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c Satie - Je te veux
Yoshikazu Mera (요시카즈 메라)
1971, Japan 카운터테너
Ange d'or, fruits d'ivresse, cher amour des yeux Donne-toi je te veux Tu seras ma maitresse Pour calmer ma d tress, Viens, o deesse. J'aspire à l'instant précieux Ou nous serons heureux Je te veux.
Tes cheveu merveilleux te font une aureole Dont leblond gracieux Est celui d"uno idole Que mon cœur soit le tien Et ta lèvre la mienne, Que ton corps soit le mien, Et que toute ma chair soit tienne.
Oui, je vois dans tes yeux La divine promesse Que ton cœur amoureux Ne craint plus ma caresses Enlacés pour toujours, Brûlés des mêmes flammes, Dans des rêves d'amours Nous échangerons nos deux âmes | 나는 너의 고뇌를 이해했다. 사랑하는 애인이여, 그리고 나는 너의 희망에 양보한다. 나를 너의 애인으로 삼아주오. 지혜는 우리에게서 먼 곳에, 더 많은 슬픔, 나는 소중한 순간을 갈망한다. 우리가 행복한 순간을 나는 너를 원한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단 하나의 갈망만은 갖는다 너의 가까이, 그 곳 아주 가까이서 전체 나의 생애를 살아 나의 심장은 너의 것이 되고 그리고 너의 입술은 나의 것이 되고, 너의 몸은 나의 것이 되고, 그리고 모든 나의 육신은 너의 것이 될 것을.
그렇다. 너의 두 눈속에서 나는 본다. 신성한 약속을 사랑에 빠진 너의 심장은 나의 애무를 구하러 온다. 영원히 서로 얽혀, 동일한 불길로 불태워져, 사랑의 꿈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두 영혼을 교환할 것이다. |
에릭사티 (Satie, Erik Alfred Leslie, 1866.5.17~1925.7.1) 프랑스
프랑스의 작곡가. 노르망디의 옹프루르 출생. 옹프루르의 교회 오르가니스트인 비노에게 피아
노와 그레고리오성가를 배우고, 12세 때 파리로 나와 콩세르바트와르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아카데미즘에 반감을 느껴 이듬해 퇴학하고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하였다.
1887년 처음으로 피아노곡집을 출판하여 그 특이한 악풍으로 파리악단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생계를 위하여 몽마르트르의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는 동안 드뷔시를 사귀게 되었다.
사티는 기존 음악계가 쌓아놓은 신조나 미학을 무시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간 '세기말의 반
항아' 였다.
에릭사티와 쉬잔 발라동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에릭 사티가 예술가로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그가 죽은 지 38년
만이다. 에릭 사티를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 것은 가난과 독신이었다. 그는 평생 ‘무슈 르 포브
르’ 즉, ‘가난뱅이 씨’라고 불릴 만큼 가난했으며 단 한 번의 연애를 끝으로 독신으로 살았다.
묻혀 있던 그를 다시 발견한 것은 프랑스 영화감독 루이 말이었다. 1963년, 루이 말 감독은
자신의 영화 도깨비불의 영화음악으로 사티의 피아노 곡을 사용했다. 영화가 개봉되자 ‘정신
이 아찔해질 만큼 아름다운 이 음악은 대체 누가 작곡한 거지? 뭐? 사티라고? 도대체그가 누
구야?’ 하며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마치 두껍고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는 계단을 올라가듯
툭툭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짐노페디>나 <그노시엔> 큰 소리로 외치는 게 아니라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피아노 소리.
에릭 사티의 음악을 글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파리 몽마르트르로 이사 온 시골 청년 사티는 술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곤궁한 생계를 이어가
고 있었다. 술집에서 처음 쉬잔 발라동을 보았을 때, 그녀는 그 당시 이미 유명했던 화가 툴루
즈 로트레크와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 사티는 절대로 겁먹을 것 같지 않은 야생의 냄새를 풍
기는 그녀를 보며 ‘섣불리 손댔다가는 깨물릴 것 같군’ 하는 생각을 한다. 쉬잔 역시로트레크
의 어깨 너머로 사티를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그들이 다시 만난 건 2년 뒤의 일이다.
그가 한평생 사랑했던 여자, 쉬잔 발라동.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와 르누아르, 퓌비 드 샤반의
모델이며 그들의 연인이기도 했던 쉬잔. 사티는 그녀를 사랑했다.
르누아르의 모델을 하면서 그의 그림을 흉내내기 시작하며 화가의 꿈을 키워 가던 쉬잔은 사 티에게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들의 동거는 반년 동안 지속된다. 어느 날 쉬잔과 사 랑을 나누고 있던 사티는 맞은편 거울 속에서 벌거벗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된다.깜짝 놀라 돌아보니 벌거벗은 쉬잔이 “당신, 갑자기 왜 그래요?”라며 묻는다. 그날 이후로 사티는 쉬잔과 육체적인 사랑을 나눌 수 없게 되었다.
사티의 초상화를 완성한 쉬잔이 슬픈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이걸 그릴 때 내 몸과 마음이 참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어쩐지 이건 내가 그린 게 아니라, 내 몸 속에 들어온 당신 어머
니가 그린 것 같아요.” 헤어지고 두 달 뒤 사티는 쉬잔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
했소.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 이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오.'
그 뒤 사티는 애달프고 슬픈 음악들을 계속 작곡하였지만 한동안 압생트라는 독한 술에 빠져
살았다. 쉬잔은 그녀의 소망대로 프랑스의 표현주의 화가로 성공했다. 사티는 59세에 죽었다.
그가 죽은 뒤 아르크에 있던 그의 방에서 부치지 않은 편지 한 묶음이 발견되었다.
수신인은 모두 쉬잔 발라동이었다.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쉬잔과 그의 아들 위트릴로와 개 한 마리가 나란히 있는. 그리고 뒷면에는 ‘사랑스러운 쉬잔
발라동의 사진’이라는 사티의 고딕 필체가 남아 있는. 이 사진 속에 사티는 보이지 않는다
사티가 죽은 뒤 이 사진을 건네받은 쉬잔이 개줄을 쥐고 있던 맨 왼쪽 사티의 모습을 도려낸
것이다. 30여 년 세월이 흐른 뒤에야 겨우 배달된 사티의 편지를 받은, 61세의 유명인사 쉬잔
은 이렇게 고백한다.
“솟아나는 추억은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지만….”
그 말줄임표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 숨겨진 의미 때문에 쉬잔은 사진 속 사티의 모습을 도려내 버렸던 것일까. 쉬잔을 떠올리며
작곡할 때, 사티는 생각했다. 쉬잔을 육체적으로는 소유할 수 없었지만 예술적으로는 가질 수
있다, 라고. 결국 쉬잔에 대한 사티의 예술적 소유는 지금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티의 음
악, 즉 예술로 승화한 것이다. 단 한 번의 연애. 사티가 쉬잔을 만난 건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
때였다.
나는 이 낮고 낮은 땅에, 왜 왔을까. 즐겁기 위해서? 형벌로?
무언가 알 수 없는 임무를 띄고서? 휴식 삼아? 아니면 그냥 우연히?
나는 태어나 얼마 안된 아이일때 부터 내가 작곡한 음들을 흥얼거리고
노래 불렀지. 그래, 내 모든 불행은 거기서 시작된 거야...
에릭 사티, 일기 중에서,,,
(영화 '사티와 수잔' 의 마지막 대사이기도 하다)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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