 코의 점막이 충혈되거나 붓고 가려움증을 느끼며 콧물이 심하게 나기도 한다. 계속해서 재채기가 나기도 하고 눈이 충혈돼 가렵고 눈물이 계속 흐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병으로 크게 고생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데, 황사가 불거나 버드나무 꽃가루가 날릴 때 이 증세가 심해진다. 미국 사람은 8~10%가 이 비염을 가지고 있는데, 치료법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를 피하는 것 외에는 없다고 한다. 항히스타민제, 부신피질 호르몬을 투여하며 항원탈감작요법(抗原脫感作療法)을 쓰기도 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어떤 종류의 물질에 대한 선천적 과민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선천적으로 과민성을 보이는 것이니 꽃가루를 피하거나 약을 먹거나 주사하여 잠시 이 증세로부터 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내 잘못이 아니고 유전적으로 주어졌으니 유전자를 바꾸지 않으면 방법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미 태어나 있으니 팔자를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조심하면서 평생 이 질환과 함께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현대의학이 병을 보는 방법은 대개 이와 같다.
그러나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1천만 년 전에 고인류(古人類)로 진화하기 시작할 때 자연환경은 어떠했는가? 여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10만 년 전에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의 초원과 열대우림 속에서 탄생할 때의 자연환경을 생각해 보자. 그곳에서 현생인류는 그곳의 자연환경에 적합하게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도 꽃은 있었을 것이고 꽃가루도 날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에도 미국처럼 8~10% 정도가 선천성으로 고초열에 시달렸을까? 이렇게 진화했다고 가정한다면 이 진화는 실패한 진화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선천적인 질환은 용납되지 않는다. 선천적인 질환이 있다면 이는 면역체계가 잘못돼 있다는 얘기인데, 면역체계가 잘못돼 있는 상태로 진화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더 나아가 한국에는 이 질환이 별로 없는데, 미국에는 이 질환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달리고 있을까를 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 사람은 선천적으로 이 병을 앓지 않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미국 사람은 원래부터 이 병을 앓도록 유전자지도가 만들어져 있을까? 그러면 조금 비약해서 미국인은 열등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한국 사람은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그런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미국은 다인종 사회이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유전자도 다양할 것이다. 이를 단일한 인종으로 반만년을 살아온 한국 사람과 비교할 수는 없다. 선천성으로는 도대체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무언가 다른 진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서 합리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도록 하자. 현대의학은 합리주의적 전통에 따라 과학적인 의학을 형성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현대의학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음은, 오히려 비과(非科學)학 내지는 반과학(反科學)의 극치를 달리고 있음은 그 동안 누누이 지적했다. 어떻게 합리주의적 전통을 따르는 현대의학이 거꾸로 비과학 내지는 반과학의 극치를 달리게 되는가는 합리주의의 역사적 위치를 제대로 이해하면 쉽게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합리주의를 어떤 절대적 가치로 설정해 놓고 보면 합리주의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유교나 불교, 기독교, 힌두교가 어떤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시기에 탄생해 일정한 과정을 거쳐 현재에 도달했듯이 합리주의라는 것도 특정한 지역에서 일정한 시기에 탄생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각 종교에도 수많은 종파가 있듯이 합리주의를 보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합리주의가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했듯이 1960년대 이후 이루어졌던 우리나라의 근대화 역시 서양화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서양화는 합리주의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생활하고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였다. 이런 과정에서 합리주의는 상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를 잡아 버리고 말았다. 누가 화를 좀 내면 "화 내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자"고 말한다. 이성적이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합리적인 것은 좋은 것의 대명사가 되고 만 것이다.
서양에서 합리(合理)주의는 근대의 시기에 섭리(攝理)주의에 대항해서 성장했다. 중세 신 본위의 사고에서 인간 본위의 사고로 전환하자는 것이었다. 인간 본위로 사고하고자 할 때 그 기준으로 세운 것이 이성(理性)이었다. 이성은 두뇌로 사고하는 것이었다. 두뇌 중에서도 감성적인 부분을 제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것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감성이라는 것은 이성이 사고하고 판단하는 데 자료를 제공하는 기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물론 낭만주의의 흐름이 이러한 이성 중심의 답답한 사고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감성은 오감(五感)을 통해 이성에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이었다.
