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피아노)/^^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베토벤/합창 환상곡 (Choral Fantasy in C minor, Op.80) - S, Richter

로만짜 2008. 4. 28. 00:18

Choral Fantasy in C minor, Op.80

Fantasia for Piano, Chorus, and Orchestra

베토벤 / 합창 환상곡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Sviatoslav Richter, Piano / Kurt Sanderling, Cond
Ussr TV and Radlo Russlan Folk Orchestra


Adagio
Sviatoslav Richter, Piano
Ussr TV and Radlo Russlan Folk Orchestra
Kurt Sanderling, Conductor / 러시아 국립음악원 합창단 1952


Finale. Allegro
Sviatoslav Richter, Piano
Ussr TV and Radlo Russlan Folk Orchestra
Kurt Sanderling, Conductor / 러시아 국립음악원 합창단 1952


Allegretto ma non troppo, quasi Andante con moto
Sviatoslav Richter, Piano
Ussr TV and Radlo Russlan Folk Orchestra
Kurt Sanderling, Conductor / 러시아 국립음악원 합창단 1952

베토벤 합창환상곡 (Choral Fantasy in C minor, Op.80)

코랄환타지는 피아노협주곡에 합창곡을 붙인 곡으로 9번 교향곡 4악장과 같은 경우라고 할수 있으며, 단일 악장으로 완성도가 떨어 진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일반적으로 많이 연주되는 곡은 아니지만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협주곡인 5번 황제를 작곡한 1809년 다음해인 1810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피아노 협주곡 5번에 대하여 미진한 부분을 생각하며 작곡한듯 하며 의외로 매력이 넘치는 곡이기도 하다.

베토벤의 작품번호 80번 <합창환상곡>은 피아노 협주곡에 성악과 합창이 함께 등장하는 독특한 곡이다. 공식 명칭은 '피아노와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Fantasia for Piano, Chorus, and Orchestra in C minor, Op.80)이다.

이 곡은 베토벤이 교향곡에 합창을 도입하려는 소위 시험 작품이었고, 이 작품에서 확실한 자신감을 얻은 베토벤은 드디어 작품 125번인 9번 교향곡 4악장에서 공식적으로 합창을 도입하게 된다. 연말이나 송년음악회 또는 특별 기념 연주회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이 곡과 함께 연주되는 경우가 많은데 연주 시간이 약 20분 정도라서 시간적으로도 적절하지만 오케스트라와 함께 <합창>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에서 그러하기도 하다.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Sviatoslav Richter,1915 - 1997 )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Sviatoslav Teofilovich Richter, 1915 - 1997)는 1915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오르가니스트인 아버지와 역시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폴란드 태생의 독일인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제자였다고 한다.  '독소(獨蘇)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는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피살되었고 어머니는 독일로 망명하여 리히터는 러시아에 혼자 남게 된다.

양친이 음악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리히터는 독학으로 피아노를 공부했다. 그리하여 15살 때인 1930년, 오뎃사 극장의 연습 피아니스트로 일하게 되었고, 1934년엔 쇼팽의 작품으로 리사이틀을 열어 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직업적인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937년, 비로소 처음으로 본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위해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여 겐리히 네이가우스(부닌의 祖父)의 문하에서 수업한다.

네이가우스는 이 나이 많은 제자를 극진하게 가르치고 갈무리 해 주게 되는데 그의 소개로 프로코피에프를 알게되어 그의 소나타 6, 7, 9번을 초연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1945년, 전 소련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소련과 동구(東歐)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치게 된다.  또한 1952년에는 프로코피에프의 첼로 협주곡 2번을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연주로 초연하는 장소에 지휘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1960년, 고소공포증으로 비행기를 타지못하고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하여 서방세계 최초의 연주회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그의 이름이 비로소 서방세계에도 알려지게 되었고 세계적인 명성을쌓기에 이른다.

쿠르트 잔데를링, (Kurt Sanderling 1912~)

동(東)프로이센의 아리스에서 태어났다. 개인적으로 음악을 공부하였고, 1931년에 베를린 국립극장의 연습 지휘자가 되었다. 그러나 1935년에 모스크바로 망명하였고, 이듬해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하여 지휘자로서 데뷔하였다. 이를 계기로 하여 이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취임하였고, 1941년에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의 부지휘자로 영입되었다. 전쟁을 사이에 두고 1960년까지 레닌그라드에서 보냈다. 그리고 수석 지휘자 므라빈스키와 협력하면서 함께 이 오케스트라를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만들었다. 전후에는 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적극적으로 국외에 연주 여행을 하였다.

그러나 1960년에 그는 사회주의 체제가 확립된 동베를린으로 옮기고, 베를린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악단의 연주 수준을 세계 제1급의 것으로 끌어 올렸다. 1964∼1967년까지는 드레스렌 국립관현악단 지휘자도 겸무했다. 그리고 이 두 오케스트라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 등과 더불어 국외로도 연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예컨대 1974년에는 베를린 교향악단과, 1981년에는 드레스덴 국립관현악단과 함께 동양을 연주 여행했고 영국에는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을 지휘하여 1970년에 처음 등장했다.

또 1973년에는 클렘페러가 사망한 후의 뉴 필하모니아 관현악단의 최초의 연주회를 지휘했다. 이와 같은 국내 및 국외에서의 활약이 인정되어 잔데를링은 동독에서 1962년과 1964년에 국가상을 받았다. 소련으로부터는 명예 예술가의 대우도 받고 있다. 그의 아들 토마스 잔데를링도 지휘자로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잔데를링은 레퍼토리가 넓은 지휘자로서, 그 중에서도 이른바 독일 것과 러시아 - 소련 것, 그리고 시벨리우스 등을 장기로 한다. 러시아 - 소련 것에는 장기간의 레닌그라드 체류의 경험으로 므라빈스키의 영향을 받은 것이 당연하지만, 또 거기에는 독일적인 구축성이 가미되고 있다. 어느 곡에서도 명쾌함을 존중하면서 큰 파도와 같은 기복감이 있다. 그것이 때로는 강한 서정성이 되어 호소하기도 하고, 때로는 교묘하게 긴장과 이완을 배치하여 극적인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이처럼 그의 해석에서는 이성과 감정의 밸런스가 멋지게 잡혀있다.

레코드로는 교향곡이나 협주곡 등의 연주회용의 곡을 전적으로 지휘해 왔다. 그 중에는 드레스덴 국립관현악단을 지휘한 <브람스의 전 4곡의 교향곡>(오이로디스크)이 빛난다. 낭만적인 열기와 극히 자연스러운 서정도 깔려 있으며, 흔들림 없는 견고한 구성도 엿볼 수가 있다. 어떤 오케스트라도 잔데를링의 지휘 아래 있게 되면 실감있는 연주를 하게 된다.

음원출처:http://mediafile.paran.com

위의 음원과 글은 '하늘바람꽃'님께서 올려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