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4개의 피아노 즉흥곡
1) 즉흥곡 제1번 A♭장조 op.29 세도막 형식Impromptu No.1 in A-flat major Op.29
1837년에 작곡된 이 곡은 다른 즉흥곡보다 가장 맑고 깨끗한 곡이다.
'환상곡'으로도 불리우는 이 곡은
조르즈 상드와의 사랑이 시작된 때에 작곡된 것이라서 그런지
깨끗하고 밝으며 매혹적이다.
2) 즉흥곡 제2번 F#장조 op.36Impromptu No.2 in F-sharp major Op.36
1839년의 작품으로 Chopin의 4개의 즉흥곡 중에서 가장 시적인 곡인데,
왼손만에 의한 꿈결 같은 악구로 시작되는 녹턴 풍 곡이다.
3) 즉흥곡 제3번 G♭장조 op.51 세도막 형식Impromptu No.3 in G-flat major Op.51
1842년에 작곡된 곡으로 첼로에 의해 멜로디가 노래한다.
코다의 화음적인 진행이 이 곡의 종결부를 긴장시킨다.
4) 즉흥 환상곡 c#단조 op.66 세도막 형식 Fantasie-Impromptu (No.4) in c-sharp minorOp.66
1834년 Chopin이 파리에서 작곡한 매우 감미롭고 매력적인 곡이며,
생전에 그 자신이 애지중지하기로 유명했던 곡이다.
Chopin은 이 곡을 항상 악보 사이에 끼우고 다녔을 뿐 아니라
출판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는 에스테 부인에게 헌정하려고 착수한 곡이라 추측하고 있으며,
Chopin의 사후 유작으로 출판되었다.
곡의 흐름이 매우 감미롭고 아름답다.
위 글을 자세히 보시면 한가지 특이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Chopin의 즉흥곡 4곡 중에서 그의 사후 가장 마지막에 출판되고
가장 사랑받는 4번(op.66)이실제로는 맨 먼저 작곡되었다는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Chopin의 나이 24세,
푸르기만 하던 청춘에 작곡하여 그가 가장 애지중지했던 곡이었을 뿐 아니라
더구나 Chopin은 유언에서 그가 죽은 후 이 아름다운 곡을 파기해 주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환상적인 음악이라서 "즉흥환상곡"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오늘날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매혹적인 음악이 되었습니다.
젊은 쇼팽이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뜨거운 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때의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천재 Chopin의 사랑이 이처럼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음악들을 탄생시킨 것을 생각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은 정말 위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흥곡(卽興曲, Impromptu)은 즉흥적인 악상(樂想)을 소품(小品)형식으로 쓴 악곡을 말합니다.
19세기 낭만파음악의 초기에 나타난 캐릭터 피스(character piece)라고 하는
피아노곡 종류의 하나로 즉흥곡이라는 이름처럼 대개 엄격한
구성적 작법을 쓰지 않는 것이 보통이기는 하지만
즉흥연주(卽興演奏, Improvisation)에 의하여 만들어진 곡과는 달리 정해진 형식을 지닌다고 합니다.
캐릭터 피스(Character piece)란 19세기 피아노 음악 중 자유로운 형식의 소품곡을 뜻합니다.
1836년 12월 어느날 26세의 Chopin은 리스트와 함께 방문한
아구백작의 집에서 한 여인을 만납니다.
당시 상류사회에서도 유명한 조르즈 상드(George Sand) 라는 미모의 여류 소설가였습니다.
그녀가 Chopin보다 6살이나 연상이었지만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는데,
이 무렵 Chopin은 폐병이 차츰 악화되어 의사로부터
파리를 떠나 조용한 시골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요양할 것을 권고받은 때였다고 합니다.
마침 조르즈 상드의 아들 모리스도 급성 류마티스로 고통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추운 한겨울 동안 따뜻한 지중해의 마조르카 섬으로 옮겨가 함께 살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 사이에
피아니스트인 리스트(Liszt, Franz von, 1811 ~ 1886)가 있습니다.
수려한 용모와 더불어 당시 '피아노의 귀재'란 칭호가 붙을
정도로 뛰어난 연주가였던 리스트는
상류 사교계 뭇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합니다.