여기에서 이성과 감성의 관계를 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또 이성과 감성의 관계를 논하게 되면 서양적 사고의 틀 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서양의 논의를 다시 반복할 필요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서양에서 이런 논의가 있었는데 그 줄기는 어떠했고, 또 왜 그렇게 됐는가 하는 과정만 이해하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논의 자체를 진리로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한 진리에 휘둘려 자기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생명체에 비교하면 하나의 뜬구름에 불과하다. 생명체가 바로 하늘이라면, 한 생각의 줄기라는 것은 그 하늘을 떠도는 구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생각에 매달려 하늘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낸다. 그 생각에 푹 빠져 버리는 것이다. 이 생각의 구름이라는 것은 비가 돼서 한번 땅에 쭉 내리고 나면 다 없어지고 만다. 그 거대한 구름이라는 게 실은 비가 돼서 내리고 나면 아무 것도 안 남고 없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가 생각도 하고 행위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이성의 문제와 관련시켜 보면 이성은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생명체가 진화의 과정에서 더 잘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내고 발전시킨 수단인 것이다. 인간 이전의 포유류가 두뇌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해서 생명체가 아닌 것은 아니다. 생명체가 두뇌를 발전시킨 것이다. 필자가 두뇌가 중심이 아니라 흉추가 중심이라고 하는 데는 이런 의미가 내포돼 있다. 중추신경계에서 생명의 근원인 흉추가 진화의 과정에서 두뇌를 비대화시켜 자기의 의지를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이성은 자신을 키워 낸 부모의 뜻에 따르게 돼 있다. 자기 혼자 한껏 생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지만, 이렇게 생각의 나래를 펼친 덕분에 문명의 꽃도 피우게 됐지만, 결국은 생명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인간이 두뇌로 아무리 발달한 문명을 만들어 내도 이는 결국 생명체가 살기 위한 것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이성이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는 소위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한 번 비가 내리면 꺼져 버리고 말 뜬구름을 진리라 믿고 이의 전파에 목을 맨다. 내가 믿고 있는 종교가, 나의 철학이, 나의 이데올로기가 온 세상에 퍼져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다. 20세기가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됐던 것은 결국 이성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 이데올로기에 그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헌신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때문에 생명을 죽이는 전쟁도 하고 혁명도 하고 동과 서로 편을 가르고 냉전을 벌이기도 했다.
자기가 만들어 낸 것을 우선하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자기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즉 생명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만들어 낸 것을 우선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생명의 문제, 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로 돌아왔다. 그리고 생명의 문제를 우선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철학이고 사상이고 문화고 무엇이고 간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생명의 문제이다.
근대 이성의 시기에 합리주의로 무장한 유럽 사람들은 비(非)유럽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생각했다. 야만에 대해서는 문명이 이를 깨우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도 문명화이고 철도를 놓는 것도 문명화였다. 그리고 야만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들이 사는 지역에서 자연자원을 약탈해 가고 이들을 노예화시키는 것도 문명화였다. 합리주의로 무장한 유럽이 하는 일은 모두 진리에 합당한 일이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미국을 진리로 자부하면서 비(非)진리인 악의 축을 절멸시키고 이들 나라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심어야 한다고 전쟁을 벌였다. 문명과 진리가 생명보다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를 우상숭배의 종교로 만드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합리주의라는 것은 이렇게 서양 사람들이 만들어 낸 자기 중심주의였다. 결국 합리주의는 서양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제멋대로 해석되는 잡동사니였다. 이 사람의 합리주의는 저 사람에게는 합리주의가 아니고, 저 사람의 합리주의는 이 사람의 합리주의가 아니었다. 합리주의는 섭리주의에서 인간 본위로 나아가는 데는 기여했지만, 그것은 결국 서양 사람들 본위로 나아가는 데 기여했을 뿐, 인류 차원으로 범위를 넓힌 것은 아니었다. 서양 근대의 합리주의는 서양 중심주의였고 서양 사람 중심주의였다.
