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싱글/EP 1978
<시인의 마을>은 처음 나왔을 때 아름다운 서정이 드리운 노래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심의를 통과하기 위하여 "창문을 열고 내다봐요/ 저 높은 곳에 우뚝 걸린 깃발 펄럭이며/ 당신의 텅 빈 가슴으로 불어오는/ 더운 열기의 세찬 바람"을 "창문을 열고 내다봐요/ 저 높은 곳에 푸른 하늘 구름 흘러가며/ 당신의 부푼 가슴으로 불어오는/ 맑은 한 줄기 산들바람"으로 가사를 고쳐 불러야 했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뒤였다. 한마디로 <시인의 마을>은 '가사 사전 심의'에 의해서 걸레가 된 노래였고, 아름답다고 여겼던 가사가 역겨움으로 다가온 노래였다.
첫 앨범부터 심의기관과 악연을 맺은 정태춘은 결국 20년 뒤에는 뮤지션들을 옥죄었던 '가요 사전 심의'를 철폐시키는 위대한 행보를 하였다. 그리고 이는 그 동안 대다수의 뮤지션들이 자신의 표현(창작)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지키기(신장시키는 것은 둘째치고) 위해서 했어야할 현실발언을 등한시한 것에 일격을 가한 것일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모범을 보여준 것이었다.
여태까지 한국 대중음악계는 70년대 당시 유신정권이 대중음악을 말살하는 정책을 필 때도 묵묵부답, 1980년에 광주가 무참히 피로 짚밟힐 때도 묵묵부답, 90년대 초반 정태춘이 '가요 사전심의 철폐'를 주장하며 외로히 혼자 싸울 때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나서 정태춘의 투쟁으로 모든 뮤지션들이 그 단 열매를 먹고있지만, 누구하나 그를 기리는 뮤지션이 없다. 메이저씬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인디씬에서조차. (예전에 송창식이나 김창완은 '가요 사전심의 철폐'가 왜 필요하냐고 반문을 했다. "지금도 노래 만드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이를 소신 있는 발언으로 보아야하나? '내 동료 무덤에는 침을 뱉지마!'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조PD. 그는 온갖 욕을 자신의 음반에 담아서 팔 수 있었던 것을 보수적인 사회가 스스로 바뀌어서 자신의 가사를 용인하는 것으로 착각하나? (권리 투쟁 없이 얻어지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이 있는가?) 그가 자신의 가사에서 보여준 것처럼 정치적이고, 그가 정말 '제대로'된 정신을 갖고 있다면 1집에서의 성공을 정태춘에게 먼저 돌려야했다. 따로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이번 2집 부클릿에 "이 음반의 출반은 정태춘님의 투쟁으로 가능했습니다"라는 글 한 줄도 못 적나? 그렇기 때문에 그의 가사(욕)는 사회성이 배제된 단순한 욕지거리에 불과할 뿐이고, 그 모든 것이 '돈 벌자고 하는' 짓거리로 폄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정태춘의 1집은 그의 작품 연보를 보았을 때 현재의 궤적이 형성되기 한참 전의 작품이다. 88년 [무진 새 노래]를 기점으로 새롭게 정착된 그의 노래들로 보았을 때 그의 말대로 이 앨범은 '사춘기적 감상'이 담긴 노래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70년대 말 대마초 사건으로 무주공산이 된 가요계를 생각한다면 70년대 초반의 모던포크와 80년대의 포크를 이어준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도회적인 감성과 엘리트주의 싫어하는 그의 성향이 작품에 면면히 담겨있는데, <목포의 노래(여드레 팔십리)>가 대표작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랑 노래 <촛불>이 실려있는데 이후 이런 작품은 보기가 힘들어진다. 인천에서 군대 생활할 때 만들었다는 <서해에서>는 당시 그의 대표작으로 인식한다.
백수재에서 :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어리버리 돈키호테 리차드강 |