연주 전에 항상 자신의 장갑을 피아노 위에 벗어 놓고
연주가 끝나면 그냥 남겨 놓은 채 나가버리는 습관으로 인해
언제나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가 끝난 이후
그 장갑을 서로 갖기 위해 싸우는 귀부인들로 인해
공연장은 북새통이 끊이질 않을 정도였다고 하지요.
리스트와 Chopin, 이 두 거장들은 파리에서 처음 만나자 바로
한 눈에 서로 상대방의 음악적 재능을 흠모하게 되고
그 날부터 둘은 거처를 한 방에 정하여 같이 먹고 자고 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리스트는 Chopin의 피아노 솜씨와 작품들을파리의
상류사회에 소개하려 백방으로 애쓰기 시작하고,
그러한 과정 가운데 음악사에 길이 남을 만한,조르즈 상드와의
애절한 사랑도 싹트게 된 것이지요.
조르즈 상드는 당시 시가(권련) 담배를 물고남장을 하고
다닌 여류 문학가로 유명하였다고 하는데
리스트와 교분이 있던 상드는 Chopin의 천재성을 간파하고는
리스트와 함께 파리 사교가와 음악계에
Chopin을 소개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재미난 일화도 전해져 옵니다.
리스트의 피아노 독주회가 있던 밤이었습니다.
그날 리스트는 자신의 피아노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실내의 모든 불을 끈 채
캄캄한 가운데에서 연주를 시작하였습니다.
관객들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수 한 번 내지 않는
리스트의 천재적인 피아노 실력에 감탄하며 연주를 듣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연주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연주회장 뒤켠에서
한 줄기 빛이 나타나 천천히 무대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조르즈 상드가 한 손으로 촛불을 받쳐들고 무대 앞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지요.
불빛이 점점 무대 앞쪽으로 움직여 피아노 위에
놓여졌을 때 관객들은 모두 놀라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던 사람은 리스트가 아니라 바로 Chopin이었기 때문입니다.
리스트와 상드가 서로 꾸며 리스트 대신 Chopin이 연주하고 있었고,
관객들은 '역시 리스트'라는 생각으로 연주에 흠뻑 취해 있었는데,
불이 밝혀지고, Chopin의 연주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놀라움은 이날 이후
Chopin이 천재 음악가로 인식되는 돌풍을 일으키게 되었고
파리에서의 데뷔 연주회 또한 멋지게 성공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아라우, 클라우디오(Arrau, Claudio 1903 ~ 1991)
오늘 Chopin의 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사람은
클라우디오 아라우(Claudio Arrau)입니다.
클라우디오 아라우(Claudio Arrau)는
중남미의 전통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가장 먼저
중남미 클래식 음악의 전통을 확립한
선구자적인 인물이라고 합니다
남미 칠레(Chile)의 산티아고(Santiago) 남쪽에 위치한 치얀(Chillan) 출신
피아노 연주자로 파오리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5세 때 산티아고에서 첫 무대를,
7세 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데뷔하였습니다.
그 뒤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독일로 유학, 베를린의 슈테른음악학교에서 수학하고
다시 M.크라우제에게 사사(1910∼1915)하여 기량을 닦았다고 합니다.
1914년 11세의 나이로 베를린에서도 데뷔하고 2년 후에 이바하상을 받아
피아노 독주자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을 뿐 아니라 1924년에는 미국에 건너가 활약하고,
1927년에는 제네바 국제콩쿠르에서 피아노 1등상을 받아
더 한층 명성을 떨쳤다고 전합니다.
클라우디오 아라우(Claudio Arrau)는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레퍼터리를 가졌으며
뛰어난 기교와 지적이고 개성적인 이해를 특기로 하였다고 평가됩니다.
특히 베토벤과 쇼팽 음악의 세계적인 해석가로
음악적 해석을 작곡자의 진정한 의도를 가능한 한 가장 가깝게 다가가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연주자의 상상력을 펴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음악의 해석에 있어서 작곡자의 뜻과 연주자의 개성이 밸런스 있게 조절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라고 보고, 악보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그러면서도 작곡자의 의도를 무책임하게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Claudio Arrau - [Chopin] Op.69 No2 Waltz in B 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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