현대의학을 합리주의와 연결시켜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굳건한 철학적 토대도 없고 앞뒤가 연결되지도 않는 구멍이 숭숭 난 이론체계를 가지고도 결국 현대의학은 이 지구상에 현대의학 중심주의를 관철시켰다. 유럽에서 탄생한 것이면 모두 문명이고 비(非)유럽의 것이면 모두 야만이라고 주장하는 서양 중심주의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현대의학은 각 나라의 전통적인 방법을 야만으로 치부하고 몰아내면서 문명의 표징으로서 모든 나라에 퍼져 갔던 것이다. 특히 근대화가 초미의 과제였던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 현대의학은 근대화의 상징 중의 하나로서 법적으로 독점권을 누리게까지 됐다.
합리주의는 비합리주의를 야만으로 취급했지만, 근대의 시기에 합리주의만큼 사람들을 '야만'적으로 취급한 사상은 없었다. 합리주의자들에게 자기 인종은 사람이었지만, 타 인종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동물에 비해 기억력이 뛰어나고 말을 할 수 있는 동물일 뿐이었다. 서양에서도 중세 이전, 즉 고대 로마에서나 존재하던 노예제가 미국 땅에서 10세기를 지나 부활했다. 이 노예제를 부활시켜 낸 사람들은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프로테스탄트였다. 유일신을 믿고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합리주의 문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들을 보고 문명화된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합리주의 안에는 문명과 함께 지독한 야만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합리주의를 자신의 전통으로 삼고 있는 현대의학에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문명과 야만이 공존하고 있다. 현대의학에서 문명은 화학물질에 지나지 않는 약과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 기기이고, 야만은 원인을 모르면서 하고 있는 '치료'이다. 원인을 모르면서 치료를 하고 있는 이 놀라운 야만이 약과 의료기기에 의해 문명으로 포장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의 근대가 군함과 대포라는 근대 과학기술의 산물을 문명으로 치장하고 타 민족을 착취하고 노예로 삼는 야만을 저질렀던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합리주의, 즉 이성으로 잘 판단해 보면 병이라는 것은 유전될 수 없다. 야생의 동물은 병으로 죽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잡아먹혀서 죽거나 못 먹어서 죽거나 살 만큼 다 살고 나서 죽는다.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 종이 멸종해 버릴 수는 있지만, 병으로 죽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람도 야생의 동물로부터 진화했다. 그런데 인간만이 병이 유전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현대의학은 논리적 사고로부터도 너무 많이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누누이 써 왔지만 현대의학은 온통 논리의 비약을 통해서 체계가 구축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래 위에 세워진 누각, 바로 사상누각이라고 했던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왜 피부가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소위 '과민반응'을 일으키는가 알아보도록 하자. 몸살림운동에서는 사람의 몸을 볼 때 몸을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의 몸을 볼 때 몸을 중심으로 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모든 체계는 한방이든 양방이든 그 무엇이든 사람의 몸을 보면서도 몸을 중심으로 보지 않았다.
사람의 몸보다는 근대 이후의 시기에는 약이나 수술을, 전근대의 시기에는 신(神)을 중심으로 보았다. 몸에 탈이 났으면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인데, 그러면 몸의 이상을 바로잡으면 되는 것인데, 전근대의 시기에는 기도나 주술, 즉 신의 힘을 빌려 악령을 쫓아내면 낫는다고 보았고, 근대의 시기에는 약이나 수술의 힘을 빌리면 낫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몸의 이상은 내가 스스로 낫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힘을 빌려서 낫는다고 생각했고 지금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신에서 약과 수술로 바뀌었을 뿐이다.
필자는 이런 사고에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돌고 있다는 잘못된 중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스스로 돌고 있다는 것을 밝혀낸 코페르니쿠스는 천문학에서 근대를 열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면서(空轉) 계절이 바뀌고 스스로 돎으로써(自轉) 낮과 밤이 생겨난다는 것이 지금은 상식이 돼 있다. 그런데 이미 근대를 벗어나고 있는 이 시점이 돼서도 우리 몸에 대해서는 지구가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돌고 있다는 천동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몸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외물(外物)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몸이 어디가 잘못되면 우선 무슨 영양분이 부족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비타민 C가 부족해서, 철분이 부족해서, 칼슘이 부족해서 등등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북한이나 아프리카의 빈민들처럼 먹을 것이 부족해 배를 곯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어날 수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처럼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영양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흡수한 영양분을 가지고 새로운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떨어져 있는 것일 뿐이다. 이런 물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떨어진 것은 몸이 틀어져 신경이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몸이 바로잡히면 이런 능력은 바로 회복이 된다. 이런 관점이 외물이 아니라 몸을 중심으로 보는 방법이다.
다음으로는 약을 찾는다. 약으로 도움을 받아서 나으려고 한다. 그러나 몸이 잘못된 것은 어디까지나 내 몸 자체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틀어진 몸을 바로잡으면 몸은 스스로 낫게 돼 있다. 자연치유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아무리 심한 병도 몸이 바로잡히면 다 낫게 돼 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외물이 아니라 몸을 중심으로 보는 방법이다.
다음으로는 수술을 하는데, 이 또한 불필요한 일이다. 물론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졌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 이런 수술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수술이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의 수술은 하지 말아야 한다. 몸이 바로잡히면 다 스스로 낫게 돼 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외물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중심으로 보는 방법이다.
몸에 탈이 났으면 몸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무한한 능력인 자연치유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낫게 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낫지도 않으면서 평생 외물인 약을 먹고 살라고 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능력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인간을 모독하는 방법이 지배를 하고 있다.
아토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보면 된다. 우리 몸이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면, 왜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우리 몸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우리 몸에서 원인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선천성 운운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아토피에는 여러 가지 증세가 있다. 아토피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 놓고 있지만 실은 이는 현대의학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토피성 피부염은 내분비계통으로 가는 신경이 많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질환이다. 이 질환에 걸려 있는 사람들의 자세를 한번 자세하게 살펴보자. 시쳇말로 하면 개판 오 분 전일 것이다. 이 질환이 있는 사람은 모두 똑같다. 흉추 4, 5, 6번이 심하게 틀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내분비계통의 기능이 심각하게 떨어져 피부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서 보내주지를 못한다. 이것이 아토피성 피부염의 원인이다. 이런 경우 내분비계통에서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무슨 약초니 팩이니 목욕이니 할 것 없이 구부러진 등을 펴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자세는 엉망인 채로 10년 동안 약을 먹고 무엇을 하고 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현대의학에서 아토피의 일종이라고 보고 있는 천식은 이와는 전혀 다른 원인 때문에 생긴다. 마찬가지로 흉추가 틀어져 있기는 하지만 천식은 기관지로 가는 신경이 갈라져 나오는 흉추 2, 3번이 틀어져 있을 때 생기는 질환이다. 똑같은 과민성이 아니라 기관지로 가는 신경이 약해져서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질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동일하다. 허리가 서고 흉추 7번이 제자리를 잡으면 그 위에 있는 흉추도 함께 제자리를 잡는다. 걷기숙제와 2번 방석숙제를 함께 병행하면 허리가 세워지고 흉추가 제자리를 잡게 된다. 허리가 너무 심하게 굽어 있는 사람은 1번 방석숙제까지 병행해야 이 지긋지긋한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몸살림운동의 방법은 자기의 몸을 중심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자력으로 안 될 경우에는 타력이라도 빌려야 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자기 몸을 믿고 스스로 몸을 펴자는 것이다.
김철/몸살림운동가 |
출처 : 몸살림운동 부산동호회
글쓴이 : 공구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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